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용(베드로)신부님
40.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교본 제40장 : 463-493면)
1) 주님의 마지막 유언(교본 463-466면);
2) 레지오는 영혼 하나하나를 겨냥해야 한다(교본 466-468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언이고 명령이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심으로써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복음 선포 사명을 몸소 수행할 수 없으셨다. 그 대신 재림 때까지 모든 신자들에게 당신의 선교 사명을 맡기셨다. 아무리 못된 자식이라도 부모의 유언은 실천하려고 한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예수님의 유언인 선교 사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인류 구원 사업에 동참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강생하신 목적은 지상의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을 전하여 믿고 사랑하도록 함으로써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고을마다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셨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일을 하도록 나를 보내셨다"(루가 4,43).
교회 창립의 목적은 복음 선포이다. 선교와 복음화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 생겨났고 복음화를 위해 존재한다.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다. 교회는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선교 교령, 2항). 그래서 미사 끝에 사제가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면서 신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한다. '미사'의 뜻도 사명과 파견이다. 교회는 복음 선포를 강조하려고 전교의 달과 전교 주일을 정해 놓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전교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말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
선교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지만 실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혼자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예수님의 유언을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조직적 선교 단체가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가 바로 그런 단체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영혼 하나하나를 겨냥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악한 사람이라도 그에게 개인 접촉을 하여 복음 전파 활동을 한다. 그런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은 단원들의 상투적인 말보다도 모범적인 삶이다. 삶과 생활로써 모범을 보여 주지 않는 선교는 실패하기 쉽다. 세상 사람들은 종교 자체보다도 종교인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아무리 참된 종교라도 신자들의 생활이 실망스러우면 믿지 않으려 한다. 신앙 이론이 아니라 신앙생활이 더 중요하다.
단원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보다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먼저 선교해야 한다. 비신자인 가족, 친척, 친지, 친구, 동료, 이웃 등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성당에 같이 나가자."고 자신 있게 권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긍심을 가진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선교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단원 자신이 기쁘게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겠는가? 단원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애덕을 실천하면서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보여 줄 때 비로소 그들은 자발적으로 예비신자 교리반에 나오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레지오 단원은 예수님의 유언인 선교 사명을 이행할 때 입으로만 봉사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봉사하는 그야말로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3) 정교(正敎) 전통을 지닌 자매 교회들(동방 교회)과의 특별한 유대 관계(교본 468-470면)
동방 교회는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가 당시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인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 반도, 이집트, 아르메니아 등지에 전파된 교회를 말한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를 교황에게 맡기고 330년에 자신의 거처를 동방의 콘스탄티노폴리스(비잔틴)로 옮겼다. 700년 이상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는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다만 동방 교회는 전례에서 비잔틴 예식을 별도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서방과 동방 교회는 언어, 제도, 관습, 전례 예식, 신경(信經) 해석에서 차이가 생기고, 비잔틴 총주교들의 로마 교황과의 동등권 주장 등 극단적인 의견 대립으로 1054년에 분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방 교회는 동방 전례를 따르는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로 나뉜다. 동방 가톨릭 교회는 교황을, 볼 수 있는 지상 교회의 으뜸으로 받아들이지만, 동방 정교회는 그렇지 않은 것이 차이점이다. 그러나 그 외에는 서로가 거의 비슷하다. 동방 정교회에서 거행하는 일곱 성사와 성찬의 전례도 유효하다. 왜냐하면 서로 분열된 후에도 정교회는 정교 전통을 지녔고, 정통 주교로부터 성품성사가 수여되어 왔기 때문이다.
