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겔러거가 기타 케이스를 집어들고 웰러의 투어 서포트를 하러 간다. 이것이 그의 솔로활동을 의미하는 것일까?
*
폴 웰러의 인터뷰가 있던 날 저녁, 한 특별 게스트가 대규모의 관중들 앞에서 그의 음악적 소울메이트를 위해 간단한 어쿠스틱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영국 팝뮤직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밴드인 오아시스의 메인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노엘 겔러거이다. 영국 팝음악계의 두 거장인 웰러와 겔러거의 관계가 어떠한 종류의 상호 존경심에 바탕을 두고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순간 당신의 머리를 스칠 것이다. 웰러의 밴드가 즉석에서 오늘 밤 있을 공연을 위한 사운드체크의 일환으로 즉흥연주를 하는 동안, 노엘 겔러거는 맨 앞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매분 그것을 체크했다. 겔러거의 차례가 되어 무대에서 몇 곡의 어쿠스틱연주를 선보이자, 웰러는 무대앞에 앉아 연주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우리가 불쑥 뛰어들어 사진찍을 포즈를 요구했을 때에도, 그는 겔러거의 노래의 코드를 연습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남은 사운드체크 시간 내내 그것을 연주했다.
노엘 겔러거의 웰러에 대한 사랑은 그가 더잼의 팬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잼은 그가 영국 팝 음악 역사에서 비틀즈 다음으로 꼽는 유일한 밴드이다(그는 탑오브더팝스에서 한번에(?) 두곡을 공연한 밴드는 오직 셋뿐이라며 이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 비틀즈와 더잼, 그리고 오아시스가 그렇다). [주의 : 엄밀히 따지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 라몬즈역시 그 영광을 차지했다] 이들 둘은 서로의 앨범에 게스트로 참여하였으며, 지난 몇 년간 많은 공연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이들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심으로 발전했고, 노엘 겔러거가 웰러의 투어 서포트를 함으로써 정점에 달했다.
*
어떻게 해서 웰러의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그에게 생일선물을 전해주러 갔었지, 그의....[놀라는 흉내를 내며] 마흔살 생일 기념 선물을 샀거든. 나한테 다음주에 뭐하냐고 묻더군, 그래서 아무일도 안한다고 했지. 그랬더니 여기와서 함께 공연을 하는게 어떻겠냐고 하더군. 처음엔 3곡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여기와보니 이제 8곡이야.
이걸 즐기는것처럼 보이는데요...
아 맞아. 그동안 집에 쳐박혀 곡만 엄청나게 써댔거든. 알다시피 난 돌아 다니는 타입은 아니잖아. 내가 2주간 신문에 안나왔다 싶으면 약간 신경쓰일려고 그러긴 하지. 만약에 그가 이런 제안을 안했으면...그냥 그러고만 있었겠지. 그는 오프닝에 Toploader를 세우기로 거의 정해놓고 있었거든. 아무튼 이걸 하게되서 굉장히 즐거워. 무엇보다도 팬들에게 아주 좋은일이지. 예고없이 나타나는 거니까. 내가 걸어들어갈 때 걔들 표정을 봤어야 하는건데. 다들, "우와, 리암겔러거아냐? 오, 젠장. 노엘이잖아."
연예사업과 파파라치에게서 멀어지고, 음악적으로 돌아서는 게 낫다고 보나요?
라디오방송, TV쇼에 나가고, 그냥 일어나서 기타를 연주하고, 어디서든 공연을 하겠지. 꽤 많이 그렇게 해왔어. 20000명 앞에서 어쿠스틱 연주를 했고, 그게 나한테 큰일은 아니지. 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진짜 연주를 한다면 멋지겠군.
NME에서 영국 기타음악의 침체에 대하여 물었을 때 어떻게 답했나요?
그쪽에선 30년이나 그 얘길 해왔다구, 알다시피 비틀즈가 해체한 후로 말야. 록큰롤이 죽었다 이거지. 먼가 일어났다 싶어도 곧바로 잠잠해지기 일쑤고. 내 생각엔 아방가르드 펑크록이 한동안 활기를 띄다가 곧 찬밥신세가 될것같군. 그리고나서 기타음악의 시대가 다시 올꺼고. 항상 그렇지 뭐, 젠장. 1920년대 이후로 계속 돌고 돌아왔잖아. 이제와서 사라지는게 아니라고. 난 어떻게든 어디로도 가지 않아.
