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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선단(仙丹)을 만들다. (불교영험설화) |
본 내용은 불교동호회의 이양희 법우님이 올려주신 자료를 편집한 것입니다.
이 양희 법우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불교동 총괄시삽 김근식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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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보문암은 누가 창건 하였는지 소상하게 알
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 근처 화전민들 간에는 그때 주지스님 철감(哲鑑)
대사의 노스님 때 창건되었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못하다. 암자라고는 하
나 여섯평 안팎 되는 법당과 열평 미만 되는 요사(寮舍)를 가진 규모가 작
은 절이었다. 굴피나무 껍질로 덮인 법당과 요사지붕에는 군데군데 이끼를
덮고 있어 오랜 풍상을 겪어 왔다는 경력을 말하고 있다. 건물의 짜임새도
소박한 통나무 구조로서 대패질을 받은 흔적은 없다. 단청을 하고 풍경을
달아둔 그러한 집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 위치와 배치는 창설자의 깊은 배려와 면밀한 계획을 엿볼 수
있다. 해발 1천미터 이상으로 보이는 천병산 주령(主嶺)이 힘차게 뻗어 내
려와서 높이 삼십미터 이상의 석벽으로 그친 바로 그 밑에 이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암자의 좌우에는 석벽에서 두 갈래로 갈리어 내려온 청룡등 백
호등이 구릉을 이루어 암자를 감싸고 있다. 천병산 주봉에서 좌우 두쪽으
로 갈라진 활개는 청룡등 맞은 편에서 월봉이 되고 백호등 건너편에서 서
산이 되고 그 사이에는 각각 계곡을 이루고 있다. 울창한 수림 속에서 계
곡을 헤치고 쏟아져 나온 시냇물은 청룡,백호 두 등성이 그친 곳에서 합수
(合水)가 되어 수림에 덮힌 계곡을 동남으로 끝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암
자 전면에는 광활한 평지가 전개되어 두 계곡물이 합수되는 끝까지 연속되
어 있다. 석벽 틈에서 솟아나는 물은 나무 흠으로 인수(引水)되어 돌로 판
석정(石井)에 구슬 같이 떨어지고 있다. 이 암자를 출입하는 사람들이 이
우물을 영천약수(靈泉藥水)라 하여 일종 선약(仙藥)으로 알고 있다.
보문암에서 인가가 있는 부락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제일 가까운 칠
성부락도 3키로 떨어진 수림속에 있으나 육 칠호 되는 화전민 집단지다.
계곡을 따라서 동쪽으로 5키로 이상 내려가면 좌편 언저리에 무학 부락이
있다. 천병뼁暠 서원을 짓고 정주하게 된 뒤에 이 부락 사람들의 상태는
게 달라졌다. 고진사는 소년 당상(堂上)으로 근 이십년간 벼슬살이를 하다
가 40이 넘은 뒤에 철감대사의 덕풍(德風)을 따라서 벼슬을 하직하고 이
곳으로 옮기어 왔다. 고진사가 이 곳으로 온 뒤 본래 20호도 못 되던 이
화전부락에 무학동이라는 이름까지 붙게 되고 인가도 늘어나서 지금 규모
로 발달 하였다. 고진사는 철감대사의 유일무이한 도우요 지기였다.
철감대사는 오늘도 새벽 일과를 마치고 아침식사가 끝난 뒤에 보문암을
나섰다. 육십고개를 훨씬 부르면서 걷고 있다.
무학부락 앞을 지날 무렵까지는 노상(路上)에 내왕하는 행인이 있었다.철
감대사를 대하는 사람은 남녀노소를가릴 것 없이 모두 친 부친이나 조부
와 같이 극진히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길이 수림속으로 접어 들면
서부터 인적은 끊어지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멀리 왼편 칠성부락에
서는 모닥불의 불빛이 보이기도 한다. 철감대사는 평상시 보다 늦다고 생
각하였다. 그는 다소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아직도 보문암까지는 3키로 정
도의 길이다.
바로 그때였다. 왼편 계곡의 시내물 소리에 섞여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철감대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귀울였다. 분명히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다. 철감대사는 그 울음 소리를 따라서 시내물 쪽으로 내려갔다.
강보에 싸인 어린애가 반석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울면서 버둥거리고 있
다. 철감대사는 아이 부모가 혹시 근처에서 대소변 중이 아닌가 하고 한동
안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인기척은 없다. 소리를 높이어 불러 보았다. 역
시 대답이 없다. 철감대사는 아이를 장삼소매로 감싸 안았다. 필요 없는
추측이나 사량촌탁(思量忖度)을 하지않고 보문암으로 돌아왔다.
철감대사를 영접하던 왕노인은 어린 아이를 받으면서 놀랐다.
아니 손님이란 이 어린애가-뉘집 아이인데...
손님 아이면 무슨 관계요. 이 아이의 부모는 관세음보살님이야!
대사의 유쾌한 말씨였다. 그러나 등불을 밝히고 두 사람이 어린 아이를
보았을 때에 철감대사도 놀랐다. 어린 아이는 생후 칠팔 개월 된 당달봉사
였다.
업보는 어찌할 수 없는 일!
철감대사는 어린애 얼굴을 드려다 본 뒤에 엄숙히 이 한마디 말만 하고
다시는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나 장차 만백성을 구제할 큰 그릇이라고 보았
다. 두 노인은 밤을 새우면서 어린아이를 돌보았다.
다음날 부터 왕노인은 산에 가서 밤과 감을 따고 마뿌리를 캐서 죽을 끓
이고 철감대사는 하산하는 길이면 어린애를 안고 가게 되었다.
철감대사에게 눈이 어두운 어린애 상좌가 생기었다는 말은 잠시 동안에
부근 부락과 화전민간에 전파 되었다. 대사가 이이를 안고 부락에 가면 부
인들은 서로 다투어 이이를 받아 안고 젖을 먹이는 이도 있고 나이 많은
부인들은 죽을 끓여서 먹이는 이도 있었다. 주간에는 아이가 누구의 집으
로 옮기어 갔는지 행방이 분명치 않았다. 사람들은 철감대사의 상좌라는
말만 들어도 귀엽게 여기는 외에 일종의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대하는 이
도 있었다. 철감대사는 그러하므로 안심하고 자기의 행도를 할 수가 있었
다. 그날 일이 끝난 뒤에 먼저 받아간 부인집을 찾으면 아이는 배 부르게
먹고 잠자는 때가 많았다. 기저귀는 말끔히 세탁 되고 옷도 새것으로 갈아
입히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철감대사는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씨를 관세
음보살님께 감사하고 더욱 자기의 정진과 행동에 힘을 다하였다.
어느날 부락에서 보문암에 돌아오니 고진사가 앞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뵙지 못해서... 상좌를 맞으셨다고요?
철감대사를 맞으면서 고진사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요놈이 내발을 묶어 놓은거지요. 그러나 진사의 발이야 풀려 있었을 텐데
...
업장에 얽힌 발 무슨 자유가 있겠읍니까. 그러나 오늘은 제폐(諸廢)하고
참배하러 왔읍니다.
지금까지 철감대사와 고진사는 닷새를 넘는 일이 없이 서로 찾고 서로 내
왕 하였다. 요즈음은 육칠월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한 끝에 어린아이를 상
좌로 정하였다는 말을 듣고 아이 죽감으로 벌꿀과 꽂감을 가지고 왔다. 철
감대사는 밤이 깊도록 인연법을 말하고 고진사와 상의하여 어린아이의 이
름을 혜안(慧眼)이라고 지었다.
그로부터 8년후 일이었다. 혜안이의 나이도 벌써 여덟살이 되었다. 지금
은 날마다 스님의 지팡이를 잡고 다닐 수가 있게 되었다.
어느날 새벽에 혜안이는 스님을 따라서 법당에 예불을 마치고 철감대사에
게 비통한 호소를 하였다.
소좌(小佐)는 스님의 은혜만 입고 이대로 살아가면 무슨 소용이 있읍니까
죽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네 이름은 혜안이다. 혜안은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다. 네
가 내 말대로만 한다면 십년 뒤에는 만백성을 살릴 수 있는 큰 의왕(醫王)
이 될 것이다.
걱정할 것은 없다.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옵니까?
오늘 안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석양에 철감대사는 비룡천 냇가에서 미리 준비하였던 삼베 자루에
모래를 담아 메고 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래의 용처(用處)를 묻고 그 운
반을 도와 주었다.
그때마다 대사는 선단(仙丹)을 만들려고 한다는 말 뿐이고 더 설명을 하
는 일이 없었다. 듣는 사람은 모두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으나 철감대사의
하는 일이니 무슨 이치가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보문암에 들어온 철감대사는 혜안이와 목욕재계하고 법당에 예불한 후 모
래자루 옆으로 혜안이를 불러 앉히고 엄숙히 타일렀다.
너는 지금부터 앞으로 십년동안 이 모래자루를 주무르면서 일심정력을 다
하여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이
처럼 십년동안 계속하면 이모래 한알한알이 선단(仙丹)으로 변할 것이다.
네 손으로 선단을 만드는 거야! 그러나 내 말을 추호라도 의심하면 허사가
될 것이다. 혜안아, 능히 내 말대로 이 정진을 계속하겠느냐?
하겠읍니다. 정진을 계속하겠읍니다. 꼭 선단을 만들겠읍니다. 스님 말씀
대로...
혜안이의 얼굴에는 기쁨과 희망이 넘치었다.
그날부터 혜안이는 모래 자루를 주무르면서 일심정력으로 관세음보살 명
호를 불렀다.
관세음보살-
혜안이는 밤이나 낮이나 틈만 있으면 이 정진을 쉴새 없이 계속하였다.
밤중에도 고요한 산사에 혜안이의 정진 소리는 멀리 허공을 헤치고 울려갔
다. 때로는 모래 자루에 이마를 대고 잠이 드는 일도 있었다. 그런 때면
철감대사가 조용히 앉아서 자리에 눕히고,
대자대비의 가호를 내리시어 마장이 없도록 하소서!
라고 관세음보살께 기원하였다.
혜안이가 정진을 계속한 뒤로부터 철감대사는 격일로-하루씩 건너 산을
내려가게 되었다. 산에 있는 날이면 혜안이에게 불법을 가르치고 부처님과
보살님의 행적을 일러 주고 성불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철감대사는 산을 내려가는 날이면 혜안이도 그 뒤를 따라서 스님
의 행도를 도와드리게 되었다. 때로는 스님을 따라서 고진사 댁을 찾는 일
도 자주 있었다.
