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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 선교 ♡
 
 
 
카페 게시글
________말씀 나눔 스크랩 어 성경이 읽어지네 10
이루리 추천 0 조회 22 10.04.11 00: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9과

사도행전과 거기 얽혀 있는 바울서신들


예수님의 퇴장, 승천 : 성령님의 입장, 오순절 사건


다시 정리합니다. 부활 이후 예수님께서는 40일이라는 기간 동안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여러 번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부활하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늘 이 예루살렘에 오면 주님과 함께 모이곤 했을지 모르는 아지트(마가 다락방)에 짐을 풀고 얼마 동안 기거하던 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은 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감람원이라는 예루실렘 근교에 모여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이제는 마지막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워 가신 것입니다. 구름이 떠 있는 높이면 제법 한참 올라가신 것 같은데 여하튼 그렇게 아주 높이 올라가실 때까지 이 갈릴리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옆에 흰 옷 입은 두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서 하늘 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 :11)고 말했습니다. (♣ 예수님 이 탄생하기 전에도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났고, 태어나신 때에도 목동들에게 나타났고, 금식하 실 때도 나타났고, 부활하실 때도 나타났고. 이렇게 승천하실 때도 나타납니다. 확실히 예수님은 “내 나라”라고 부르시는 그 나라의 열두 영이 더 되는 종들이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제자 들은 더 이상 오매불망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문이 닫혔는데 스윽 나타나시기도 하셨고, 또 바닷가에도 갑자기 나타나셨고. 그래서 사실 제자들은 마음을 못잡고 늘 마음 설레며 ‘언제 또 갑자기 나타나시려나…?' 기다리곤 했는데 이제 이 승천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신화가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



이제는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는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을 가 슴에 품고 숙소로 돌아와 그 들은 주님이 부탁하신대로 전혀 기도에 힘씁니다. 안타까웠겠지요. 뭔가 두려웠겠지요. 그러면서도 주님이 약속하신 그 보혜사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가 기대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겠지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예수님도 떠나신 판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믿는 도리밖에…. 베드로만 하더라도 50일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그 럴 정도였으니 지금인들 그리 대단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죠. 그러니 어쨌든 이 상황에서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약속, 성령을 보내시리라고 하신 그 약속을 꽉 붙잡을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약속대로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십니다.




사도행전에 진입


이렇게 해서 여러분은 드디어 사도행전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신약의 유일한 역사서로서 예수님 이후에 사도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알려 주는 소중한 책입니다. 창세기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복음서를 지났는데 이제 사도행전에서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대답은 사도행전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예수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1)". 이 구절에서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는 동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즉, 같은 뜻으로 쓰인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결국 사도바울이 전한 것도 주예수그리스도, 즉 하나님 나라였음을 밝혀 집니다.



♣생장점♣  그렇다면 사도행전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구약에서 공부해 온 ‘하나님 나라가’ 사도들에 의해서 어떻게 세계로 전파되어 나갔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구원은, 운동성이 있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은 침노하고. 정복하고, 투쟁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이 시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세계만방을 향하여 전투태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사도행전은 누가 썼습니까? 아시다시피 누가가 쓴 책입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조수로 선교여행에 동행한 헬라인이며 의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행적 「누가복음」을 쓴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서 초대 교회가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에 대한 과정부터 사도바울의 1차로마 구금까지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p263


이와같이 사도행전은 엄격히 말하면 초대 교회에서 활약했던 12사도의 사역을 다 알려 준다기 보다는 오직 두 사람을 중심으로 초대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 두 사람은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두 사람 외에 나머지 사도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에서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1-12장까지는 사도 베드로를 주인공으로 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13-28장까지는 사도 바울을 주인공으로 이방 교회들의 설립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장점♣ 구약의 성도들은 이방에 전파할 줄 몰랐는데 신약의 사도들이 이방 교회를 설립하다니…. 가슴 뿌듯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창세기 12장에서 나라를 세우시고는 그렇게 기뻐하셨고. 그 나라를 온 만방에 전파하시기 원하셔서 가나안 부터 정복하라고 하셨는데, 이제 이 신약에 와서 사도들이 열방을 향해 나가는 것이 정말 가슴벅찬 일 아닙니까? 바로 이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얼마나 열심히 일해 오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존재의의! 그것은 열방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일입니다. 열 방에 하나님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시셋말로 하면 선교입니다 이렇게 성경 전체의 핵심사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선교입니다. 열방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들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사도행전에서 그런 행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슴이 벅차십니까? 벅차셔야 합니다! 자, 이제 우리도 같이 행진하면서 사도행전을 읽읍시다. 예수 선교!를 외치며!



우리는 신약읽기에 들어서면서 난제가 둘 있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복음서 하나로 통일하기’ 와 ‘서신서 사도행전’ 에 맞추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과에서는 사도행전을 읽어가다가 그 상황속에서 서신서가 어떻게 끼어들어 가게 되는지를 살펴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서신서 이전에, 먼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사도행전을 잘 이해해야 신약의 서신서들을 비로소 읽을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총 27권 중 복음서 4권과 사도행전을 제외하면 22권이 남는데 그 중요한 계시록만 제외하고 21권이 편지들입니다. 그 편지들은 사도들이 교회나 혹은 개인들에게 보낸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도 바울이 13권이나 쓰셨습니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 후서, 디도서, 빌레몬서를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 이후 신약은 사도 바울 중심으로 기록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두권(베드로 전·후서). 사도요한이 3권(요한 1,2.3서). 그리고 야고보사도와 유다사도가 각각 1권씩을 썼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지요. 저자 미상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 이후 신약은 사도 바울 중심으로 기록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이렇게나타난것입니다.


♣생장점♣ 어쨌든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연구할 때 사도행전과 연결하여 연구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은 서신서들이 어떤 상황과 장소에서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배경이나 연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또한 지리적 배경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약에서는 그렇게 지리에 신경쓰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저 갈릴리가 어딘지. 예루살렘 유대지역이 어딘지. 큰 덩어리 지역들 중심으로 틀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행전에 들어서면 사도행전이 진짜 말 그대로 기행문적 성격의 책이기 때문에 지도를 옆에 끼고 읽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이제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구약에서 늘 보던 팔레스타인 근처의 이집트, 에돔, 모압, 암몬, 아람, 앗수르. 바벨론. 메데, 파사 지역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입니다(지도 보고 있으셔야 합니다, 지금!  즉 수리아, 구브로섬, 길리기아, 갑바도기아, 본도, 비두니아, 소아시아(다 주(州).도(道)와 같이 큰 덩어리 땅을 지칭하는 용어임. 지도보고 있습니까? 그냥 읽지만 마십시오)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면 유럽이 시작되는데 첫 성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의 도시가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는 더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로마까 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구약에서처럼 나라 이름이 얽히고 설켜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로마가 다 다스리니까. 얼마나 다행입니까?  다만 이 도시 이름을 지도에 맞춰 익히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한국 역사 중 삼국시대에 대해 배울 때 경주. 평양, 부여 등에 대해 모르면 입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또서울, 평양. 부산, 인천 등의 위치나 특정 등을 모르면 한국의 일반역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 주요 지리들을 아는 것은 성경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칼라로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p265



1. 사도행전을 읽으며 서신서들 연결하기


사도행전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부는 초대 교회의 시작부터 사도 바울이 등 장하기 전까지인데. 이 때 중심인물은 베드로입니다. 2부는 사도바울의 선교입니다.


1)제1부 : 1-12장 : 초대교회 시작부터 베드로의 활약

중심교회 : 예루살렘 교회

중심인물 : 사도 베드로


① 1장

예수께서 승천하십니다. 제자들은 오실 성령님을 기다리며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합니다. 120명이 모인 것을 보면, 갈릴리에서 올라올 때 같이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지만(이 사람들은 수 배될 것을 각오하고 올라왔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생긴 제자들 도 수소문해서 모였을 것 입니다. 몇 달전에 베레아(베레아 ‘요단동편과 베뢰아· 마게도냐, 유럽’ 은 다르다.)에 파송되었던 70인 전도단 제자들도 많이 가담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120명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이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창립 교인쯤 되겠지요? 예수님의 처형 , 부활. 승천 이라는 일연의 폭풍같은 사건이 지난40여일 동안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 이들은 특별한 각오를 갖고 모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유언에 의하면 무슨 일이 벌어져야만 하니까 더욱 그랬 을 것입니다. 이들은 소위 마가의 다락방으로(13절) 알려진 방에 모여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교회 는 기도로 출발했습니다. 또 가롯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12제자 중 하나로 선출합니다. 세계 열방 으로 나가기 전에 12지파를 정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② 2장 - 새로운 View Point(전망대)

드디어 유월절 (죽으신) 이후 50일이 되는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십니다. 이 사건으로 이제 더 이상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라는 역사 적인 사건의 의미를 그들 스스로 파악합니다. 그리고는 그 사실이 너무 놀라워서 막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들도 놀란 것 같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50여 일 전에 일어났던 예수님의 십자 가 처형 사건을 스스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다윗의 시편(시 16:8-11) 과 매치되면서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각 나라사람의 방언으로 동시통역으 로 들리게 되자 그것은 요엘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욜2:28-32)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현재 일어난사건)과 관련해서 구약(기록된 예언)을 풀어 설명해 주신 예수님의 방법론을 터득한 것 같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베드로가 배웠나봅니다. 베드로는 구약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맛디아를 뽑을 때도, 가롯 유다가 죽은 것도 다 그렇게 해 석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많이 얘기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구 약 성경이 응하는 묘미에 무릎을 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북받치는 마음으로 막 외친 것입니다. 설교를 한 거지요. 언제 그렇게 설교를 많이 해 봤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그는 할 말이 생긴 것입니다. 메시지가 생긴 겁니다. 베드로에게 깨달아진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도 깨달아진 말씀이 있어서 외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생장점♣  동시 통역 사건은 창세기 11장에서 언어가 흩어진 사건과 비로소 연결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의 주인공들이 흩어졌는데 여기 와서 다시 하나님의 언어로 통일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문화를 대표해서 나타났던 바벨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으나, 그들을 다시 품으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나라를 이루어 오시더니. 드디어 여기 예수사건이 일어난 직후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시 언어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다시 그들에게로 향하는 복음의 방향성을 보이시는 큰 사건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할때 언어의 통일이 왔습니다. 창세기 11장과 12장 사이가 성경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 View Point라고 했었는데. 여기 사도행전 2장의 통역사건도 바로 그 사건과 이렇게 연결되는 전망대. View Point라는말입니다. 대단히 중요한지점입니다.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유대인들의 후손은 세월이 흐르면서. 헬라문화권이 되어 버 린 곳에서 살게 되었지만 나름대로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사회를 형성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들은 내적으로 집정관(Archon)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나 장로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과 계속 관계를 맺으며 회당을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이런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예루살렘 성전 문화에서 힘을 공급받아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로마시대도 마찬가지입니 다. 폼페이가 유대에 출동해서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 많은 유대인들을 로마로 잡아갔었습니다. 마카비 왕조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쥴리어스시저 때에는 로마에 유대인 거류집단이 있 었습니다. 이런 흩어진 유대인들로부터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의 3대 명절 때마다 예루살렘은 예배하는 디아스포라들과 개종자 이방인들로 붐볐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범세계적인 도시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 50일 전 십자가에 처형 되었던 예수사건도 이들 디아스포라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번에는 그 제자들이 나타나 예수사건을 해석하는 설교를 하는 것 입니다.




♣생장점♣   언어영역 -








♣생장점♣ 

지리영역 - 이렇게 사도행전 서두 2장에서는 앞으로 펼쳐지게 될 사 도행전의 지리영역을 주욱 둘러칩니다. 앞으로 사도행전이 어떻게 진행될지 미리 지도를보여주는것 같습니다. 자기 돈들여. 자기 발로찾아온열방사람들과 디아 스포라들이 베드로의 이 설교에 굴복합니다.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사람이 그 날 3천 명(41절)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남자만 말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들은 마치 민들레씨처럼 성령의 바람을 타고 온 세계로 흩어집니다. 이 씨들은 사도 바울이 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디모데라든가, 디도라든가. 누가라든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든가, 수도없이 많이 등장하게 될 사도행전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 사도행전 초기부터 전파된 복음에 부딪히는 사람들인 것입니 다. 아니 더 엄밀하게 얘기하면 지난3년 동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대와사마 리아와시리아와 데바불리쪽에 전파해 놓은 천국운동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를 중심으로 그 유명한 초대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합니다. 베드로가 교회 의 대표로 분명히 드러납니다.


③3장-4 

3장에서는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이적적으로 고쳐줌으로 다시 한번 예루살렘 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그 결과로는 남자만 5천 명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4 :4). 그로 인해 베드로와요한이 옥에 갇힙니다. 그러나핍박을통해 교회는오히려 견고해집니다(31절L


④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만 교회는 오히려 더 정화되고(11절) . 계속되 는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더 강해집 니다(41-42절) .


⑤6-7장

교회에 구제문제로 인한 갈등이 생깁니다. 아무리 초대 예루살렘 교회라고 해도 예수 믿고 나 자마자부터 다 거룩한 천사처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기까지 성화되어 나가야지요. 바울이 세 운 교회들도 맨-날 그런 일로 갈등하고. 싸우고. 문제가 생겁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유형 교회는 언제나이렇게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예루실렘 교회의 구성원은 크게 두 그룹이었습니다. 하나는 히료리파 사람들이고. 또 다른하나는헬라파사람들입니다. 바울의 서신서에도늘둥챔}는용어입니다. ‘유대인이나헬 라인’ 이나, 또는 유대인이나 이방안 이나 히는 말이 여기부터 동장히는 것입니다. 헬라파 과부들 이 구제에서 누락되면서 헬라파 사람들이 불평합니다. 이에 대해 초대 교회는 일곱 집사를 선출하 여 구제문제를 전담케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는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서 선택되었습니다. 즉, 불평이 제기된 헬라파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김으로써 해결합니다. 초대 교회의 넉넉한 마음을 봅니다. 그런데 그 일곱 명 중 한 사람이 스데반이며,7장에서 스데반은 순교를 당합니다. ‘스데반 의 설교. 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이 일독학교에서 다루어 오고 있 는구약역사를요약한내용입니다. 우리도이렇게 할수있어야지요.


@s장

드디어 사울(사도 바울)이 동장합니다(1-3절) .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자 중 하나인 청년 사울 입니다. 그 핍박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흩어집니다. 그 중에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 고, 특별히 구스 내시에게 전도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예루살렘과 유대와사마리아 (행1 :8) 를거쳐 땅끝’을향하기시작합니다.


CV9장"'11장

사울이 회심합니다. 다메섹으로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 하다가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 님을 만납니다. 다메섹, 갈릴리 북쪽 수리아입니다. 구약A로 말하자면 아람, 수리아 거기업니다. (지도를 반드시 보십시오.) 그는 회심 후 즉시 회당에서 예수를 증거합니다(20절). 그러자 유대인 들이 그를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다메섹을떠나예루살렘에 갔다가후에 그의 고향다소로갑니 다(26-30절) . 지도를 놓고 그 행선지를 선으로 그어 보십시오. 다소는 예루살렘에서 다메섹 가 는거리 두배 정도더 서북쪽에 있는사울의 고향입니다.