Goldie와 함께 공연을 했고, 또 다른 일들도 많았죠...
그래. Goldie와 항상 기타연주를 했었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빌어먹을 만능이라고 생각하지. 내 말은 난 노래하거나 기타연주할때는 댄스트랙을 한다구. 키보드연주는 못하고, 피아노는 조금 다룰줄 알지. 엑스파일 때문에 조금 했지. 사람들은 그걸 테크노라고 부르지만, 사실 전자악기는 전혀없어. 모두 라이브 드럼, 라이브 피아노 그리고 베이스 기타지. 진짜 소리라고. 난 뭐든지 시작할 수 있지만, 나만의 앨범에서 기타연주를 할 수 없다면, 젠장, 나보고 뭘하라는 건지. 거기 서서 얼굴마담이라도 해? 농담이고. 내 생각엔 우리 얘가 가만히 서서 얼굴마담하기엔 딱일것 같군. 난 할 일이 많으니까.
오아시스는 여전히 당신음악의 표현수단인가요? 아니면 솔로활동을 할건가요?
훗, 언젠간 나도 앨범하나를 내게 되겠지. 곡이야 많으니까. 내가 보기에 밴드의 작곡가는 다들 솔로 음반 하나쯤은 가지고 싶어 한다구. 전시용으로. 나역시 내가 나만의 음반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있지. 스트레스 안 받고 일할 수 있다니 정말 멋질 것 같군. 스튜디오에 기네스(맥주) 10캔이랑 잭 다니엘 병이 굴러다니고 리암녀석이 물건들을 깨부수며 돌아다니는 꼴을 안봐도된다니. 일말의 평화와 고요함이라...정말 멋지겠지. 하지만 다음 앨범은 틀림없이 오아시스의 앨범이네.
이번투어에서 폴 웰러 밴드와 함께 무대에서 연주를 했잖아요, 다른 밴드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게 기타리스트로서 또 뮤지션으로서 당신에게 도움이 되나요?
기타리스트로서는 물론이지. 백보컬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건 수년간 날 괴롭혀 왔지. 우린 음반을 내며 수없이 화음을 맞추었고, 누군가는 뒤에서 받쳐주는게 낫겠다고 생각했지. 본헤드의 목소리도 들어봤지, 겜처럼. 귁시는 절대 입을 안벌렸고. 그리고 드러머는 절대 안돼, 진짜 실망스러웠지. 그래서 난 내 기타 플레이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라구. 리드 기타를 연주하면서 백보컬까지 하는건 열라 힘들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정말이지 라이브할 때 노래하는 걸 그만두고 싶다구. 왜냐면 더 이상 바보취급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정말로 힘든 일이라고. '땀을 흘리시네요'
여전히 기타리스트로서 발전해가고 있다고 느끼나요?
난 아직 갈길이 멀다구, 이 사람아. 난 작곡가고, 리드 기타리스트보다 더 기타를 튕겨대지. 아, 그건 내가 밴드에 합류했을 때 이미 본헤드가 리듬 기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난 리드 기타였어.
그러니까, 리드 기타를 연주하는 게 좋아요?
아니, 싫어해. 그건 빌어먹을 쓰레기야. 우리 음반을 다 들어보면, 항상 기타 솔로가 똑같아. 뒤에 멜로디만 다르고. 그래서 난 항상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난 리드 기타리스트보다는 작곡가 쪽이야. 지미 페이지를 한번 보라고. 하지만 그는 백보컬도 안했군...
현재 곡을 쓰고 있나요?
그래, 데모테잎을 만들었지. 5개정도. 지금은 한가할 때만 곡을쓰고. 저번 앨범은 빌어먹을 열라 큰 건수였지, 그래서 차라리 조용하게 작업하기로 했어. 다음 앨범에 관한 내용은 딱히 없고, 어떻게 될지도 아직은 모르겠어. 이미 완성한 곡들은 그냥 내 노래지 - 거기서 난 드럼을 꽤 괜찮게 연주하는데, 당신한테만 솔직히 말하면, 난 사실 기타리스트보다는 드러머쪽이 더 나은 것 같아. 그러니까 이봐, 우리가 드러머를 쫓아내고 리드 기타리스트를 새로 고용하면 말야...
