지만원(池萬元, 1942년 1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공학자이며 교육자,군사평론가, 사회기관단체인, 정치인이다. 육군사관학교를 22기로 졸업, 육군소위에 임관되었고, 1987년 육군사관학교에서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군인 시절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정치 경력으로는 시스템미래당 대표로 활동하였고, 1990년부터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 시스템클럽의 대표 등을 맡고 있으며, 언론활동도 하고 있다. 친일 옹호 발언 논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인민군 침투 의혹, 이명박의 일본인 의혹 제기 등 여러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U.S.NPS 부교수, 인하대학교 교수, 경희대 겸임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강원도 횡성군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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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약력
[편집] 생애 초기
[편집] 출생과 소년기
지만원은 1942년 11월 20일 강원도 횡성군에서 태어났다. 동생만은 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넷째 형의 노력으로 횡성군 일신국민학교(현 일신초등학교)에 입학, 그뒤 일신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면사무소 소재지 인근에 있던 지제중학교로 진학했다.[1]
[편집] 학창시절
그뒤 학교를 중퇴했으며 형들을 따라 서울로 이주, 서울 동대문구 장안평에서 독방을 얻어 노동일을 하는 큰 형 집에 머무르며 신문도 배달하고, 철판을 두드려 시발 자동차를 만드는 이른바 서비스공장도 다니고, 건설현장에 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기도 했다. 그뒤 서울 고흥중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3학년을 다니다가 중퇴했다.[2]
그뒤 용두동에 소재해 있던 서울 한영중학교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고, 서울 한영고 야간반 과정에 입학했으며 1961년 한영고 야간반 과정을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는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지망했지만 성적 미달로 떨어졌다.[3] 그뒤 고전소설, 위인전, 영웅전, 사상계 등 잡지로 나날을 보냈다.
[편집] 군인 활동
[편집] 장교 임관
그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66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22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에 임관되었다.
[편집] 월남전 참전
1967년 ~ 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백마부대 포병연대에 배속되었으며, 중위 재직 중 포병 대대 사격지휘 장교를 지냈다.[4] 이후 대위로 재임 중 관측장교, 작전장교, 포대장(중대급) 등을 역임하고, 1971년에 귀국했다. 그 뒤 1972년~1974년 정보본부 해외정보 모집장교, 귀국 후 1976년~1977년 국방 PPBS 도입 연구요원,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981년~1987년 국방부 국방연구원 책임연구 위원 등을 역임했다.[5]
그뒤 육군사관학교로 발령받았다가 1987년 육군사관학교 예비역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5]
[편집] 도미 유학과 학위 취득
장교로 복무하던 중 미국으로 유학, 미국 해군대학원(Naval Postgraduate School)에서 행정과학(Administrative Science) 석사과정(1974년~1975년)을 마치고, 경영과학(Operation Research) 박사학위(1977년~1980년)를 취득[5][6][7]하고 귀국하였다.
[편집] 예편 이후 시민사회단체 활동
[편집] 연구, 사회단체 활동
1987년~1989년 U.S.NPS 부교수, 1990년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 1994년 김대중, 김상현을 만났으나 뒤에 그들과 결별하였다. 1998년 7월 2일부터 1999년 10월까지 서울특별시 시정개혁위원, 1998년 11월 1일부터 1999년10월 30일까지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5] 이후 언론과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고, 1999년 9월 인하대학교 교수와 경희대학교 겸임교수에 임용되었다.
2000년 시스템클럽 홈페이지를 개설, 우익 논객으로 활동해 왔다. 이후 노무현 정부 중에는 극우인사의 대명사 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어 진보 언론과 진보성향 시민단체들과 논쟁과 공방전을 벌였다.
[편집] 대선 출마와 피소
2007년 시스템미래당을 창당하여 대표를 역임했다. 동년 17대 대선기간 중 대통령예비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으며, 대통령후보자 이명박의 일본인설 의혹을 제기했다가 피소되었다. 이후 1990년~현재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 군사평론가, 시스템클럽 대표 등에 재직중이며, 칼럼과 광고 발표, 토론회 패널 참여 등 언론활동도 하였다.
[편집] 주요 활동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부터 1999년 10월까지 서울시 시정 개혁 위원 및 국가 안보 정책 연구소 자문 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2월 반공 보수적 성향의 월간지 한국논단에 "김대중 정권, 적과의 내통을 의심한다"는 제목으로 김대중 정부의 좌편향 정책을 분석한 논설을 기고해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보수진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주체사상파와 민족해방파 계열 및 친노무현 세력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으로 논쟁,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2009년 12월 11일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에 관련해 소규모를 보내면 탈레반의 공격목표가 되어 위험하므로 1개 사단의 병력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8]
2005년에는 지만원의 안티카페인 안티지만원 카페(http://cafe.daum.net/sibalman)가 개설되기도 했다.