한편 베드로는 순회전도를 합니다. 그러다 10장에 보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로마 사람인 백부 장 고넬료의 집에 가서 전도를 합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F 기이사랴라는 도 시는 앞에서 설명했습니다만 대헤롯이 시저를 기념하며 세운 도시입니다. 지중해 해변에 로마 군 인들의 성채가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헤롯 아그립파 1세의 통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도 로마 로후송되기 전에 가이사랴감옥에 2년 동안억류되어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이 가이사랴는당시 정치를 위한 중심지였습니다. 해변이라 아름다워서 거기에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또 지중해를 거쳐 로마나 소아시아쪽을 갈 때 출발하기 좋은 장소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두로와시돈처럼 항 구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이 지명이 많이 나옵니다. 지도를 꼭 보십시오. 지도를 보기 시작하면 새 세상이 열립니다.Y)o] 께사랴에 심방간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그런데 이 때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이밍엔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이 사건은 대단히 의미있는 사건입 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이빙엔들에게 공식적으로 전파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 십시오. 이 사건의 중심 인물로 베드로까 사용되지 않고. 만일 사도 바울이 쓰임 받았다면 예루살 렘 교회가이방언 성도들을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받아들이는데 한결 더 어려웅을겪었을것입 니다(11장). 사도 바울이 이빙언의사당1만, 막상이$엔을최초로 또공식적으로개종시키는사 람은 베드로였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가 계셨다고 봅니다. 사도행전 기록 자 누가는 이 사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이제 후에 전개 될 바울의 이방선교의 당위성을 포석 하는 장면입니다.


⑧12장

헤롯이 죽습니다. 이 헤롯은파사옐(예수님을죽이려 했던 헤롯대왕의 형)의 손자아그립바 1 세(대헤롯의 아들 아켈라오, 안티파스, 빌립 등과는 다른 계열)입니다. 그는 로마 황제 글라우디 오와 같이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친분 관계로 AD. 41년에 이르러서는 과거 대헤롯이 다스렸던 땅을 다 다스리는 세력을 얻습니다. 그런데 여기 12장에 보면 그가 충이 먹어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를 이어 어린 왕자가 대를 잇습니다. 그의 이들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그는 거의 A.D. 100년경까지 유대 통치자로 다스립니다. 이 아그립바 2세를 끝으로 헤롯 가문은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헤롯(아그립바 1세)은 정치적으로 인기를 얻기 위해 초대 교회를 핍박하였는데 그의 교만함 때 문에 결국 하나님의 진노로 죽은 것입니다. 그는 가이사랴 바닷가에 있었던 연극장(에베소의 연 극장처럼 타원형 부채꼴인데 새파란 지중해 바다가 보인다 )에서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생일을 및는 축제경기에 참석했다가 복통으로 급사한 것입니다. 이제 이후로 동장하는 헤롯왕은 아그립 바 2세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p 271



낀 저/2부: 사도 바울의 월으파t 세뭐지는 이$벤 교외들

중심교회 : 안디옥 교회 (수리아)

중심인물 : 사도 바울


예수님의 공생애를 3년이라고 할 때는 그 기준을 유월절로 잡고 계산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 무심코 성경을 읽으면 이 유월절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연구해야 보이 는 것이지 그냥은 안 보인다 이 말이지요. 마참가지로 사도 비울은 3차에 걸쳐서 선교여행을 했다 는데, 사실 우리가 원는 식으로 성경을 주육 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l차요,2차요.3차인 지 잘알수가없습니다. 성경을펼쳐 놓고찾아보라고해도잘못찾습니다. 왜 그런지 이십니까? 기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1차라고 그러는지,2차라고 그러는지 생각을 안 해 봐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같이 따라다니려면 그것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 다. 어디까지 가야 다 간 것인지도 모르는 채 그냥~ 따라다니면. 다 온건지 , 더 갈건지도 모르는 채 건성건성 헛 고생 핸 거지요.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에도 베이스 캠프가 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베이스 캠프입니다. 안디·욕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출발해서 안디옥 교회로 다시 돌아오면 1차씩 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말을 족집게로 찜어내 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거기서 배타고 안디욱에 이르니,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18:22) 둥입니다.

그런데 2차와 3차 사이는 찾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찰싹 붙어 있습니다. 바로 18 장 22절과 23절 써입니다. 이 한 절 써7} 2차와 3~}를 갈라놓습니다.22절은 “안디옥으로 내려가서”로 끝나는데 곧이어 23절은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로 되어 있습니다22절에 서 안디옥으로 갔는데 이제 얼마 있다가 다시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얼핏 보 면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베이스캠프를염두에 두시고아래에 자세히 나누어 놓 은 장 절을 참고하며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같이 따라다녀 보십시다. 지도! 꼭 챙 기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떠나기 전에 지도를 펴놓고 보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행 떠나 기 어디 그리 쉽습니까?갱견얀 할 게 많습니다. 어떤 장소 이름이 나오면 그게 큰 지역 (주, 도 같 은)을 밀하는 것인지. 도λl 이름을 말하는 것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진도에 갑바도기아, 갈라디 아, 비두니아, 본도. 루시아. 아시아 마게도냐. 수리아, 아가야 퉁을 찾아보십시오. 큰 영역입니 다. 또 고린도. 아덴. 베뢰아, 데살로니가. 벌립보, 네압볼리, 드로아. 에베소. 가이사랴. 용바. 예 루λ냥렘 동을 찾아보십시오. 그 영역들 안에 있는 도시 이름들입니다. 우선 이 두 종류의 장소 이름 을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게도냐로 갔다’라는 말이 나왔다 칩시다. 그러면 빌립 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동도시가있는큰전체지역을말하는 것이라이 말입니다. “아가야온지 방" 하면 고린도리든가, 아멘, 겐그레아 이런 곳을 말한다는 생각이 얼른 지도와 함께 떠올라야 합니다. 이렇게 지도를 볼 줄 알아야 얘기가 풀립니다. 읽어집니다. 예를·들어 ·‘에베소에서 고린 도로 갔다”고 한다면 육로로 갈 경우 .위로 올라가서쪽으로틀어서 아시아(까·소아시아임. 물 론 우리 나라가 있는 아시아가 아님 껴')와 유럽(마게도냐)의 경계를 지나 다시 또 남쪽으로 틀 어 내려갔구나 이런 그림이 생각나야 합니다. 또 배로 갈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굉장히 가깝겠 구나. 이런 생각도 나야 합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지도를 보고 미리 공부합니다. 특히 미국을 여행하려면 지 도는 생명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도를 끼고 있지 않으면 바울과 같이 다닐 수 없습니다. 사 도행전, 읽어지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금방 재미없어집니다. 서신서도 안 보입니다. 이렇게 머리속에 지도를 그리면서 읽는 것이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읽는 묘미가 되어야 합니다. 전복땅 시다!   

@ 제1차 선교여행 (13장"'14장 )

안디옥며 실루기아며 (배 타고)며 살라미다 바보며 (배 타고)며 버가다 비시디아 안디옥며 이고니온 다 루스드라며 더베며 루스드라며 이고니온며 비시디아 안디옥며 버가며 앗달리아며 (배 타고)다 안 디옥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안수받는 장면 13장부터가 사도 바울이 정식으로 선교사로 출발하 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가 선교여행 출발지점입니다1차 선교여행 처음에는 바나바가 선교여 행의 중심인물로 출발하지만 중간에 리더가 바울로 바캡니다(13절 참고). 이 때 파송 교회는 안디 옥교회로이멍엔 최초의 교회입니다. 이 안디옥이라는이름은사실 셀루코우스1세(누군지 아시 죠?그래서 중간기 역사를배웠습니다J가자기 아버지 안티오쿠스의 이름을기리며 세운도시 이



p 273

를입니드L)67H나세웠는데 다안디옥입니다. 그중의 하나인 .수리아안디옥’ 에 세워진 교회입니 다 건경에는비시디아안디옥이 또나옵니다‘뻐디아안디옥옹당어키 중부에 있과츄라아얀 디올융 그보다 남쪽. 그러니까 유대에서 본다면 더 가까운 북쪽입니다. 지도 보시죠?(y 사도 행전은 절대로 지도 없이 읽으면 안되는데, 아직도 지도를 안 보는 분이 계실까봐 걱정돼서 그럽 니다. 오죽하면 이러겠습니까?y) 안디옥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도시입니다. 당시 가 장큰도시 중하나였습니다. 최초의 이방언교회가이 오벼옥에 생긴 것입니다.


1차 선교여행의 여정은 구브로 섬을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13:14), 이고니옹(14:1, 오늘날의 코냐) . 루스드라(8절) . 그리고 더베(20절)로 이어집니다. 돌아올 때는 왔던 도시들을 다시 재 방 문하여 교회들을 굳게 합니다. 다만 구브로 섬은 들리지 않고, 배로 안디옥으혹 돌아와 교회 앞에 선교보고를 합니다(27절) . 딱 여기까지가 1차입니다. 별로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구브로 섬을 끼고 바다로, 육지로 돕니다.


@ 예루살램 종교회의 (15:1"'35)

갈라디아서에 보면. ‘내(바울)가 전한 복음에서 떠나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다른 복융을 쫓아 갈 수 있느냐?"고 안타까워하는 내용으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회의에 대 한 얘기도 나융니다. 이렇게 갈라디아서는 사도행전 13장~15장 정도의 내용과 연결이 됩니다. (y처음 일독하면서 일일이 다 맞춰가며 이런 점들을 찾아내서 읽기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연 {J.oJ 있구나 하는 것들만 생각하고 읽어도 어딘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치츰 치츰 읽어나7씨는 깨 미가 생길겁니다.y) 예루살렘 회의의 주제도 한마디로 ‘율법이냐, 복음이냐’ 를 다룬 것인데 이것은 갈라디아서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로마서도 같은 주제지만 더 깊고 원숙합니다. (까· 그 런 점에서 보면유대인의 독점이었던 율법. 할례,선민사상등을뒤로하고,이제 열방으로나아가 는세계화과정은이렇게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는것입니다. 이 주제가문제가됐으니 .. .이제 껏 율법을 지켜오던 유대인들이 ‘복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원리’ 로 구원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예 루살렘 교회 본부 자체 내에서도 정리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과정을 하나하나 거쳐가면서 비로소 예수사건, 복음은 정리되어 갑니다. 그 역할의 장본인이 바울이었던 것입니다. 이 회의에 참석해서 강력한 발언을 하는 것부터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의 신학이었습니다 그의 깨달음이었습니다. 그의 메세지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닙않을 쓰신 것입니다. 그 광대한 구약 이해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접속되면서 바울이 깨달은 복음이었습니다.‘f’ )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삼위일체, 성경의 정경화 등등 굵직굵직한 원리들도 이런 교회역사의 회의 속에서 정돈되어 갑니다. 그래서 .교회사 니 .교리사 니 하는 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 님은 교회를 세계화시켜 나가시는 과정에서 이렇게 역사 속에서 계속 일해 오시며 섭리해 가십니 다. 여기 예루살렘종교회의가그시작이었습니다.

15징에는 예루살렘 회의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보고가 들어있습니다. 이 회의를 구체적으로 들 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이$벤들은흘F례를받을펼요가없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믿음으로구원받 는다는것을공식적으로 채택한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이것은 이벙언 교회 들의 설립과발전에 매우중요한결정이었으며. 또한복음을변질시키지 않고순수하게 유지시키 게 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베드로가 동장하지 않고 야고보가등장 하는데(13절) .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통생으로서(마 13 :55),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람이 며. 예루살렘 회의의 최종결론을 내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 제2차 선교여행 (15:36-18:22) 、 、

/ 데살로니가전 · 후서, 갈라디아서 들어가는 자리


안디옥여 다소며 더버|며 루스드라며 비시디아 안디옥며 드로O벼 (배 타고)며 네압볼리다 빌립보며 데실로 니가며 베뢰Ofq (배 타고)며 이댄다 고린도 (y사역의 중심지, 더|실로LI가전 · 후, 갈라디아서 기록y) 며 겐그러/0얘 (배 타고)며 에베소며 (배 타괴며 로도며 (배 타괴며 가이사랴다 예루살렘며 안디옥    

생장점

겨러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하면 이제부터 이 생각 하나는 꼭 하 십시오. 뭐냐 하면 바울은 남쪽 갈라디아를 거쳐서 소아시아의 에때소에 가고 싶었 는데, 하나님은 마게도냐 유럽의 고린도로 인도하셨다고. 소 아시아(큰 덩어리땅) 의 에베소(도시이름)를 가려고 했는데. 아가야(큰 덩어리땅)의 고린도(도시이름)로 인도동낸 사실입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결별합니다. 직접적인 이유는 口까를 동반하는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갈퉁이었으나 또 다른 원인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베드로와 함께 한 바나바의 외 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길리기아를 통과하고 토러스산을 넘어 소아시아 의 서해안 도시지역인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퉁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 에베소가 그 중요 목적지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막으십니다(행 16:6). 그래서 할 수 없 이 갈라디아와 부루기아(큰 지명인 것 기억하십시오J. 즉 중부 소아시아 지대를 관통합니다. (y 이때 다모데를 발탁해서 합류합니다. 지도를 보십시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없는 도 시 이름이지만 여행계획에도 없었던 아모리온. 페시누스, 오르키스토스. 그리고 니콜레이아 등의 인구 조밀한 갈라디아 도시를 통과하며 거기서도 선교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F 아시아로 가 려고 애썼다는 말은 에베소로 가려고 애썼다는 말입니다.y) 그는 대도시 중심의 선교전략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베소로 가려고 했던 것은 인간 사도 바울의 돗이었고. 주님은 그를 유럽으로 보내십니다. 천사같은 바울이었으나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이 때 유럽이라고 하면 오늘날의 터어키가 있는 아나툴리아 반도 맞은 편에 있는 땅, 즉 오늘날 의 이스탄불이 그 동쪽 경계가 되고. 서쪽으로는 스페인과 바다 건너 영국까지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 일행은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에 따라바다를건너 마게도냐빌립보성에 도착합니다. 마게 도냐 환상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간 사도 바울 일행을 통해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가 세워 집니다. 그셜립되는과정이 16: 11 -40에 나옵니다.    



런데 드보아(아시아 서 끽 I:L 1 ,I ,‘1 )싸 q 1 마 애도냐인의 환상. 을 본후바울이 유럽으로건너가는바로그장면부터 비로소사도행전에 나타나는중 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십시오.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즉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의 동반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2차 여행의 일행은 이렇게 해서 실라, 누가. 디모데입니다. 알려진 대로 누가는 의사였는데 빌립보 출신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빌립보에는 큰 의과대학이 있어서 주변도시에 의사들을 공급했다고 합니다.


빌립보에는 또한 로마의 퇴역군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두아디라 출신 자주장사(X뮤색은 귀 족들이 입는 옷 색깔이었는데 당시 소아시아 두아디라 성의 특산물이었다) 루디아를 비롯하여 간 수기족, 점치는 여종 등을 중심으로 교회가 생겁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옥에 갇히고 태장(채찍으 로 맞는 매)을 맞습니다. 한밤횡l 찬송 가운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그 결과 간수가 예수 믿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지진은 이 지역에서 지금도 간혹 발생합니다.


