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義湘:625∼702)대사 는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개조(開祖)이다. 성은 김씨이며, 아버지는 한신(韓信)이다. 19세 때(625) 경주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하였다. 26세 때(650) 원효(元曉)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가고자 시도하였으나, 고구려의 병사에게 잡혀 정탐자로 오인받고 수십일 동안 잡혀 있다가 돌아왔다. 10년 뒤인 661년(문무왕 원년) 귀국하는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 갔다. 그런데 처음 양주(揚州)에 머무를 때 주장(州將) 유지인(劉至仁)이 그를 관아에 머무르게 하고 성대히 대접하였다.
얼마 뒤 종남산 지상사(至相寺)에 가서 화엄종의 제2조인 지엄(智儼)을 뵈었다. 지엄은 전날밤 꿈에 해동(海東)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나서 가지와 잎이 번성하더니 중국에 와서 덮었는데, 그 위에 봉(鳳)의 집이 있어 올라가 보니 한 개의 마니보주(摩尼寶珠)의 밝은 빛이 멀리까지 비치는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의상을 특별한 예(禮)로 맞이 하고 " 어젯밤 꿈이 그대가 내게 올 징조였구료"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제자가 될 것(입실)을 허락하였다. 그 곳에서 <<화엄경>>의 깊고 미묘한 뜻을 알게 되었다. 지엄은 학문의 도반으로써 기뻐하며 새로운 이치를 터득해 내니, 이야말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고 할만 했다.
의상이 당나라에 머문 것은 나이 37세로부터 46세에 이르는 10년간이며, 지엄으로부터 화엄을 공부한 것은 약 8년 정도이다. 이 때 그는 화엄사상을 정리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완성하였다. 이 <<법계도>>는 668년에 완성하였는데, 이 해에 지엄도 입적하였다. 이것은 마치 공자가 "기린을 잡았다"는 귀절에서 붓을 끊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의상은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하였다.
<<화엄일승법계도>>는 우리들이 지금 일상적으로 암송하는 [법성게]로써 법계의 도리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화엄경]은 40화엄(입법계품) 60화엄과 80화엄이 있는데 [법성게]는 60화엄에 의거하여 저술된 것이다. 화엄의 바다는 일심의 바다요, 극락정토이다. 그래서 [아미타경]은 [화엄경]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의상이 당나라에 있을 때 신라의 승상 김흠순, 랑도 등이 그 곳에서 갇혀 있었다. 당 고종이 장차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하자 흠순 등은 몰래 의상에게 권하여 먼저 돌아가게 하니 670년에 귀국하였다. 이 일을 신라 조정에 알리자 신인종(神印宗)의 고승 명랑에게 명하여 밀단(密壇)을 가설하고 비법으로 기도해서 난국을 면할 수 있었다.
돌아온 그 해에 낙산사 (洛山寺)의 관음굴 (觀音窟)에서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드렸다. 이 때 읊은 <<백화도량발원문 (白花道場發願文)>> 은 그의 관음신앙 (觀音信仰)을 알게 해주는데 261자의 간결한 명문이다. 그 뒤 676년 태백산에 올라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浮石寺)를 세우고 대승사상을 폈더니 영감이 나타났다.
의상은 귀국 당시부터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의상이 귀국하기 이전부터 이미 우리나라에 화엄사상이 전개되어 있었지만, 화엄사상이 크게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의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화엄종의 개조(開祖)라고 부른다. 의상이 화엄대교를 전하기 위하여 부석사, 원주의 비마라사, 팔공산 미리사 (美里寺), 지리산 화엄사 (華嚴寺),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웅주 가야현 보원사(普願寺), 계룡산 갑사(甲寺), 비슬산(달성)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등을 창건한 것으로 전하여 온다.
의상의 교화활동 중 가장 큰 업적은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3,000여명의 제자가 있었고, 당시에 성인 다음 가는 아성(亞聖)으로 불린 오진 (悟眞),지통(智通),표훈,진정,진장(眞藏),도융(道融), 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 10명의 제자가 있었다. 이들은 대덕이라 모두 전기가 남아 있다.
의상은 702년(성덕왕 원년)에 세수 78세로 입적 하였다. 저술로는 <<십문간법관(十門看法觀)>> 1권, <<입법계품초기(入法界品記)>>1권, <<화엄일승법계도>> 1권, <<백화도량발원문>>1권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 등이 있다.
고려 일연국사가 [삼국유사]에서 찬탄하였다.
덤불을 헤치고 바다를 건너 연기와 티끌을 무릅쓰니 至相寺 문이 열려 귀한 손님 대접했네
華嚴을 채취하여 고국에 심었으니 종남산과 태백산이 함께 봄을 맞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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