[편집] 논란 거리
[편집] 친일옹호 발언 논란
- 2005년 3월 10일, 지만원과 진중권은 CBS TV(스카이라이프 162번,지역 케이블) 시사프로그램 'CBS 저널' 녹화방송을 통해 1시간 20여분 동안 '친일 비판자는 좌익?’이라는 주제를 놓고 서로의 주장을 거침없이 펼쳐나갔다. 지만원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 쏴서 일본이 항복하니까 해방이 된 것이지 만약 러시아에 먹혔다면 일본이 항복해도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독립 못했다"며 "그것이 천만다행인거지 한 교수님을 그렇게 매도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한 교수의 글 제목 자체가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자는 거다"며 "100년 전에 있었던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부추겨서 반일감정을 가지면 무슨 국익에 도움이 되겠느냐"면서 "배울 부분이 매우 많은 글"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진중권은 "한 교수님 논문 전문이 지금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고 있다"며 "한 교수가 러시아를 지적한 것은 일본 우익들이 러일전쟁 승리의 추억을 갖고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는 일본이 아시아를 구원했다는 대동아 공영권의 근거로 사용한 일본 파시스트의 생각"이라고 맞받아쳤다. 또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터트리지 않았으면 항복을 늦게 했을테고 전쟁이 본토로 확대되고 오키나와에서처럼 일본이 수천명 사망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원자폭탄은 일본국민의 축복이며 원자복탄이라고 해야 하나?"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리멘트에서 지만원은 "그 분(한승조)이 이번에 아주 훌륭한 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9]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측은 지만원이 한승조 교수를 위한 해명의 광고문을 실으려 하자 ‘일본의 독도 망동’으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친일 발언을 옹호하는 광고를 싣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 광고 게재를 거절했다. [10]
[편집] 뉴라이트 비판 관련
- 2002년 이후 민족해방파나 평등파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신우익운동인 뉴라이트 운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 2005년 4월에는 위안부 중에 가짜 위안부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위안부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을 비판했다.
- 2005년 4월 18일 뉴라이트의 논객이자 변호사인 이재교는 지씨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78세보다 젊어보이고 건강도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어떻게 가짜라고 주장할 용기(?)가 있는지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지씨는 위안부 문제는 전쟁 중의 일시적이면서도 예외적인 현상이기에 소수의 노파를 끌고 다니며 배상금을 요구하는 것은 치사하고 못된 짓으로 치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것이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해서 정당화될 수도 없고 소수에 불과했다고 해도 개인으로서는 한 평생이 걸린 문제"라고 반박했다.[11] 이재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씨는 이 시위를 돈을 겨냥한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그 차원이 아니라 국가가 강제로 여성을 위안부로 삼은 국가폭력 또는 전쟁범죄의 문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어 그는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유형을 `식민형'과 `착취형'으로 분류한 뒤 "일본이 한반도의 교육 및 산업에 투자한 것은 일본이 우리를 식민형 식민지로 지배했기 때문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한승조씨와 지만원씨가 주장했던 일본의 축복은 결코 될 수 없다.[11]"고 반박했다.
- 2006년에는 "신지호·류근일·김진홍은 뉴라이트 빨갱이"라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12] 이에 조선일보의 기자 출신 류근일은 2006년 12월의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된 언급이나 반박을 피했다.[12]
[편집] 문근영 가족 관련
- 2008년 11월 1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부천사 좌익세력의 작전인가?〉란 글을 통해 연예인 문근영씨의 사회기부활동을 일부 특정세력에서 외조부 류낙진의 빨치산 행적과 연관시킨다고 비판했다.[13] 그는 그해 4월 YTN과 MBC 등에 문근영의 선행을 칭찬하던 기자와 앵커들이 문근영의 외조부 류낙진을 언급한 것을 문제삼았다.
- 11월 18일 진중권은 포문을 열고, 언론에 "70년대 반공 초등학생이 쓴 글 같다[14]"고 비난했다.