그 후 석방되어 데살로니가를 거쳐 베뢰아로 갑니다.(y 유대인들의 심한 소동을 피해 바울 은 혼자 아멘(아테네)로 갑니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를 약 6개월 후에 고린도에서 재회하게 됩 니다. 자. 이렇게 여기 우리가 아는 교회 이름들이 나오지요? 지금 현재 이렇게 다녀가면서 교회 들이 생긴 것입니다. 지금 서신서에 나오는 어느 어느 교회가 생겼는지 지도 속에서 점찍어 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염두에 두십시오.y) 그리고는 바울은 혼자 따로 더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바울 일행이 2차 전도여행하는 지역들 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그리스 반도의 항구도시들입니다.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내려오는 중이지 요. 바울은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아덴(아테네)

혼자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유대인에게 접근할 때 썼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전도합니 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유일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리스 시인들인 에피메니데스 (Epimenides)와 아라투스(Ararus)를 인용하면서 전도합니다. 그는 헬라문화에도 익숙한 사람입 니다· 우장숭배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유일신을 경배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 까지는 우호적이었던 청중이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할 때는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이원론적 신%언1 들로서 육체는 천하고. 영혼은 선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영혼불멸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부활은그들에게 역겨운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소수의 신?}를얻습니다.


고린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의 최종목표로 아시아(에베소)에 가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고린도에 오게되었습니떼여기서 1년6개월이나머물면서 고린도교회를개척합니다(18:11). (y지도가눈에| 보여야 합니다. 신기하게도 동그란 바다를 끼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이고, 고린도 는유럽인데도아주가깝게 마주보고있습니다.까-) 이렇게 고린도는2차선교여행의 중요한장 뚜이었습니다. 밤에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이 곳(고린도)에 나의 백성이 많다고 하시면서 더 머물 것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18:9-10) 누구의 명인데 어길수 있으랴! 고리도는 데살로니가나 아덴보다 큰도시는 아니었지만 항구도시로서 복음이 퍼져나가는 기지 역할을 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학자 디벨류스는 ..동서가 만나는 항구도시이며 동방의 사상이 헬라어로 발표되는 곳이며, 굳 건한 유대교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밍엔들’ 이 많은 도시이며, 의를 추구하는 자와 의를 배반 하는 2까 뒤범벅이 된 도시”라고 고린도를 묘사합니다.(y사실은 구약의 바알 종교가 다른 얼굴을 하고 앉아 있을 뿐입니다.y)

바울이 고린도에서 활동한 시기에 관하여는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고 린도에 파견된 로마 총독은 갈리오(GaJio)였는데 로마의 시인이며 철학자였던 세네7't(Seneca)의 형제였습니다. 텔피(Delphi)에서 발견된 석문에(황제가 델피 시에 보낸 편지를 후에 석명한 것) 황제의 서신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보면 갈리오가A.D. 51-52년 경에 고린도의 총독으로 취임 했다고 씌여 있습니다. 그 서신에서 황제 글라우디오는 갈리오를 “나의 친구요 아가。t의 총독” 이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황제는 ·제26회로 황제 추대를 받았다’고 말하는데 그 시기 는 52년 초(혹은 51년 말)부터 52년 8월 1일 사이가 됩니다. 갈리오의 재임기간은 51-52년이든 가. 52-53년이 됩니다. 따라서 바울의 고린도 체류는 대략 50-52년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곳에서 바울은 이굴라와 브리스길랴 부부를 처음 만납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비지니스를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숙박소와 노통의 기회와 도구를 주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는데 동역자였습니다.



살전횟흥/ 한편 일행이었던 실라와 디모데는 그 동안 어떻게 됐을까요? 바울은 소통 때문에 일찍 떠났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걱정되어 그 들을 거기 남겨두었기 때문에 그동안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6개월이 지난 후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이 머무르고 있는 고련도로 내려와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게 서 그 궁금했던 교회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펜을 들어 그탈~l게 면지를 씁니다.


그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와후서입니다. 지금 현재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목회하 고 있으면서 몇 개월 전 지나왔던 데살로니가 교회가 생각나서 쓴 겁니다. 자식 많 은부모가이 자식. 저 자식 걱정하는것 같습니다. 또전통적으로이 즈혐1 갈라디 아 교회에도 편지를 보낸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1차 선교여행 끝나고 예루살렘 총 회 즈혐l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 같은 경우입니다. 이 렇게 될 경우는 갈라디아서가 최초의 서신서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가 쓰여집니다. 여러분야 고린도에 머물고 있는 사도 바울 의 일행 중에 끼여있다고 상AJ-하면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를 읽어보십시요. 데살로니가 전서 와 후서의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성경목록 공부에 가셔서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에 갑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부부를 에에소에 남겨 놓습니다. 거기서 목회하라고 말입니다. 그 후 바울은 예루살렘 을 들러, 수리아 안디욱 교회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2차 전도여행입니다. 위에서 말 했던 18장 22절까지 얘기입니다


@3차 선교여행 (18:23"'21:16)

、/ 고린도전 · 후서, 로마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안디옥며 다소며 01고니온며 어|베쇠사역의 중심지 :y고린도전서 기록)며 미둘레네다 앗소다 드로아 며 빼 타괴며 빌립봐}고린도후서 기록)며 데살로니7념 베뢰O념 고린되Y3개월 과동, 로마서 기록)며 버|뢰O법 데살로니가약 빌립보며 (배 타괴며 드로O벼 앗소다 미둘레네며 빼 타고 기오、 사모를 거쳐)며 밀러|도며 (배 타고 고스, 로도를 거쳐)며 바다라며 (배 타괴다 두로며 가이사랴며 예루살렘체포j


에베소 도착 : 그동안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브리스길라와 아울라

('I' 얼핏보면 찾아낼 수 없이 숨어있는 것 같지만. 사도행전 18장 22절에서 2차 선교여행은 끝난다고 했습니다. 이 2차 여행 마지막에 잠깐 들른 곳이 에베소라고 했습니다.2차 여행 출발할 때 여기가 목적지였는데 결국은 고린도 교회를 크게 개척하고 이제 2차 여행이 끝나 돌。}가는 길 에 잠깐 스쳐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뭔가 아이디어는 얻었겠지요? 다시 와서 어떻게 하리 라 하는 … 그러지 않아도 오고 싶었던 곳인데 이 곳 사람들이 또 바울이랑 맘이 맞았는지 함께 있 자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의 뜻이면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에베소를 떠났었는데 3차 여행이 시작되면서 바울은 곧바로 에베소를 목표로 하고 지금 여기 온 것입니다.까.) 왜 바울은 이렇게 에베소를 가려고 했을까요?

에베소는 소。씨아의 로마령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안디옥에서 가까운 소。씨아 지방의 수도 인 에베소부터 점령하는것이 순서라고생각했던 것인데 하나님께서는저-멀리 유럽,아가야지 방의 고린도부터 점령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소아시아지방이라고 하면 무시아. 루디아, 카리아, 루시아 그리고서부브루기아등을포함핸지역을말합니다 뀔필로캐짧굶선교전폼용출 지라면뻔變펠펼선교 전최지가 될 첼을 두루 갖추고 있었얽다)


비울은 그래서 2차 선교여행 말기에 브라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에베소를 들른 것이고 거기 에 그들 부부를 남겨 놓은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의 기대를 저버리 지 않습니다. 그들은 앞렉산드리아 (이집트의 도시 , 기억하시지요7) 출신 신학자 이볼로가 왔을 때 그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육시킨 아볼로를 고린둠4파건해서 공린도 교회를 목회하 도록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고린도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람들인데 거기서 빠져 나와 에 베소로 왔으니 , 고린도에 사람이 필요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볼로를 보낸 거지요 (y 고린도전서에 보면 교회가 파당 갈등이 일어나는데, 그 때 ‘나는 아볼로파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볼로가 이렇게 파송되어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이 즈음에 베E무투 긴리도를박무하것이 분명합니다/그래서 고린도교회 분쟁 이 있었올 때 a판평} 퉁장합니다r고린도전서 편지를 이 3차 여행지 에베소에서 쓰게 되는데 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에 이미 게바파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 간시점. 그러니까이렇게 아볼로가브리스길라와아굴라로부터 훈련을 받은후고린도교회에 들 어가 목회를 하던 그 시점 언젠가 베드로도 고린도를 방문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V)


에베소 사역: 회당, 두란노 서원에서 전도

바울은에베소에 도착히여 먼저 회당에서 전도했는데, 약3개월 간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두란노 서원으로 자리를 옮겨 가르쳤습니다두란노. 는 어떤 수사학자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의 개인 학교이름이기도 했는데 그곳은11시부터 4시까지는siesta (낮잠시간)를위해 비어 있었 습니다. 그 때를 이용해서 비울은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바울이 밀레도에 서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이 손으로 나와 내 통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행 20: 34)라고 말한 데 서도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선선한 아침과 저녁에는 일을 하고 한 낮 더운 때에 모여서. 그것 도 날마다. 에베소 교회는 열심히 배우고. 또 전도하였습니다. 이렇게 햇수로 3년 동안을 계속해 서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기륙이 없는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 〉 고린도전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사도행전에는 위와 같은 내용만 간단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냥 이 내용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게와의 아들들 얘기와 에베소에서 일어난 폭동얘기만 더 있고는 끝입 니다. 폭동 이야기로 에베소를 왜 떠나게 되었는지 말해 주고 에베소 사역은 막을 내립니다키 그래 서 우리는 3년 동안 바울이 어떻게 지냈는지 그 이상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에베소에서 기록 한고린도전서는많은정보를룹니다.


공줬/ 바로 얼마 전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 교회를 l년 6개월 동안 가르쳐 서 세워놓았는데(아볼로가 나중에 갔지요7), 지금 3차 전도여행 때 여기 에베소에 와서 사역하면서 듣자하니 그고린도교회가복잡하다는겁니다. 글로에의 집에 있 는 어떤 사람이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생겨서 교회가 내분되 었다는 것입니다(고전 1 :11).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하면서 말입니 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고린도교회에서는 3명의 대표단이 바울이 있는 에베소까 지 찾아왔습니다(고전 16:17).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7}이고, 이 세 사람이었습니 다. 이들은 현재 고린도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조목조목 질문을 써서 기록으로 만들어(고전7:1-너회의 쓴 말에 대하여는 . .. 고전 7:25-처녀에 대하여는 . .. 고전 8:1유쇼l의 제물에 대하여는.. .) 바울의 의견을들으려고파송된 대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글로 써서 보낸 편지가 고린도전서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의 회당과 두란노에서 가라고, 장막 기우면서 고린도전서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편지를 보낸 이후 또 문제가생겼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심각한 나쁜 소문이 들라는데, 그것은그들이 아예 사도바울자체를무시한다는겁니다. 윤대에서 온어떤 사도라고하 는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성도들을흔들어 놓은것입니다. 바울은그들을 .거짓 사도 라고말 합니다. 그런데 그 거짓 사도들은 그동안 이 교회를 세웠던 사도 바울을 오히려 가짜 사도라고 매 도해 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배척하라는 것이었습니다.(y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데 이런 소문이 또 들려온 것입니다.까.) 자칫하면 고린도 교회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때가 사도 바울로서는 어쩌면 감옥생활보다도 더 어려웠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생각다못해 이 때 고린도 교회를 한번 방문한것 같습니다(고후13:1: 내가이제 세 번째 너희에 게 갈터이니.. . 첫째-2차선교, 둘째켜기,셋째-고후13:1). 바울의 사도권문제로수라장이 된 고 린도 교회에 바울이 찾아갔지만 오히려 ·‘어떤 사람.. (고후 2:5,7)이 바울 면전에서 모욕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침묵하므로 그 사람을 동조하고 만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런 일을 당한 후에 에베소에 다시 돌아와서 그 후에 또 하나의 면지를 씁니다. 흔히 ‘눈물로 쓴 현 지”라고 불리우는 서신입니다(고후2:4). 이 펀지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 편지 속에서 바 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을 엄히 꾸짖는 말을 했습니다(고후1 :7-8). 사도로서, 영적인 아버지로 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엄히 꾸짖는 말을 썼습니다.o}주 심하게 경책한 것 같습니다 그라 고는 디도 변에 그 편지를 직접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반웅과 답장을 기다 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만 에베소에서 폭동이 일어납니다.


에베소 폭동사건으로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이동 - 행 20:1

고린도후서가 끼어들어 가는 자리

바울은 3차 전도여행 경로를 에베소(아시아) .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 등 유럽), 아가야 (고린도. 유럽)로 잡고 있었습니다(행전 19:21). 그런데 지금 머무르고 있는 에베소에서 바울을 잡겠다고 폭동이 일어나니까 더 이상은 에베소에 머무를 수가 없어졌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를 향해 떠납니다. 북진입니다. 그가 마게도냐로 가는 이유는 거기 교회 (빌립보. 데살로니가 등)들을 돌보는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고린도교회로부터 소식을가지고 돌아오는 디도를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쯤에서 지도를 한번 보세요. 소아시아와 유럽이 함께 있는 지도 말입니다. 에베소에서 출발해서 마게도냐로 올라가는 길을 잘 보십시오.


사도행전 20장1절을 보면 에베소에서 마게도냐로 곧바로 간 것처럼 니옵니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러나 바울 사도는 마게도냐로 가기 전에 먼저 드로아에 도착합니다. 고린도후서 2:12절 이하를 보십시오.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가기전에 먼저 드로아에 들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드로아는 옛날 목마전설로 유명한 도시인 트로이입니다. 물론 바울사도 당시에는 그 전설의 트로이는 폐허가 된 상태였을 것인데 그 인근에 새롭게 도시를 건설하고 드로아(트로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전도의 문이 열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냥 마게도냐로 갔다고 합니다 (고후2:13절). 그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뭡니까? 아직 고린도후서 2장 13절을 안 찾아보셨습니까?(고후 2: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빨리 가서 보십시오. 뭐라고 합니까? “내가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라고 합니다. 디도를 만나는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선교사가 전도의 문이 열렸는데 전도 하지 않고 그냥 마게도냐로 갑니까? 요즘 같으면 그런 선교사는 당장 송환하거나 파면하지 않을까요? 선교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하는데 복음 전할 문이 열혔는데도 전하지지 않았다면 당장 소환감이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께서는 왜 그러셨을까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디도를 만나지 못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였다고 합니다 그럼, 디도를 만나는게 왜 그리 중요합니까? 그가 “눈물로쓴편지”를 가지고 고린도로 갔는데 그 책망하는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가 회개하고  사도바울을 다시 사도로 인정하고 거짓 사도들과 고린도교회 내의 반대자들을 물리치고 교회가 견고하게 설지. 아니면 그 편지를 보고 오히려 격분하여 사도 바울을 더 멀리하고 그 결과 잘못된 복음이 교회를 사로잡을지가 큰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교회를 설립한 것이 수포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모든 바울의 사역은 악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그 일로 근심을 했는지 그 부분을 읽어 보면 근심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고후 2:1-8). 바울은 한시라도 빨리 디도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디도가 고련도에서 올라오려면 마게도냐를 지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마게도냐로 가고 싶 었던 것입니다. 마게도냐로 가는 길에 드로아에서 활짝 열린 전도의 기회도 마다하고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간 것입니다! (♣아직도 지도 속에서 에베소. 고린도. 드로아, 마게도냐를 확인 안 하시면 안됩니다. 이 설명들을 이해할 수 없고, 서신서도 못 읽습니다 ♣) 

그런데 드디어 디도를 만납니다(고후 7:5-7). 마게도냐에서 만났다 그랬으니까 빌립보교회 쯤일 것입니다. 만난 것도 감사한데 그 눈물로 쓴 책망의 편지를 읽은 고린도 교회성도들이 회개 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 바울을 반대하던 자들을 교회에서 치리하고 정리해서 교회 가 바로 되었다는 것입니다.(♣고린도 교회, 싸우기도 싸웠지만 이렇게 교회를 정돈하는 것 보면 대단한 교회입니다. 싸우는 교회로 샘플이 되기도 했지만 이렇게 멋있게 해결하는 것 보면 갈등을정리할줄아는교회로도샘플이 됩니다♣) 마게도냐에서 디도를만나 이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요즈음도 지도자를 놓고 갈등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 약 신실한 지도자를 괴롭히고 교회를 어지럽히던 사람들이 회개하고교회가 다시 잘 회복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혹시 경험해 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다들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고후  그래서 이런 기쁨속에서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마게도냐에서 쓴 편지 입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고린도후서가 읽혀집니다. 이제 한번 고린도후서를 열어보십시오. 전에 그냥읽던 때와는 기분이 다르실 겁니다. 사도 바울의 기쁨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1장에 보면 위로 받았다는 말이 여러번 나오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도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고린 도후서는 그간 사도와 고린도 교회 사이에 있었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는 극적인 기쁨 속에서 쓴 편지 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이런 스토리를 모르고 그저 읽으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유난히 이해할 수 없는게 고린도후서입니다. 로마서만 하더라도 내용이 좀 어려워서 그렇지 그냥 읽어집니다. 그러나 유난히 고린도후서는 정말 편지가 읽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연이 쌍방간에 있었는데. 그들은 알고 있어서 그냥 편지를 읽어도 이해됐지만. 우리같이 그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그 편지만 읽어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 사이의 이런 스토리를 다 알고 나면 이해가 잘 됩니다. 예를 들어서 고린도후서 2장 1절-8절을 이제 한 번 보십시다. 