혜안이가 날마다 도품(道品)이 커가는구려! 복된 사람이야. 우리 혜안이
가 우리 철감대사의 상좌가 되었다는 것은-형산백옥(荊山白玉)도 거장을
만나야 광채가 나는 법이거든.
고진사의 말에는 정력이 넘쳤다.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서 불문에 들어온 것은 확실히 복이지요. 그것
도 혜안이의 복이지요.
철감대사의 말은 소탈하고 담담하였다. 그러나 혜안이의 슬기롭고 힘찬
발육과 굳은 신심이 뿌리 박고 있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더우기 자기의 뒤
를 이어받을 그릇을 얻은 것이 기쁘기도 하였다.
혜안이는 성장함에 따라서 과연 혜지가 날마다 증진되고 품위가 날마다
높아가는 것만 같았다. 철감대사를 따라서 법당에 출입하고 산을 내려다니
면서부터 그가 십오륙세의 소년기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발을 움직이는 면
에서 실수한 적이 없었다. 밝은 육안을 가진 사람 이상으로 손발의 동작이
정확하고 법도(法度)가 있었다. 혜안이는 먼 거리에 있는 것도 렌스를 통
하여 투시하는 것 같고 앞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짐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일을 자랑삼아 말하는 일은 물론 없고 그러한 기색을
보이는 일도 없었다. 오직 철감대사와 고진사만은 혜안이의 그러한 성장과
정을 잘 보고 알고 있었다. 왕노인 같은 이는 소년 혜안이를 지금은 작은
스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왕대 밭에는 왕대가 나는 법!
하고 철감대사와 혜안이를 비교하여 보면서 마음속으로 한탄하게 되었다.
혜안이가 정진을 시작한지도 벌써 9년이 되었다. 그동안 모래자루를 스물
일곱번 새것으로 갈아 바꾸었고 모래 알은 모두 모가 달코 연마가 되어 금
강석 같이 영롱(玲瓏)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선단이 되지는 못 하였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모래가 선단이 될 리는 없지! 허황한 말이 아닐까? 라고 의혹을 품는 사
람도 있었다. 그러나 고진사는 철감대사의 하는 일이니 반드시 무슨 곡절
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왕노인은 선단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혜안이야 물론 자기의 정성이 아직 모자라는 것을 한탄할 뿐이고 의혹을
가져본 일은 한번도 없었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지면 그의 신심은 더욱
견고하여만 갔다. 그의 정진 소리는 더욱 청랑(淸朗)하게 울려 갔었다.
철감대사는 팔십세의 고령이다. 삼년전부터 부락을 순회하는 행도도 중지
하고 지금은 주야 혜안이와 관음정진을 하면서 혜안이의 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니 화전민들이나 부락 사람들은 대사의 법문을 듣기 위하여 보
문암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러나 법당은 비좁고 날마다 모여드는 사람들
을 응대하기에는 철감대사의 기력도 걱정이 된다하여 고진사는 부락단위로
모임을 세반으로 나누고 한달에 한번씩 세차례만 모이기로 하였으나 인원
수는 점점 늘어서 법당은 더욱 비좁게 되었다. 고진사도 어찌할 수가 없어
부락 대표들을 청하여 상의 하였다.
법당 앞에 설법전(說法殿)을 한채 지어야 되겠는데-.우리들 힘으로 지어
야 하겠읍니다. 우리들 중에서 목수는 목수일을 맡고 토수는 토수일을 맡
고...각자의 재주나 기술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바치고 그렇지 못한 분은
자기의 힘에 따라서 노력이나 물자를 바치어 철감대사의 태산 같은 은혜에
보답하고 부처님 앞에서 복을 지어야 하겠읍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고진사의 제의에 찬성하고 곧 실천하기로 결의하였읍
니다. 고진사는 그날로 쌀 일곱섬과 소금 닷말을 보문암으로 옮겨오고 목
수들은 건축재목을 베고 재단하고 깎고 하는 한편 수 많은 부락민들은 쌀,
보리,콩,옥수수 등 곡식을 가지고 와서 재목,돌,흙, 운반에 힘과 정성을
다하였다. 그 위에 이번 설법전은 풍경도 달고 기와도 덮자는 주장이 많아
기와공인이 와서 기와를 굽기도 하였다. 고진사는 총 감독이 되어 날마다
공사장에서 건물의 방위를 정하고 기초를 마련하고 정초(定礎)를 살피고
있었다.
칠월 초에 시작한 설법전 건축공사는 고진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의 정
성과 노력으로 순조롭게 진행 되어 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 시월
보름날 준공을 보게 되었다. 이 날은 혜안이가 모래자루를 주무르면서 관
음정진을 시작한 날로부터 만 구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 준공식에
는 큰 재(齋)를 올리기로 하였다. 떡을 빚고 산과일을 따오고 산나물을 장
만하여 부처님께 올린 다음 모인 사람들이 평등하게 공양하였다.
철감대사는 설법전에 새로 마련된 법상에 앉아서 감개(憾慨)깊은 눈으로
회중을 보았다. 그리고 조역는 기쁘고 만족스럽습니다. 이 설법전이 여러분
의 정성과 힘으로 이루
어졌고 내가 제일 먼저 이 법상에 오르게 된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나 이
것도 여러분의 복전을 개발하는 일이라면 경사스러운 일이 올시다. 그러나
나의 이 세상 인연도 종말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오직 하나 혜안이의 공
부 성취를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다소 섭섭한 일이나 정명(定命)과 인연
법(因緣法)은 어찌 할 수 없는일-. 혜안이의 앞날은 여러 선남선녀에게 부
탁합니다. 종자를 뿌리고김을 매는 사람은 거둘 것이 있읍니다. 여러분이
심은 선근에는 반드見 가까이 불렀다.
돌연 진사어른을 청한 것은 부탁할 말씀이 있고 시각은 촉박하여서-. 실
은 오늘 중으로 나의 세상 인연이 끝나는 것 같습니다. 왕노인은 오늘부터
총지거사(摠持居士)로서 지나도록 하시오.
철감대사의 말이 계속 되는 동안 먼저 동요되는 사람은 왕노인이었다. 그
는 얼굴 빛을 변하면서 철감대사의 말을 중단시키려는 기색이었다. 고진사
는 눈짓으로 왕노인을 제지하였다. 혜안이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스님의
말씀을 방해하지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혜안이는 내가 간 뒤에도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을 스育括텝 도움을 받도
鵠하여라.
두 분께 후사를 부탁합니다.
대사는 말을 마치고 합장하여 묵념한 후에 염주를 들고 조용히 자리에 눕
는다. 왕노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철감대사를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고진사는 손을 제지하였다. 혜안이는 단정히 꿇어앉아서 스님의 거룩한 임
종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있다. 향로의 연기만 허공으로 길
게 선을 그으면서 올라 간다. 창밖에서는 가을 바람에 낙엽 굴러가는 소리
와 설법전의 풍경소리가 들린다.
그후 두 시각도 못 되어 철감대사는 숨을 거두었다. 혜안이는 비로서그러
나 처음으로 체험하는
이 거룩한 임종-천병산 산정에 걸쳤던 구름이 바람을 타고 사라져 가듯
이 평화스럽게 잠들어 가는 철감대사의 임종에 감동되어 부지중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었다.
철감대사이 입적 임종은 그날 중으로 무학동을 위시하여 인근 부락에 전
파되었다. 대사를 존경하던 선남선녀들은 보문암으로 몰려들었다. 통곡하
는 사람,대지에 엎드려 흐느껴우는 사람,생전에 한번 더 뵙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한탄하는 사람 보문암 경내는 일대 혼란이었다.
삼일후에 철감대사의 다비법식(茶毘法式)-영결식이 있었다. 이날 모인 조
객은 천명이상이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천지개벽 이래 천병산 중에
이러한 사람 모임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 다비에 모인 사람들은 단순한 조
객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한 사람 한사람이 모두 철감대사의 높은 덕과 거
룩한 인격과 은혜를 추모하면서 앞으로 더욱 성실하게 불법을 믿고 도웁고
보문암을 돌보아 주겠다고 서로 맹세하였다.
고진사는 그 뒤로부터 자기의 생활 발판을 보문암으로 옮기고 혜안이와
기거를 같이하면서 보문암을 돌보게 되고, 왕노인은 고진사의 지시를 따라
서 보문암의 전곡을 맡아 경리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또한 고진사는 부락 대표들과 상의하여 철감대사의 기념사업으로 법당을
개축하기로 하고 권선장(勸善帳)을 만들어 널리 동참을 권선하기로 하였다
부근부락 사람들은 물론, 멀리 이 소문을 들은 고을 사람들까지 다투어 전
곡을 헌납하고, 고을 태수도 전곡을 싣고와서 고진사를 위문할 목수와 토
수도 보내왔다.
법당개축공사는 순조롭게 진척되어 그 이듬해 오월 상양(上樑)에 이어 기
와를 덮고 칠월에는 외부 공사를 끝냈다. 남은 것은 내부수장과 단청공사
뿐이다.
혜안이는 법당 개축 상황을 들으면서 스님의 생전에 쌓은 공덕이 사후에
도 이처럼 거룩하게 비치는 것인가 하고 깊이 감격하면서 자기 정진에 더
욱 힘을 기우렸다. 그동안에 모래자루를 다시 세번 갈았으니 삼십개를 채
운 셈이다. 그는 지금 의젓한 소년으로서 성장 함에 따라 더욱 청초하고
늠름한 기품이 넘치었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동진보살을 만난 것 처럼
자연 머리를 숙이게 된다. 무슨 음식이나 과일을 가져다 주는 것을 불전에
올리는 것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작은 스님>이라
고 부르게 되었다.
그해 구월부터 시작한 단청공사도 시월초에 끝났다. 법당 준공식은 철감
대사의 소상(小喪) 전날인 시월 십팔일에 시행하기로 하고 고진사 이하 부
락 대표들은 그 준비에 분망하였다. 지금은 총지거사인 왕노인도 쉴새 없
이 재식(齋式)에 필요한 물자를 구해 들이었다.
시월 십사일, 그 날은 유달리 청랑한 날이었다. 밤이면 간혹 엷은 서리도
내리어 산사의 아침 저녁은 냉기가 돌았으나 주간은 맑은 하늘에 태양 빛
이 따스하였다. 보문암에는 부락대표들 남녀 십여명이 밤을 새우면서 음식
차반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내일이 혜안이가 관음정진을 시작한 후 만 십
년이 되는 날인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고진사와 왕노인까지도
재식 준비에 쫓기어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오직 혜안이 만은 그 날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모래알은 아직 선단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안되면 앞으로 또 십년 더 계속할 뿐!
이라고 내심 작정 하였다.
