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깃발이 펄럭입니다. 여기가 MDL(Military Demarcation Line), 그러니까 군사분계선이라는 곳이래요. 보통 휴전선 철조망이 있는 남방한계선에서 2㎞나 더 들어온 곳이래요. 얼마 전까지 제 아들이 6사단 청성부대에서 졸병으로 근무를 했어요. 그래서 아들 면회를 갔다가 사단장님의 배려로 청성오피와 철마가 있는 월정리는 가본 적이 있었지요.
그때 철책선 안에 있는 궁예의 철원도성까지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유엔군사령부의 허락을 받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만두었지요. 그래서 멀리 비무장지대(DMZ)를 바라보면서 현묘한 감회만 달래다가 그냥 돌아왔지요. 난 DMZ라는 것이 아주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는 곳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황량한 갈대벌판이더군요. 항상 양쪽에서 맞불을 질러대서 그렇다는군요.
그런데 요번에 제가 온 곳은 1사단 관할구역 경의선이 맞닿은 곳이래요. 우뚝우뚝 솟은 개성의 고층빌딩이 육안으로 훤히 보이고 바로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군사분계선 코앞에 북한의 병사 두 명이 우람차게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을 보니까, 아~하~ 내가 정말 분단조국에 살고 있구나! 만감이 교차하더라구요. 우리 조국의 산하는 말없는 양옆의 갈대가 지키고 있었구나! 때마침 고라니 두 마리가 깡충깡충 사뿐사뿐 지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이 즈려밟고 지나가더군요. 갑자기 성당(盛唐)의 시인 두보(杜甫)의 춘망(春望) 시구가 절로 떠오르더라구요.
國破山河在
나라는 깨져도 산하는 의구해라
城春草木深
성에 봄은 돌아와 무성한 잡초 전쟁의 상처를 덮고
感時花퇾賤淚
감상에 젖을 때 꽃마저 눈물을 뿌리우누나
恨別鳥驚心
이별을 서러워하는 마음 새소리마저 두근거리게 하네…
우리가 얼마나 오래 헤어져 살았습니까? 군사분계선의 꽥꽥거리는 장끼소리마저 가슴을 설레게 하더군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낭만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여기저기 기자들이 부산하게 사진을 찍어대고, 저는 영하 13도의 추위 속에서 콜록콜록거리고 있었지요.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전 기자입니다. 아참, 영화에 취미가 많으시다구요? 최근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라는 작품은 제 작품입니다. 그 동안 ‘장군의 아들’을 비롯하여, 많은 영화·연극 시나리오를 썼지요. ‘취화선’이 칸 영화제 상을 받는 데는 저의 번역작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 다 쓸어버리고, 저 자신을 가장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은 직업이 기자랍니다.
저는 현재 문화일보사의 말단 평기자입니다. 문화일보는 정말 좋은 신문입니다. 우선 이념적 전제가 없어요. 빨갱이다 파랭이다, 이런 게 전혀 없어요. 그렇다고 회색도 아녜요. 그냥 순수하게 사물을 있는 색깔 그대로 보죠.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자유랍니다. 생각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곳이죠. 그것은 자유로운 파격의 수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즈음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인생여로에서 최초로 붓의 사회적 효용을 즉각적으로 느끼는 그런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구요.
김정일 위원장님! 당신은 정말 유명한 분이시죠. 이 지구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그에 비하면 저는 매우 초라한 이름없는 서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기자가 되기 전까지 저는 당신을 만나려고 무척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KBS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논어’강의를 했습니다. 권위와 인기가 보장된 프로였죠. 김대중대통령을 만나셨을 즈음, KBS는 꼭 본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제 강의도 최소한 한두 번은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저는 제 프로 속에 당신을 출연시키고 싶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방문에 대한 보답으로 남한에 오시기 전에, 저 같은 사상가와 한번 대담을 나누는 진솔한 모습을 우리 남한동포들에게 보여주실 수만 있다면 훨씬 부드럽게 남한사회에 접근하실 수 있을 텐데 하고 판단했죠. 그래서 박지원 비서실장을 조용히 만났어요. 조찬을 같이 했는데, 제 진심은 잘 이해를 하면서도 선뜻 아무런 액션을 취할 수가 없는 듯한 표정만 짓더라구요. 요즈음 김정일 위원장님이 남한에 대해 신경을 별로 못쓰시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더군요.……
결국 KBS 방송 끝나기 전에 아무것도 성사되질 못했어요.