“내가다시 근심으로너회에게 나아가지 않기로스스로결단하였노니 내가너회를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동때 한자부써 나를기쁘게 하는2까누구냐내가큰환난과애통한마음이 있어 많 은눈물로 너회에게 썼노니(y디B}갖고간편지y) ... 이는너희로근심하게 하려 한것 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회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회로 알게 히려 힘이라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찌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 느정도라 함은내가너무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이러한사람(문제 일으킨 장본인)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받은 것이 족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근심에 잠길까두려워하노라그러므로너회를권하노니 사랑을저회에게 나타내라’ (표준새 번역으로 읽으면 더 쉽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용건이 있었습니다.


생장점

그것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구제헌금’ 을 모으고 있으라는 부탁 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구제헌금 보내는 사역을 무척 중요시했습니다. 이방인교회들이 그들로부터 영적인 복음을 나누어 가졌으면 물질적인 것을 예루살렘 교회와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고린도후서 편지를 받고 미리미리 헌금을 모아두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마게도냐 빌립보 교회로 봄) 얼마간 더 머 무른 후에(실제로 한8개월 정도 있다가고린도로 갔다고봅니다. 헌금할 시간을 주려고...) 당신들 (고린도교인들)한테 갈텐데 그때 가면 헌금을 달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장소인 마게도냐 사람들한테 ‘고린도 교회는 헌금도 많이 모으고 있다고 자랑해 놨다’ 고 하면서 은근히 헌금 경쟁도 시키는 바울의 모습도 보입니다(고후 9:2-5). 고린도 교회가 평정이 안되었다는 소식을 디도가 가져 왔더라면 이런 헌금하라는 부탁은 하기도 어려웠을텐데 일이 잘 되고 나니까 한술 더 떠서 금방 이 어려운 부탁을 하는 사도 바울, 대단한 분이십니다. 대단한 추진력입니다


마게도냐(빌립보 교회거나. 데살로니가 교회거나 베뢰아 교회겠지요? 대체적으로 빌립보 교회 라고들 합니다)에서 디도와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바울은 맛있는 것도 많이 드셨을 것입 니다. 이제 소화도 잘 되었을지 모릅니다. 고린도 교회가 회개한 것만 생각하면 너무 기뻐서 하나 님을 찬양하고. 찬양했을 겁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 (고린도후서)를 써서 보내놓고는 그들이 헌금할 시간도 주면서 마게도냐 지역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약 8개월 정도 이 지역에 머무는 동 안 가만히 맛있는 것만 잡숫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y 로마서 15장 18-19절에 보면 일루 리곤까지 다복음을 전파했다고나오는데 바로이 8개월 여기 마게도냐지방에 머물면서 그전도 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y) 헌금할 시간도 주고. 그 사이 윗지방을 다니며 전도하신 것입니다. 이 얘기는 아래, 로마서가 끼어들어기는 자리에서 더 자세히 보십시다f’자. 이제 여기 일루리곤까 지 다 전도한 이후 이제는 드디어 그 속 썩였던 고린도 교회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도행 전 20장 2절입니다.


생장점

그렇습니다. 서신서는 이렇게 상황과 연결해서 읽어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디. 이제 사도행전을 읽다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깔고, 고린도전서는 고린도전서대로, 고린도후서는 후서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석 달 동안 고린도(헬라 = 그리스 = 아가야지방)에 머물러 있음 - 행 20:2하절, 3상절

로마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아! 드디어 이 고린도 교회에 왔군요. 세번째 방문입니다(고후13:1). 마게도냐 지방의 환송을 받고 바울은 고린도에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감개 무량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고린도에서 석 달동안 체류하게 됩니다. 그 동안 바울이 무엇을 했는가? 지중해는 겨울에 항해가 어렵기 때문 에 겨울을 난 것입니다. 겨울을 지나면서 그 동안 보고 싶었던 고린도 교회 식구들과 아주 감격스 러운 교제를 했을 것 입니다 겨울만 조용히 났겠습니까? 그러면서 여기서 로마서를 쓰셨습니다. 자 세한내용을이제 보십시다.

우선 이제 이쯤에서 사도 비울의 앞으로의 계획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지금이 3차 여행 중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 3차라고 하면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의 뒷 부분이라는 것 도 생각하십시오. 바울의 계획은 지금 무엇일까 궁금해 히쇠시오. 왜냐하면 사람이란 다 미래를 내다보며 사는 거니까요. 요즈음도 우리 주변에 선교사님들을봐면 한 텀씩 마치시고 안식년을 맞 으실 때마다그 다음에는어떤사역을 할지, 선교지를옮길지. 다른선교교육기관으로갈지 진로 를놓고기도하시는것을많이 봅니다. 우리는지금다른건 잘몰라도 이 시점에서 바울의 분명한 한 가지 계획은 눈치첼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위에서 얘기한 헌금문제입니다. 이방 교 회를 지금 다니시며 헌금을 모은 다음에는, 그것을 전달해 주러 가실 것이라는 행로입니다. 그러니 까 분명한 행선지는 일단 예루랩。l라는 λ}실을 짚어놔야 합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었을까요? 로마를 거쳐 서닙배{스폐인)까지 가시는 계획 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로마서 15장 22-2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로마 교인)에게 기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이 지빛L에 일할곳이 없고또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갈때에 너희 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히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회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섭기는 일(헌금전달)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아가야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중가난한자들을위하여 기 쁘게 얼마를 통정하였음이라.


생장점

여기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중요한 정보는 우선 이 고린도에서 과 동하는 3개월 동안 바울은 나름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싶어하는 심경이라는 것입 니다. “이 지방에는 일할 곳이 없고… ”라는 말입니다. 당신 사역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입니다. 이 생각은 여기뿐만이 아닙니다. 로마서 15장 18-19절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1.2.3차 선교여행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과거 선교여행한 그 모든일들을 추억하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순 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 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지금이 시점에서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라고말하는것은지금까지 사도바 울이 일해온 지역 전체를 둥그렇게 원을 그려 표시하고 있는 말입니다. 하루 종일 장사한사람이 번 돈 다 꺼내놓고 앉아서 얼마 벌었나돈 정리 하듯이. 지금 바울은 그 동안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다~ 전도했다’ 고 전도를 정리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루리곤이 어딜까요? 달마디아(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 . 덤후 4:10)와 통일 한 곳이며, 마게도냐의 서쪽 끝입니다. 로마 바로 전에 있는 아드리아해 동쪽지역입니다. 언제 사 도가 이 지역에 갔을까요? 사도행전에는 언급이 없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바울 사도가 마게도냐 에 있을 때 디도를 만나 좋아하던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 때 거기서 고린도후서를 쓰면서 헌금 준 비하라고 했다그랬지요?그 때 바울은 약8개월 쯤마게도냐에 머무는데 그때 일루리곤을간것 으로추측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고린도후서 편지를 보내놓고 나서도 여러 지역을 전도하러 다닌 것 같습니다. 이 일루리곤을 이 때 전도한 후 바울은 드디어 고린도로 향한 것 같습 니다. 바울이 일루리곤까지 전도했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3차례에 걸친 전도여행 행로 중에는 바 로이기간이 가장적합한때로볼수뱀l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쓸 때쯤 해서는 이제 선교의 일단락을 마쳤다는 사 실을거듭거륨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단원의 막을내리는듯한시점이라는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새 계획을 펼쳐야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보여 주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새 계획은 로마를 거쳐 스페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5장 22 - 29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왜 이 계획이 히필 로마서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바로 여기 고린도에서 과동하면서 로마서를 쓰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석 달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하셨는데 로마서를 쓰신 것입니다. 그 동안의 사역 을 정리하면서, 새 계획을 세우는데 그 새 계획이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과 관련이 있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로마서를 쓰게 된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때까지 바울 사 도는 한번도 로마에 가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거기에는 교회가 있었습니 다. 예수님이 유월절에 성전을 청결케 하고, 그 후에 수 많은 표적을 행하셨고, 역시 유훨절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 강림으로 떠들썩했던 것을 본 여 러 이방인들 중에 로마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경로는 몰라도 분 명한 것은 사도 바울이 직접 가서 전도하지도 않았는데 그 곳에 이미 교회가 있었 고, 그 곳의 많은 성도들은 이미 사도 바울과 교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전에 에베소에 같이 갔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만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 로마에 있습니다(16:3-20). (♣ 폭동으로 에베소를 떠날때 바울은 디도를 만나러 마게도냐로, 아굴라 부부는 로마로 떠난것 같습니다. 다음 선교지 로마를 위한 포석이 지요.♣)그밖에도 로마교회에 아는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과거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었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들은 바울 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친척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들, 친척 헤로디온, 나깃수의 권속,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 루포와 그어머니(바울은 이분을 자기 어머니라고 표현합니다),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와그형제들.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와 그자 매, 올름바와 그 성도 들입니다.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이제 드디어 내가 로마로 가겠다고 포석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용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용건을 풀면 이렇습니다. “내 목표는 로마를 지나서 스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는 길에 로마에 들를 수 있을것 같다. 지금까지 여러 번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못갔는데 이제 스페인에 가는 길에는 꼭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그 때 여러분들께서 나를 좀 후원해 주시면 참좋겠다. 지금까지 내가 일해 온 소아시아, 유럽 일대에서는 선교를 할 만큼은 다 한 것 같다. 여기서는 이제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여기 대도시 일대를 중심으로는 다 교회가 세워졌다. 이제는 로마 스페인 쪽으로 더 영역을 넓히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못 간다. 왜냐하면 여기 아시아와 마게도냐 유럽교회들이 모아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에 일단 전해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후에 가려고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편지부터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 곳 성도들에게 자신의 복음이 어떤 것인지 예리한 필치로 정리한 것이 그 유명한 로마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간의 고린도 교회와의 갈퉁이 원만히 해결되어 마음이 편안 하고 기쁨이 있었을 것이고, 또 스페인까지 7t려는 선교여정에 마음이 뿌듯한 상태에 있었을 것입 니다 그런 환경에서 로마서가 나왔기에 로마서가 로마서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바울 사도는 당신이 세운 교회는 아니지만 이렇게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봐봐라 는자매가로마교회에 전달해 주었습니다(롬16:1).


생장점

이렇게 해서 여기 3치여행 중 고린도에 머무는 시간이 로마서가 끼어 들어가는자리입니다. 우리도함께 고린도에 겨울동안머물면서, 바울이 쓴로마서 편지를 이런 무드 속에서 읽어봅시다. 멀리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에서 다루었던 문제들, 또 율법으로부터의 자유하는 내용 등을 한충 더 심화시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말한 ·자유’ 를 방종해도 좋다’ 는 뜻으로 받아들여 바울에 대해 악담을 퍼뜨렸습니다. 바울은 이 경험을 고려해서 로마서 를씁니다.6장1절에서 8장39절에서 도덕률 폐기론주의 (도덕이 필요없다는주의. 사실 바울은 그런 뜻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음)에 대해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바울의 복음셜명은 시간이 가면서 더 풍성해지고.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로마서 는 앞선 갈라디아서보다 복음을 깊이 있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런. 복음을 논증해나기는 날차로운 서술 속에서도 그는 간간히 자기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본 것입니다. 정말 지금 이 고린도에 있는 이 때야말로 과거를 정리하고 새 미래사역을 바라보며 조용히 정리하기에 좋은 시점입니다. 이제 새로운 선교의 무대를 바라보며 닝}울 사도는 부지런히 짐을 챙기십니다. 예루잘렘을 거쳐서 로마, 스페인으로 Jr.시려는 계획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분의 계획대로 스페인을 기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 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마에는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F’ 지금 여기 고린도에서 점을 챙기는 순간까지도 당신이 죄수의 몸으로 재판 받으러 로마에 가게 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셨을 것입 니다. 결국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에 헌금을 전해주러 가셨다가는 체포당하시고,2년 동안 가이사 랴 감왜 계시다가배를 타고 로마로 후송될 것입니다.y)


예루살랩행

고린도를 떠나 예루살렘에 가면서 바울은 혼자 가지 않습니다. 베뢰아, 데살로니가, 더베. 에 베소에서 온 동역자들과 누가, 디모데까지 동반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행 20 :4). 돈을 다루 는 문제니까 증인들과 함께 간 것 같습니다. 또 그들은 이방 교회의 대표로 통행한 것입니다. 시 간에 쫓기던 바울은 예루살렘에 내려가는 길에 에베소도 틀리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못합니다. 지난번 폭동 때 허둥허퉁 괴로운 마음으로 디도 만나려고 마게도냐로 올라왔었잖아요? 다만 교 회 장로님들이라도 만나볼 생각에 밀레도에 잠깐 내려서 만나자고 전갈을 합니다. 서로 부퉁켜 안고 ‘이제 가면 언제 오시나’ 하면서 울었습니다. 배타는 데까지 나와 전송하며 흐느낌니다(행 20:36-38).


생장점

자세한 얘기를 다 하고 싶지만 다 못합니다. 성경을 읽어 보세요. 얼마 나 재미있다구요. 이런 순간에 바울이 설교도 했습니다. 무슨 얘기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나의 달려갈길과주예수께 받은사명 곧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고 하는 그 유명한 구 절이 이때 장로님들께 한 말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냥 이런 구절을 읽는 것 하고, 이 절박한 헤어짐의 상황, 그것도 중간지점 밀레도에서 만나서 이런 말씀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읽는 것하고. 정말 다른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 게 됐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성경에 다 있어요. 본래 이 사도행전은 실제로 있 었던 일인데 영화스토리 이상 재미있기 때문에 그 맥만 잡으면 밤을 새워가면서라 도 볼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답니다. 지도 보면서 따라오십시오. 이런 설명을 일독학 교에서 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연결하면서 재미나게 성경을 여 러분 본인이 읽을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이 설명들을 차근차근 연구하듯 이해하 신 다음에는 여러분 성경으로 읽어야 되는 겁니다.