시월 십오일. 이날 새벽에 혜안이는 향로를 들고 법당으로 갔다. 혜안이
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방향감각이 확실하였다. 보통 사람이 해뜨는 것이
나 달 지는 것을 보고 동서를 구분할 때에 혜안이는 손끝은 청진기 이상으
로 예민하였다. 풀이나 나무를 만져보고도 그 생태를 짐작하였다. 그는 누
구에게도 이런 일을 발표한 적은 없다. 다만 멀리서 짐승이나 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 맹수나 맹금에게 쫓긴다든가, 새끼를 찾아 헤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일은 있었다. 그는 몇걸음 앞에 층계가 있고 개울창은 어디 있고
법당문 고리는 어느 정도의 높이에 있다는 것을 보는 사람 이상으로 잘 알
고 있었다. 그는 과거 십 삼년 동안 법당을 출입하고 보문암 경내를 돌아
다니면서 한번도 실수한 일이 없었다.
그는 예불을 마치고 꿇어 엎디어 부족한 정성을 참회하였다. 그리고 앞으
로 십년간 다시 정진을 계속하여 스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맹세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작은 스님! 작은 스님! 큰 일 났어요!
어느 부락 대표의 말소리였다.
고진사 어른이 그만...
혜안이는 고진사의 심상에 급변이 생긴 것을 짐작하고,
알았읍니다. 갑시다.
대답 하면서 허둥지둥 법당을 나왔다. 고진사는 원래 비대한 분으로 작금
과로한 끝에 중풍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고진사 옆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 일을 어찌할 것이냐
고 걱정과 탄식을 하면서 수선스러웠다.
혜안이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고진사 옆으로 다가 앉으면서 손을 잡고 맥
을 보았다. 몸은 불덩이 같이 닳았고 숨소리는 촉박하였다. 고진사는 혀가
굳어져서 말을 하지 못한다. 높은 신열을 감촉하면서 혜안이의 머리 속에
는 자루 안에 있는 모래가 떠올랐다. 혜안이는 고진사의 옷을 벗기게 하고
모래자루를 뜯도록 하였다. 혜안이는 모래를 쥐어내어 자리에 흩고 그 위
에 고진사를 눕힌 다음 전신을 만지면서 더듬어갔다. 그의 손 끝에는 혈액
이 통하는 상태와 혈액이 순환하다가 막힌 곳이 일일히 감촉 되었다. 혜안
이는 일심정성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막힌 곳을 주므르고 마
찰하였다. 그리하여 막힌 혈액이 통하였다. 먼저 목과 가슴을, 다음은 팔
과 다리를 마찰하였다.
휘유! 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고진사는 팔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
람들은 고진사가 졸도하던 그때 보다도 더욱 놀랐다.
기적! 이라고 모두 소리를 질렀다. 십분도 채 되지 못하여 고진사는 몸을
일으키어 주위를 살피었다. 먼동이 트고 동창이 밝아온다. 고진사의 눈에
는 환희와 감격의 눈물이 고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놀라움과 기쁨을 참지
못하여 우는 사람도 있었다.
철감대사가 이 고경덕에게 제일 먼저 소중한 영약 선단을 먹일 줄이야!
혜안이의 십년 공부가 없었던들 이 몸은 그대로 추한 종말을 보았을 것인
데-혜안사미는 바로 현세의 관음보살님이오!
고진사는 옷을 입고 합장하여 혜안이에게 세번 절하였다. 모든 사람들도
합장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혜안이는 고진사가 자기에게 예배를 하였으리라고 생각지는 아니하였다.
진사어른, 어떠하십니까?
다 나았오! 우리 작은 스님 법력으로... 여러분! 소중한 이 선단을 한알
이라도 허실함이 없도록 합시다. 우리들은 지금에야 철감대사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읍니다. 생각하니 오늘이 바로 작은 스님이 공부를 시작한 후 십
년이 되는 날이구려! 우리 작은 스님도 공부를 성취하고 도를 이루었읍니
다. 큰 스님을 받들던 그 마음으로 작은 스님을 섬기어 갑시다!
고진사의 가족들이 급보를 듣고 그 중에서도 젊은 아들들이 보문암으로
달려왔을 때에 고진사는 여러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한번 놀랐다. 허보를 전했던 것일까? 귀신에게 홀린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이들이 고생을 하였구나, 하마트면 내 생전에 대면도 못하였을 것을!
좌우간 안심들 하고 기다려라. 조반 후에 차근차근 이야기 하기로 하자-너
이들도 이 기적을 알아두어야 하겠다.
뒤를 이어 가족중의 여자들과 소문을 들은 부락 사람들이 계속 도착하였
다.
고진사는 모여든 사람들을 설법전으로 집합시키고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
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듣는 사람들 중에는 감탄하는 사람도 있고, 반신
반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설명하는 사람과 고진사가 아니었다면 모두 허
황한 말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혜안이의 기적 같은 의술의 소문은 단시일에 번져서 고을에까지 들리었다
처음에는 중풍환자만을 고치던 혜안이는 위장환자도 고치게 되었고, 폐병
환자도 고치게 되었다. 뒤에는 나병환자 이질환자 할것 없이 무슨 환자건
고치게 되었다.
각처에서 모여드는 환자수가 처음에는 다섯명 일곱명으로 불어올라 가다
가 이듬해 삼월에는 삼십여명이 되고, 여름에는 오륙십명이 되어 지금은
설법전을 환자 진료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수종하는 사람도 지금은 고진사
와 왕노인 외에 고진사의 아들 형제 내외까지 합세하여도 바쁘게 되었다.
환자들의 도착 순서로 순위를 정하고 모래를 깔아 눕히고 한번 사용한 모
래를 열탕으로 소독하여 말리고...이러한 일을 하는 수종군들의 일은 쉴
사이 없이 바쁘게 되었다. 고진사의 아들 삼형제 중에서 장남만 집에 남고
다른 두 형제 내외는 모두 보문암으로 와서 혜안이를 돕기로 하였다.
그해 팔월의 일이었다. 서울 대궐 안에는 공주가 중풍으로 자리에 눕게
된 이래 삼년이 되는 지금까지 전국 이름 있는 의원이 모여들어 백방으로
치료를 하였으나 조금도 효과가 없어 수심이 늘어만 갔다. 그 동안 막대한
국재(國財)를 소비하였고, 국왕도 많은 시간과 정력을 기울여 오면서 지금
은 지치게 되었다.
이 이상 국비와 정력을 소비할 수는 없다. 외래의원은 전부 돌려보내어라
공주의 뼈텝간절한 심정에 감동하여
관계 대신들과 아홉명의 어사를 인솔하고 책임 지역을 정하여 그날로 떠나
게 하였다.
어사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으나 자신을 갖고 나서는 의원을 만나
지 못하였다. 어사들은 모두 초조하게 헤매면서 시일만 허송하였다. 어사
들 중에는 애절하게 고대하고 있는 왕후를 대할 면목이 없다 하여 자결을
결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천병산 보문암이 있는 지역을 담당한 어사는 육십이 넘은 노령에 한달 이
상 돌아다녔으나 그도 지칠대로 지쳐 거의 단념하고 천병산을 관할하는 고
을에 들리어 태수를 찾씬멎있으나 허황한 소
리고...
잠깐 천병산이라면 그 근처에 고경덕 진사가 계시는 곳이 아니오?
어사가 태수의 말을 가로 막고 물었다.
말씀하신 그대로 올시다. 고진사는 최근에 불도에 빠져 계시는 모양이올
시다.
여기서 그 방향과 노정은 어떠한가요?
서북으로 백 오십리 가량 됩니다.
그러면 내일은 천병산으로 떠나겠오. 고진사와 옛날 구회(舊懷)를 풀겸,
좋은 친구야! 훌륭한 분이지...
다음날 일찍 어사는 안내하는 관원 두명과 함께 말을 채찍질 하였으나 무
학동서 삼십리 거리 되는 지점에서 밤을 지나게 되었다. 치료되어 돌아갔다
는 이야기다.
어사는 일루(一縷)의 희망과 기대를 걸어보았으나 하두 허황한 말이어서
믿어지지 아니하였다. 그 이튿날은 구월 구일의 중양절(重陽節)이었다. 어
사는 길을 재촉하여 무학동에도착하였다. 아직 점심때는 일렀으나 고진사
댁은 무엇인가 쓸쓸한 분위기였다.
진사 어른은 보문암 절에 가서 계십니다.
늙은 하인이 나와서 응대하였다.
언제부터 그 곳에 계시는지?
재작년 시월부터 올시다.
그러면 보문암으로!
어사는 관원들에게 지시하였다.
어사는 관원들에게 지시하였다. 보문암으로 통하는 노상에는 사람이 연락
부절이다. 어사는 전에 무슨 큰 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의하여 보니 절로 들어가는 사람은 대부분 병든 사람들로서 침울한 표정
이나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병자가 없고 모두 명랑하고 기쁨이 넘치는 기
색이었다. 어사는 하두 기이하여 행인에게 물었다.
절에서 무슨 제라도 올리는거요?
천만에! 재가 무슨 재요
그럼 무슨 사람 출입이 이처럼!
아직 모르세요? 혜안 작은 스님이 관세음보살의 신력을 입고 일만병자를
나아주는 것을-보세요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병자지요? 나오는 사람은 모
두 성한 사람-나도 칠년고질 폐병을 눈 깜짝할 동안에 이처럼 고치고 오는
걸요! 관세음보살!
어사는 그러나 허황하게만 들리었다. 보문암에 도착하니 과연 수 많은 환
자가 모여 앉아서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진사는 병자명부를
들고 한 사람씩 불러내면 청년이 데리고 가서 쏟아놓은 모래 위에 눕히고
청수한 소년 사미중이 관세음보살을 염창하면서 맥을 더듬어 몇번 주무르
면 환자는 전쾌되어 나온다. 어사는 환자들 틈에 몸을 숨기고 자기 눈을
의심하는 것처럼 몇번이고 눈을 비비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현실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 무렵 고진사는 그날 치료자 명부를 셈하고 나서 천정
을 향하여 말한다.
오늘은 일백 열한명! 끝이다. 수고들 하였다.
고진사는 혜안이를 요사로 보내고 뒷 처리를 지시한 다음 조용히 자리에
서 일어선다.
고명당 영감! 어사는 앞으로 나오면서 불렀다.
고진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어사를 바라보았다. 어사는 자기의 성명과
내력 그리고 어사의 사명을 밝히었다. 고진사는 비로서 어사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잡았다. 그들은 함께 요사로 가서 구정을 풀고 어사의 임무를
다시 들었다. 왕후에 걱정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고진사도 같이 걱정하였다.
