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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탈관념화되는 국화의 원형심상
-<2014 대한민국 국향대전 기념 시공모> 입상작을 중심으로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1.
함평(咸平)은 「호남가」 첫머리에 놓인 고장답게 풍류가 살아있다. 세계 유일의 ‘나비축제’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국화축제’를 개최해 온 생태도시이기도 하다. 더불어 함평은 난초의 고장으로도 명성이 높아 최근까지만 해도 전국 규모의 난 전시회를 열어왔는데, 함평의 산과 들에서 명품란이 많이 나와 난 애호가들에게 난초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사군자 중 ‘국화’와 ‘난초’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고장이니 함평을 명실공히 풍류와 선비의 고장이라 할 만하다.
그 동안 볼거리를 중심으로 현장에서 즐길 수 있었던 ‘국화축제’에 인문학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보다 내밀하고 깊이있는 상상력을 부여한 <2014 대한민국 국향대전 기념 시공모>를 실시하여 국화축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렇듯 그저 감상하며 즐기기만 하던 국화축제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시공모 사업은 매우 뜻이 있는 일이다. 이는 시를 쓰며 동인활동을 하고 있는 안병호 함평군수님의 발의로 시작되었으니 필자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를 총괄한 문인화가이며 함평문화원 원장이신 이진행 함평축제위원장의 노고 또한 이번 행사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말할나위가 없다.
함평군에서 국화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2014 대한민국 국향대전 기념 시공모>사업은 그저 축제의 일부분만이 아니다. 우리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행사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이 사업을 통해 많은 시작품들이 축적되면 ‘국화의 원형심상’이 확장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화에 관한 기록으로는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고려 충숙왕 때 원나라에서 학정홍(鶴頂紅), 소설백(笑雪白) 등 여러 품종의 국화가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부터 국화가 있었다. 중국 송나라 유몽(劉蒙)의 『국보(菊譜)』에는 신라국(新羅菊)이라는 이름이 있고 일명 옥매(玉梅) 또는 능국(陵菊)이라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일본의 《왜한삼재도회(倭漢三才圖會)》에서는 4세기 경 백제에서 청·황, 홍·백 등 오색의 국화가 일본에 수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의종 16년(1160) 9월에 왕이 국화를 감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국화가 있었고 중국에서 도래된 국화와 더불어 재배되거나 교류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중국과 더불어 국화의 원산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국화는 모든 꽃들이 따뜻한 날 꽃을 피우는 생태적 특성을 갖는 것에 비해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 피기 때문에 사군자의 하나로 불러왔으며, 선비들은 가까이 두고 완상하며 노래해 왔다.
고려조의 이규보는 「영국(詠菊)」에서 꽃들이 진 가을에 피어나는 국화꽃이 대견하다고 노래했으며, 조선조의 강희맹은 「우국재부(友菊齋賦)」에서 된서리가 머리칼에 날아들어도 향기를 지닌 꽃이라고 노래했다. 이 현상은 국화를 절개의 꽃으로, 이정보 역시 낙목한천에 피어 오상고절을 과시하는 지조있는 꽃으로 음미하였다. 안민영 역시 국화를 의리를 지키는 품위있는 꽃으로 형상화 하였다.
근현대문학에 와서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에서 온갖 풍상을 다 겪고 나서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과 같은 여인의 모습에 비유하였고, 노천명은 「국화제」에서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이름모를 풀 틈에 섞여/외로운 절기를 빈 들의 새악시”로 묘사하였다.
최근의 작품들에서 강희근은 「국화」에서 불에 타버린 숭례문 앞에서 슬픔을 경배하는 국화를 노래했다. 나태주는 「이 가을의 당신」에서 정숙한 여인으로 국화를 의인화하고, 오세영은 「국화꽃」에서 어떤 존재에게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고 단호한 존재로 인식하였다.
이에 반해 신달자는 「순자언니」에서 기구한 삶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2.