그리고 전 미국으로 외유를 떠나야 했고, 그 뒤 인도로 가서 달라이라마를 만났습니다. 인류평화를 위하여 아주 유익한 만남이었어요. 그와 대담한 내용을 저는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이라는 3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저는 인류정신사의 한 원류, 팔리어 경전의 밀림지대인 원시불교에 탐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EBS를 통해 국민에게 강의했습니다. 저는 아는 것을 속에 담고 있질 않고, 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퍼내는데 좀 재주가 있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 그리고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뜻있는 많은 분들이 제 강의를 경청해주었습니다. 강의를 하기 전에 저는 이런 생각을 간절히 했습니다.
인류의 평화와 인간의 해방을 위하여 나는 달라이라마와 그토록 진지한 대담을 가졌는데, 왜 같은 민족의 사람이면서 나와 김정일위원장은 그러한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을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텐데.
그래서 요번에는 통일부장관 정세현씨를 찾아갔어요. 월드컵이 시작될 무렵이었어요. 정세현은 나와 대만유학 동기거든요. 그리고 그 아들이 제 제자래서 개인적 교분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정세현장관도 원론만 가르쳐주더라고요. 선민후관(先民後官)의 민간교류를 현정권은 환영한다. 그럼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가? 북한으로부터 초대장만 받아와라. 그럼 보내주겠다. 초대장은 어떻게 받는가? 북경에 가면, 아태(아시아태평양위원회)니, 민화협이니, 민경련이니 범태니 하는 조직이 있다. 그런데 이들 조직원들이 대부분 북경주재한국상사원들과 긴밀한 연락이 있다. 그러니 그들을 잘 아는 한국기업의 주재원을 콘택하라 그 중 아태연줄이 제일 확실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말만 고지식하게 믿고, 바보스럽게도 며칠 후에 북경을 갔지요. 그리고 아태와 교류가 깊은 현대아산 북경주재원을 만났어요.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내 말을 듣더니 매우 황당하게 날 쳐다보더군요.
아태라는 조직은 북경에 상주하는 직원도 두고 있질 않다는 거예요. 최근 돈이 없어 다 철수해버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팩스로만 통신한대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자기가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중재할 수가 있냐는 거예요. 아태직원들은 자기가 조금만 말 잘못해도 팩 토라지기 일쑤라는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그들 중에서 나 같은 이방인을 김정일위원장님께 면담시켜 드리는 책임을 도맡을 인물이 있다고 기대할 수 있겠냐는 거예요.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아무 것도 생기는 것이 없는 나를 김정일 위원장님께 소개시켜드릴 수 있겠냐는 거예요. 듣고 보니 참 맞는 말이었어요. 난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연줄도 없고, 그러면서 말은 자유롭게 하는 사람인데 그 뒷 책임을 누가 감당하겠냐는 것이죠? 참 현명한 판단이었어요. 진실이 통하기에는 너무도 두터운 장벽이 있다는 것을 난 상상도 못했던 거예요. 떠나오기 전 정장관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김형 말야! 며칠 초대소에 가둬 둘 거라구. 그리고 한 30분전에 벼락같이 김정일 위원장동지께서 오신다고 통지가 올 거야. 그리곤 1시간 정도 대화 나누고, 잘하면 저녁까지 초대받을 수 있을지 몰라! 그리구 포도주 한잔 꿀꺽하고 나면 연기처럼 사라질 거야.”
물론 저는 당신과 포도주 한잔을 꿀꺽하기 위해서 만나자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인가 우리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당신과 나 사이에서 토론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난 무엇보다, 김정일 그 인간의 냄새를 맡고 싶었어요. 어떤 성품의 위인인지, 뭔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 진실을 편견없이 전달할 수 있는 붓이 이 지구상에서 오직 도올의 붓밖에는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날 저녁 저는 그 주재원이 유현덕(劉玄德)의 고향을 가본 적이 있다길래, 그와 경석고속공로(京石高速公路)를 달렸지요. 두어 시간 지나니 하북성(河北省) 탁주(컧州)라는 곳에 도착하더군요. 유비가 자라난 누상촌(樓桑村)이라는 곳을 어렵게 찾아갔어요. 논두렁 한가운데 외롭게 비석 하나만 서있더군요. 그런데 유비가 놀았다는 다섯 길의 뽕나무가, 요망지중중여거개(遙望之重重如車蓋)라, 수레덮개를 첩첩이 쌓아올린 듯한 모양으로 우뚝 서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 기상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서기같은 것이 감돌았어요. 그러나 나에겐 도원결의의 기회는 오질 않는구나 하고, 탄식에 탄식을 거듭하면서 그냥 어둑어둑 땅거미가 감도는 속에서 발길을 되돌렸지요. 이게 어리석은 도올의 우국(憂國) 판타지의 전부였지요.