- 논란의 와중에 진중권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자 지만원은 명예훼손으로 그를 법원에 고소했지만,[15][16] 지만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법원은 "진씨의 발언을 허위사실 적시로 보기 힘들다"며 "일부 표현에서 인격모독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발언 경위 등을 감안할 때 풍자와 해학의 측면이 있다"고 판결했다.[17]
- 2009년 3월 7일, 검찰은 고소를 기각, 진중권은 7일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띄운 글을 통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1. 정보통신망 (명예훼손) --- 혐의 없음, 2. 명예훼손--- 혐의 없음, 3. 모욕--- 죄가 안 됨, 이런 내용입니다”라고 밝혔다.[18]
- 2009년 4월 17일 서울남부지법 민사15부(재판장 김성곤 부장판사)는 지만원 씨가 “내 발언을 왜곡해 보도했다”며 SBS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19]
- 2009년 5월 13일, 지만원의 발언과 관련하여 ‘지만원 박사가 국민 회초리 맞은 이유-지만원박사 대오각성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야’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브레이크뉴스의 김환태 논설 위원과 화해하였다. 여기서 지만원은 사실 관계를 오해한 것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밝혔다.[20]
- 2009년 10월 17일, 언론사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만원은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회통념상 참을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지씨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해하는 모욕행위라며 지씨를 비난한 기자들에게 200만원의 배상책임을 물었다.[21]
- 2009년 11월 3일 "지만원은 만원이나 냈나?" 라고 비난했던 블로거 임모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지씨의 글이 문근영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음에도 이를 고의로 혹은 부주의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함부로 비판했다"고 지적했다.[22]
- 2010년 6월 1일 지만원이 ‘문근영은 빨치산의 손녀’라고 쓴 자신을 비방한 진보 성향의 진중권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진씨의 글을 허위사실로 보기 어렵고, 지씨가 일부 표현에서 인격모독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진씨의 발언 경위 등을 감안할 때 풍자와 해학의 측면이 강하다”며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23]
같은 해 11월 12일 지만원이 진중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4]
[편집]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 2002년 8월 16·17일 잇따라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에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쌀, 마늘사건 등으로 농민을 분노케 해놓고, 거기에 노동세력, 홍위세력 등 좌익들이 불을 댕기면 광주사태의 확대판이 나올 수 있다.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다. 소요사태를 일으켜놓고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선거도 없고, 우익들이 잡혀가고, 김정일이 무혈로 서울을 장악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 이란 내용의 광고로 논란을 일으켰다.[25]
- 지만원은‘명예훼손’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뒤 2003년 1월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27]
- 2003년 8월 오마이뉴스는 '지만원과 늑대'라는 제목으로 지만원의 광고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이후 지만원은 오마이뉴스의 기사 때문에 명예가 훼손됐다며 오마이뉴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터넷 기사에는 다소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있지만 당초 지씨의 신문 광고가 5.18민주화운동을 `소수의 좌익이 북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폭동'이라고 본질을 왜곡한 이상 그런 심한 비난과 반발을 유발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27][28]
[편집] 전현직 대통령 관련
2006년 지만원은 시스템 미래당 대표로 재직하던 중에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가 허위병력으로 병역을 면제받았고, 모친이 일본인이며, 형인 이상득과는 이복형제라는 허위 주장을 하여 1심에서는 실형을,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를 선고[34]받았다. 17대 대통령 선거기간 중 이명박에 대한 공격을 계속 하였으나 피소, 이로 인해 2007년 대한민국 대선과 2008년 대한민국 총선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그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이명박과 실용정부에 대한 비판을 계속했다.
2009년 5월 26일 지만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인내에 한계를 느낀다"라는 제목으로 "노무현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 거기에 더해 노무현 자신도, 부인도, 식구들도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조소받는 거짓말을 했다"면서 "패가망신의 도피처로 자살을 택한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어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 운명을 다한 노사모들이 시체를 가지고 유세를 부리며 단말마적 행패를 부리는 것도 못 봐주겠다"며 "무대 뒤로 사라졌던 역대 빨갱이들이 줄줄이 나와 마치 영웅이나 된 것처럼 까불어대는 모습도, 감옥에 있던 노무현 졸개들이 줄줄이 기어 나와 얼굴을 반짝 들고 설쳐대는 모습도 참으로 꼴불견들"이라고 밝혔다.[35]