고진사는 보문암의 내력과 철감대사, 그리고 혜안이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
였다.
그렇다면 혜안이를 서울로 데려가야 되겠읍니다.
어사가 제안하였다.
국명(國命)이 지엄하시다 할지라도 그 본인의 의사를 들어야 될줄로 압니
다.
당연한 말씀-그러면 혜안이를-아니 그 작은 스님을 청해주시오
혜안이가 들어왔다. 혜안이는 전후 사정말을 듣고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
게 입을 열었다.
국명은 지엄하시나 날마다 찾아오는 수 많은 환자들을 버려두고 떠날 수
가 없읍니다. 그것은 부처님과 스님께서 허용하시지 않은 일이 올시다. 무
엄(無嚴)한 말씀이나 한 사람을 고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을 죽일 수는 없
읍니다.
어사는 물론 고진사도 말문이 막힌다. 위엄이 있고 사리(事理)에 합당한
말이다.
우리는 작은 스님이 서울 다녀올 동안 찾아오는 병자들을 수용하여 응급
치료를 시킬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진사는 난처하여 이러한 절충안을 말하였다.
어렵지 않습니다.
어사는 즉답(卽答)하였다.
삼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사(病舍)와 다섯명의 의원을 준비하여 그동안
치료를 시키도록 하겠읍니다.
그렇다면 혜안이도 가는 수 밖에 없겠네. 국명을 어길 수 없으니.
고진사도 간곡히 권하였다.
혜안이도 부득히 응락하고 가기로 하였다. 어사는 태수에게 관원을 보내
어 의원을 구하고 병사를 지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은 고진사의 지
시를 따르도록 하였다.
준비에 삼일이 걸리었다. 혜안이는 남여(藍輿)를 타고 어사는 말을 타고
떠났다. 혜안이는 모래 주머니를 잊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그의 유일한 약
품이요 의료기구였다.
서울로 가는 연도(沿道)에는 역졸이 앞을 달리고 방백(方佰) 수령(守令)
들은 지경까지 나와서 혜안의 일행을 맞아 들이었다. 공주의 병을 고치려
가는 혜안이의 소문은 날개가 돋혀 방방곡곡에 퍼져갔다. 연동 주민들은
도를 통하여 신통변화를 부린다는 젊은 도승을 보려고 떼를 지어 혜안이가
통과하는 길가로 모여들었다. 남여에 앉은 혜안을 본 국민들은 모두 합장
하고 머리를 숙이었다.
길을 재촉하였으니 천병산을 떠난 후 몇일만에 혜안이 일행이 서울에 도
착하였다. 혜안이를 객관에 쉬게하고 어사는 내궁으로 달려갔다. 왕후는
보낸 어사 한 사람 한사람이 허행으로 돌아왔다는 보고를 들을 때마다 실
망만 더욱 심하여 이제는 가누지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때에 또
한사람의 어사가 돌아와서 알현을 청한다고 여관이 주달(奏達)하여도 왕후
는 손을 저어 거절하였다. 왕후는 다시 한번 실망의 충격을 받기가 두려웠
던 것이다.
공주마마의 병환을 고칠 도승을 모시어 왔다고 주달하시오!
공주마마의 병환을 고칠 도승을 모시어 왔다고 주달하시오!
왕후는 의외에 놀라서 다시 말하였다.
도승이 왔다고?
왕후의 얼굴에 혈색이 돌면서 눈에는 광채가 돋는다.
속히 들라고 전하여라.
어사로부터 혜안이의 내력을 대강 들은 왕후는 일각이 초조하여 즉시 불
러오라고 일렀다.
왕실, 위신도 생각해야 될 일이니 내일 밝은 날로 미루도록 하셔야 되겠
읍니다.
어사의 간곡한 말에 왕후도 겨우 납득이 되었다.
다음날 어사는 재상과 함께 국왕에게 알현하고 왕명을 어기면서 그 동안
의원을 구하게 된 죄를 청하고 철감대사의 높은 덕화와 혜안이의 굳은 신
심, 관세음보살의 가피등을 상세하게 품달하였다. 국왕도 크게 감동하여
곧 혜안이를 대궐안으로 불러 들이었다. 국왕은 혜안이의 청수(淸秀)한 자
세와 높은 기품에 감탄하였다. 국왕은 혜안이를 내궁으로 인도하도록 분부
하였다.
한편 일각이 삼추(三秋)같이 초조한 왕후는 아침부터 의상을 정제하고 왕
후정전에 나오서 국왕정전의 소식을 탐문하고 있었다. 미구에 혜안이가 어
사의 인도로 내궁에 든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왕후는 혜안이를 보는 순간
무슨 위력에 눌리어 합장하고 예배하였다.
혜안이는 곧 공주의 병실로 안내 되었다. 잠시 병자의 맥을 짚어 본 뒤에
혜안이는 엄숙히 지시하였다.
병실에는 왕후마마와 여관(女官)한분 그리고 시의(侍醫)한분만 남으시고
모두 물러 가도록 하십시요.
외인은 전부 물러갔다. 혜안이는 자리에 모래를 깔게하고 내의(內衣)만
입은 공주를 그 위에 눕히도록 하였다. 혜안이는 합장하고 관세음보살 명
호를 일곱번 부른 후에 공주의 맥을 더듬어 가면서 가볍게 주물렀다.
관세음보살!
소리와 함께 공주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그 사이가 참으로 잠깐 동안이
었다.
치료는 끝났읍니다. 공주마마가 일어나시면 모래를 허실없이 쓸어서 담아
보내 주십시요.
혜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공주는 힘찬 기지게를 키면서 일어난다
왕후와 여관은 이 신기한 기적에 놀라고 기뻐서 (어머나!)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공주를 붙잡을 여가도 없이 혜안이의 앞에 꿇어 엎드려 예배를 드
린다. 그리고는 공주를 붙들고 기쁨의 울음을 터뜨렸다. 입회하였던 시의
도 자기의 눈을 의심하는것 처럼 몇번이고 눈을 비비어 본다.
이런 허황한 일도 있는가?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삼년간 자기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도 못한 일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한낱 사미중이 이루어 놓다니!
잠깐 스님! 공주는 문을 향하여 나가는 혜안이를 불렀다. 소녀의 예배나
받고 가시도록! 공주는 혜안이의-자기 생명의 은인인 혜안이의 얼굴을 다
시 한번 보고 싶었다. 황공한 말씀을! 그는 아무 표정 없는 그러나 위엄이
늠름한 얼굴로 한번 돌아본 뒤에 그대로 천천히 나가 버린다.
대궐 안에는 일대 선풍이 일어났다.
공주마마가 일어났다!
관세음보살이 오셨다!
이런 말이 이 입에서 저 귀로 삽시간에 바람을 타고 번져 갔다. 내궁은
재상이하 문무백관 궁내관속들의 하례객(賀禮客)으로 붐볐다. 국왕도 친히
내궁에 들러 공주를 대면 하였다. 마치 죽음에서 소생한 딸을 대하는 감회
였다. 국왕의 눈에도 기쁜 눈물이 맺히었다.
이 기적은 대궐 안에서 장안 거리로 번져갔다. 대궐안에는 허공에서 백상
(白象)을 타고 관세음보살이 내려와서 공주마마를 한번 만져주니 공주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는 그러한 소문이 번져 가기도 하였다. 세상에는
혜안이를 한번 보기만 해도 원이 없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혜안이는 객관에서 돌아갈 준비를 갖추고 같이 왔던 어사를 청하였다.
그러할 수가 있는가? 아직 상감마마의 분부도 없는데-하루 이틀 더 머무
르게나!
어사는 당황하여 만류시키고 대궐로 들어가서 국왕에게 혜안이의 뜻을 전
하였다. 국왕은 재상이하 각 대신을 불러서 혜안이에 대한 사례방법을 의
논하고 천병산에 갔던 어사의 공을 크게 표창하였다.
그날 밤에 공주는 왕후 앞에 나아가서 자기의 심중을 말하고 애원 하였다
그 도중은 소녀의 목숨을 건져 주신 은인이요. 이 세상에서 소녀의 몸을
어루만진 첫 남자올시다. 하늘이 정해 주신 배필인가 합니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허락하신다면 그 도승에게 평생을 의탁하고 싶읍니다.
왕후는 공주의 이 애절한 소원을 듣고 놀라서 곧 국왕을 맞아 공주의 뜻
을 말하였다.
국왕도 처음에는 놀라고 의외라고 생각하였으나 공주의 말에 일리가 있음
을 알고 그 다음날 혜안이를 궁중으이 있을지라도 부처님과
스님의 옛 도량을 떠날 수는 없읍니다. 하루 속히 돌아가도록 하여주십시
요.
장한 일이로다. 그러면 그대의 소원을 말하여 보라. 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고 이루어 주리라.
다른 소원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오직 하나-하루 속히 옛 도장으로 보내
주시면 합니다.
국왕은 모든 물욕에서 해탈된 혜안이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그 정신에
더욱 감동되어 그 이상 할말이 없었다. 혜안이를 객관으로 보낸 뒤에 재상
을 불러 매년 오백석의 향수미를 보문암에 올리도록 명령하고 각자공(刻字
工晝 갖추라고 지시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공주는 큰 충격을 받고 비탄에 빠져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공주는 큰 충격을 받고 비탄에 빠져 있었다. 공주의
심정을 달랠 길이 없어 수심에 잠기었다. 그러나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공주와 왕후는 친히 침선(針線)을 들고 혜안이의 의복과 장삼을 지었다.
그리고 궁내관에게 당부하여 혜안이가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내궁에 들리
도록 하였다.
혜안이가 떠나는 날 국왕은 친히 <여의패-어패>를 혜안이에게 전하면서
이 어패는 이 나라 안에서 어느때 어느곳이건 나의 관원에게 보이면 그대
의 요구는 무엇이건 이루어지리라고 설명하였다. 국왕을 시립하였던 재상
은 향수미 오백석에 관한 말을 전하였다.
혜안이는 사양하였다. 그러나
내가 철감대사에 드리는 것이라면 되지 않나!
하는 국왕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궁내관의 인도로 내궁에 들어간 혜안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 내궁에 벌어
지고 있는것을 직감하였다. 왕후의 한숨 소리와 공주의 흐느껴 우는 소리
는 모든 것을 설명하였다. 혜안이는 엄숙한 그러나 인자한 말소리로 입을
열었다.
삼계(三界)는 고해올시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시면 사람의 한 생애는 거
품과 같습니다. 부귀도 영화도 뜬 구름과 같이 허무한 것, 원한도 애정도
찰라간에 변환하는 것, 모두 탐진치 삼독에 얽힌 인생고의 가닥이 올시다.