동방 정교회 가운데 두드러진 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이다. 동방 교회는 서방 교회인 로마 가톨릭의 자매 교회라고 불린다. 예수님께서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듯이(요한 17,20-26 참조) 분열된 서방과 동방 교회는 서로 일치하려고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분열은 그리스도의 뜻에 명백히 어긋나며, 세상에는 걸림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야 할 지극히 거룩한 대의를 손상시키고 있다"(일치 교령, 1항).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동방 교회에 관한 교령을 반포하고 이듬해인 1965년에 동방 교회 총대주교를 만남으로써 실로 911년 만에 두 교회가 화해를 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동방 교회와의 일치를 위한 교황 교서 '동방의 빛'을 반포하며 제1항에서 이렇게 강조하였다. "우리는 존경스럽고 유구한 동방 교회의 전통을 그리스도 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자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동방 교회의 전통과 친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은 그 전통에서 자양분을 얻고 각자 최선을 다하여 일치의 과정을 촉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교황은 2001년 5월에 몸소 그리스를 방문함으로써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간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동방 정교회는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께 대한 공경과 신심이 각별하다. 프랭크 더프는 성모 신심이 깊은 동방 정교회에서 가톨릭 교회가 제정한 묵주기도를 바치게 될 날이 오기를 염원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 정교회에 애착을 가져 1969년부터 매년 그리스도를 위한 외지 순방팀(P.P.C.)을 러시아에 파견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이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정교회는 정교 전통이 있으므로 개종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와 일치의 대상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일치의 방법을 모색하는 가운데 성모님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시며 일치의 어머니시다. 성모님은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 발현하시어 정교회를 신봉하는 러시아가 공산 국가로 바뀔 것을 예언하시면서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셨다. 성모님의 예언대로 소련 공산 정권은 공교롭게도 1991년 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에 붕괴되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독립 국가가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서방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일치를 위해 레지오 단원들은 일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해야 한다.
4) 입교자를 찾아 나서자(교본 470-477면)
입교 권면, 외인 권면 활동은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 종목 중 첫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천주교 신자는 열 명에 한 명꼴도 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선교 대상이 지천에 널려 있다.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므로 누구나 절대자를 찾아 행복해지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입교 권면 활동을 해야 한다. 비신자들이 성당을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누군가가 입교 권면을 함으로써 예비신자가 된다.
일반적으로 비신자들은 천주교에 대해 호감과 호의를 지니고 있다. 종교를 선택해야 한다면 천주교를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천주교 신자들이 이기적이고 냉정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천주교에 호감을 갖고 있는데 성당에 나가자고 권유하는 친절한 신자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마치 밥상을 차려 주었는데도 숟가락을 들지 않는 것과 같다. 타 종교 신자들은 과도할 정도로 선교 활동을 펼치는데 유독 천주교 신자들은 입교자를 찾아 나서는 활동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천주교에 와야 할 비신자조차 타 종교에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만이라도 적극성을 띠고 입교 권면 활동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지오 단원조차도 소극적이다. 쁘레시디움 사업 보고서를 보면 1년 동안에 한 명도 입교시키지 못한 지단이 있다. 비신자들은 생활 속의 시련으로 위로를 받고 싶어하고 영적인 담화를 고맙게 여긴다. 단원들이 친절하게 접근하면 쉽사리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들은 비신자들에게 활동할 때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해야 한다. 다만 신앙을 강요하거나 논쟁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입교 권면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려면 만나는 비신자마다 입교 대상자로 여기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말문을 열어야 한다. 이때에는 반드시 수줍은 마음이나 체면,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시종일관 친절과 사랑을 보여야 하며 상대방을 위해 기도를 해 주어야 한다.
여기에 어느 열심한 레지오 단원의 입교 권면 활동 사례를 요약해 본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입교 활동 대상자로 여기고 먼저 말을 꺼내어 호의적인 대화를 나눔으로써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나 가까운 친지를 만났을 때, 장례 봉사나 병원 방문 때, 버스와 지하철의 승객이나 택시 기사에게, 횡단보도에서 만나는 이에게 등 누구라도 놓치지 않고 잠시라도 대화를 나눈다. 그는 효과적인 선교 활동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대인 접촉에 있음을 알고 겸손한 자세와 친절한 언행으로 사람들과 사귀고 온화한 표정으로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관심을 보이며 힘닿는 데까지 사랑을 실천한다. 그리고 아는 비신자를 만나면 신앙의 대화를 꺼내 쉽게 천주교 안내 책을 전해 준다.
그는 입교 권면 활동 경험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여 입교 권면 활동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① 선교 활동은 용기와 신념을 가져야 가능하다.
② 굳센 믿음과 불타는 선교 사명감으로 대인 접촉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선교의 성패가 달려 있다.
③ 즉각적인 반응이 없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므로 끊임없이 선교의 씨를 뿌려야 한다.