지금 경의선이 보입니다. 옛 장단역 주변에 6·25때 폭격맞은 기차화통도 보입니다. 경의선은 원래 구한말에 불란서 사람들이 그 부설권을 따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설권을 따낸 피블리유회사(Compagnie de Fiveslille)의 대표 그릴(Grille)이 재력의 부족으로 부설권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애국계몽운동으로 반환된 부설권은 박기종이 주도하는 대한철도회사에 특허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력이 부족했던 박기종도 실패하자 정부는 외세를 배격하기 위하여 궁내부 직영으로 그 공사를 진행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노일전쟁을 일으킨 직후 1904년 3월 12일 그 부설권을 강제로 빼앗아 버렸습니다. 결국 서울을 기점으로 개성, 사리원, 평양, 신안주를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우리나라 관서지방의 종관철도인 경의선은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침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간선동맥으로 역할하였던 것입니다.
우린 어렸을 때 기차만 지나가면 철길 두렁으로 달려가서 부지런히 쑥덕궁을 멕였지요. 그게 뭔 뜻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쑥덕궁을 멕였지요. 기차는 조국근대화 건설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삶의 파괴의 상징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역전부지로 20만 평 이상을 요구하였고 이 지역에 살던 한국인들은 시가의 10분의 1도 못되는 형식적인 보상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고 일시에 생활기반을 잃었지요. 그리고 역전은 일본인 거류지가 되었고 일본인은 역전 상권을 장악했습니다. 역전 주변으로 신도시가 형성되었지요. 신의주도 철도 때문에 새롭게 생겨난(新) 의주(義州)란 뜻의 이름이지요.
그러한 경의선이 지금 이제 조국분단의 비극을 청산하는 상징으로서, 남북화해의 최초의 장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개무량한 사건입니다. 일본이라는 외세의 대륙침략의 전초가 아니라, 외세를 배제하는 남북간의 화합의 장으로서, 민족공동번영의 대륙진출의 대동맥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6·25 한국전쟁 개전 첫날 새벽4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팔로군 출신의 북한 제6사단장 방호산(方虎山) 장군이 자기 휘하 병력을, 폐쇄되었지만 연결되어 있었던 경의선을 통해 당시 남한의 영역이었던 개성(38선 이남)까지 일시에 밀어붙였던 것입니다. 후방에 공수부대를 낙하시키는 효과를 달성시켰던 것이죠. 이때 미군 군사고문이 아침 출근길에 모르고 개성역앞을 지나가다 벌집될 뻔한 이야기도 재미있구요. 하여튼 백선엽 장군 휘하의 1사단이 이 사건으로 일시적이나마 와해되었던 것이죠. 그런 비운을 간직한 경의선의 철마가 다시 달리게 되다니, 역사의 전변(轉變)이란 참으로 무상(無常)한 것이죠.
그런데 경의선철도 연결의 가장 큰 의미는 조선반도가 유라시아대륙의 물류센터로 다시 세계사에 등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노무현씨도 부산에서 유세할 때 그 사실을 아주 강조하더군요. 부산대학교 학생이 부산역에서 기차 타고 파리 유학을 간다, 이런 일이 다반사가 되고, 모든 화물수송 또한 이와 더불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을 꺼려할 세력도 있습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는 모두 이러한 물류방식에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크게 좋아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미국의 해군은 인류역사상 미증유의 막강한 실력을 보유한 조직이며 4개 함대가 5대양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일개 항공모함에 5천~6천 명이 자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70대 이상 있구요. 바다에 떠있는 하나의 도시국가인 셈이지요. 움직이는 대륙이에요. 대영제국도 이러한 미국의 함대 실력을 보유한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해상수송을 마음대로 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미국의 보이지 않는 해군력이 자유왕래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경의선의 개통은 이러한 해상물류가 육상물류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곧 미국의 영향력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죠.
지난 11월 28일, 유엔사측 대표이자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인 제임스 솔리건 소장이 군인이나 민간인이 비무장지대에 들어가거나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면 반드시 사전에 유엔군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휴전협정상의 승인권을 환기시킨 것은 명백히 이런 불안감에서 유래된 딴지걸기작전이 분명합니다. 그 동안 남북한의 민족내부간의 교류의 문제는 자체적으로 당사자간에 진행되도록 위임해왔던 관례를 깨버리는 발언을 왜 새삼 해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역사의 상흔이 얽혀있습니다. 한국전쟁이 종료될 때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거부했습니다. 북진통일의 실력도 없으면서 북진정책만을 고집했고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 반공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이념적으로 휴전협정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휴전협정은 유엔군과 북한군과 중국군 사이에서만 이루어졌으며, 남한은 협정의 주체로서는 철저히 배제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이승만의 자초지화였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휴전협정에 관한 모든 사태에 관하여 남한의 주체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법리상의 정당성을 보유하게 된 것입니다.