부처님의 법을 쑴고 마음을 조촐히 하면 괴로움은 낙으로 변하고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어 질 것이 올시다. 사람은 인연으로 모이고 인연으로 흩어
집니다. 마음을 닦아가면 뒷날 반갑게 만날 날이 있을 것이 올시다. 고정
하시고 정성껏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창하십시오. 외로울 때에는 관세음
보살님께 의지하십시오.
혜안이의 말 소리는 구만장공(九萬長空)에서 울려오는 학의 소리와 같이
공주의 귓전을 울리었다. 공주는 울음을 그치고 황홀한 눈으로 혜안이를
우러러 보았다. 범할 수 없은 그 거룩한 얼굴! 공주는 지금까지 천박하였
던 자기의 생각을 뉘우쳤다. 왕후도 마음 속으로 무엇을 깨달은 것 같았
다. 혜안이를 향하여 한번 절하고 지어 두었던 의복을 바치었다. 혜안이
는 사양치 않고 그것을 받았다.
혜안이는 작별인사를 마치고 대궐을 떠났다. 문무백관과 남녀궁내관속들
은 정문 앞에서 혜안이를 배웅하였다. 왕후와 공주는 내궁정전 난간에 몸
을 기대고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안이가 서울을 떠나기 앞서 연도 각지방 수령들에게 역마가 달리고 칙
서(勅書)가 내리어졌다. 혜안이의 영접과 배웅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는
분부였다. 지방 수령들은 혜안이에게 <여의패>라는 어패가 내리었다는 말
을 듣고 모두 걱정하고 초조하였다. 소홀히 하다가 무슨 트집이라도 잡힐
지 또 무슨 청탁을 내놓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은 비행이라도 들추게
된다면 봉고파직을 당할지 목이 잘리게 될런지 보장할 수 없다하여 전전
긍긍하는 수령도 있었다. 무슨 수단을 쓰던 간에 무사히 지경만 넘기고
볼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상대편은 일국의 부마자리도 박차
고 여의패를 받은 사람이다. 왕후의 합장배례를 받은 도승이다. 지방 수
령들은 제각기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혜안이의 행차는 그의 굳은 사퇴에도 불구하고 장엄하였다. 새로 꾸민
남여는 오색 구슬과 조화로 장식 되고 전후 좌우로 호위하는 십이인의 호
위병은 한 사람의 무관에게 인솔되어 외인의 접근을 금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새 안장으로 꾸며진 마상에 앉아서 새 전립(戰笠)과 전포(戰袍)에
새 기치와 창검을 들고 있다. 그 뒤에 두필의 짐바리가 따르게 되었다.
혜안이가 서울 떠나던 날 서울 거리의 연도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백
상을 타고 허공에서 내려와 공주의 병을 고쳐준 도승을 보기 위한 것이다.
서로 앞을 다투어 혜안이의 행열에 접근하려고 하므로 호위병들은 이들을
물리치고 길을 트기에 진땀을 빼기도 하였다. 그 중에는 향로에 향을 피우
고 합장배례하는 사람도 있었다.
혜안이가 육일간의 행정(行程)을 마치고 천병산에서 일백칠십리 되는 지
점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해는 서쪽으로 기우러져가고 배웅나왔던 관
속들과 영접나온 관속들이 서로 교대하는 것은 이곳이 두 인접 고을의 지
경인 것 같다. 배웅나왔던 관속들이 호위무관의 수결을 받고 돌아간 직후
에 돌연 행렬 앞에서 여인의 울음섞인 하소연 소리가 들린다.
앞 못보는 불쌍한 여인이 올시다. 명철하신 사또께서 내 딸을 찾아주오.
내 딸을 찾아 주오! 앞 못보는 여인이올시다.
인솔무관과 군졸들 그리고 남여군들까지 소리소리 꾸짖는다.
썩 물러서지 못할까! 어느 안전이라고-아니 어느 행차라고 요망스럽게 길
을 막는거야!
앞 못보는 여인잔관속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여인이 혜안이의 면전에
인도 되었다. 그 여인은 당달봉사였다.
무슨 사연인지 말씀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 드리겠읍니
다.
혜안이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말소리로 물었다.
나는 죄 많은 여인이올시다. 사십에 남편을 읽고 눈이 어두운 뒤에 어린
딸을 지팡이 삼아 유리 걸식하다가 오늘 이 근처에서 무지한 사람들에게
딸 자식을뺏겼읍니다. 이제는 지팡이 없는 이 어미가 어떻게 살아 가겠읍
니까?
연세가 얼마시며 딸은 몇살인데요?
천한 나이 벌써 마흔네살, 딸자식은 열여섯살이 올시다.
딸을 빼앗은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잘 알 수 없으나 사람들 말을 들으면 이 고을 관속들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고을로 끌고 갔을 것이 올시다. 눈 못보는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
와 내 딸을 찾아 주십시오. 그 은혜는 결초보답 하겠읍니다.
이 때에 영접나온 관속들은 당황한 태도였다.
좌우간 고을로 갑시다. 이 부인을 고을로 모시도록 하시오.
혜안이는 인솔무관에게 지시하였다.
인솔 무관은 봉사여인을 짐마차에 앉히고 고을로 향했다.
고을 수령은 멀리 나와서 혜안이를 영접하다가 짐뮐治첼 따라서 그 여인
넵같은 객관으로
안내한 뒤에 숨돌릴 새도 없이 관아로 달려가서 육방관속을 불렀다.
어느 놈이 그 여인의 딸을 겁탈하였느냐? 먼저 영접나갔던 관속들을 모조
리 결박지어 차라리 형틀에 올려매여라! 바른대로 불지 않으면 물고를 내
리라!
수령의 명령은 추상 같았다.
수령은 혜안이의 명령이 있기 전에 그 딸을 찾아서 받치고 사과하는 편이
득책(得策)이라고 생각하였다. 관속들은 돌개바람에 나무잎 같이 떨었다.
이대로 가면 몇 사람이 결단날지 예측키 어렵다고 모두 걱정 하였다.
저지른 놈은 속히 자수이다. 그 군노는 피키 어려운 판국임을 깨닫고 앞으
로 나와서
자백하였다.
소인이 그저 죽을 죄로...그 처녀는 곧 데려오겠읍니다.
응, 저놈을 결박지어 하옥하여라! 손님을 배송한 후에 처참하리라.
두 사람의 관속이 달려 가서 그 처녀를 데려왔다. 수령은 처녀를 객관으
로 데리고 가서 그 여인에게 인도하고 혜안이의 앞에 꿇어 엎드려 자기의
불찰을 사죄하고 범인은 곧 처리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실 것은 없읍니다. 사람은 찾았고 그 범인은 죄를 자백하였다하니
용서하여 주시는 것이 나에게 대한 대접이올시다. 오늘밤 안 데려오너라.
죄수는 결박지어 끌려왔다.
너를 당장 참수랄 일이나 인자하신 대사님의 분부로 석방하는 것이다.
개과천선하렸다!
죄수는 감격한 눈물을 흘리면서 몇번이고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날 밤 딸까지 찾은 여인은 혜안이의 방문 밖에 꿇어 엎드려 합장하고
울면서 혜안이의 은덕을 치하하였다. 이 여인도 혜안이가 젊은 스님이라
는 것과 역시 자기와 같은 당달봉사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지난 일을 회상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혜안이는 방문을 열고 여인을 방
안으로 인도하여 위로 하였다. 여인은 더욱 흐느껴 울기만 한다.
은혜와 원한은 그 차이가 백지 한장 두께도 못됩니다. 부처님의 법에서
보면 은혜와 원한은 모두 마음의 집착에서 오는 망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퍼하는 것도 마찬가지올시다. 이 망념을 없이 하려면 정성을 다하여 관
세음보살의 명호를 염창하면 됩니다.
나는 죄가 많은 여자올시다. 얼마던지 고생하고 울어도 오히려 부족합니
다.
선과 악, 죄의 과보도 똑같은 이치로 풀이할 수 있읍니다. 악에서 한 생
각을 돌이키면 곧 선이 되고 지옥에서 한 생각을 돌이키면 그 곳이 그대로
극락이 됩니다. 죄 줄.
스님은 어느 절에서 오셨으며 성씨는 누구신지요. 양친모두 계시고...
예,나는 천병산 보문암에서 왔사옵니다.
혜안이는 기탄없이, 그리고 어색치 않게 대답한다.
나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읍니다. 철감대사가 아버지시고 어머니십
니다. 스님께서 강보에 싸인 나를 키우시고...그러니 속성(俗姓)도 없지요
속성을 알길이 없지요. 스님께서도 말씀한 일이 없으니...
그러면 혹시나!
여인은 말을 잊지 못하고 전신을 떨면서 무슨 공포감에 사로잡히어 숨만
헐떡거리고 있다.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린다.
혜안이는 여인에 대한 깊은 동정과 함께 이상한 예감을 갖게 되었다. 그
러나 소탈하고 담담하게 그 다음 말을 이었다.
나의 속성은 알 것도 없지요. 부처님의 제자요 철감대사의 상좌면 충분합
니다. 우리 스님은 인자하신 분이었지요. 우리 스님께서는 나를 어느 개천
가 반석 위에서 주어다 키우셨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읍니다-.
그만-지금 스님 나이가 얼마신데-.
열아홉이 올시다.
그렇다면 역시-아, 이것이 무슨 일인가! 이 죄 많은 어미라도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어미라면?
여인이 혜안이의 목을 덥썩 끌어안고 가슴을 들먹거리면서 울기 시작한다
차마 내 자식아! 하는 말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혜안이는 벌써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여인의 손을 잡고 위로한다.
지난 일을 뉘우치고 슬퍼하실 것은 없읍니다. 떳떳하게 자식이라고 불러
주십시요. 모두가 인연소치 피할 수 없는 업보소관이 올시다.
혜안이는 그날 밤에 어머니의 눈을 뜨게 하였다. 눈을 뜬 어머니는 다시
혜안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십구년 전의 어린 모습을 되찾아 보면서
끝 없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딸을 불러서 혜안이에게 대면시키었다.
네 동생 정화다. 동복(同腹)누이동생이다.
오늘은 어머니를 만나고 누이동생도 얻게 되는 길일(吉日)인가 봅니다.
혜안이는 미소를 지었다.
세상사람들의 만가지 병을 고쳐주고 어미의 눈까지 뜨게하면서 어찌 네
눈을 뜨게 못하느냐?
오늘로서 남은 죄상이 사라졌으니 소자도 내일은 눈을 뜨게 될 것이 올시
다.