그러니까 말이죠, 당신이 곡을 충분히 완성하고 밴드도 준비가 되어있는 경우라면, 앨범을 낼건가요?
아마 내년이 되겠지, 지금은 우리가 스튜디오도 가기 전이야.
아마 그때쯤이면 잠잠해져있지 않을까요?
우린 버브가 해체할까 염려했었지. 그들은 우리에게 열정을 붇돋아주리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망치고 있어, 그렇지 않아? 아니길 바라지만. 밴드에 대해서 그렇게 말한다는 건 무척 힘들지, 떠돌아 다니는 루머가 너무 많아.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연주를 계속하고 있고, 아직은 해체하지 않았다고. 야단법썩 떠는것도 곧 가라앉겠지. 왜냐면 우리 뒤에 나온 밴드들은 죄다 열라 엿같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새 음반을 내면 다시 광란의 도가니에 빠지겠지. 우리가 소리소문없이 새 음반을 내놓는것도 멋지겠군.
다시 성공하는 건 어려울까요?
글쎄. 난 성공에 관해서라면 무심해질 수 있지. 하지만 그런 질문은 Sleeper같은 햇병아리한테나 해야지, 한번도 성공해보지 못한 밴드에게나 말야. 그들은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거죠' 라고 하겠지. 그러면 그걸 듣고 웃어줘라.
*
폴 웰러와 노엘 겔러거의 첫 만남은 1994년 6월 그래스톤버리에서였다. 그때 웰러는 그에게 감명을 받은 노엘에게 슈퍼소닉을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겔러거는 그 해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은 웰러와의 만남이었다고 말한다. 그 이후로 이 둘은 수많은 공연을 함께 했다. 여기서 주요작품을 소개한다.
*
I Walk On Gilded Splinters
1995년 2월, 노엘은 폴 웰러가 스탠리 로드 앨범을 작업중이던 옥스퍼드의 매너 스튜디오를 찾아간다. 웰러가 그에게 I Walk On Gilded Splinters라는 곡을 아냐고 물었고 노엘은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어쿠스틱 기타 반주를 준비하고 피아노세트를 상의했다. 연주 후 웰러가 그에게 따졌다, "너 이 노래 생전 처음 듣는 거지!" 노엘이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네, 처음이에요"
Champagne Supernova
토탈기타 10월호의 독점 보도에 의하면, 웰러는 일렉 기타와 백보컬에 참여함으로써 오아시스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앨범의 대단원을 장식했다고 한다.
Swamp Song
웰러의 와일드 우드 앨범의 반복되는 연주부분에 감명을 받은 노엘은 이 육중한 사운드를 모닝 글로리 앨범에 넣는다. 웰러는 기타와 하모니카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노엘은 원래 이 곡 제목을 'The Jam'이라고 붙였으나 너무 진부하다고 하여 'Swamp Song'으로 바꾸게 되었다.
Talk Tonight
1995년 4월, 웰러는 채널4의 화이트룸에서 가진 노엘 겔러거의 공연에서 일렉피아노와 백보컬로 참여하였다.
Come Together
폴웰러와 노엘겔러거 그리고 폴 메카트니는 자선앨범 HELP에 넣을 비틀즈 커버곡 컴 투게더를 애비로드에서 함께 녹음하였다.
T In The Park
노엘은 1995년 여름 웰러와 함께 무대에 서서 I Walk On Gilded Splinters와 The Swamp Song의 일렉기타를 연주했다.
Brixton Academy
1995년 후반에 노엘은 웰러가 브릭스톤 아카데미에 나흘간 머무는 동안 즉석에서 게스트로 공연을 하였다.
Weller's summer tour 1998
올해 웰러의 투어에서 노엘은 솔로로 투어 서포트를 하였다. 그는 스탠바이미, 왓에버, 토크투나잇, 원더월, 돈룩.., 리브포에버, 슬라이드 어웨이를 불렀다. 토탈기타에서는 이들을 8월 6일 뉴포트센터에서 따라잡았다.
첫댓글 언제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출처(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
아...팬싸이트 인터뷰 모아둔곳에서 가져온것같은데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요.. 원문으로 보고싶으신거라면 메일로 보내드릴께요. 그건 따로 있어요.
노엘.. 당신은 기타치는 모습이 더 멋지다구....;;;;;;드럼 그냥 치지마...-_-;;;;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말은 꼭 해야 겠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