<2014 대한민국 국향대전 기념 시 공모>에 입상된 작품은 대상 1편, 우수상 2편, 장려상 3편, 입선 19편 등 모두 25편이다. 이들 작품들은 국화의 다양한 의미역을 보여주고 있어 기존의 국화의 원형심상인 ‘인고’, ‘지조’, ‘절개’,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의미를 넘어 탈관념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작품들은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국화를 노래한 6편을 살펴본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
국화 향기 자욱한데
나 누워있네
조금 전 까지 내가 맘먹었던 일
어쩌다 그 끈을
놓아버렸네
이런 때 생각하라고 썼을까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느니…
어느 작은 암자에서 읽었던 글귀가 생각나네
결국 삶도 죽음에 이어져 있다고
미처 다 하지 못한 말 입속에 남았네
내 이름표는 붙이지 말라고
진작 일렀어야 할 당부를 너무 오래 미루었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었나
지난 시간을 헤아려 보지만
잡히는 것 하나 없네
어제가 오늘인 듯, 지나온 세월 여기쯤
어떻게 세월을 아껴야 하는지
이제 막 곱씹어 볼 요량이었네
이렇게 덜컥 국화 옆에 눕게 된 후에야
아무 것도 아닌 채 살다 가는 것이
부끄럽네
먼 길 가는 것, 두려운 건 아니네
그저 있던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네
국화 향기 자욱한 이곳에
나는 없네
-김윤옥, 「국화 옆에서」 전문
국화는 죽은 자를 위로하며 향기로운데 비해 화자는 죽은 후에야 함부로 세월을 탕진한 자신의 삶을 통찰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화자는 장례식장에서 국화꽃에 둘러싸인 채 누워있다. “내가 맘 먹었던 일” 다 마치지도 못하고 “어쩌다 그 끈을/놓아버린” 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었나” 지난 날을 생각해보지만 남긴 일 없어서 후회를 한다. 죽어서야 “어떻게 세월을 아껴야 하는지/이제 막 곱씹어 볼 요량이”지만 “삶도 죽음에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도 덜컥 죽음에 이르러서야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채 살다 가는 것이/부끄럽”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결국 “국화 향기 자욱”하지만 “나는 없네” 하고 아프게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후회한다.
주지하다시피 망자에게 하얀 국화꽃을 바치는 의식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서양식 장례의식이 우리 문화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다. 이러한 오늘의 장례문화 속에서 ‘흰국화’는 ‘망자를 위로하는 꽃’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데 문학작품에서도 이미 우리 생활속에 깃든 문화를 언표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흰국화’를 ‘죽음’과 연계시켜 시로 형상화한 작품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띄는데 강나루의 「하얀 국화」와 박신영의 「혼자 핀 국화」도 이 경우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대대로 이어온 허기 때문일까
죽어서 쌀밥 드시라고
집안 선조들 모신 선산에
무더기로 심은 하얀 국화송이
가을 햇빛 받아 막 지어온 고봉밥 무럭무럭 김이 나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뜨겁다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시제 모시는 날
선산 제상에 맛난 음식 차려놓고
술을 따라 올리고 조상님들 음복하는 동안
뒤돌아 서 있다가 바라보면
목이 메이는지 다 못 드신 하얀 쌀밥이
새하얀 국화송이 같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얘져서
영정앞이나 봉분 앞에 흰꽃을 바치는가
꽃들은 따스한 날 꽃 피우지만
세상의 꽃들이 지나간 쌀쌀한 늦가을
모든 색깔 다 버리고
오직 오롯한 맑은 정신으로 핀 흰국화꽃처럼
청빈하게 살았다는 할아버지들 마음이 하얗다.