[편집]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관련
2008년 11월 20일 동아일보는 "지만원 씨는 문근영 씨를 다룬 두 개의 글에서 “동아일보 광고 해약사태는 간첩들이 중앙정보부를 사칭해 벌인 사건”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고 있다. 엄혹했던 그 시절 간첩들이 광고주들을 서울 한복판(서빙고동) 아지트로 차례로 납치한 뒤 고문해 동아일보 광고를 해약하도록 했는데 억울하게 중앙정보부가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정상이라고 보기 힘든 상황 인식이다."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싣었다.[36]
[편집] 저서
-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하나(1990, 김영사)[37]
-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상.하(1991, 진원출판사)[38]
- J의 사관 생활: 멋(1992, 진원출판사) [39]
-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1993, 현암사) [40]
- 문민 IQ(1994, 경문사) [41]
- 북한의 핵을 읽어라(1994, 일본어판, 일본 삼일서적) [42]
- One Korea?(1994, 미국 후버연구소 공저) [43]
- 싱크로경영(1994, 생산성본부) [44]
-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1996, 도서출판 자작나무) [45]
- 추락에서 도약으로 -시스템요법-(1997, 도서출판 석필) [46]
- 국가개조 35제(1998, 21세기북스) [47]
- 시스템을 통한 미래경영(1998, 현암사) [48]
- 햇볕정책의 허실(1999, 일본 비지네스 출판사)
- 북한을 영구분단시키자(1999, 일본 덕간서적) [49]
- 한국호의 침몰(2000, 현암사)[50]
-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2008, 도서출판 시스템)[51]
- 12.12 와 5.18 상, 하 (2009, 도서출판 시스템)
[편집] 상훈
- 1971년 인헌무공훈장(무공 월남전 파병전공)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 ↑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print.php?bo_table=int02&wr_id=41
- ↑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print.php?bo_table=int02&wr_id=41
- ↑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int02&wr_id=6
- ↑ http://www.systemclub.co.kr/profil2.htm
- ↑ 가 나 다 라 시스템클럽
- ↑ "Developing Mathematical Models for Preliminary Internal Control Evaluations of Inventory Systems in Auditing". 석사학위 논문
- ↑ "Mathematical Models for Operational Availability". 박사학위 논문
- ↑ 인터넷 독립신문 : new
- ↑ 지만원,"한승조,그분 이번에 아주 훌륭한 일 했다"
- ↑ 조선·동아, 지만원 광고 게재 거절 :: 네이버 뉴스
- ↑ 가 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979089
- ↑ 가 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81440
- ↑ 서재희. “‘기부천사’ 배우 문근영, 악성 댓글 논란”, 《KBS》, 2009년 11월 18일 작성. 2009년 12월 28일 확인.
- ↑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989445
- ↑ '문근영 색깔론' 지만원, 진중권 명예훼손 고소
- ↑ 임재훈 기자. “'지만원 3행시, 문근영 3행시'”, 《뷰스앤뉴스》, 2008년 11월 19일 작성.
- ↑ 보수논객 지만원, 진중권에 항소심도 패소 노컷뉴스 2010년 6월 1일
- ↑ '문근영 좌익'논란 지만원, 진중권에 '완패',《노컷뉴스》 2009년 3월 7일
- ↑ [1]“문근영 씨 비방은 색깔론” 지만원 씨 패소],《동아일보》
- ↑ 지만원. “문근영사건 법정다툼서 아름다운 화해로”, 《브레이크뉴스》, 2009년 7월 8일 작성. 2009년 12월 28일 확인.
- ↑ 지만원, 언론사 상대 손배소 승소 뉴데일리
- ↑ "지만원은 만원이나 냈냐?" 30대에 유죄
- ↑ 보수논객 지만원, 진중권 상대 항소심서 패소
- ↑ '문근영 색깔론' 지만원 손배訴 패소 확정
- ↑ [2]오마이뉴스
- ↑ '5.18은 폭동' 발언 지만원씨 고발 오마이뉴스
- ↑ 가 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4&aid=0000165180 지만원 씨, 오마이뉴스 상대 패소 ]
- ↑ "지만원씨, 잘못했으면 다소 심한 보도 감수해야"
- ↑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
- ↑ 5·18 단체, 지만원씨 등 고소 왜곡·비방글 명예훼손 혐의 한겨레신문
- ↑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
- ↑ 시스템클럽
- ↑ 가 나 5·18 왜곡 '도 넘었다' 광주드림 2009년 01월 06일자
- ↑ 이명박 비방 지만원 집유
- ↑ 안광호기자. “‘盧 서거’ 극우인사들 독설에 네티즌 ‘뿔났다’”, 《경향신문》, 2009년 5월 27일 작성.
-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0&aid=0002005513 누가 자신을 악플러라 하는가
- ↑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하나(1990, 김영사)
- ↑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상.하(1991, 진원출판사)
- ↑ J의 사관 생활: 멋(1992, 진원출판사)
- ↑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1993, 현암사)
- ↑ 문민 IQ(1994, 경문사)
- ↑ 북한의 핵을 읽어라(1994, 일본어판, 일본 삼일서적)
- ↑ One Korea?(1994, 미국 후버연구소 공저)
- ↑ 싱크로경영(1994, 생산성본부)
- ↑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1996, 도서출판 자작나무)
- ↑ 추락에서 도약으로 -시스템요법-(1997, 도서출판 석필)
- ↑ 국가개조 35제(1998, 21세기북스)
- ↑ 시스템을 통한 미래경영(1998, 현암사)
- ↑ 북한을 영구분단시키자(1999, 일본 덕간서적)
- ↑ 한국호의 침몰(2000, 현암사)
- ↑ 수사기록으로본12.12와 5.18역사책 발간
[편집]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