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용암리 물방앗집 김사유의 협실에 사는 정태문이 천사와 함께 여러날 동안 한방에서 지낼 새 이때 토질(土疾)로 신고하여 고쳐주시기를 청하니 천사 허락만 하시고 고쳐주지 아니하시더니
*토질(土疾) : ‘폐흡충(肺吸蟲)’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
하루는 태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병을 고치려 하느냐" 하니 태문이 가로대 "고소원(固所願)이로소이다" 가라사대 "내가 모레는 정읍으로 가리니 이제 치료하여 주리라" 하시고 글을 써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글을 네 침방의 벼개 위에 두고 자라 그리하야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면 개가 방문을 향하고 앞발을 모두고 혈담을 토하리니 곧 네 병을 개에게 옮겨서 낫게함이라 그러나 그 개도 죽지는 아니하리라"
태문이 명하신대로 하였더니 과연 말씀하신 바와 같은지라 이에 천사를 모시고 술집에 가서 술을 올릴 새 천사 가라사대 "만일 술을 먹고 술 값을 천연(遷延)하면 먹지 아니함 만 같지 못하니 잘 생각하여 하라"
*천연(遷延) : 일이나 날짜 등을 오래 끌어 미루어 감.
태문이 가로대 "내일 틀림없이 갚으려 하나이다" 하고 일곱냥어치를 먹었더라 이튿날 천사 정읍으로 떠나신 뒤에 태문이 술 값을 천천히 주려고 생각하였더니 문득 복통이 나서 고통하다가 술값을 갚지 아니하려는 까닭인가 하여 나으면 곧 갚으리라고 결심하니 복통이 곧 낫는지라 이에 술값을 곧 갚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