-강나루, 「하얀 국화」 전문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선산에 와서 화자는 시제를 모시고 있다. 선산에는 무더기로 심은 하얀 국화가 있는데, “가을 햇빛 받아 막 지어온 고봉밥 무럭무럭 김이 나”고 있다. 여기에서 “하얀 국화송이”와 “고봉밥”의 ‘하얗다’는 색채이미지를 통해 서로 동일성을 이룬다. 조상님들께 “하얀 쌀밥”을 올리지만 일생을 청빈하게 살아온 할아버지들은 후손들이 “고봉밥”을 올리자 “목이 메이는지 다 못 드신”다. 그런데 “하얀 쌀밥이/새하얀 국화송이 같다” ‘하얗다’의 색채이미지가 갖는 의미는 ‘죽음’과 “오롯한 맑은 정신”이기에 “하얀 국화”와 “하얀 쌀밥”은 죽은 자에게 바치는 꽃과 더불어 “청빈하게 살았다는 할아버지들 마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은 “선산 제상에 맛난 음식 차려놓고/술을 따라 조상님들 음복하는” 전통제사의례인 시제의 모습과 더불어 망자에게 하얀 꽃을 바치는 서양의 제사의례가 혼재된 오늘 우리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우리의 전통 제사의례에서 첫 기일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날이다. 그런데 첫 기일이 돌아왔어도 아무도 없는 쓸쓸하고 외로운 할머니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것이 하얀 국화뿐인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음이 깃든 것이 다음의 「혼자 핀 국화」이다.
돌담이 빈 집을 지키고 있다
주인 할머니의 첫 기일
돌담은 갈색 이끼로 상을 차려낸다
장독대 옆
귀퉁이 떨어져나간 플라스틱 화분
주인을 잃고도 흰 국화를 피워냈다
국화 꽃잎, 깨진 접시 위로 떨어져
제 몸을 바친다
버선발로 나와 향기를 맡았을 할머니
이끼들은 서로의 말을 전하느라 바쁘다
장가를 못 간 장남은 소식도 없다고
차녀는 이혼 후 우울증에 걸렸다고
휘어져 그믐달이 된 나뭇가지
찬바람이 뒤란 모퉁이를 돌아나간다
장독대 옆 흰 국화
밤늦도록 꽃등을 밝히고 있다
-박신영, 「혼자 핀 국화」 전문
“돌담이 빈 집을 지키고 있다” 아니 “장독대 옆/귀퉁이 떨어져나간 플라스틱 화분/주인을 잃고도 흰 국화를 피워”낸 국화꽃이 할머니의 기일을 모시고 있다. 이 국화꽃은 할머니가 생전에 “버선발로 나와 향기를 맡았을” 국화꽃으로 할머니와 함께 했던 꽃이다. 할머니에게 자식들이 있지만 “장가를 못 간 장남은 소식도 없”고, “차녀는 이혼 후 우울증에 걸”려 기일이 돌아왔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장독대 옆 흰 국화/밤늦도록 꽃등을 밝히고 있”는 할머니의 첫 기일은 외롭고 쓸쓸하다.