가이사랴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예루살렘에 가면 위험하다는 예언을 듣습니다. 이런 경고를 마 다하고 일행은 예루살렘행을 강행합니다. 물론 이방인 교회가 마련해 준 헌금을 가지고 갔습니다 바울이나야고보는그헌금이 유대인성도들이 바울에 대해 갖고 있는반감을해소해 주기를기대 했을수도있습니다. 


@ 예루실렘에서 체포, 로마행 (21:17- 끝 )

예루살램⇒ 가이사랴⇒ 시돈⇒ (배 타고, 구브로섬 오른쪽으로 돌아)⇒ 무라⇒ 니도⇒ 살모네⇒ 라세 아⇒ 미항⇒ 멜리데⇒ 수라구사⇒ 레기온⇒ 보디올⇒ 압비오저지(굉장)⇒ 삼관⇒로마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가능한 한 화평을 위해 양보를 한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야고보의 제안을 따라 결례를 위한 비용을 내고 함께 금식에 동참합니다(행21 :23-24). 유대인에 게는 유대인처럼 한 것이지요. 유대인 금식기간이 끝나갈 즈혐l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들을 데리고 성전의 이빙언 금지구역에 침입했다고 사람들을 선통하였습니다(행 V 21 :27-29). 성전오염은 심각한 죄였습니다. 로마 당국이 유대인들에게 자치적으로 심문하고 벌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몇 가지 안 되는 범죄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성전 문 위에 다음의 경고 문이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 아람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이방언은 성전과 그 구내에 둘러친 l 경계를 넘어올 수 없음. 위반자는 반드시 극형에 처하며 그 책임은 본인에게 있음.. 성전에서 바 울을 목격한 유대인들은 법정판결도 없이 현장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로마의 천부장이 그들을 구조했고, 산헤드린이 소집되었으며,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임을 주Ad-하면서 지신을 변호 하자 바리새파는 바울 편을 들므로 시두개파와 분열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가이사랴로 이송

바울은 총독의 공관이 있는 7에사랴로 후송됩니다. 미결수로 2년간 감펙l 갇협니다. 앞에서 분봉왕, 총독 등에 대해 공부했었던 것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헤롯대왕이 죽으면서 세 이들에게 영토를 분배하는 바람에 헤롯 안티파스, 헤롯 아켈라오. 헤롯 빌립이라는 세 분봉왕이 퉁장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유대 예루살렘지역의 분봉왕이었던 아켈라오끼} 정치를 잘 못해서 로마 가 파면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대신 로마에서 총독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로 후송된 이 때는 A.D. 58-60년 경인데 지금 이 당시는 헤롯 아그립바 2세가 왕으로 있었고(대헤 롯이 다스리던 때처럼 땅을 많이 가졌었다) . 벨릭스라는사람은 유대 예루살렘지역 총독으로 있 었습니다. 체포 당시는 벨릭스가 총독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가 바울을 심문핸 내용이 나옵 니다(행 23:12-24). 유대인들이 성전오염, 사회혼란 죄까지 붙여 닙움을 고소하였기 때문입니 l~ 벨릭스는 바울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뇌물을 받을 혹십에서. 또 바울을 방면하면 유대인들이 다시 말썽을 부릴 것을 염려해서 소송처리를 연기합니다. 벨릭스는 그 이후 자기에게 관련된 다른 여러 사건들을 해명하러 출두명령을 받고 로마로 불려갑니다. 벨릭스 총독의 입기가 끝나게 되었 고베스도가그후임으로옵니다.(y그래서 벨릭스도나오고. 베스도도등장합니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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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릭스의 후임 베스도는 바울의 기소 이유를 듣고 예루살렘으로 이송해서 심문하자고 제안하 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암살 위험과 로마행이 지연될까봐 로마 황제 앞에서의 재판을 요구합니 다. 베스도는 바울이 황제 앞에서의 항소권을 주?늄바 당혹감을 느낌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송사 이유가 약하기 때문에 황제 앞에 올헐 조서에 쓸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베스도 총독의 임직을축하하기 위해 찾아온사절단헤롯아그립바2세.그리고이 헤롯의 누이 버니게가 동석한 자리에서 바울을 불러 심문하는 얘기가 이어집니다.<y 바울은 여기서 그 유명한 개인 구원간증을 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보통 제자훈련 받을 때 개인 구원간증 연습을 하는 데 그 샘플 로따서 쓰는그간증입니다.y)


드디어 로마를 흔*해!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향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2년 전에 체포되 어서 가이사랴 감옥에 있는 동안 바울은 스스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아, 차라리 잘 됐다, 로마 가이사에게 상소하자, 그래서 로마로 가자 하고 말입니다. 바울이 스스로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 겠다고 한 것 보면 말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바울은 로마로 갑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대통하 고 떠났는데 이것은 바울이 특별대접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로마 상류층의 사람들이 보통 종 두 명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당하는 우여곡절은 성경을 통해 보십시오. (‘F 너무 재미있습니다.y) 당시 팔레스틴에서 로마까지는정기적으로죄수들을운송하는일이 있었습 니다. 이 죄수들은 로마의 원형경기징에서 검투사를 하거나 혹은 짐승에게 잡혀 먹히는 것을. 십 자가형보다 차라리 원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들어갑니다. 로n에 도칙해서도 또 2년 동안 구금됩니다. 사도행전 28장 30-31절에 보면 비교적 자유스러운 옥중생 활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사도행전이 끝납니다.


바울의 선교여행거리 개관

바울이 선교를 위해 여행한 거리는 모두 몇 마일쯤 될까요? 바이젤(Beitzel) 교수는 약 13,400 항공 마일(뉴욕, 한국간 왕복 거리)이라고 합니다. 항공 마일이란 직선거리로 계산할 때 사용하는 단위입니다. 이 수치는 사도행전을 중심으로하여 계산한 사도바울의 선교여행 거리인데 실상은 더 될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에 기록되지 않은 여행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2 차 고린도 방문(고후 12:14,13:1), 난파의 경험(고후 11:25), 그리고 스페인 여행을 했다면(롬 15: 24, 28), 훨씬 더 긴 거리들입니다.





사도바울의 여행 목록 ? 거리


 

 

 

 

 

 

 

 

 

 

 

 

 

 

 

 

 

 

 

 

 

 

 

 

 

 

 

 

 

 

 

 

 

 

 

 

 

 

 

 

 

 

 

 

 


행9:1"'30 예루살램다다메섹며(아라비에며예루살랩다다소 690마일(아라비아 여행 제외, 갈1 :17"'19)

행 11 :25"'26 다소양안디옥    90마일

행 11:30"'12:25

(갈 2:1"'10)

행 13:4"'14:28       1차 선교여행   1.400마일

행 15:12"'30 안디옥며예루살램며안디옥        560마일

행 15:39"'18:22      2차 선교여행   2,800마일

행 18: 23"'21:17 I 3차 선교여행      2,700마일

행 27:1"'28:16       로마여행        2,250마일

행 28:30

담후 1:16"'17

딩후 4:6.13 1차로마 감옥 수감이후의 여행 (그레데, 드로아, 마게도냐 지역) 2,350마일

담전 1:3

딛 1:5,3:12

’ 총합계 13,400마일

2. 사도행전 이후의 사도 바울


생장점

사도행전이 끝나는 것으로 바울 사도의 사역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그 생각을 완전히 버 리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끝났지만 사도 바울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다른 서신서 들과 초대 교회 교부들의 증언을 연구해 보면, 사도 바울의 그 이후행적을 찾아낼 수 있는 정보틀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걸 마저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바울의 서신서 13권 중에서 우리가 다루지 않은 서신서들은 어떻게 해서 나 온것인지 알수가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직 잘감이 안잡히시지요?비울 서신 13권이 사도행전과 몽땅 다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업니다.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연결하면서 읽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막상 보니까 모든 서신서들과 사도행전을 연결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 연결되었으면 서신서틀을 이해하기가훨씬 쉬웠을텐데 ..

아직도 조금 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도행전을 정리하면서 데 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갈라디아서(갈라디아서가먼저일 수도있음), 고린 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만 사도행전 여행경로 속에다 끼워 넣었습니다.6권뿐 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서신서 13권을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7권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걸 찾아내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행적이 사도행전 28정에서 그 이후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다음 세 부분으로 요약이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요점 정리니까 무조건 팡광 외워두십시오. 왜 이렇게 되는지는 이제 하나 하나 설명하면서 서신서 7권이 끼어들어가는 자리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차 구금상태 2년 간{AD. 60""'62): 사도행전의 마지믿벤 28장의 상태

4차 선교여행이라고 불리는 기간(AD. 62"'66): 디모데, 디도 등과 활동

2차 구금상태(A.D. 66"'67경): 4차 선교여행 이후 바울의 임종이 가끼운 때


1) 1 차 구큼(행28장 끝)

/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세 옥중서신)가 끼어 들어가는 차리


사도행전 28장 끝에 가면 사도 바울은 1차 구금상태에 있습니다. 그 것은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미결수로서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미결수는 당시 자기가 집을 얻어서 살 수 있었고, 약간의 제한만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셋 집”에 살면서 (2년 동안 재판을 기다리면서) 찾아오는사람들에게 주 예수와하나 님 나라를 전하고 가르친 것입니다. 드디어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마에 오긴 왔는 데 죄수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로웠기 때문에 만날 사람들을 다 만났을 것입니다. 누가 찾아왔을 것 같습니까? 전에 봐봐 편에 보냈던 로마서 편지에 등장한 인물들이 안 찾아왔겠습니까? 아마 그랬겠지요? 그러면서 2년 동안 복음을 전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늘 아시아와 마게도냐에 있는 성도들이 그리웠을 것입 니다


바로 이때 바울사도는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그리고골로새 교회에게 편지를보법니다. 또 빌 레몬에게 보내는 빌레몬서를 썼습니다. 바울이 이 1차 구금당시를 지나는 동안 。}마 도망나온 노 예 오네시모를 만난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네시모는 바울이 알고 있는 골로새교회 지 도자 빌레몬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를 용서해 주고. 자기와 함께 있게 허랙R 달라는 개 인적인 일로 빌레몬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 상황을 생각하고 이 옥중 서신들을 읽어 봅시다. 그러니까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는 전달 장소가 같겠지요? 또 이 골로새 교회와 에베소 교회는 그 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두기고(편지 들고 간 사랍)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한꺼번에 갖고 갔을 것입니다. 이 때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끼} 두기고와 동행합니다(엠 6:21, 골 4:7). “두기.?U}내 사정을 다 너회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사랑을 받는 형제요 .. .중략 ... 신실하 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회가 여기 일을 다너회에게 알게 하리라(골4:7~9)."

골로새서,빌레몬서, 에베소서(다소아시아지역)가한묶음이고, 벌립보서(마게도냐)는나중에 뻐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빌립보서는 다른 감팩l서 쓴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 지요. 어쨌든 빌립보서는 에바브로디도(벌 2:25)를 통해 빌립보에 전해집니다.


2) 4차 전도여행(62-66넌)

디모데전서, 디도세목회서신)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위의 옥중 서신도 다 쓰고 난 이후. 사도 바울은 2년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납니다. 1차 구금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어떻게 재판이 되었는지는모르지만아마잘된 것 같습니다. 바울은자유의 몸 으로 로마를 중심으로 4-5년을 활동합니다. 그가 로빼 보낸 면지대로 로마 성도들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을 갔다 왔는지에 대해서는 그 후 성경기록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록으로 남아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와 디도와 함께 계속 전도활동을 했다는 사실입 니다.


딤전,딛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시면서(이건 2차나 3차가 아닙니다.4차입니 다) 기는 길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떨어뜨려 놓습니다(덤전1 :3), 또. 디도와 함께 그 레데섬에도 기셨다가 디도 보고 거기 남으라고 하쉽니다. 그레데 교회를 목회하도 록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 사도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잡혀 갔다가 풀려나 서 로마 일대를 전도 하셨겠지만(또 스페인에도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한 때 마게 도냐로, 지중해 연안으로 또 전도활동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게도냐에 계실 때 언제인가, 에베소와 그레데 섬에 목회하라고 떨어뜨려 놓은 두 사람, 디모데와 디도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서신 이라고 불리우는 서신입니다(디모데후서는 나중에 또 2차로 감옥에 갇힐 때 기록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도 바울의 4차 전도여행 시기는 목회서신 디모데전서와 디도서가 끼어 들어가는자 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빌레몬서를 읽은 다음, 다시 디모데전서를 읽는 것입니다. 무슨 생 각을하면서 읽어야할까요?그렇습니다. ‘로마에서 감금생활하시다가풀려나셔서. 또다니시며 전도하시다가, 디모데를 후계자로 에베소에 떨어뜨려 놓고 목회 잘 하라고 쓴 편지구나’ 이런 생 각 말입니다. 또 디도서도 그렇게 읽읍시다. 디도는 참 충성스러운 바울사도의 동역자인 것 같지 요? 이렇게 그어려운 고린도 교회 문제 다해결하고 그 이후로도 계속함께 하다가마지막에는 또 그레데섬에서 목회까지 하니 말입니다.


(♣ 이 지점에서 예수님 생각이 납니다. 부활하신 이후 이제 조금 있으면 떠나야 되는 시간이 다가오실 때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부틱하신 말씀입니다. 페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 선생님들은 이렇게 잘 훈련시키신 다음에는 독립적으로 목회하도록 하십니다. 제자들을 잘 키워 서 또 목회하도록 하는 것. 우리의 할 일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얻은 자들이 목놓아 외치 며 전파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교핸 것입니다. 목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방향성이 요. 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사명 없는 구원. 그것 참 문제입니다.♣)



3) 2차 구금 (66-67)

디모데후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딤후 A.D. 64년에는 그 유명한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릅니다. 미친 거지요. 새 로마를 건설하고 싶다는 이유로 불을 놓습니다. 이 화재를 기독교인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이후 막무가내로 기독교인을 잡아들이는 박해가 발생합니다. 사 도 바울은 이 로마 대 화재 이후 또 다시 투옥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감옥이 전에 1차로셋집에 머물면서 있었던 때와는다른감옥입니다. 이 2차감옥 생활을 자세히 말해 주고 있는 편지가 디모더l후서입니다. 그러니까 이 디모데후서가 바울 서신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되는 편지입니다. 디모데후서를 끝으로 사 도 바울의 체취는 성경에서 사라집니다. 디모데를 간절히 보고싶어 하며 자기를 면 회 와 달라고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입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이 추위를 대비해야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자기 겉옷을 가지고 빨리 오라는 것입니다. 드로아에 살고 있는 ‘가보’ 라는사람네 집에 아마 바울사도가 그 겉옷을 놔두었던 모양입니다(딤후4:13). 올때 그겉옷하고가죽에 싼책(아마 구약성경책인 것 같습니다)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바로 이런 흔적들이 바울 사즈ξ가 2차 구금으로 또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내용입니 다.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펀지이기 때문에 공식예배 는 어때야 하는지, 감독이나 집사는 어때야 하는지 . 노인들. 과부들, 장로들을 대히는 태도는 어때 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가르쳐 줍니다. 노 스숭 바울입니다. 네 연소함을 인해서 업신여김 받지 말 고 권위를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보낸 이 편지를 이런 무드 속에서 읽어 보십시오. 여기가이렇게 디모데후서가끼어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생장점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과 사도바울의 모든서신서를 읽어야 할 순서대로 정돈을 했습니다. 서신서 순서대로 말하라고 한다면 이렇습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 갈라디아서(갈라디아서가 먼저일 수도 있음.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골로새서, 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디모데전서, 디도서, 디모데후서입니다.

