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가 아침에 오랜만에 왔다. 다섯 살 생일을 맞아서 케잌을 들고 오는 그를 안았다.
오전엔 5.18공원에 가며 그가 하자는대로 해주려고 노력했다. ‘아빠 위로,’ ‘책 사 줬으면 좋겠다’ ‘마트 가자’ 큐빅 장난감을 사 주기도 했다.(해달라는 대로 해 주면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라 했는데)
공원 뒤에서 가을이 가득한 꽃과 하늘을 보다가, 한볕이랑 탁구를 하다가 집에 와서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하늘이 좋다.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서니 2시, 555번 타고 증심사 주차장에 내리니 45분쯤 온통 하산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가득 차 있다.
반대편 길을 따라 오르다 캔 맥주 두 개 사서 증심교에서 토끼등 쪽으로 오른다. 계단과 돌길을 쉬지 않고 올라 토끼등 위 하동정씨세장산에서 물을 찾으니 따라 놓고 가져오지 않았다. 건망증이 오는가? 캔 맥주 하나를 마시고 동화사터 길을 잡고 오른다. 늦재에서 너덜겅 길과 함께 좋아하는 길이다 쉬지 않고 집중하게 한다. 지나는 사람들도 없고 가끔 내려오는 이들이 있다. 너덜겅이 끝나는 쯤의 샘에서 물을 마시고 오르면서 도토리를 줍는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온다. 뵙지 않으면 더 큰 죄이리.
동화사터 부적합 물을 마시는데 박을남 교장을 만난다. 산행객의 이야기를 엿들으면 퇴직 교원들이 많다. 나도 저렇게 어울려 산에 오를까?

중봉 오르는 길은 억새가 피어나고 파란 하늘 아래 멀리 연실봉도 또렷하다. 광주 시내를 보다 천왕봉을 보다 중봉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어느 새 4시 반이다. 6시 반에 새인봉에서 일몰을 보자고 한 산행이다. 캔 맥주 병에 담은 물을 마시고 군부대 오르는 길을 따라 서석대로 오른다. 구절초가 몇 송이 보여 찍어보나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서석대 아래서 바위를 보다가 서석대 위에 앉아 천왕봉을 쳐다본다. 군인들의 노래소리가 울려나온다. 갇힌 이들의 질러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저 천왕과 인왕 지왕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 올 날은 언제일까?

무등은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정상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서석대 능선에 서서 지리를 찾아본다. 반야봉에서 본 무등을 생각하며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모후 조계 너머 백운의 억불봉이 솟아 눈에 들어오지만 지리의 능선은 천왕에 올라야 할 것 같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낀 채 내려오는데, 오르는 이가 ‘날이 좋아 사진 많이 찍으셨겠네요.’한다. 괜히 폼을 잡고 다녔나 후회된다. ‘지리산이 보입디까?’한다. ‘못 보았습니다. 제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으니 가서 확인해 보십시오.’ 느리작 거리다 5시 30분쯤 하산하여 입석대에서 전주 산행객 사진 찍어주고(첫 길인 그들의 하산길을 염려함) 장불재에 오니 6시다. 저녁 놀이 산을 황금산으로 만든다. 뛰기 시작한다. 바윗돌만 골라 딛는다. 몸이 더 가벼우면 좋겟다. 능공허도의 경공을 생각해 보며 쓴웃음진다.

중머리재까지 17분 정도에 내려왔다. 쏟아지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새인봉 쪽으로 달린다. 서편 능선에서 구경하다가 바닥에 갈린 철망을 넘었다. 어느 정도 내려가면 새인봉 삼거리를 만나려니 하며 내려가고 내려가는데 삼거리는 나오지 않는다. 예전의 길이 또렷한데 사람흔적은 갈수록 찾을 길이 없다.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일몰을 본다. 6시 40분을 지나자 붉은 하늘도 다 사라진다. 초엿새의 달이 보인다. 오다보니 오른편 골짜기 건너로 새인봉이 보인다.

나는 전혀 다른 길을 들어섰다. 그래도 길은 알 수 있어 봉우리를 서너개 넘는다. 7시를 넘어가자 어둡다. 앞에도 봉우리가 몇 개 버티고 있다. 넘을 자신이 없다. 무서워진다. 사람이 지난 흔적의 길을 찾아 골짜기로 내려간다.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내려간다. 침대 아래로 들어간 탁구공을 찾고 꼬마 랜턴을 배낭에 매단 것이 희망이다. 직경 1미터 정도의 밝음을 땅에 보여준다. 그에 의지하여 물이 만들어 놓은 길을 내려온다. 달도 비추지 않고 나무에 몸을 부딪히며 내려온다. 발은 헛딛고, 몸은 긁힌다. 다행이 핸드폰은 켜진다. 119 구조요청을 할까, 도와달라고 크게 외쳐볼까? 물소리가 가까워진다.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농로가 하얗게 보인다. 저 멀리 개 짖는 소리도 들리고 가로등도 보인다.

‘살았다’ 어둠을 두려워하진 않았으나 그 어둠이 어디서 끝나는지 모른다는 것은 꽤 큰 두려움이었다. 개울물 위로 반딧불 몇 개가 날아다닌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어둠 속에서 씻는다. 반딧불이 주변에 있다가 멀리 날아간다. 찍고 싶으나 내 능력 밖이다. 씻고 내려오니 길은 군데군데 끊어졌다. 농로인데 폐쇄되었다고 쇠사슬이 걸려있고 안내문도 붙어있다. 운림동이다. 증심사 오르는 길이잖아. 현덕사 지나 한참을 내려오니 잘 지은 별장들이 보이고 절도 많다. 보광사 해룡사 뭔사 해서 6개의 절들이 있다. 동산 마을을 지나니 운림동의 아파트가 보인다.
조난을 마친 기념으로 첫 만나는 술집에 들어가기로 한다. 8시에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나이 지긋한 두 사내는 막걸리를 들이키고 주인 아낙은 나물을 다듬다 오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란다. 그들의 말에 끼어들어 길을 물어본다. 나는 막걸리를 한 병, 그들에게도 기념으로 한병, 김치찌개도 반으로 나누어 주고 나 혼자 막걸리 한 병을 비운다. 잠시 후 가곡을 흥얼이며 얼굴 깨끗한 사람이 들어선다. 모두 일어나 인사하며 변호사님 오늘 어디 갔었느냐 한다. 행색이 그 중 초라한 이가 오늘은 실종자와 조난자가 오는 집이라고 말한다. 같이 웃는다. 8천원이라하여 막걸리 하나 더 주라하며 만원 주고 나온다. 555번 버스 안에서 졸았다. (추가사진은 아래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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