④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좋은 표양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믿음은 들음에서 비롯하므로"(로마 10,17) 호소력 있는 말과 안내 책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레지오 마리애」 114호, 76-80면 참조).
5) 개종시키려면 성체를 설명하라(교본 477-481면)
개신교에는 성체성사가 없고 성체를 모시는 감실이 없다. 성품성사가 없기 때문이다.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가 있어야 미사를 통해 성체성사가 이루어진다. 사제가 없으니 고해성사, 견진성사 등 다른 성사도 없다. 다만 세례식, 혼례식, 기념 성찬례가 있을 따름이다. 1517년에 천주교 신부였던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가 이른바 종교 개혁으로 '새롭게 고친 교회'(개신교)를 만듦으로써 예수님께서 세우신 일곱 성사가 없어졌다. 개신교는 오직 성서, 은총, 믿음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예배도 거의 말씀 전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써 성체성사 제정을 준비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50-51).
그리고 수난 전날 저녁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사제는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 하신 말씀을 미사에서 그대로 재현한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마태 26,26-28; 마르 14,22-24; 루카 22,14-20; 1코린 11,23-25 참조).
오직 성서만을 주장하는 개신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내 몸이다."라고 선언하신 분이 동시에 '내 몸이 아니다.'라는 뜻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성체성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성체성사를 개종의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성체성사를 "선교 활동 전체의 원천이요 정점"(사제 생활 교령, 5항)이라고 했고, 개신교 형제들과의 대화 주제로서 성체성사를 반드시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일치 교령, 22항 참조). 개신교 형제들 가운데 '만일 성체 교리가 사실이라면 얼마나 큰 손실을 입고 있는가?' 하면서 충격을 받고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참된 종교로 개종하기도 할 것이다.
성체 교리 덕분에 가톨릭 교회로 개종한 목사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목사가 다섯 살 된 딸을 데리고 런던에서 여러 가지 특별한 구경을 시켜 주다가 천주교 성당에도 들어가 보았다. 제대 위에서 빨갛게 빛나는 성체등을 보고 어린 딸이 "왜 낮에 불이 켜져 있어요?"라고 묻자 아버지가 설명해 주었다.
"얘야, 그것은 예수님께서 저 조그만 감실 안에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등불이란다." 그러자 어린 딸이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감실 문이 잠겨 있어서 볼 수 없단다."하면서 어린 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번에는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왜 여기에는 등불이 켜져 있지 않나요?" 하고 묻는 딸에게 "예수님이 안 계시기 때문이란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딸은 "빨리 나가요 아버지, 나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고 싶어요." 하는 것이었다. 어린애의 말에 충격을 받은 그 목사는 깊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가족과 함께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마리아」 34호, 11면 참조).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개신교 형제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들을 가톨릭 교회로 인도하려면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성체성사를 개종의 도구로 삼아 자상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6) 믿음이 식은 사람들(교본 481-485면)
믿음이 식은 사람들이 냉담자들이고 잃은 양들이다. 레지오의 활동 분야 가운데 냉담자 회두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교우 돌봄 활동을 하는 데 막 영세한 신자들을 돌보는 것은 쉬운 편이지만 냉담자를 돌보는 것은 어려운 활동이다. 왜냐하면 영세자들은 신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수계 신자'이지만 냉담자들은 교회를 멀리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3년 이상 판공성사를 보지 않으면 냉담자로 분류되는데, 교회마다 잃은 양들이 수두룩하다. 해마다 잃은 양 증가율은 영세자 증가율의 몇 배나 된다. 교회가 양적으로 신자수를 많이 불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성 신자들을 잃지 않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가정방문을 해보면 교적에 오른 신자의 절반 가량이 냉담자, 타지역 거주자, 행방불명자들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절반 모두가 수계 신자는 아니다. 주일 미사 참례자 수를 보면 수계 신자수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비록 냉담자는 아닐지라도 쉬고 있는 신자들이다.
왜 이들은 쉬거나 냉담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믿음의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아 세속 정신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거나 일단 세례만 받으면 교회가 관심을 적게 가지기 때문이다. 또는 성직자나 수도자, 신자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거나 실망스런 일을 겪은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독특한 성격이나 사목 방침으로 신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어느 레지오 간부가 냉담자 회두활동을 하여 성공한 사례를 옮겨본다.