고령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독거노인들이 많아졌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3대가 함께 살며 노인들은 자식들의 보살핌 속에서 노후를 보냈지만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산업사회에서는 혼자 살다가 쓸쓸하게 죽어가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가끔 전해져 우리를 아프게 한다. 이러한 오늘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 작품은 반영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두 작품에서는 국화꽃이 죽음과 관련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에 반해 박은영의 「국화를 짓는 시간」은 국화를 어머니의 희생과 관련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당신은 돌아오는 계절마다 정성껏 밥을 지었다
서산이 붉게 뜸을 들이고 나면 사방 가득,
밥 짓는 냄새가 그윽이 퍼졌다
저녁때가 가까워질수록 분주해지는 마음
마실 나간 검둥이도 돌아와 꼬리를 흔들고
새들도 굴뚝 높이로 날아올라 연기 주위를 맴돌았다
주름진 손등으로 밥물을 맞추고
아궁이 앞에서 망부석처럼 앉아 기다린 후에야
꽃은, 오래 묵은 생살을 풀어내는 것이다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솥뚜껑을 열어
흰 꽃잎 같은 쌀밥을 이리저리 치대는 시간
한 주걱 꾹꾹 눌러 고봉으로 담아내기까지
가슴에 뿌리 내린 세월이 대국으로 피어나기까지
꺾이지 않고 중심을 지킨 당신
먼 길 돌아온 자식의 저녁상에 흰 쌀밥을 올리고
끓어 넘친 밥물을 훔쳐낸다
갓 지어낸 밥을 소담스레 담아내는 계절
또 한 날을 보탠 꽃의 가슴이 미어질 듯 환하다
밤하늘에 눌어붙은 별들이 함평천 물결 위로 떠오르고
구수하게 퍼지는 숭늉 같은 향
홀로, 여러 해를 살아낸 어머니의 살내가 깊다
-박은영, 「국화를 짓는 시간」 전문
이 작품에서 ‘국화’는 ‘쌀밥’, ‘자식’, ‘어머니’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어머니가 쌀밥을 지어 자식들에게 “한 주걱 꾹꾹 눌러 고봉으로 담아내”고, “가슴에 뿌리 내린 세월이 대국으로 피어나”게 하고, “꺾이지 않고 중심을 지킨” 존재로 국화에 그 의미를 투사시켰다. 그래서 「국화를 짓는 시간」이라는 조금은 낯선 제목을 붙일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정신은 ‘어머니의 희생’이다. 그 희생으로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집안에 온기가 돌게 하고, 자식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이다. 즉 “주름진 손등으로 밥물을 맞추고”, “먼 길 돌아온 자식의 저녁상에 흰 쌀밥을 올”린 것이 어머니의 일생이고 보면 “흰 꽃잎 같은 쌀밥”을 지은 어머니는 희생을 하더라도 “꽃의 가슴”이 되어 “미어질 듯 환”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얀 국화꽃과 어머니의 마음이 오버랩되어 국화의 의미역을 확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의 「욕창으로 다시 핀 국화꽃」도 작품의 배경에 어머니가 있다.
엄마의 몸은 온통 국화꽃 밭이었다.
욕창이 국화로 피어났다.
누런 가래같이 흐물거리던 고름이 노란 ‘구주’로
시퍼런 멍자국은 파란 국화잎이 되었다.
욕창으로 하루하루 생을 이어간 엄마는
국화꽃의 진딧물처럼 끈기있고 질겼다.
욕창에서는 국화꽃 향기가 났다.
엄마는 빚쟁이였다. 어느 날 LA로 야반도주 했다.
국화꽃 하우스를 해 한탕 벌겠다며
앞집 유미네 뒷집 형철이네
공무원인 아버지를 내세워
동네 여기저기 돈을 끌어 모았다.
가을에 국화꽃을 팔면 갚을게요.
엄마는 손톱의 반달이 다 닳도록
국화 모종을 옮기고 순을 따고
손가락에 굳은 옹이가 박히도록 전지가위를 잡았다.
그 해, 가격 폭락과 폭설로 비닐하우스는 내려앉았다.
내년에는 괜찮겠지, 하며 또 빚을 얻었다.
빚은 송이송이 번져 갔다.
엄마 무릎은 가지처럼 꺾였다.
엄마는 꽃을 싫어하는 여자였다.
특히 국화를 보면 고개를 틀었다.
징글징글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국화의 꽃대가 꼿꼿하고 튼튼하게 자랄수록
노동으로 얼룩진 엄마 몸은
철사로 형태를 잡은 국화처럼 휘어졌다.
엄마의 몸은 국화꽃 밭이 되어 갔다.