위의 순서를 사도행전과 연결시켜서 여러분들이 이해한 것입니다. 한번 읽는다고 다 이해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사도행전과 연결해서 지나온 내용을 골격으로 삼고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읽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 내용들을 읽으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 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출발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는 이렇게 온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 동안 등장했던 신실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이 군사되어 싸워 온것처럼, 이제 우리들도 똑같은 그 나라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9장부터는우리가 씁시다.


3. 나머지 공동서신들

사도행전과 13권의 바울 서신서가 끝났다고 해서 신약성경이 다 끝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공동서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을 처음 시작하면서 이야기했듯이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복음서 와 사도행전에 연김되는 그 서신서들. 이 렇게 두 큰 기둥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이 큰두기둥을다세우고보니 공동서신서틀이 이제 남은것입니다.어쩌면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으실지 모르겠습니다사도 바울의 서신은 이렇게 사도행전과 연결된다는 걸 알겠는데 신약의 나머지 서신서들은 사도행전과 연결이 안됩니까? 예를 들면 베드로전후서 , 야고보서 , 요한의 서신서들 말입니다..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당f해 드린다면, 연결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이 모든 사도들의 행적을 다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는 것옴 아시지요? 예를 들면 야고보서의 저자인 예 수님의 통생 야고보의 행적은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정도이고. 예수님의 동생이고 야고보의 동 생인 유다 역시 사도행전에는 등장쩨도 않습니다. 비록 그가 유다서를 썼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요한 1,2,3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사도행전에는 등?J하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아직 서신 서들을 쓰71 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선 사도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베드로께서 도 베드로전후서를 쓰셨지만, 사도행전에 동장히신 때(1-12장)는 아직 그 서신서들을 쓰시기 훨 씬 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서신 이외의 다른 서신서들이 사도행전과 연결 안되는 것은 당연한 일 이겠지요. 물론 고린도교회에 베드로가 방문한 것 같긴 하지만 베드로서신서와는 연결이 시키기어렵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이 원기 어렵지. 나머지 공동서신은 한 권씩 이런 초대 교회 분 위기를 상상하며 읽으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얘기를 하쉽시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요한복음이나 요한 1,2,3 등 을 기록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같은 것은 ‘요한. 이라는 한 사람 의 성격과 경험과 인생경로 속에서 발견한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I' 그 사건을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해석하기도 하고 주석을 붙이기도 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즉 요 한이라는사람을 통과해 나온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이해하고 깨달아서 쓴 책이 아닙니다. 그냥 쏟아져 내리는 환 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보이는 장면들을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습 1 니다. 그 장면을 기록하기는 해야하는데 힘들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섭 리 가운데 성경 중 가장 Dr?;]막에 그 위치가 놓여졌습니다. 아마 요한 자신도. 베드로도, 바울도 그들이 기록한 편지나 예수님 사건에 대한 얘기들이 성경이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후에 역사 가 흘러가면서 이것이 정경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한 계시록이 구약 창세기부터 흘러 내려오 i 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이 왕이심을 선포하는 이 하나님 나라 운동’ 이 이제 완벽하게 영광 중에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며,I 바벨론으로 지칭되어온 이 세상나라들은 결국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즈음 뉴에이지 영역에는 수많은 계시 기록자· 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닐 도날드 월쉬라는 사람은 자기 가정이 파탄되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 인생의 질문들을 갖고 번민하고 있었는데 새 l 벽 3시만 되면 신이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수많 은 질문들을 하며 그 신과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한 것이 책으로 출판되어 우리 | 나라 말로도 ”신과니눈이야기 1,2,3"으로번역이 되었고. 그사람을중십으로단체가홈페이 | 지에 형성되어 세계적인 조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탄은 대체적A로 이런 환상이라는 무의식을 이용해서 계시를 주는 것처럼 인간을 속입니다. 과거에도 이런 방법으로 이단들이 생져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경기록 방법은 정상적인 한 사람의 생애 속에 경험된 하나님을. 의식을 가 진 상태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쏟아져 내리는, 그야말로 환상을 보고 기록한 i 것이 바로 구약의 에스겔, 다니엘의 일부와. 신약의 요한계시록 둥입니다. 인간 저자를 넘어서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보여주시는 환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만일 이 성경이 진정 하나님만이 저자시라면 에스겔이나 다니엘, 요한계시록이 다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도 그 내용이 짝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저자시니까. 구약이 끝날 때도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여 주셨고, 신약이 끝날 때도 성전을 보이심으로 마감하 십니다. 에스겔은 앞으로 새로 세워질 성전을 이상 중에 보고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 램 성전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다시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 예언 대로 유다지파들은 성전을 재건합니다. 정전재건. 은 무엇을 암시합니까? ‘왕권의 도래’ 입니다. 왕이 임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약 끝도 이제 왕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좌소인 성전 재건으로 끝나더니 신약의 끝도 똑같습니다. 요한은 한 사람의 노예 노동자로 로마제국 아래 서 돌을 깨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새 예루살렘성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그 요한의 손을 벌어 D~지막 결론을 주시는 것입니다. 멸망하는 것 같아도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 환상을볼때 죽은자처럼 되었다고했습니다(계 1 :17). 예수님과이 땅에서 같이 사 는 동안 그 품에 기대어 살았는데 지금은 그 인자 같은 이 앞에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우주의 왕, 창조주 왕이셨다는 것입니다. 인자 같은 이라고 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이 ‘인자 같은 이. 는 다니엘이 봤던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오시 기 600년 전에 다니엘은 이 ‘인자 를 보았습니다.700년 후에 요한은 그 인자를 보았고 그 인자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묵시입니다.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 마지막에 정리될 이 하나님의 나라를 최종적으로 영 광스럽게 마무리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인류에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 게 주산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솔직히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무슨 말언지 정확히 잘 모릅니다. 인간의 언어와 문장 해석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버전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루합니다. 그러나 위에 서 설명한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 위대한 피날레를 그 띄약볕 아래서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읽읍시다.


생장점

많은 분들이 이 요한계시록이 읽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도핑계입니다. 정말그내용이 알고싶으면 주석 갖다놓고보면서 읽으면 웬만큼 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을러서 힘든 것입니다. 도래하고야 말 영광스러운 그 나 라를 바라보며. 소망중에 원읍시다.




10과 성경일독학교를 마치며


1. 성경일독학교의 결론: 선악과


이제 10과. 마지막 과에 우리가 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9과 사도 바울의 활 ;으로 이제 전 세계를 무대로 쓰고 있습니다. 어떤 변에서 보면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성경 역사 는 부분 부분의 나라들을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가 결국에는 세계 전체 사람들에게로 나아갑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창세기 10장의 노아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결국 이 모든 인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류에게 하나님은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필요하긴 했습니다. 왕좌를 드리려니 그 왕의 통치를 받아야 하니까 싫고, 살다보니 하나님이 아 쉽고...그래서 인류문화는능력 있고힘 있는 자람’이 결국왕어 되어 그를중심으로공동체를 이뤄가다가 ‘하나님들 을 창조했습니다. 그탬게 맞는 ‘하나님. 이 창조되다 보니 인류 역사가 흐르면서 여러 종교가생겼습니다. 그러나 사람’도진정한왕이 될 수없고 ‘인간이 창조한하나 님. 도 우주적인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람과 만물을 창조하셔서 그것들에 대해 권리가 있으 신 참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성경이 하고 있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권자이시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우 리의 아버지이시다. 피조물인 인간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래서 그 왕의 권리를 역사 속에서 주장해 오셨습니다. 어떻게 주징송없습니까? 때로는 홍수로, 때 로는 언어를 흩으심으로, 때로는 유황불로, 때로는 전쟁으로, 때로는 지진으로, 때로는 내어버려 두심으로 세상나라들을 심판해 오셨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도 당신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세계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이 라는 가시적인 나라로 부각시키십니다. 세상의 나라들은 결국 다 멸망할 것이지만 이 나라는 영원할 것이라는 주제로 말입니다. 하나 님을 떠난 인류역사 속에서 .은혜를 입은 자 들을 불러모아 공동체를 형성해서 ‘하나님 나라’ 를 만들어, 당신의 존재를선포하시고. 당신의 권리를주장하셨습니다.

이 것이 바로 우리가지금까지 1과부터 9과까지 해 온 얘기입니다. 구약과신약66권에서 하고 있는 것이 결국 그 얘기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주제를 하나님의 섭 리 가운데 오고 오는 인류에 게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진리입니다. 나이아가라폭포에서 폭발적인 힘으로떨어지는그물살은 명지를 흘러가면서 얼마나 도도하고 장염하게 흐릅니까? 진리는 도도한 것입니다. 유일한 것입니 다. 정경’이라고하는책은공중에 떠 있는사상집이 아닙니다. 역사와무관한사색의 책이 아닙 ‘ 니다. 이 진리의 클라이막스는 그 ‘왕’ 이 직접 인류 역써1 등장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직접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멀리 외국에 가 있다고 주인을 무시한 채 주인 노릇하고 있는 종업원들이 있다고 칩시다. 주인 이 결국은 안되겠다 싶어서 종업원들 있는 곳에 돌아왔다고 칩시다. 그 종업원들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말하자면) 박살이 나야 각본이 맞는(?) 겁니다.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사 실 이런얘기는이미 성경에서 예수님이 비유로여러 번하셨습니다). ‘왕’의 출현과함께꼭그런 일이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렇게 생각해서 그의 메시지의 주제는 심판이었습니 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구약의 역사 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리시다 드디어 인간의 몸을 입고 들어오실거면 본때있게 왕 노릇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패가 왕이다” 하셔야 되는데 그 게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왕으로 둥장해 놓으시고는 그렇게 힘없이 죽으시는가? 사실 곰곰히 생각하면 그 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 주리를 틀고, 각을 떠서 내장을 다 꺼내 불로 태워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그 왕은 그런 생각이 안 나시나(7) 이겁니다. 왜 안나시겠습니까? 그래서 목을찔러 피를흘려 죽이고.조각조각각을떠서 내장도다꺼내 갖고불로태우는번제를요구했 습니다. 그 죽이는 방법을 세세히 기록하셨습니다. 채찍으로 때려 살점을 묻고. 십자기에 못박아 죽이고 피를 쏟아 죽이고 나서 옆구리를 찔러 확인 사살하고 싶은 게 그 왕의 심정이었습니다. 그 걸 왕 자신이 자기한테 했디는 겁니다. 표현이 너무 심합니까? 사실대로 말한 것입니다. 아무 것 도 덧붙인 것이 없습니다. 솔직히 이게 성경의 내용입니다.


그 왕은 사랑의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성경은 자랑. 이라고 부릅니다. 인류 역사 가 운데 일어난이 엄청난사건을실제로경험한제자들은소리치지 않을수없었습니다. 평범한 범부로 살아가던 그 사나이들의 생애 속에 경험된 이 사건은 세계 역사를 뒤집는 다이너마이토르가 되 었습니다. 시실은 우리 모두도 정상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하나님의 죽음 밑에서 ‘’악!-.:’ 하는 소리를 질러야 정상일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입니다.


오늘날 이 복음은 글자 속에 갇혀서 쓰레기처럼 취급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의 풀 스토리를 다 공부하신 일독학교 학생 여러분들은이 처절한 “왕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고통콕하는경험이 한 번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마리 짐승처럼 피투성이가 되어 영문밖에 매달려 있는 “왕의 죽음” 이 가슴에부딪혀 와서 제 정신 못차리고목놓아울어본사람이라야비로소제정신이 드는사람입니 다! 그 사람이 복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복 있는 그 사람이 지르는 이 ‘외마디 비명소리’ 는 앞으료 그사람이 실。}기는인생 길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외마디로 밖에는표현할수없 어도, 이 소리에는 수많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구약부터 공부해 온 그 내용입 니다. 1과에서 9과까지의 내용들입니다. 이 성경의 모든 내용들이 우리의 영혼을 뚫고 지나가면 우려는새로운충동이 생겁니다. 이 사실을말하고싶은것입니다.세상을횡빼 소리치고싶은것 입니다.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야고보는, 베드로는, 사도 바울은 그들의 목숨이 끝 나는 순간까지 이 ”왕의 사랑”을 목놓아 외쳤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사람이 쓴 것입니다. 요한복 음, 사람아 쓴 것입니다. 사도행전, 사람이 쓴 것입니다 글로 소리를 친 것입니다.  


이 ·사랑의 왕· 의 발에 입 맞추고 항복한 백성들은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 권히 그 나라의 백성으로, 아들들로 살 것입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추상개념이 아닙니다. 교리가 아닙니다. 이것이 실제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똑같이 육체를 입으셨다가 부활하 신 것입니다. 그 왕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도 그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것입니다. 그 왕이 지금 존 재하고 계신 방식처럼 우리도 꼭 그렇게 존재할 것입니다. 제발 이 부활과 천국을 교리로만 생각 지 마십시오. 이게 보여야 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결국을 봐야 합니다. 본 게 있어야 기다리지요I? 뭐 본게 있어야그게 영광인지 알지요!?


사도바울처럼 삼충천경험을하기라도했으면그고난이 와도우리도침을텐데, 그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할벤데. .. 나중에 나타날 결국을 확실히 본 사람이라야 억울해도 참을텐데 '" 나중에 확실히 가부간에 심판하실 것을바라보는사람이라야일일이 다해명하지 않아도 괜찮을텐데'" 나중의 영광을 확실히 알아야잠잠히 참고기다렬텐데.. . 그 영광을못 본 채 종교생활로 교회에 다니니 늘 삶이 와글와글하는 것입니다. 소위 도가트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우린 어떤 의미에서 도사가 되야 합니다. 그러나 ‘왕의 죽음’ 아래서 숨 죽이며 꺽꺽 울어 본 사람은 이 영광이 보입니다(마5:4). ‘왕도죽었는데’ 하며 죽습니다(롬8:13), ‘왕도부활하셨는데’ 하며 죽음을두려워하지 않습니다(행20:24). ‘왕도 억울했는데’ 하며 펄펄 뛰지 않습니다(막 15:65), 왕도 고생했는데.... 하며 고생합니다(고후11 :23-27).



생장점

무엇입니까? 자기 맘대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왕 맘대로 사는 삶입니 다. 그게 성경일독학교의 결론입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왕에게 순종하는 삶’ 입 니다

사랑하는 일독학교 학생 여러분!

아무리 깨달아가며 성경을 일독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결국 성경은 이런 왕을 알고, 그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읽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을 거면 뭐하러 읽 습니까?또그 ·순종. 이야기냐고요?그렇습니다.또그얘기입니다순종’ 얘기로 이 일독학교를 끝내려고 합니다.

