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거주’ 프로젝트(충북 진천에서)
2020년부터 3년은 ‘공부’집중 마지막 기간이다. 2012년 퇴직하면서 나에게 한 약속은 10년간 공부에 올인 해 보자는 거였다. 능력도 부족하고 열정도 미미하지만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학문’에 대한 최후의 도전인 셈이다.(사실 학문적 접근은 어렵다. 어학적 배경, 기본적 개념에 부족할 수밖에 없다) 3년간의 여정이 남아있는 날들에 대한 활동의 성격을 규정할 것이다. 최근의 읽은 책 <지적인 삶을 살기>는 나이들어 가는 나의 이상적 모습이지만 반드시 얽매일 필요는 없다.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의 노화가 그런 가능성의 세계를 결코 좁히지는 않은 것이라 본다. 그렇지만 결말을 열어 놓더라도 ‘목표’에 대한 계획이나 열정을 소홀할 수는 없다.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혼란이 항상 위협적으로 다가오지만 순수한 ‘열정’의 세계로 몰입해야 할 순간이다.
3년의 시간을 ‘자유의 여정’(박사과정 3년)으로 설정하고 출발하면서 또 다른 실험에 대한 결정은 조금은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단기 거주 프로젝트’로 파주 이외의 장소에서 3개월이나 6개월 정도 거주하면서 그 곳의 지리적,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각 도에서 거주하게 되면 약 5년이 지나면 전국에 대한 대략적이나마 구체적인 경험이 축적되지 않을 가 하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안정된 일정에 의도적 변화를 시도하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2020년 계획을 짜면서도 이 프로그램은 무시된 채 넘어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개인적으로 거주에 대한 안정의 허상을 버리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끊임없이 ‘유목하는 삶’, ‘자유의 여정’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있는 날들’의 기본 행동지침은 ‘3고’(읽고, 쓰고, 걷고)이다. ‘자유의 여정’이 ‘읽고, 쓰고’의 대상이라면 ‘단기거주 프로젝트’는 3고의 종합이다. 단기 거주는 다른 지역 도서관이나 문화시설을 이용한 공부 뿐 아니라 그 지역의 대표적인 길이나 산하를 걷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단기 거주 프로젝트’의 기본적 계획은 이렇다. 먼저, 각 도에서 주변 지역과 통합적으로 연계하여 걷기와 문화답사가 가능한 중심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다. 장소가 선정되면 거주지는 산이나 관광지와 같이 도심과 떨어진 지역이 아니라 관청이나 도서관과 같은 문화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장소를 선택한다. 주요 시설이나 먹고 생활하는 시설 이용의 편의성도 결정의 주요 요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서 그 지역 생활권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거주 기간은 주중 4일을 기준으로 하여 2일은 공부를, 2일은 답사로 사용하는 것을 기본 계획으로 삼는다.
이러한 선정 기준에 의거하여 거주 지역 답사에 나섰다. 첫 번째 장소는 ‘충북 진천’이다. 우선은 교하와의 왕복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지 않아야 하며 긴급한 일이 있을 때 빠르게 복귀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진천’은 첫 번째 ‘단기거주 프로젝트’ 실험을 하기에는 적당해 보였다. 이 곳은 과거 S와 함께 ‘농다리’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전 ‘도서관’ 조사를 통해서 군청 옆과 새로 만들어진 ‘혁신도시’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강화된 ‘코로나 19’ 사태 때문에 도서관 내부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군청 옆에 새로 만들어진 군청 도서관은 주변 문학 기념관과 결합되어 상당히 우수한 문화적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었다. 주차 시설도 충분했고 산책할 수 있는 공원도 있어서 제법 훌륭한 거주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진천 덕산면에 조성된 혁신도시 내의 ‘혁신도시 도서관’ 또한 작지만 깔끔하게 만들어졌고 넓은 주차공간을 갖고 있었다. 아직 혁신도시 내부가 완전하게 조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설이 부족한 면이 있지만 도시 내부가 넓고 도로 사이의 간격이 충분하여 걷고 활동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우연하게 건물 벽에 붙어 있는 부동산 업자와 통화를 통해 보게 된 혁신도시 내의 원룸 집은 사전에 내가 생각한 조건과 상당히 일치하였다. 혼자 생활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고 냉장고, TV, 세탁기, 주방시설 등 기본 생활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으며 도서관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군청 옆에서는 최소한 1년 이상의 계약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데 비하여 혁신도시에는 3개월의 단기계약도 가능하였다. 1주일 이후에 연락을 준다고 이야기했는데 생활조건이나 시설준비도 등은 좋은 조건이었다. 가격도 한 달의 40만원으로 적정 수준이라고 생각되었다. 첫 번째 방문에서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춘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이라도 결정의 순간에는 약간의 불안감을 동반한다. 현재의 안정적 환경을 굳이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무모함을 동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안정’과 ‘소유’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를 목표 한다면 이러한 실험은 필요할 듯싶다. 최근 ‘안정’에 대한 헛된 욕망을 감지했기에 의도적으로도 변화에 도전해야 한다. 가볍게 둘러본 ‘답사’였지만 상당한 실질적 ‘수확’을 가지고 귀환했다. 앞으로 1주일 2020년 ‘자유의 여정’의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코로나 19’와 함께, 끊임없는 외부적 위험과 함께, 불안한 내부의 목소리와 함께, 삶의 가치에 대한 절대적이고 ‘개인적인’ 실험은 시작된다. 아마도 ‘진천’에서의 ‘단기거주’ 실험도 같이 진행될 것 같다고 생각된다.
첫댓글 끝없는 자유의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