그들 세 사람은 밤이 깊도록 관세음보살을 염창하였다. 자정이 넘을 무렵
혜안이는 두 손을 합장하고 일곱번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리고 두 손으
로 두 눈을 가볍게 문질렀다. 혜안이의 두 눈에서 검은 안개가 걷히면서
혜안이의 두 눈에는 하현(下弦)달빛이 비쳐 들었다.
어머니 기뻐하십시요. 소자도 눈을 떴읍니다.
그들 세 사람은 객관 난간에서 하얀 달빛을 바라보면서 관세음보살의 무
량무진한 공덕을 찬양하였다. 어머니는 두 남매에게 다음과 같은 지난날의
참회담을 들려주었다.
혜안이의 아버지는 천병산 서남편칠십여리 지점에 있는 어느지방 부농(
富農)남씨의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하다가 스물세살 때 어머니
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에도 과거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원래 몸이 허약하
여 항상 그것을 한탄하였다. 그 후 사년이 되던 해에 혜안이를 유복자로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유복이를 낳은 다음 고이 기르면서 일
생을 지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심한 시어머니의 구박에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저년이 내 자식을 잡아 먹었다.
고 생트집을 잡아오면서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하여 갔다. 어머니는 몇번
인가 죽기를 결심한 일도 있었다.
그 무렵 이웃 문씨라는 청년의 꼬임을 받았다. 어머니는 이 청년과 야반
에 집을 떠났다. 그들은 정처 없이 동북쪽을 향하여 전전배회하다가 어느
집 협실에서 혜안이를 해산하였다. 그 때에 어머니는 스물다섯, 문씨는 스
물일곱이었다.
아이는 남자였으나 당달봉사였다.
문씨는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생활고에 부닥쳐서 갈팡질팡 몸부림 쳤다.
몸을 의지할 움막 한간 없고 끼니를 이어 갈 먹을 것도 없다. 그 위에 병
신 어린애까지 걸머지고 앞에 놓여 있는 태산을 넘어갈 자신은 전연 없었
다. 문씨의 짜증은 날로 심하여 갈 뿐이었다.
그들은 화전민 생활을 하기로하고 천병산을 향하여 갔다. 종일 걸어온 끝
에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배는 고파서 촌보도 더 옮길 수가 없었다. 그들
은 시냇가에 있는 반석 위에 망연히 앉아서 내려 덮는 어둠속으로 말려들
었다.
어머니의 말소리는 잠시 중단되었다. 모든 것을 자식들 앞에서 고백하고
지난 일을 참회 하겠다던 결심도 지금 보살 같이 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룩
한 혜안이의 면전에서 차마 그 다음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청정하고
티끌이 없는 혜안이와 추잡한 자기의 과거를 비교하면 연꽃과 진흙 바닥이
서로 맞보는 것 같았다. 자식이라고 정면으로 대하기가 참괴스럽고 염치
가 없었다.
혜안이는 어머니의 그러한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기의
심중을 거침없이 모두 고백하여 버리는 것이 그 마음의 부담을 가볍게 하
는 길이라고 생각 하였다.
그것이 어머니의 죄의식을 소멸시키고 어머니를 고통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 하였다.
그 다음날 계속하여 주십시요. 마음에 맺힌 일이면 무엇이건 들려 주십시
요. 그리하여 지난 일을 전부 물에 흘려 보내고 다시 우리들과 새로운 길
을 떠나기로 하십시다.
어머니는 혜안이의 말에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끼었다. 무엇을 숨기랴 하
는 심정이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어디서 이 밤을 지내야 할까? 갈 곳도 없이 날은 어둡고-
문씨 청년은 깊은 실망 속에 떨어져서 자살이라도 하자고 외쳤다. 어머니
는 공포에 떨면서 문씨를 달래었다. 살아 갈 수 있는데까지 살아가 보자고
애원하였다. 두내외간에는 싸움이 벌어졌다.
격분한 끝에 아내와 어린애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할 기세였다. 어머니는
질겁을 하고 어린애를 버리고 가겠으니 자살만은 말자고 애원하였다. 그러
면 당장 일어서라고 아내의 손을 잡아 끌었다. 어머니는 정신 없이 십분이
상 끌려가다가 홀연 버리고 온 어린애를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죽기를 각
오하고 반발하였다. 아귀같은 놈이라고 악을 썼다.
이 죄를 무엇으로 받을꼬?
그들은 화전민 생활을 목적하고 천병산을 찾아 왔으나 어린애를 잃은 뒤
에는 천병산이 원망스럽고 무섭기만 하였다. 그들은 북으로 다시, 백리 이
상 도망치듯 멀리 옮기어 가서 어느 부농의 고용인이 되었다. 문씨는 머슴
사리, 어머니는 식모, 침모살이로 생계를 이어 갔었다. 이 때에 정화가 태
어났다.
문씨내외는 근실한 고용사리로 부자유 없이 살아갈 수가 있었다. 오륙년
뒤에는 품삯을 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집을 사고 뒤에는 농토도 작만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지워버릴 수 없는 한가지 고민은 천병산에 버리고 온
어린애 일이다. 어린애의 영상은 그들의 기쁨을 앗아가고 생활을 어둡게
하였다. 그들은 그 날을 어린애의 제사날로 정하고 무당을 청하여 굿을 하
였다.
오년전에 괴질이 그 지방을 휩쓸었다. 문씨가 괴질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
났다. 그는 임종시에 반석 위에 버려둔 어린애를 데려오라고 소리소리 고
함을 쳤다. 그는 어린애를 버리고 온 죄를 받는 것이라고 슬피 울기도 하
였다.
문씨가 죽은 뒤에 어머니는 정화는 유일한 생활의 기둥으로 삼고 애써 살
아왔다. 모든 일을 다하여 정화를 곱게곱게 키우기로 하였다. 버린 어린애
의 넋을 위로하고 그에게 다 못한 애정까지를 정화에게 쏟아 주기로 하였
다. 지난 일을 잊고 정화만을 위하여 살아가기로 하였다. 어머니는 외로움
도 고달픔도 잊어버리고 애써 일을 하였다. 어머니는 역시 현명한 부인이
었다.
그러나 삼년전부터 두 눈이 어둡기 시작하였다. 얼마 뒤에 필경 실명하고
말았다.
당연한 죄보! 라고 어머니는 생각하였다. 농토를 팔고 집을 팔아서 살아
오다가 반년전부터 드디어 정화를 앞세우고 유리걸식하게 되었다. 혜안이
가 통과하던 길목에서 영접나온 관속 중에서 젊은 군노가 정화의 미색에
혼탁하여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정화를 빼앗아 돌린 것이 그 끝이었다.
천벌을 받고 진작 죽었어야 될 어미였다!
어머니는 침통하게 말하였다. 참회의 눈물이 두 뺨을 적시고 있다. 정화
도 울고 혜안이도 어머니의 고백을 들으면서 간혹 두눈에 손수건을 대는
적이 있었다.
마음을 비워버리면 죄가 의지할 곳이 없어집니다. 죄가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 앞으로 좋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채워두시면 안정을 얻게 될 것
이 올시다.
혜안이의 말을 듣는 동안에 어머니의 눈에도 무슨 광채가 빛나고 얼굴에
환희의 빛이 넘친다. 어머니는 혜안이의 발밑에 엎드려 예배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용히 혜안이의 손을 잡고 그 얼굴을 우러러 보았다.
자기 아들의 얼굴은 거룩하고 성스럽기만 하였다. 조각달은 세 사람의 얼
굴을 비쳐주고 있었다.
어제밤 객관에서 일어난 기적은 관아를 위시하여 이 고을 사람들을 놀라
게 하였다. 먼저 놀란 사람은 수령이었다.
어제밤 객관에서 일어난 기적은 관아를 위시하여 이 고을 사람들을 놀라
게 하였다. 먼저 놀란 사람은 수령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 관원들을 거느
리고 객관으로 문안을 갔었다. 혜안이는 이제 그 걸식여인 모녀와 함께 단
정히 앉아서 관음정진을 하고 있었다. 어제까지 당달봉사라고 들었던 혜안
이가 총기 넘치는 두 눈으로 수령을 정시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이것은
또 어찌된 일일까. 그 걸식봉사 여인도 반짝이는 두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령은 처음에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혜안이가 무슨 요술을 베풀어 자기
를 현혹케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감히 그 연유를 묻기도 어려웠다. 그
리고 이 걸인 모녀를 자기방에 들게 한 이유도 알수 없어 궁금하였다. 혹
시 어제 일어난 처녀겁탈 사건에 관련하여 자기의 비행을 수소문 하는 것
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머리끝이 하늘로 치솟는 것만 같았다. 어패 여의
패를 휘두르는 날이면 제 몸의 뼈도 거두지 못할 일이었다. 혜안이는 수령
의 그러한 심정을 간파하였다.
사또께서는 놀라실 것이 없읍니다. 이 분은 나의 어머니시고 이 아이는
나의 동생이올시다. 사또의 관내에 와서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이곳이 제이의 고향이 되었읍니다. 그 위에 이곳에 와서 우리들
의 업장이 소멸되어 못보던 눈도 뜨게 되었으니 인연이 두텁게 되었읍니다
수령은 혜안이의 말하는 뜻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걸인 모녀
와 혜안이와의 관계를 알게 되고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틀림 없다
고 알았다. 그리고 혜안이라는 사미중이 하루밤 사이에 이처럼 어머어마한
신통변화를 일으키는 인물인가 하면 두려운 생각도 든다. 공주마마의 어려
운 병을 순식간에 고쳤다는 것도 허황된 일이 아니고 이 신통변화의 재주
로 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다시 한번 혜안의 얼굴을 보았다. 맑고
기품있고 인자하고 그러나 범하기 어려운 위엄이 넘치는 그 얼굴! 그 순간
수령은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는 그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
었다. 그는 겨우 하직 인사를 하고 도망쳐 관아로 돌아갔다.
관아로 돌아온 수령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까지 이년반 동안 이 고을
에 와서 긁어모은 부정한 재물이 먼저 그의 머리를 내려 누른다. 지금 억
울하게 옥중에 묶여 있는 수백명의 죄수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자기의 죄
를 요술장이 사미중에게 호소하는 소리가 귓전을 치는것 같았다. 만약 그
사미중이 이런 일을 알게 된다면 자기의 생애는 끝장이 나는 것이라고 생
각하였다. 좌우간 모면할 길을 찾을 일이다-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
다.
수령은 관원을 불러서 그 걸인여인 모녀가 입을 의상과 장신구 일습(一襲
)을 상상품(上上品)으로 만들도록 하고 금은보배와 값진 선물을 준비 하
도록 분부하였다. 그리고 수 많은 인근절에서 학식이 있는 노소승려들을
청하여 혜안이를 위로하고 접대하게 하였다.