남한이 휴전을 거부한 결과, 한국전쟁 자체가 철저히 북한과 미국간에서만 이루어진 전쟁이 되어버리고만 것입니다. 휴전이란 곧 전쟁중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전쟁중이지만 쉬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지요. 따라서 이제 휴전은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전쟁중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휴전협정은 당연히 평화협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휴전선은 이제 국경선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분단국가로서의 서로의 명료한 주체성을 인정한 위에서 새롭게 통일을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평화협정을 줄기차게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평화협정을 주장하면서 철저히 남한의 참여를 배제했고 동시에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남한이나 미국이 평화협정에 관심을 가질 수 없게 된 이유였습니다. 즉 실효를 거둘 수 없는 공허한 이념적 주장일 뿐이었던 것이죠.
이렇게 시의에 적합하지 않은 주장은 많은 모순을 야기시킵니다. 일례를 들면, 육로관광이나 경의선개통 문제에 있어서 유엔사에 월경승인을 받지 않고 남북간의 주체적 왕래만을 고집하는 북한의 태도와, 평화협정에 있어서 철저히 남한의 주체성이나 참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주장은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휴전협정을 남한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화협정을 북한과 남한과 미국 사이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죠. 그리고 북한은 미군철수라는 교조적인 맹목적 주장에서 이제 벗어나야 합니다. 미군철수? 그것은 이미 카터 대통령도 주장한 바 있지만, 남한의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도 궁극적으로는 바라는 것입니다.
양키 고홈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양키가 없어져도 중국·일본·러시아라는 대국의 입김은 미국보다 더 버거운 상대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존재를 반드시 북한에 적대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유치한 발상입니다. 미국이 빠지게 되면 일본이 재무장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동북아의 세력균형은 쉽게 파괴되고 맙니다.
통일조국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필요한 시기까지 우리는 미국을 이용하여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미군이 북한만을 상대하는 것은 아니며,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과 안정을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국도 우리에겐 견제되어야만 할 무자비한 힘이라는 사실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신의주특구 구상의 허무한 좌절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9·11사태와 부시정권의 등장! 어떻게 그렇게도 궁합이 잘 맞는 사건이 되었는지, 인류의 역사는 오묘하기만 합니다. 빈 라덴이 부시를 증오한 사람인지, 사랑한 사람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빈 라덴 덕분에 부시는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빌미를 얻었으니까요. 부시의 천하호령은 매우 간단한 논리에 입각한 것입니다. 미국과 미국을 추종하는 세력만이 선이고, 그 외의 모든 세력은 악이다. 이러한 선악의 규정이 자의적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문제는 그러한 선악의 규정을 강요할 수 있는 힘이 현재 미국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패자(覇者)입니다. 패자의 특성은 도덕성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패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남한도, 이미 이승만시대 때부터 핵무기개발의 환상에 매달렸습니다. 수소가스에 불붙여서 뻥 터뜨리면서 전전(戰前)에 비밀리 연구해온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사기치는 어떤 일본인 야바위꾼에 속은 적도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집권말기에 카터정권의 미군철수와 맞서 캐나다에서 중수로 방식의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하여 핵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미국과 군사지원을 얻는 모종의 타협을 보고 핵무기개발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 뒤 득세한 신군부 세력은 그들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핵주권뿐만 아니라 핵기술주권까지 철저히 포기하고 말았지요.
남북한이 이와 같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개발로써라도 어떤 성세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많은 남한의 지식인들조차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핵폭발실험을 한번도 안해본 북한이 무기로서 신뢰할 수 있는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기초적 사실부터가 의문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판단도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키에도 지난 10월초 미국특사 켈리의 방북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기 위한 억지춘향의 음모에 불과한 사건이었습니다. 발표내용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구체적 증거제시가 없습니다.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화나서 한 몇 마디를 왜곡적으로 번역하여, 이전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핵개발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자백했다는 식으로 휘몰아친 것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신비로운 것은 북한이 그러한 왜곡을 즉각 적극적으로 해명치 않고 덤터기를 뒤집어쓰는 것으로 만족했다는 것입니다. 9·11이후 대테러전쟁의 명분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끝나버리자,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나라들에 대한 전쟁을 다시 선포하면서 이란·이라크·북한 세 나라를 악의 축으로 지목한 그 덤터기를 왜 북한이 뒤집어써야만 했는지, 저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외교적으로 너무 나이브한 실책의 결과가 아닐지요?