"주회에서 단장의 활동 지시를 받고 짝과 같이 활동 대상자인 시각 장애인 부부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본래 신앙심이 깊다고 자처하는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본당 신부님의 사목 방침의 조그만 실수로, 자기들에게 편파적이고 차별 대우를 한다고 오해하여 냉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우리가 찾아가면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기 때문에 도대체 활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몇 주를 방문하다가 포기할까도 했지만 단장님의 꾸준한 방문 권유로 상대편의 태도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무려 14개월이나 끈질기게 방문했습니다. 그 결과 차츰 응어리가 풀어지면서 우리를 만나 주었습니다.
물론 처음 만나자마자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장애인으로서 받는 멸시감과 본당신부님께 대한 원망과 분노의 화풀이와 푸념을 끊임없이 들었으며, 심지어 하느님을 원망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인내심은 모든 것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돌과 같이 굳었던 그들의 마음을 사랑과 용서로 돌렸습니다. 14개월 만에 고해성사를 본 그들은 본당 신부님과 화해하고 하느님 품 안에서 열심한 신자로 변했습니다"(「레지오 마리애」 136호, 77면).
믿음이 식은 냉담자를 회두시키려면 영웅적인 끈기와 인내가 요구되며, 반드시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를 보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를 하면 다시 세례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냉담자 회두는 본당의 성직자와 수도자들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쁘레시디움 단장이 주회 때마다 냉담자 회두활동을 단원들에게 배당하여 활동보고를 꾸준히 받는다면 수계 신자수와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괄목할 정도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7) 선교사의 도구로서의 레지오(교본 485-490면)
선교활동이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 또는 집단을 대상으로 선교에 나서는 활동이다. 전 세계 인구 60억 가운데 75%가 비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세상 곳곳에 선교사를 파견한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사제와 수도자들이지만 평신도들도 있다. 선교사의 임무는 새롭게 개척된 지역 안에 신자 공동체를 세우고 그곳 주민들이 신앙적으로 자립하도록 도와주며 그들 스스로 복음화 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아주는 일이다.
선교사는 다른 나라에서 오므로 언어나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주민과 사귀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 레지오는 선교사의 훌륭한 도구가 된다. 레지오는 현지 주민을 단원으로, 선교사를 영적 지도자로 모신 뒤 신입 교우를 가르치고 양성하여 복음화시킨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들을 올바로 양성하기만 하면 초대교회의 신자들처럼 그 고장의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50년 전 우리나라에 레지오 마리애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인 헨리(Harold Henry, 1909-1976년) 대주교이다. 레지오 마리애 도입에 대한 그분의 소감을 여기에 발췌해 본다.
"한국에서 가톨릭의 교세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도 선교에 대한 열정이었다.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려면 열정적이고 훈련된 평신도 조직체가 있어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가 바로 그런 조직체이다. 한국에서 레지오 마리애는 우리가 찾던 사도직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1952년 여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확신에 찬 레지오 단원이 미군 영내에서 강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중국에서 이룬 레지오의 위대한 업적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레지오 활동이 시도된 적이 없었다. 나는 레지오 교본을 공부하고 마침내 레지오 활동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레지오 교본에서 활동방법을 강조한 사도직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나는 심사숙고하여 단원들을 선정했다. 잘 알려진 신자보다는 기본적인 인간성을 갖추고 너그럽고 의지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교본이 요구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였다. 약 1년 뒤 나는 단원들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진정한 자기희생의 고결한 정신과 성화에 뚜렷한 성장을 보였고, 숙련된 팀과 같은 기능을 갖게 되었다. 단언하건대 1933년 한국에 온 뒤 내가 했던 최상의 일은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한 일이었다"(「마리아」 23호, 23-25면).
중국에서는 북경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숙(肅) 요안나(1923년생)가 선교사의 도구로 영웅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1948년에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여 1951년에 투옥되기까지 불과 3년 동안 16개의 도시를 순회하면서 무려 360여 개의 쁘레시디움을 설립하였다. 그녀는 공산정권에서 29년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나 레지오 마리애의 세계 본부가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1993년 8월 말 필자가 세계 본부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는데, 그 당시 70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자신의 소망은 죽기까지 평신도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지오 단원들은 숙 요안나 자매처럼 선교사의 도구일 뿐 아니라 스스로가 평신도 선교사임을 잊지 말고 선교의 역군이 되어야 한다.