-성보경, 「욕창으로 다시 핀 국화꽃」 전문
“엄마의 몸은 온통 국화꽃 밭이었다.”는 진술을 뒷받침하듯 이 작품에서 ‘국화’의 이미지는 ‘욕창’으로 나타난다. 엄마의 상처인 ‘욕창’이 마치 국화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국화’의 이미지가 “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욕창으로 하루하루 생을 이어간 엄마는” “빚쟁이였다” “국화꽃 하우스를 해 한탕 벌겠다며” “동네 여기저기 돈을 끌어 모”아 농사를 짓느라고 “엄마는 손톱의 반달이 다 닳도록/국화 모종을 옮기고 순을 따고/손가락에 굳은 옹이가 박히도록 전지가위”질을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큰 빚이 져 “어느 날 LA로 야반도주”를 하였다가 욕창으로 들어누운 모양이다. “욕창에서는 국화꽃 향기가 났”지만, 그 국화꽃 냄새는 “징글징글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어서 “노동으로 얼룩진 엄마 몸은/철사로 형태를 잡은 국화처럼 휘어”질 뿐이다. 긍정적인 기존의 국화이미지를 반전시키는 이 작품은 국화의 원형심상의 영역을 넓히고 있어 주목된다.
여태까지 우리 시사(詩史)에 나타난 국화의 이미지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국화 뒤에서」라는 작품이 있다.
처음으로 시 쓸 때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뛰어넘지 못할 바에 국화 시는 쓰지 말자
그 말이 못이 박혀 우리는 국화 옆에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한다
국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누이라고
단정 짓는 순간 우리는 오빠도 동생도
잊어버린다
국화, 가을 추수의 끝자락에 대개 몰려
한번이나 눈 마주쳤을까
막상 국화를 떠올리는데
생각 속에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들켜버린 것 같아
얼른 나를 덮어버리고 그 자리를 치운다
「국화 옆에서」란 시를 잘 모르는 초등 딸에게
국화하면 뭐가 생각나니?
“장례식장”
천국 같은 이 세상을 그리기도 바쁜데
왜 추상적인 세계를 더 좋아하는가 싶어
한 번 더 물어본다
허리 다쳐 벨트를 두른
할아버지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황정애, 「국화 뒤에서」 전문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작품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국화’를 생각하면 이 작품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누님이 젊음을 다 보낸 후에야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른바 ‘만고풍상을 겪은 누이’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시인이 국화를 바라보며 시를 쓰는 일이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인습을 버리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국화를 만나고자 하는 시인의 고뇌가 배어 있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뛰어넘지 못할 바에 국화 시는 쓰지 말자”에서 보듯 새로운 국화 이미지를 만들려는 화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는 제목에서도 엿보인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살짝 비켜서서 「국화 뒤에서」라고 썼다. 이 작품은 발상과정에서 “막상 국화를 떠올리는데/생각 속에 아무 것도 없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국화 옆에서」란 시를 잘 모르는 초등 딸에게/국화하면 뭐가 생각나니?/장례식장”이라고 대답을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딸의 대답 역시 오늘날 장례식장에서 쉽게 보는 하얀 국화이미지일 뿐이어서 식상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국화의 새로운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시인의 시창작법을 시로 들려주고 있다.
3.
지금껏 살펴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 국화의 원형심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동안 우리 시문학사에서 ‘국화’의 원형심상은 ‘인고’, ‘절개’, ‘지조’, ‘군자’, ‘은일’ 등 선비정신의 상징으로 형상화되어 왔다. 그러나 ‘죽음’ 또는 ‘죽음을 위로함’, ‘어머니’, ‘자식’, ‘희생’, ‘오롯한 맑은 정신’, ‘정숙한 여인’, ‘병든 어머니’로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이는 유교적 이념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삶을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변화된 삶의 방식에서 기인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여태까지의 원형심상이 주는 낡음과 고루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함평군에서 처음 실시한 국화를 주제로 한 시공모가 지속될 때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국에서 처음 실시한 국화를 주제로 한 시공모 사업은 국화축제의 품격을 높이고 한국시문학사에 크게 기여하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