북한이 현재 불가침조약에 상응하는 어떤 체제보장을 해주면 핵위기를 포함한 모든 위기해소의 협상에 응하겠다는 주장은 도덕적으로 매우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패권주의에 불타있으며 그런 도덕성 자체를 거부하는 데 힘의 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시는 클린턴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입니다. ABC! Anything but Clinton!
까불지 마라! 무조건 원점으로 돌려라! 원점으로 안 돌아가면 죽어! 당신의 벼랑끝전술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 오판입니다. 그것은 결국 당신이 본의 아니게 핵개발로 치닫는 막다른 골목으로 휘몰리는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그 마지막 결론은 무엇일까요? 미국은 2월말까지 이라크를 손본 후에 3월초 북한의 영변 핵관련 시설을 선별적으로 파괴시키는 폭격을 가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당신은 가만히 있을까요? 결국 당신의 군부는 당신의 통제력을 넘어설 것이고, 남한에 폭격을 가할 것입니다. 주한미군시설을 공격할 것입니다. 문산, 동두천, 용산에? 그런데 과연 그런 선별적 공격의 정밀성이 보장될까요? 일산의 아파트 단지에 떨어진다면? 남한의 군대는 미군의 도움 없이 전면전을 수행하기가 좀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미군이 북한을 폭격하면서 남한을 억제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럼 남한에는 보수세력이 다시 득세하고, 반북이데올로기가 급격히 강화되겠지요. 그러나 과연 이러한 시나리오가 당신 김정일 위원장의 리더십의 존속을 가능케 할 수 있을까요? 어떠한 전쟁도 남한의 경제와 국가신용도에 치명타를 가할 것입니다. 과연 이런 싸움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6·25도 겪었는데 한번 다시 또 겪어볼까? 해이해진 놈들, 정신 좀 차리게?
당신이 지금 미국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영변에 폭탄맞는 것보다 더 치욕적인 자멸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퇴로는 없는가? 한번 깊게 생각해보십시오. 남한이 핵보유국가가 아닌 이상, 그리고 남북한의 화해를 당신 정권의 미래방향으로 생각치 않을 수 없는 이상, 북한의 핵개발은 궁극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핵개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미미하고 주변에 불안감만 증폭시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평화협정 문제로부터 핵문제에 이르기까지 너무 고지식하게 미국일변도의 외줄타기만 하고 있습니다.
주변국 지도자들의 충고를 경청하십시오. 북한의 외교력을 다변화시키십시오. 일본은 지금 일본인납치문제로 내부여론에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에 별로 좋은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오랫동안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동북아패권을 원치 않습니다. 국가안전의 보장을 미국에게 받으려 하지말고, 중국과 러시아에게서 우선 받으십시오. 기존의 공동방위조약을 강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남한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서 중국·러시아가 합동으로 북한에게 어떤 경제적 실리를 주면서 핵무기를 포기하는 퇴로를 만들어주고 그러한 모양새에 북한이 응하는 식으로 사태를 진전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미국과 싸울 것이 아니라 동북아지역의 다른 국가들과 균형잡힌 대화를 지속하면 오히려 미국은 동북아지역에서의 영향력의 감퇴를 두려워하여 협상테이블에 나올 것입니다. 러시아의 푸틴이나 중국의 후진타오가 북한을 방문하여 사태를 중재하도록 남한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현명한 지도자들은 말이 멕히지 않는 무지막지한 강자 앞에는 슬기롭게 굴복할 줄도 알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경제적 실리입니다. 남한의 기술력과 북한의 노동력의 결합은 비약적인 경제적 도약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평화적 용도를 위한 핵개발이라면, 이러한 실리를 취한 후에 천천히 한번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당신의 나라는 민생에 허덕이고 있으며 관료체제의 경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선 이런 기초적 문제들부터 차근히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핵개발은 삶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입니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서 우선 벗어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손자병법의 한마디가 생각나는군요. 병자는 궤도로다.(兵者詭道也.) 능하면서도 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줄 알아야 하고, 부리면서도 부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줄 알아야 한다.(故能而示之不能, 用而示之不用.) 가까운 것을 멀리, 먼 것을 가깝게 보이게 할 줄 알아야 한다.(近而示之遠, 遠而示之近.) 이롭게 하여 유인하고, 어지럽게 하여 취하라.(利而誘之, 亂而取之.) 이 편지를 시작할 땐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너무 지면이 협소해지고 말았습니다. 언젠가 만나 다 못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