성경 앞머리 창세기 3장에서 첫 번 왕싸움이 일어났던 현장, 선악과 나무 밑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그 선악과에 대해 얘기합시다. 세포 가운데 있는 ‘핵’ 이 한 생명 체를 규명하는 모든 정보를 품고 있듯이, ‘선악과. 는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명하는 모든 중요한 정보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 역사의 본질인 첫 번 왕싸움 선악과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로 시책R서 다시.선악과 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선악과 얘기는 신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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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악과, 그것이 얄고 싶다

우리는 교회에 다닙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배우는 내용은 ·예수. 입니다. 그 예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이걸 믿으면 구원을 받고. 안 믿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팩로부터의 구원”이 그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 죄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원죄라는 단어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화석처럼 굳 어진언어라고느끼면서 .. .










생장점

교회 다니는우리 보통사람들은이 대목에 와서 다한마디씩 하고싶 은말이 있습니다..왜 하나님께서는선악과를만드셔서 인간을죄에 빠지게 하셨는 가? 인류 죄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닌가? 죄에 빠지게 해 놓으시고. 또 구원승낸다 그러시고, 뭐 그렇게 복잡하게 하실 이유가 뭔가? 아예 만드시지 않았으면 우리가 죄도 짓지 않고 좋았을텐데 .. 이런 것들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 돌아가신 것은 믿으면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창 세기3장의 얘기는믿지 않고 있다는사실을발견하질 것입니다. 예수사건은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으면서, 선악과 사건은 신화라고 정리한 것입니다예수’ , 그는 2,000년 전이라는 역사 속에 분명히 살았던 인물로 믿으면서 아담。l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만화 같다고 생각합니다. 큰일날 일입니다.


생장점

‘선악과 사건’ 에 대한 분명한 자기화작업, 현실화작업, 역사화작업이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은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신화에 뿌리박고 있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만빼 접붙인 구원인 셉입니다. 창세7] 3장 이후 흘러옹 성경 역사의 클라이막스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분명 이 선악 과 사건과 가장 근본적인 연결점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은혜를 구히쇠시다. “선악 과”에 투영되어야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예수복음”을 이 시간 잘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공부하십시다.


우선 선악과를 공부하기 전에 밝히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선악과’ 는 사실 꼭 붙어 다니는 다 른 짝이 있습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사실은 앞뒤를 이루는 다른 짝이 있습니다. 선악과 명령은 유명한데 이 다른 명령은 유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유명하지 않은 다른 명령이 더 근 본적인 명령입니다. 이 근본적인 명령에 부수적으로 붙어 있는 것이 선악과명령인데 오히려 근본 적인 명령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근본적인 명령 얘기부터 해야 선악과가 거기에 붙어 퉁 장할 수 있습니다.


1) ‘선악과명령’  앞에 붙어 있는 근본적인 명령


모세만하더라도시내산에서 수없이 많은 명령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 기 동을 원어 보면 그 자세한 법 조항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적어도 200-300만 명이 얽혀서 살 아야 하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는어떻게 관계해야하는가 하는것과, 이스라엘 백성들끼리는어떻게 관계해야하는 가 하는 것이라고 기본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수도 없이 많은 명령을 받았지만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사람에게는그낱낱의 계명들이 일일이 필요하지 않을것입니다. 법보다고둥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약에서 율법은 위로 하나님을 사링하고 옆으로 이 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하신 것입니다) .


마찬가지입니다. 최초의 사람아담, 하와가아직 아답안에 있을때, 가인과아벨이. 그리고온 인류가. 그러니까내가그아담안에 있을때. 창조자하나님께서 그에게도명령을주셨습니다. 우 리 생각에는그게 바로 ‘선악과명령’일 것이라고쉽게 생각할지 모르는데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디자인하신 기본 아이디어는 어디에 초점을 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설정·’입니다. 과학적인 환경(산소. 태양 과지구와의거리.물,식량00-),정서적인환경(예술적인디자인.칼러 조화... )들을만드시기까 J 지 인간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열대어 두 마리를 위해서 어항을 사고, 뽀글뽀글 산소 공급 기를 설치하고, 자동 용도조절장치를 부착하고, 형광등을 설치하고. 자동 정화기를 설치하고, 물 을 붓고(과학적인 환경) 그리고 나서는 한숨 돌리며 준비했던 하얀 왕모래를 조심조심 깔고. 예쁜 l 물풀을 그 속에 뿌리 박고. 색색의 투명한 유리구슬도 몇 개 떨어뜨리고. 동굴처럼 생긴 돌도 한 F 쪽에 놓아 주고(정서적인 환경) . 그리고 나서야 물이 담긴 빵빵한 비닐 주머니 속에서 멋모르고 헤엄치고 있는열대어를사르르놓아보내는것과같습니다. 자 이제 그다음순간을상.AI-o해 보십 시오. 요 순간을 상상할 수 있으면 우리가지금 말하려고 하는 주제인 근본적인 명령을조금 이해 할수있을것같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 키우려고 지금까지 노력하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너무 만족하고 기뽑니다. 그 l 렇다면, 여러분이 만일 지금 이 물꾀를 사르르 놓아보내는 순간이라면. 그 절묘한 순간에 물고 기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없겠습니까? 있겠지요? 그러면 그 말이 무슨 말이든지 간에 그 마음의 동기가사랑이겠습니까. 아니면 미움이겠습니까? 사랑입니다.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행복 하게 잘 살아야 돼 . .. 마음대로 여기서 돌아다니며 살어. 여긴 네 세상이야. 새끼까지 낳으면 얼 마나좋을까..


생장점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디자인하셔서 최대한의 솜씨 로 과학적인 환경파 정서적인 환경을 셜정해 놓으시고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 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수고한 것이 바로 이 ‘아담’· 때문인데 드디 어 주인공이 탄생했습니다. 이 절묘한 순간에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셔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똑같습니다. ‘행복해라’ 여기 있는 만물들은 바로 너를 위해 지금까지 내가 준비한 것이다. 대단하지? 뭐든지 해봐. 내가 별 걸 다 숨겨 놓 았지. 잘 찾아봐. 신기한 것들이 많을 거야. 잘 살아 봐. 생육하고 번성해라. 내가 만든 이 세상을 정복하고 개척해 나가봐라. 정말축복한다.. 바로이 축복의 명령이 근 본적인 명령입니다.

창조라는 작업을 마무리하시면서 점을 찍으시는 말씀입니다. 이 순간 축복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까? 하 나님으로서는 바로 이 축복의 말씀 한마디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찰라 에 그 축복의 밀씀에 덧붙이실 말씀이 있었던 겁니다. 부록입니다..참! 너는 내가 만들었어! 살면서 날잊지마," 이 말입니다. 패가널 만들었어'" 이게 ·선악과”입니 다. 이상합니까?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하면 내가 너를 만든 주인 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옳지, 저-기, 저 나무 보이지? 저기 동산 가운데 주렁주렁 열매있는 나무! 저 나무 열매는 먹지말고 그대로 놔 둬라. 네가 저 열매를 먹지 않고 그대로 놔 두고 있으면 내가 그것 갖고 알아차리겠다. 네가 나를 주인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중이라고 .. . 자 어때? 좋은 방법인 것 같지 않니? 행복 하게 살면서 언제나 그게 기억나야 하니까 저기 가운데 잘 보이는데 있는 나무보고 늘 기억하렴. 그래, 그것 참 좋은 방법이다. 참 좋은 안전장치다. 하하 .. 좀 만화 에 나오는 대화같지만 바로 이것이 .선악과 명령. 입니다.


.선악과 라는 명제는 그렇게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운 .이라면 머리 나쁘고 철학적이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아기가 태어나서 엄마 젖 빠는것. 생존에 관계된 것이기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렇게 쉬  


운 겁니다. 사실은, 인간이면 젖 빠는 것처럼 다 알 수 있도록 쉽게 하신 겁니다. 가장 중요한 원 리는 누구나 알아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이런 중요한 진리들이 쉽다보니 오히려 신 화처럼 생각하고, 만화처럼 생각합니다. 무식하고 미련한 사람들이나 믿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십자가 진리나 선악과 진리나 다 미 련해 보입니다. 너무 쉽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그 러나 이렇게 쉽지 않으면 어떻게 이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개념이 아닙니다. 생활입니 다. 생명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얘기가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하나는 창세기 2장 15절이 고, 또 하나는 창세기 2장17절입니다(좀어려운 말로 정리하면 뭐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D 첫 번째 명령은 ( ?) 라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고

@ 두 번째 명령은 ( ?) 라는 명제로 요약휩니다.


조금 더 설명합시다. 사람(아담)은 산소를 마셔야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사 람은 맹에 있어야 삽니다. 그래서 밀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 런 모든 필요를 제공하시면서 인 I'.J ζL을 살게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람이라는 존재· 는 @ 자 1 기 사명을 자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살-o}가야 하며,@그사명을감당하다가도 진짜 주인은 자기 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묘탤을 다스리는 통치권· 을 이양 받은 자람· 이라는 존재는 만물을 다 다스릴 수 있지만<CD 번) . 오직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야 한다((g번)는 것입니다. 소위 만물의 영장으로서 마음대로 다스렬 수는 있으나, 그러면서도그위에 진정한 .왕 이 계신다는사실은잊지 말라는명령입니 다. 그러므로 전악과 명령. 은 죄를 짓게 한다. 만다 하는 그런 스테이지에서만 생각할 일이 우선 아닙니다. 그것만 떼어내서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자람의 정체성과 그 존재의의”를 규명하는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걸 가르치고 싶으셨습 니다.



이 얘기를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나⇒아담⇒사람⇒인류는누구인가?’라는 가장궁 극적이고도 중요한 정체성 질문은 선악과에서만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응 애" 하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육체 발달과 인지 발달에 따른 교육 과정을 거쳐가면서 이 질문을 풀어가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이냐?” “인생은 나그네길이지...” 하기도 하고.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느냐?” “공수래 공수거” 등등 많은 질문을 하고 또 대답합니다.


그럼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누가 그걸 가르치겠습니까? 역시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런데 생각 해 보십시오. 아담은 ”응애.. 하고 어린 아기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성인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즉 눈을 떠보니 성인 아담이었습니다. 인생을 출발해야 하는 성인 아담은 자기가 누구인지, 또 무 얼 하며 살。}7}。납F는존재인지 알。}야만(교육받。}야만) 했습니다. 그교육의 내용이,(Y첫 째. 사명을 자각하고 그 일을 수행하라는 것과, 둘째, 그러면서도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하는존재라는사실이었다는것입니다.Y)   


정체성을 자각하게 하려고 가르치실 때 시청각 실물자료로 사용된 것이 선악과였을 뿐입니다. 선악과는 몇이 아닙니다.



2) 영광의 먼류관, 섣악과

갈릴리 바다가하나님의 명령을감지할수있는방법이 있습니다.시커먼흙속에 연약한뿌리 를내리고도새빨간색깔을뿜어내는딸기가하나님과관계핸방법이 따로있습니다. 태양이 하 나님을 상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하나님이 구름을 상대해1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하 나님께서는이런 것들괴는달리, 유독아담이라는사람피조물과는독특한방법으로 ( )하시 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태양도 피조물이요. 아담도 피조물인데 ...     정답며관계      


즉태양이, 바다가. 딸기가하나님과관계하는방법을 “(인격 )적”이다라고한다면 아담과관계 하시는 방식은 “( 자율)적이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태양이, 바다가, 딸기가 존재하는 방식이 창조써l 대해 타율적 순종이 라면, 아담은 (순종 )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P정답며기겨I, 인격, 자율적 순종


바닷물은 자기 스스로 육지로 기어올라오지 않습니다. 100% 타율 순종업니다. 4,000년 전의 바퀴벌레는 오늘의 바퀴벌레와 똑같은 유전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100% 타율 순종입니다. 지구는 1년 동안 365번 자전합니다. 100% 타율 순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창조하셔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프로그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다른 피조물을 하나님이 상대하시는 방법이 라는 말입니다.

사람도 ·물질 이라는 차원에서는 다른 동물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창조하셨습니다. 피부도 있고, 눈도 있고, 손가락도 있고, 위도 있고, 뼈도 있습니다. 그 물질 자체만으로 본다면 하나님이 프로그램을 장치해 놓은 그대로 꼭 100% 타율 순종합니다. 그래서 눈캡은 반드시 두 눈 위에 놓여 집니다. 코에는 반드시 두 구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지구가 밤이다!’ 하면 그 지구 운동에 맞춰서 내 몸에도 밤이 옵니다. 지구가 어떻게 알고 꼭 잠 잘 만큼만 깜깜했다가 ‘아침 이다!’ 하고 소리치면. 내 몸은 거기에 맞춰 일어납니다. 100% 타율 순종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 말고 또 한가지 받은 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형상은 눈에 안보이는 것 인데 자율’이라는 특정이 있습니다. 그런 신기한 선물을 더 받았습니다. 다른 피조물에 비해서 더 받은 것입니다. 차별 우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율. 이라는 선물은 선악과’ 라는 대상물을 통해 기능하는 것입니다. ‘자유’ 를 선물로 받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타율적인 몸. (하드웨어?)을 가졌지만 하나님 형상~ (소프트웨어?)으로 살아가는 자율적인 존재로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물증이 선악과 입니다. 선악과는 웅덩이가 아닙니다. 몇이 아닙니다.


3) 선악과는 차용증서

‘선악과를 주셨다’는 사실은 아담을 자율적이며 인격적인 존재”로 관계하시겠다는 선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언뜻 보면 꼭 하나님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카메라는 인체의 눈의 기능과 같은 원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카메라는 눈알처럼 생겼습니다. 가위는 꽃게의 앞발과 똑같은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가위는 꽃게 앞다리랑 닮았습니다. 비 행기는 새가 나는 원리로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행기하면 날개가 생각납니다.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을 보고 비슷하게 흉내내어 만들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빨간장미, 파란가을하늘. 눈내린 들녘의 석양. 부서지는파도, 핑크빛 산호숲. 노랑보라주황... 사실 이런 색들은 우리가 지어낸 말이지만 노랑 한가지 안에도 무한대의 색깔이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색깔의 물고기들, 또 다 각각 다른 생김새들… 하나님은 예술가이십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가슴을 가진 예술가이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서 가슴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면 표현하고 싶어서 못 견답니다. 그래서 그림도 그립니다. 하나님이 표현해 놓으신 파란 하늘과 초록색 숲 ,., 그리고 그 숲 사이로 난 갈색의 오솔길... 이걸 보면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때론 이젤을 그 길모퉁이에 세워 놓고그리기 시작합니다. 파란하늘과초록색 숲... 그리고 그 숲사이로 난 갈색의 오솔길을 그대로 그립니다. 하나님의 작품을 보고 비슷하게 해 보고 싶어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표 현해 놓으신 걸 보고 그대로 해 보고 싶은 겁니다. 닮아서 그렇습니다. 감정이 있는 겁니다. 때론 흙을 쭈물거려 만들기도 하고. 음악으로. 춤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흰 눈으로 덮인 들녘에 붉게 노을지는 석양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흰색으로. 붉은색으로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 보고싶은사람도있지만(미대생), 눈은왜 흰지 여름에는왜 그게 비로오는지 해가 넘어갈 때는 왜 그렇게 하늘이 빨개지는지 그리고 어떤 날은 왜 보라색이 되는지 그게 궁금 해서 못 견디는 사람(공대생)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왜 번개가 치는지 '" 궁금해서 못 견디는 사람은 그걸 결국 알아냄니다. 하나님이 만물에 숨겨 놓은 비밀을보물찾기 하듯 찾아내는 것입니다. 왜 지구의 축은23.5도기울어야하는지 . .. 그게 궁금한사람은 밥만 먹으면 그 생각이 나서 딴 걸 못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걸 알아내면 무릎을 탁! 치는 겁니다. 이렇게 알아내고 나면 거기서 밥이 나오는 겁니다. 직업입니다. 사명입니다. 세 상을 살면서 그걸 알아내서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하며 그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왜 오존 충이 있는지. 세포의 핵 속에 있는DNA와RNA는 어떤 관계인지 .. . 지금도수없이 많은사람들 이 눈만 뜨면 옹 세상 우주만물 하나님의 작품을 앞에 놓고는 관찰하고 연구하고 개발}는 것입니 다. 이것을사명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자율적인 존재로 마음대로자기를발휘할수있는자유를주시지 않으 셨다면 우리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로봇처럼 만들어져 사는 타율적인 존재라면 이 만물을 다스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하도록 해 주신 것도 영광인데 같은 피조물인 처지에 이렇게 다른 모든 피조물율 동시할 수 있한 권리까지 주셨다는 것 입니다. 이 위대한 창조물들을 다 줄 테니까 그 왼리들을 잘 찾아내서 이용도하고 그것 갖고 또 다 른 물건도 만들어 내고 .. . 그래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학교도 가고. 직업도 가지고 ... 그 러면서 살라고 했다는것입니다. 그렇게 살면서도선악과를볼때마다진짜주인은자기가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남에게 돈을 빌려줍니다. 빌려줄 때 우리는 차용증서를 만듭니다. 그 돈은 내 돈이 라는것입니다. 현재 쓰기는남아 쓰고 있지만사실은내 돈이라는증거입니다. 선악과는바로이 차용증서와같은증거물입니다. 진짜 주인은따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볼 때마다아담은 그걸 기억해야한다는것입니다. 즉가장바람직한신인관계로인간은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서열을 분명히 하고 출빌하자는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런 생각이 너무하신 것 같습니까? 죄 짓게 하려고 만들어 놓은 웅덩이 같습니까?