수령은 의상과 패물을 갖추어 혜안이의 모친을 찾았다. 수령은 쓸 수 있
는 모든 미언영사(美言令辭)를 다하여 혜안이의 모친에게 아첨하였다. 의
복과 패물을 바쳤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오늘의 기쁨을 축하 하겠다고 그
환심을 사기에 급급하였다. 어머니는 수령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그부자연
한 태도를 꾸짖듯이 엄숙하게 말하였다.
나는 한낱 유리걸식하는 걸인, 이 고을에 와서 자식을 만난 것만도 감축
한 일이올시다. 자식의 반연으로 이러한 객관에서 후대를 받고 있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올시다. 그 외에 이러한 물건을 받는 일은 예도(禮度)에
벗어나는 일이 올시다. 자식이라고 하나 우리 스님의 허락이 없이는 받을
수 없읍니다.
수령은 무안하였다. 혜안이에게 그 사유를 말하고 대부인과 아가씨의 의
상을 갈아 입으셔야할 일이니 그처럼 분부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배석하
고 있던 승려들도 당연한 일이라고 혜안이에게 권고하였다. 그러나 혜안이
는 부드럽게 수령을 타일렀다.
보시도 무주상 보시가 아니면 공이 없습니다. 만약 불순한 마음으로 이루
어지는 보시라면 짐독 이상으로 독기만 전하게 됩니다. 사또께서는 이러한
보시에 앞서 먼저 마음의 독기를 없애도록 하십시오.
수령은 가슴이 덜컥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자기의 창자 속까지 들여다
보고 있는 이 도승 앞에서 어설픈 수작은 도리어 재앙만 무겁게 하는 일이
라고 생각하였다.
그 독기를 어떻게 없앨 수가 있을지 인자하신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먼저 탐욕을 버리십시오.
혜안이는 수령을 불상히 여기어 기탄 없이 일러 주었다.
될 수 있으면 불의로 빼앗은 재물을 돌려주고 억울한 죄수들을 석방하십
시오. 백성은 나라의 대본이 올시다. 백성이 없어지는 날이면 사또의 벼슬
도 국록도 없어지는 날이올시다. 사또께서 길이 벼슬을 원하고 부귀를 원
하신다면 백성을 아끼고 백성이 잘 살도록 좋은 정사를 하십시오. 그리하
면 사또 마음 속에 있는 독기는 햇볕 앞에 안개 같이 사라지고 가슴을 억
누르는무거운 고통은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탐욕심이 고
개를 들지 못하도록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창하십시오.
수령은 활연히 깨닫는 순간 마음이 개운하고 눈 앞에 새 천지가 열리는
것 같았다. 기쁨과 감격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혜안이
를 우러러 보고 무의식중에 오체를 땅에 던져 세번 예배하였다.
모든 것을 높으신 분부대로 거행하겠읍니다. 소관도 오늘부너 스님의 제
자가 되어 좋은 정사를 하겠읍니다. 지금은 소관의 마음에 독기도 가시어
졌읍니다. 대부인과 아가씨의 의상이나 갈아 입으시도록 지시하여 주십시
오.
고마운 말씀, 흔연히 받도록 하겠읍니다.
혜안이가 이 고을을 떠날 때에는 새로 가마 두 채가 마련 되었다. 부중
남녀노소는 손에 손에 향불을 들고 혜안이 일행을 배웅하였다. 많은 여인
들은 합장하고 혜안이에게 멀리 예배하였다. 수령과 관속들은 삼십리지경
까지 따라가서 배웅하였다.
그 중에서도 먼저 처녀를 겁탈하여 빼어 돌렸던 젊은 군노는 하루밤 사이
에 변모된 걸인 모녀를 보고 기겁을 하여 천지가 개벽된 것이 아닌가 하였
다. 참회함과 아울러 무엄하였다는 마음이 천근 납덩이 같이 전신을 내려
눌렀다. 그처럼 분수 없은 무엄을 저지른 명색없는 일개 군노의 목숨이 아
직 붙어 있는 것은 도리어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남여 위에 앉아
있는 혜안이를 바라보고 솟아오르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 혜안이가
지경을 넘어서 멀리 그 그림자가 사라져 가도록 바라보면서 마음 속으로
감사하고 예배하였다.
혜안이를 마지막 영접하여 드리는 수령은 천병산 보문암을 관할하는 태수
였다.
혜안이를 마지막 영접하여 드리는 수령은 천병산 보문암을 관할하는 태수
였다. 그는 평소 불법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좋아하고 신
봉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고진사같은 청염한 사람이 보문암 화주격으로 있
었기에 법당을 짓는 권선에 시주도 하였으나 불법은 허황한 도라고 생각하
였다. 그 뒤에 혜안이가 병자들을 고치고 있다하여도 또 어사가 와서 혜안
이를 서울로 데려간 뒤에도 그는 역시 허황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혜안이의 귀로에 앞서 역마가 달려오고 칙지가 내리고 혜안이에게
<여의패>라는 어패가 내렸다는 말을 듣게 되자 전 같이 깔보고 허황하다는
소리만하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은 필시 곡절이 있는 일이라고 생
각하게 되었다. 그토록 강직하고 총명하다는 이름이 있는 고진사가 귀의
한 것도 그러할 근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하던 차에 매년 오백석 향수
미를 보문암에 헌납하는 집정관으로 자기를 임명한다는 교지가 내리고 공
주마마의 원당을 보문암에 조영하라는 칙지가 감사를 거쳐서 도착하였다
.
태수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다.
태수는 다른 고을에 뒤지지 않는 영접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영접관
속을 지경까지 보낸 다음 자신도 친히 삼십리밖까지 영접하러 나갔다. 남
여에 앉은 혜안이를 본 태수는 청정무구한 보살 같은 그 거룩한 용모에 먼
저 외경심을 품었다. 당달봉사라 하던 그 두눈은 맑은 광채를 던져주고 있
다. 태수는 생래(生來)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처럼 합장하고 예를
하였다.
혜안이의 행렬이 천병산에 가가워 올 무렵 고진사 이하 부락 남녀노소 수
백명은 보문암에서 이십리도 넘는 지점까지 영접을 나왔다. 여기서부터 혜
안이와 어머니는 남여와 가마 그리고 호위병들과 관속들을 보문암으로 앞
세워 보내고 도보로 걸었다. 호위병 인솔무관은 지엄한 어명이니 그러할
수가 없다하여 반대도 하였으나 혜안이의 지시를 거역할 수도 없었다. 영
접나온 사람들은 미리 쓸어둔 길가에 향을 피우고 혜안이의 행렬을 영접하
였다.
또 하나의 신통변화-그것이 관세음보살의 가피건 우리 작은 스님의 법력
이건 간에 또 하나의 신통변화가 나타났네 그려! 고맙고 감사한 일
고진사는 혜안이의 손을 잡고 그 맑은 눈을 보면서 반갑고 기쁜 눈물을
먹음었다.
소승의 어머니와 누이동생 올시다.
혜안이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고진사에게 소개하였다.
육친을 만나게 된 것도 스님께서 남겨주신 하해와 같은 은덕이며 진사어
른께서 도와주신 덕택이 올시다.
영접 나온 많은 사람들도 혜안이가 눈을 뜨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찾은
경위를 알게 되자 모두 감동하고 합장하였다.
보문암 경내에는 새로 지은 다섯채의 병사에 이백여명의 병자가 수용 되
어 혜안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벌써 공주의 원당과 창고 기초공
사가 마련되고 있었다. 고진사는 서울서 온 조영감독과 쉴 사이 없이 공사
를 보살피고 있었다. 총지거사는 혜안이가 돌아온 날로 융성하여 가는 현
황을 보고 삶의 보람을 느끼었다.
어머니는 보문암에 도착한 칠일 후에 머리를 깎았다. 혜안이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계단을 베풀고 계를 설하였다. 고진사와 노인 외에 백여명이
이 계단에 동참하였다. 혜안이는 이 설계끝에 고진사의 소청을 받아 들이
어 증여거사의 계명을 수여하였다.
어머니가 머리를 깎게 되자 남여 수십명이 그 뒤를 따라서 머리를 깎고
출가득도를 하기를 지망하였다. 그 중에는 먼저 정화를 겁탈하였던 젊은
군노가 있었다. 그 는 혜안이의 은덕을 사모하고 보문암으로 달려와서 제
자가 되기를 애원하였다. 그러나 혜안이는 이들의 출가를 극력 만류하면서
순순히 타일렀다.
불법은 크고 넓습니다. 깊고 높습니다. 믿고 행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느때 어느 곳에나 불법이 있읍니다. 불법을 절에서만 구하겠다는 것은
잘못이 올시다. 불법은 법의를 입은 사람만이 증득하는 것은 아니올시다
염주를 목에 걸고 예불을 하는 사람만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 것도 아니
올시다. 부모 형제와 처자를 위하여 힘과 정성을 다하고 편안히 살 길을
열어주는 것이 곧 큰 불사올시다. 나라와 동포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
람이면 곧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이 올시다. 부처님은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하여 법을 설하신 것이 아니 올시다. 일체중생-모든 사람을 바른길로
살게 하고 편안히 살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신 것이 올시다. 부처님이
계를 설하신 것도 꼭 같은 취지였읍니다. 계율은 도를 닦고 행하는 사람이
지킬 법도요 사람이 질서를 지키면서 잘 살아 가기 위한 도표올시다. 그러
나 그 법도와 도표는 때와 장소를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고 어느 경우에는
변경할 수도 있읍니다. 우리는 값지고 참되게 살기 위하여 계를 지키는 것
이고 계를 지키기 위하여 사는 것은 아니 올시다.
혜안이는 활동력이 있는 생업을 가진 사람들은 전부 돌려 보내기로 하였
다. 그러나 십여인은 보문암에 남아서 혜안이를 돕기로 하였다. 그 중에는
젊은 군노도 끼어 있었다.
혜안이는 병자들을 고쳐주기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어머니도
혜안이를 돕는 일에 쉴 사이가 없었다. 법당과 도장청소를 비롯하여 식사
절차를 돌보아 주는 일까지 두루 보고 살피었다. 몸이 바쁘면 바쁠수록 삶
의 보람을 느끼게 되고 마음은 평화스럽고 기쁘기만 하였다. 병자들을 돌보
아 주고 위안하다가 한 사람 한 사람 완쾌 되어 나가는 광경을 볼 때마다
관세음보살의 크고 넓은 공덕을 찬탄하였다.