8) 그리스도를 위한 외지순방활동(P.P.C)
9) 마리아 정신의 외방선교활동(I.M.)
10) 주일선교활동(E.D.)(교본 491-493면)
레지오 마리애는 다양한 형태로 선교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것들의 명칭은 그리스도를 위한 외지순방활동, 마리아 정신의 외방선교활동, 주일선교활동 등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외지순방활동(Peregrinatio Pro Christo)'이란 레지오 단원들이 조(組)를 편성하여 종교적 상황이 좋지 않은 외국을 찾아가 1-2주일 머물면서 현지 주민들에게 가톨릭 교회를 알리고 입교 권면하는 활동이다. 이 활동의 취지는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단원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동시에 모든 이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외지순방활동을 하면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가톨릭에 호감과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프랭크 더프는 1967년 로마에서 개최된 세계 평신도 대회 중에 한국의 어느 세나뚜스 간부에게 극동 아시아 지역 지도를 펼쳐 보이면서 "한국의 레지오 단원들이 일본에 가서 순방활동을 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1983년에 광주 세나뚜스 간부들이 일본 오사카로 가서 2주일간 지내게 됨으로써 프랭크 더프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순방활동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았다. 레지오로는 세계 최강인 우리나라 단원들은 앞으로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북한에도 가서 그리스도를 위한 순방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도해야 한다.
'마리아 정신의 외방선교활동'이란 마리아를 통하여 희생을 바친다는 정신으로 외국의 오지에 가서 스스로 생계수단을 해결하면서 6개월 이상 머무르며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 활동에 자원봉사를 하는 단원을 '인꼴라 마리애(Incola Mariae)'라 부른다. 여러 명일 경우 '인꼴래(Incolae) 마리애'라고 한다. 이 라틴어 명칭은 '마리아의 체류자', '마리아의 나그네'라는 뜻이다. 외방선교활동은 주로 아이슬란드, 필리핀 군도, 태평양 군도와 같은 사제가 없거나 턱없이 부족한 섬나라에서 실시되어 왔다. 이 활동을 하는 단원들은 사제가 없는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어야 하고, 사제의 정기적인 방문을 주선하고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혼자일 경우 부부가 함께 활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인 최초의 인꼴라 마리애는 필자와 함께 5년간 북미주에서 레지오 교육 활동을 한 고(故) 문태준 바오로 단장이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 가서 그곳 레지아의 추천으로 1992년에 인꼴라 마리애로 임명되었다. 그 해에 그는 미국의 동부지역으로 가 한인교포들을 대상으로 3개월간 활동한 뒤 부인 이증자 비르지타와 함께 알래스카로 가서 2개월간 선교활동을 하였다. 구체적인 활동내용은 그가 저술한 「성모님의 나그네」(성요셉 출판사)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레지오 단원이 외국에 나가 6개월 이상 나그네로 체류하면서 마리아 정신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은혜와 보답도 누리게 될 것이다. 단원들은 비록 인꼴래 마리애가 되지 않더라도 그 정신과 선교 열정은 반드시 지녀야 한다.
'주일선교활동(Exploratio Dominicalis)'은 '작은 순방활동(mini Peregrinatio)'이라고도 불리는데, 주일을 이용한 선교활동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온 세계의 모든 쁘레시디움이 가능하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전체 활동으로 다른 고장을 찾아가서 선교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이 활동은 쁘레시디움 단원 모두가 참여하므로 단원들 간의 결속과 일치를 도모할 수 있다. 가두(街頭) 선교와 비슷한 활동이긴 하지만 본당 관할구역을 벗어나 종교적 취약지에서 활동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주일 선교활동을 펼치는 쁘레시디움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단 한 번만이라도 이 활동을 실시한다면 그 쁘레시디움은 생기와 활기를 띠게 될 것이고 단원들은 용기와 힘을 얻을 것이다.
<사목, 2003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