선악과는오히려 그걸 볼때마다자기의 신분을깨닫게 하는안전장치였습니다.그거라도동산 중$써l 있었으니 망정이지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규명할 증거가 인멸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진 분이십니다. 선악과는 첫 사람 아담의 교과서였습니다. 선악과는 올무가 아닙니다.


4) 섣악과의 성격

              

①선악과명령은 (실행 )불가능한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예를들면 “바다를걸어라10톤짜리 바위를들어라. 공중을날아라.. 퉁불가능한명령이 아니었습니다t>P     


②또그명령을단한번수행하면끝나버리는 (일회성)명령도아니었습니다.


③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 왕비의 금사과같이 그속에 특이한 (독 )이 들어있는 이상한열 매가아니었습니다.사탄이 말한대로정말그과실을먹으면그과실이 가지고있는특수한 성분 때문에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동산 중OJ-에 있는 어떤 평범한 나무 로 생각됩니다.


④고상한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유식해야만 지킬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좀 유치한 거 같지 만 (먹는 )문제였습니다.


①②③④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려운 조건. 기술. 기능이 있어야만 지킬 수 있는 명령 이 아니고, 또 날을 하루 잡아서 결심을 하고 해 치우면 되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아담의 일상생활속에 늘 있는 ‘목는문제”였습니다.


⑤그런데 이슈는 이겁니다.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먹을 때마다 ! 살겠다고(?) 먹는데, 먹을 때마다!?(y 이 얘기는 뒤에서 더 합시다.‘~)     


⑥먹는다는 것은 ( )이 걸린 것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그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필수 조 건입니다 살려고, 생명을 위해 먹을 때마다 ‘정녕 죽으리라 .. 하신 음성을 기억하며 선악과를 생각해야하는것입니다. ‘자람이 먹으로만사는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산다~. (마4:4)는예수님의 말씀이 대칭을이루는뿌리 장면이 바로여기입니다.사마리아여 인을 전도하실 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 "나의 양식은 나 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라고 하신 동문서답 같은 말씀의 뿌리가 뻗어있는 현장입니다. 첫째 아담의 (먹는읍빵)문제는 둘째 아담의 (먹는읍 빵)문제와정확히 똑같은문제였습니다.       


5) 선악과 없는 종교가 인기있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들이 죄를 짓게 하셨을까? 안 만드셨으면 우리가죄도 짓 지 않고좋았을것을. .. 무엇인지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들을 살펴보았기 때문에 우리 일독학교 학생들은 ‘음. 그런 질문 은 좀 창피할 수 있겠다 .. ’ 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악과가 이렇게 귀한 것이라니 이해는 되면서도 솔직히 여전히 우리 마음 속 저 깊은 곳에는 .선악과 (법, 말씀) 없이 하나님을 섭기고 싶다 는 신음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눈치 안 보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 선악과 없는 환장적인(?) 신앙생활. 선악과 없는 종교생활. 매우 매력적 인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서lAd벼l서 가장 많이 드려지는 기도가 바로 아래 기도일 것입니다. 주기도 문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이 드려지는 ‘인간 기도문. 일 것입니다.


..신이시여 ! 나에게 요구는 하지 마시오.

그러나 내 요구는 다 응답히소서 ""


미국에서는장거리 전화회사마다매력적인 조건으로손님을찾습니다. 만약각종종교들이 장 거리 전화회사처럼 신도들을끌기 위해 조건을건다면 최상의 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아래 의 광고 문구를 만들면 딱 맞을 것입니다.

‘첫째. 우리 종교의 신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라 마라가 없다.

둘째. 그러나신도가원하는것은다해 준다’


가상의 얘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인류 역사 속의 종교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로 이 기가 막헌 조건을 걸고 존재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십니까? 알。싸 합니다. 무얼 말하고 있습니까? 기복주의적 물질주의 신앙입니다. 현세주의 형통의 복입니다. 인간의 요구가 100%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종교입니다. 다음의 신앙들이 그것입니다.



@ 주술신앙

신을 콘트롤하는 종교형태로 주문(청각적 password, 비밀번호)이나 부적(시각적 P잃sword) . 열려라 참깨, 알라딘의 요술램프.


@ 우상종교

금송아지, 바알, 아세라, 성황당동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하나님’ 이라고 섬기는 인간의 저의는 간단합니다. 우상들 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라 마라하지 않으니까 편합니다. 인간이 이쉬우면 가 서 복을 요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선악과’ 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왕으혹 섭기기를 거부한 인류 역 사는하나님 대신 펼요를따라신을창조했다고했습니다. 그들이 창조한신이 바로이런신들입니 다. 그신들을 대표하는 심볼로 등장히는 신이 ·바알’ 신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가 공동체를 이 루며 나라를 형성하는 샘플은 바벨탑 사건이고, 바로 그 사람들의 하나님은 바알이라는 것입니다. 참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다른 말로 하면 선악과 없는 종교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일독학교에서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라는 큰 두 줄기를 타고 구원역사가 흘러 내 려옹 것을 지금까지 공부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두 줄기의 발원지는 선악과 나무 밑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성경일독학교에서 성경 전체의 주제를 왕씨움으로 보자고 했는데 그싸움의 본 질은 바로 이 선악과라는 말입니다. 선악과 때문에 하나님은 싫다는 거지요. 그래서 선악과 없는 하나님을만든겁니다.


@ 선악과 없는 기독교 신앙

주술신앙이나 우상 종교를 가진 사람들만 선악과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 그리 스도인들 가운데도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안 만드셨으면 우 4 리가죄도짓지 않고좋았을텐데 ...’ 하고선악과없는신앙생활을홈모합니다.지금까지 공부해 l 오신 일독학교학생·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런 말을하지 맙시다. 얼마나어리석은말인지 모릅니 f1훌’ 다. 이 말은 하나님을 위의 CD. cg핸과 같은 저등한 잡신으로 전락시키는 말입니다. 크리스천이라 는 이름을 가지고 실제로는 저속한 종교 레벨에 서 있는 셈입니다. 싸우고 침투해서 하나님의 깃 발을 꽂。싸 하는 대상인 세상 나라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앙의 핵심이 바로 이 선악과 없는 신앙 ffj 꺼 임을 이제 기억하십시다. 선악과 없는 세속주의적 기복신앙은 설탕 발린 독극물입니다. 죽습니다. 선악과는우리의 정체성을알려주는우리의 생명입니C


6) 젖 아담 : 선악과나무, 마지막 아담 : 십자가 나무

바울은 서신서 부분에 와서 그의 깊어진 신학으로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라는 개념을 찾아냄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세%벼l는 이 두 종류의 사람만 있습니다. 하나는 처음이고, 또 하나는 마 지막이라면 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과 끈이 연결되어 하나님과 관계(이 단어를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아담)과의 관계를 이 선악과 를 매체로 완벽하게 설명하셨고. 교육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우리가 눈으혹 볼 수 없지만 선악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도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선악과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도 하나님을자각하려면 선악과를 봐야 합니다. 선악과를 기억해야합니다. 이 선악과는 인류역사가 흘러가면서 때로는 율법, 때로는성경말씀이라는이름으로 인류와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을우리가 눈으로 볼수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 선악과(율법, 말씀)를매체로당신을자각하며 배워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심벼l는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이 두 종류의 반응만 있다 이 말입니다.


첫 사랍온 하나님이 주선 독특한 기능. 선물, 자율성을 사용해서 스스로 궁리해 보고 결정했습 니다 선악과를 먹기로. 챔적인 뿔종입니다 p}지막 아담은 할 수 있으면 잔。l 옮겨지기를 원 할 만큼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로. 자율적인 순종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므로 구원을 얻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자율적으로 순종한 마지막 아담 안에 들어갔디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자율적 순종이 나를 덮어씌웠다는 뜻입니다/헛 아담 안에 있었던 우리가 둘째 아담 안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는 것입니다. 첫 아담 안에 있으면 안 된 다는 소식을 인생을 살다가 언젠가 들은 겁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른 마지막 아담 안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더니 그걸 믿음이라고 불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 서 우리의 믿음어란 둘째 아담의 자율적 순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려가 믿음A로 구원을 얻고. 그것을 은혜라는 말로 표현해도. 궁극적인 “구 원개념”은 자율적인 순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과 다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라면 진정한 구원개념은 곧 자율적인 순종, 선악과의 본질, 그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 가 있으려면 자율적인 순종으로만 끈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이요. 구원입니다. 그것도자율적 순종말입니다.



됐는지 분석해 보고 궁리해 봅니다.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해 연구해 봅니다.


이런 사람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는 식의 기도를 할 수 없 습니다. 자기를 분석하기 때문입니다. 어디가 문제인지 지금 자기가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는 부분을 갖고 나가서 또박또박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면서 ‘바로 그게 잘못돼서 그렇게 됐습니다 하고 알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일곱 번 씩 일흔번 .. . 즉 무한대로 용서해 주시는 것 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또 용서해 달라고 그래?’ 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담대히 가지고 나가서 자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져 죽는 것 같다가도 다시 포도나무에 붙어서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입니다. 순종이 행복인줄 아는 맛! 그 행복 맛이 바로 자율 순종의 맛입니다. 그러면 순종이 재미있어집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단 한개의 나사못과 같은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조인트가 안됩니다. 하나님과 관계하려면. 교제하려면, 사귀려면. 반드시 이 나사못이 있어 야합니다.

그런데 나도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는 존재라서 나의 의견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 생각이 없는 존재가 하는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기계적인 작동일 뿐입니다. 자기 의견이 있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그걸 꺾고 그래도 따를 때 그것이 비로소 순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자율적인 순종을 보여 주는 장면의 클라이막스가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땀이 핏 방울처럼 되는 고통입니다. 할수만 있으면 나에게서 이 잔이 지나가게 해 달라는 표현은 쉽게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순종한 것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악과 나무 아래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런 현장에서 보인 자율적 순종이십니다.


가정에도. 집안 일가 친척 중에서도, 교회에도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아는 척 하기 싫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아는 척 하라고 하시니까 마지못해 가서 억지로 라도 웃으면서 얘기한다면 그것은 순종입니다. 자율적 순종입니다. 저절로 잘 되는 것 아닌데 한 것입니다.


생장점

“곁다르고 속다르게 가서 난그런식으로절대 못해!!!” 라고 말하며 이중 인격자가 아님을 은근히 자랑하지 마십시오. 속 다르지만 가서 인사할 때, 그 것이 바로 자율적 순종입니다. 마취주사 맞고 아기 낳는 것 같은 무통분만식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자기을 부인하고, 아프지만 엉거주춤 일어나, 그래도 그 뜻을 따르겠다고 몇 발자국이라도 걸을 때 비로소 인정해 주십니다. 엉거주춤이지만 그래도 그 보기 싫은 사람한테 가서 인사 비슷하게 하고 돌아서면서 그래, 내가 하기 싫어도 하나님이 하라하시니 한 거다” 하고 중얼거리면 ‘3점 짜리 슛’- 을 한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서 두고두고 생각하니 그게 그렇게도 분하고 억울하면 ‘골-인’ 이 안된 겁니다. 3점 짜리 슛. 시도는 좋았지만 골인은 안된 겁니다. 점수가 없습니다. 그 웬수(?) 한테 먼저 말 붙이고 웃었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여전히 기분 좋으면, 아! 그건 ‘꼴~인’ 입니다. 3점 슛이 성공입니다. 기쁨입니다. 성경은 이런 기쁨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인간의 기쁨은 순종할 때 터지는 것입니다. 해 본 사람만 아는 맛입니다.



당신은 아담이십니까?

하나님과 관계하십니까 ?

마지막 아담 안에 들어가셨습니까?

이제부터 속 다르고 겉 다르게 사십시다.

그러다 보면 속과 겉이 같아지는 날을 볼 것입니다.

그리 크게 노력하지 않는데도 하나님의 뜻과 과히 어긋나지 않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숙한사람일 것입니다. 속과 겉이 저절로 같아지는 그날을 바라봅시다. 그게 성숙입니다.


성경일독학교 학생 여러분!!

성경이 무슨 내용인지 아무리 안다 한들 순종하지 않으면 더 심각합니다. 순종하기 위해 읽읍시다. 순종의 파워(힘)가 쎄지도록 자꾸성경을 먹읍시다. 이번에 일독하기 위해서 지금은 진도대로 열심히 읽지만그러면서도 “기필코 순종하리 ...” 이 생각은놓치지 맙시다.    


창세기 맨 앞두장. 즉1장과2장에는죄가없습니다. 또성경이 끝나는요한계시록21장과22 장에도 죄가 없습니다. 에덴입니다. 회복된 에덴, 천국입니다. 그 중간 성경의 대부분 역사 속에는 죄가있습니다. 죄, 불순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여러분들은 비록 죄가 있는 그 가운데서도 천국을 이루고 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입니다. 통치개념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순종의 삶입니다. 결국 공간(장소)개념의 천국이 묘사된 요한계시록 21장 22장을 본 사람은 이 순종을 합니다. 이 사람은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억울한 것도 괜찮습니다 힘들어도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면 무슨 일이든 기쁨으로 합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일일이 해명하지 않습니다. 안달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 려운 날, 권고하시는 그날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날 다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며 참는 겁니다. 그날이 바로 구원의 날(심판의 날)이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며 참는 겁니다. 뭐든지 참는 겁니다. 사랑할 뿐입니다. 왕의 통치를 받는 삶입니다. 21세기,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에 천국이 임해 있었다는 것(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증시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에서 우리 다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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