젊은 군노는 보문암에 온 뒤로 사람됨이 일변 되었다. 새벽부터 밤 늦도록
경내를 청소하고 섶나무를 운반하고 어려운 심부름과 고된 일을 혼자서 맡
아하려고 한다. 그는 혜안이와 그의 모친을 위하는 일이면 궂은 일 좋은 일
이 없고 물속이나 불속이라도 뛰어들 것 같았다. 사람들은 성실하고 믿음직
한 이 청년을 칭찬하였다. 특히 어머니는 이 청년의 근실하고 헌신적인 행
동을 고맙게 보는 동시에 그의 고생을 민망스럽게 여기었다. 한편 혜안이는
그의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을 만족한 눈으로 지키어 보았다.
공주의 원당 낙성 불사는 그 이듬해 삼월 보름날 거행되었다. 서울서 칙사
가 내려오고 감사와 인근 수령들도 모여 들었다. 이날 보문암은 문자 그대
로 인산인해였다. 원당은 법당 서남편 방위에 자리를 잡았다. 주불로 관세
음보살을 봉안한 혜관전외에 감로료 청향각을 그 전면 좌우로 배치하여 웅
장하고 정교한 수법은 사람의 눈 정기를 앗아가고 처마 끝에 부동하는 채운
(彩雲)은 칠색 무지개를 이루고 있다. 혜관전에는 칠보등롱 향촉이 헌납 되
었다. 혜안이는 국태민안 성수무강 공주수복을 축원하였다.
혜안이의 어머니는 이날 연화자모의 계명을 받고 감노료를 주관하면서 세
사람의 여인과 정화를 거느리고 원당 혜관전의 수호 책임을 맡게 되었다.
원당 낙성불사에 참석 하였던 칙사는 낙성불사의 전말과 아울러 혜안이의
기거 동작과 보문암의 현황을 자세히 품달 하였다. 국왕과 왕후는 만족한
기색으로 시종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편 공주는 관세음보살로 화생된
혜안이를 추억 속에 되새기면서 흠모하는 마음을 멀리 보문암으로 날리고
있었다.
공주의 원당이 낙성된 이듬해 가을에는 고진사와 왕노인을 위한 청풍장과
묘향각 이 법당 동남편 방위에 조영 되었다. 이 두 전각에서 고진사와 왕
노인은 증여거사와 총지거사로서 여러 남자들과 관음정진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청풍장과 묘향각이 낙성된 직후에 서울서 칙사가 도착하여 시월 십오일에
공주마마가 보문암에 행차한다는 칙서를 전달 하였다. 보문암에서는 그 영
접준비에 분망하였다. 그러나 혜안이는 공주가 찾아 오는 목적과 그 의중
을 짐작하고 고진사를 청하였다.
공주마마의 영접은 간소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치장스러운 영접은
도리어 그 분의 마음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공주도 우리 보문암 대중의
한 사람이 되어 우리들과 함께 수도하게 될 것이 올시다. 청향각을 공주마
마의 거처로 정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공주의 행차는 간소 하였다. 국태민안 성수무강의 원력을 세우고 국왕과
왕후의 윤허를 얻은 공주는 서울서부터 번폐스러운 일체의 의장을 물리치
고 늙은 여관 한 사람과 호위군관 다섯명 세필의 짐발이 만을 따르게 하였
다. 그리고 도중에서도 관폐나 민폐가 없도록 부왕에게 특히 주달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재상 이하 문무 백관과 궁내 관속들은 물론 연도 수령
들과 백성들도 공주의 덕을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 지방 감사를 위시하여 인근 수령들은 공주를 위하여 지방선물
을 바리바리 싣고 보문암으로 몰려들었다.
공주는 도착 즉시 법당과 원당에 참배하고 먼저 혜안이에게 다음에는 어
머니에게 예배하였다. 그리고 고진사와 왕노인을 접견하였다. 공주의 눈에
는 환희와 감격의 눈물이 맺히었다.
공주의 접견을 받은 감사와 수령들은 각기 싣고온 선물 목록을 여관을 통
하여 바치었다. 공주는 그들의 수고를 위로하고 일체 선물을 물리쳤다.
나는 오늘부터 한낱 수도하는 행자올시다. 벌써 공주는 아니 올시다. 일
생동안 국태민안과 양주폐하의 성수무강을 빌면서 수도하려고 왔읍니다.
이러한 선물보다도 백성을 아끼고 잘 살게 하여 주시면 더욱 고맙겠읍니다
감사와 수령들은 서로바라보면서 얼굴을 붉히었다.
공주가 도착한지 칠일 후에 혜안이는 공주와 여관 그리고 많은 선남선녀
를 위하여 계를 설하고 공주에게는 청정행,여관에게는 선덕화의 계명을 각
각 수여하였다.
이날부터 보문암은 보문사로 승격하여 부르게 되었다.
고진사와 왕노인은 날마다 늘어가는 남녀 수도자들을 위하여 정사의 증축
계획을 세웠다. 산문과 기타 건조물도 배치계획에 따라서 활발히 진척되고
있다. 고진사는 도장 주변을 돌아 다니면서 배치상황을 살필 때마다 이절
창건자의 원대한 포부를 더욱 감탄하였다.
한편 진작부터 각 부락별로 조직 되어온 보문회도 지금은 사십구개소로
늘어났다. 이 보문회는 관세음보살과 보문사의 공덕을 찬양하고 회원들이
보살행을 실천하면서 바르게 살아 간다는 것이 그 취지로 되어 있다. 보문
사 부근 부락에는 보문회가 없은 곳이 없고 먼 곳에도 보문사에서 치료를
받아온 사람이 있는 곳에는 대개 보문회가 조직 되어 가고 있다. 보문회
대표들은 매월 관음제일(二十四日)이면 보문사 관음법회에 참석하여 설법
을 듣기로 되어 있다.
혜안이는 매월 삼회 철감대사의 전례를 따라서 보문회가 있는 부락을 순
차로 순회하게 되었다. 부락을 순회하는 날이면 병자의 치료도 그 부락에
서 하게 되었다. 고진사는 혜안이의 부락 순회를 자비행도라고 말한다. 그
리고 세상 사람들은 혜안이를 혜감대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주가 보문사에 온지 삼개월 뒤에 정화는 젊은 군노와 결혼하고 무학부
락으로 옮기어 갔다. 정화는 어머미를 따라서 머리를 깎고 수도하기를 원
하였으나 혜안이는 정화의 세속인연이 아직 남아 있다 하여 타일러서 결혼
시킨 것이었다.
그 동안 공주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었다.처음에는 혜안이를 바라볼 수
있는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무한한 환희를 느끼었다. 어머니와 모든 사람들
의 바쁜 일을 도와주고 혜안이의 의복과 법복을 재단하고 마르면서 생애의
보람을 찾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마음 한구석이 언제나 공허한것
같았다. 염주를 돌리면서 관음정진을 하여도 관세음보살과 자기 사이에는
혜안이의 영상이 가로 막히어 직접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공주는 연꽃 같이 티끌 없는 혜안이-아니 혜감대사의 영상을 가슴에 안아
본다. 그러나 자기가 끼얹는 흙탕물은 꽃잎에 붙지 못하고 그대로 굴러 떨
어지는 것을 보았다. 범치 못할 성스러운 혜안대사의 거룩한 영상은 원망
스럽기도 하였다. 공주는 남의 눈을 피하여 밤중이면 원당에 들어가서 관
세음보살을 부르고 구원을 애원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자기 팔에 불이 타
는 심지를 얹어 놓고 염비 참회도 하여 보았다. 그러나 가슴에서 타는 불
을 끌 수는 없었다. 공주는 삭발하고 득도하기를 원하였다. 자기의 애절한
심정을 달래보자는 것이었다.
혜안이는 공주의 그러한 고민을 잘 알고 있었다. 애욕과 싸우는 공주가
민망하고 불쌍하였다. 그는 철감대사의 책장에서 법화경과 장지 그리고 필
연을 꺼내어 공주에게 주었다. 혜안이는 미소를 먹음고 말하였다.
이 경 중에서 먼저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일심정성으로 백여덟번 읽으시면
가슴에 일어나는 풍랑이 진정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경 한질 이십팔품
을 전부 써 보십시오. 쓰시면서 이 곳에 오실 때의 처음 발원이었던 국태
민안 성수무강을 관세음보살께 축원하십시오. 그리고 한 품씩 써서 끝날
때마다 관세음보살께 바치고 하루씩 기도를 하십시오. 이 처럼 하여 전부
회향하게 되면 마음의 불길이 침정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풍랑이 자고 물
이 맑은 호수에 일월성광이 비치듯이 공주마마의 마음에 관세음보살이 나
타나게 될 것입니다. 공주마마의 청정행은 그때에 이루어질 것이 올시다.
혜안이의 말소리는 담담하나 위력이 있었다. 공주는 가슴에 냉수를 끼얹
인 것처럼 정신이 쇄락하였다. 공주는 다시 혜안이를 우러러 보았다. 역시
범할 수 없는 연꽃같은 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리는 일층 가까워
져서 새로운 친근감이 생긴다.
공주는 법화경 보문품을 읽기 시작하였다. 일독 이독 삼독 칠독 오십독
육십독 백독 백오독 백육독-백팔독...
과연 공주의 가슴에서 애욕의 풍랑이 진정 되었다. 공주는 새장에서 해방
된 백조가 툭트인 대공에서 새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지금 공주는 혜
안이를 애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자비행도의 반려로 볼 수가 있
다. 자기의 모든 정력과 정성을 혜안이의 자비행도에 바치기로 결심하니
그저 기쁘고 마음이 평화스럽기만 할뿐 이었다.
공주는 법화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혜안이의-그의 영상이 자기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아니하였다. 한장 두장 그리하여 한품 두품 쓰가는 동
안에 마음의 진애는 한꺼풀씩 벗기어지고 관세음보살이 희미하게 심두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공주는 기쁘고 감사하였다.
공주마마의 이 선근공덕은 멀지 않아 전국토와 모든 백성에게 미칠 것입
니다.
혜안이도 기뻐하고 공주를 격려하였다.
천병산의 대기는 맑기만 하다. 수림을 스쳐오는 그윽한 향기는 대지에 퍼
진다. 보문사의 관음법계는 날로 융성하여 가고 있다. 혜안이와 공주 두
사람의 안전에 전개 되는 세계는 더욱 넓어져 가고 있다. 불국정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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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긴 장문의 글 이었읍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법우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쪼록 어려운 불법이지만 이야기로 전개되는 설화 한토막이 여러분들
의 불심을 정진시키고 또한 자라나는 귀여운 자녀들을 위해 얘기 해
줄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블교동 이양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