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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귀래 문학상을 아십니까?
민문자
풋풋한 오월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가꾸어진 산귀래별서(山歸來別墅)를 찾은 날은 비가 왔다. 용산에서 용문행 중앙선 전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양수역에 닿았다. 다시 승용차로 십여 분, 드디어 목적지에 닿았다.
듣던 대로 상상하던 대로 산귀래별서 주인의 여문 손끝이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을 했을까 짐작이 간다. 몇 해 전부터 벼르고 별러 찾아온 별유천지(別有天地)이다.
입구부터 꽃길이다. 분홍과 흰 금낭화와 노랑 빨강 튤립과 창만 내놓고 건물을 뒤덮은 등나무의 그 예쁜 보라색 꽃, 아치식 작은 장식용 흰색 구조물들, 잘 다듬어진 넓은 잔디마당을 둘러싼 언덕진 야생화의 천국 꽃동산에서 흘러내린 물의 작은 연못, 돌 하나 풀 한 포기, 이 천국을 가꾸느라 얼마나 고달팠을까,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 애련한 마음이 든다.
오늘은 벌써 제4회 산귀래 문학상 행사일이다. 여기저기 모여든 많은 인파, 대부분 낯익은 수필가들이다.
가슴에 꽃을 달고 금방 스위스의 요들송을 연상케 하는 드레스풍의 갈색 계통의 긴 스커트 차림의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11시가 되자 잘 정돈된 강당에서 제4회 산귀래 문학상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산귀래별서 주인 박수주 수필가의 딸 백은경이 사회를 보았다.
산귀래문학회장 박수주 수필가는 인사말을 끝내고 윤재천 교수와 함께 내빈소개를 하였다. 그리고 산귀래문학회장 박수주 수필가는 김규련 원로문인에게 산귀래문학 본상, 동(童)수필집 『복희이야기』를 낸 김미자 수필가에게 산귀래문학 공로상을 시상했다. 제일 먼저 산귀래문학회장 박수주 수필가의 사돈이기도 한 김근배 교수, 제1회 산귀래문학상 수상자 윤재천 교수, 제2회 수상자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이사장, 제3회 수상자 김병권 전 문협 부이사장이 축사를 하였다.
세분 수상자 축사 요지는 자연 속에서 주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문학상이다. 문학상 수상할 때 ‘산귀래 문학상이 있었던가.’ 했었는데 이제 갈수록 맑고 순수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상 영원히 간직하고 자랑할 것이라면서 문학상 가운데 길이 남을 상, 세계에 유례없는 상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
김규련 선생은 산귀래문학 본상 수상 후 다음과 같이 답사를 하였다.
“수필가는 맑은 영혼과 고매한 인격과 구도자의 자세로 묵언정진 해야 한다는 수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필을 오래 쓰면 일곱 가지 기품이 생기는데 눈에는 총기(聰氣)가 돌고, 얼굴에는 화기(和氣), 몸은 생기(生氣)가 돕니다. 행동에는 덕기(德氣)가 흐르고 말에는 재기(才氣), 생활에는 윤기(潤氣)가 흐르고 인품은 언제나 향기(香氣)가 납니다.
오랫동안 수필을 써 오다 오늘 이런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산귀래(山歸來)란 말은 산에 돌아온다는 말이지요. 산에 오면 신선이 됩니다. 여기 오신 신선 여러분! 감사합니다.
박수주 산귀래(山歸來) 주인과 악수를 하는데 전율이 일었습니다. 이 동산을 일군 거친 손 거룩한 손, 박수주 님 감사합니다.”
다음은 산귀래문학 공로상을 받은 김미자 수필가의 답사이다.
“어젯밤에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날씨가 개어 다행입니다. 부족한 저에게 문학공로상을 주신 산귀래문학회 박수주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알고 정진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개가 넘는 많은 문학상이 있지만 산귀래문학상처럼 맑고 순수한 상은 드문 것 같습니다. 많은 문학인이 선망하는 문학상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신 내빈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현대수필 발행인이신 윤재천 선생님은 저를 수필계로 이끌어주신 스승이십니다.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십수 년 동안 좋은 인연을 맺어온 현대수필 문우님들과 안양여성문인회 동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안양의 일칠사랑 회원님, 논어반 친구, 샘모루 벗들,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참석해준 동창친구와 동인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즐겁고 좋은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본상 수상자 김규련 선생의 수필 낭독은 박정임 시인이, 공로상 수상자 김미자 수필가 작품은 김산옥 수필가가 낭독하였다.
거룩한 본능
김규련
우람한 태백산맥(太白山脈) 깊은 산골에 화전민 후예들이 살고 있다.
어느 해 봄, 이 마을에 뜻밖의 황새 한 쌍이 날아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 황새가 길조라고 믿고,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 막연한 기대에 부풀곤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 날, 변이 생겼다. 지나가던 밀렵꾼이 황새를 보고 총(銃)을 쏜 것이다. 놀란 마을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밀렵꾼은 도망가고, 황새 한 마리가 선지피를 흘리며 마른 억새풀 위에 쓰려져 있었다.
밀엽꾼에게는 황새가 돈으로 보였을까.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다행히 황새는 죽지 않았다. 한쪽 날개가 크게 다쳤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황새를 물방앗간 옆 뜰 소나무 밑에 갖다 두고 보호(保護)하기로 했다.그날 밤, 바람이 몹시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귀에 설은 애달픈 황새의 울음소리, 끼룩끼룩 끼 끼룩 끼루루, 총소리에 놀라 도망갔던 황새가 돌아온 것이다.그 후 얼마 뒤, 무서리가 몹시 내린 어느 날 아침, 기이(奇異)하고 처참한 변이 또 생겼다. 이들이 그렇게도 알뜰히 보살펴 온 그 한 쌍의 황새가 서로 목을 감고 싸늘하게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황새도 영물(靈物)일까.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려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남쪽으로 갈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새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愛情)이 별스러운 놈도 있다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본능(本能)이라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의 하찮은 본능이 오늘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감꽃
김미자
잠결에 눈을 뜬 복희가 환하게 비치는 방문을 봅니다.
옆에서 고모와 동생 복영이가 곤히 자고 있습니다. 살며시 일어나 창호지 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찢어진 틈새로 밖을 보려고 애쓰지만 밖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살구를 생각하자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복희는 침이 필요할 때마다 신맛 나는 살구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검지에 침을 묻혀 창호지에 바릅니다. 뻣뻣했던 창호지가 부드러워지면서 소리 없이 구멍이 뚫립니다. 작은 구멍을 통해 마당을 봅니다.
먼지 일던 마당이 낮에 내린 비로 세수하고 난 얼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흙먼지가 빗물에 쓸려가 매끈해진 마당에서 맨발로 뛰어 놀면 검정고무신은 오히려 귀찮아질 것입니다.
엷은 구름사이로 달빛이 얼굴을 내밀고 토방과 마루를 기웃거립니다. 복희는 달님과 만나고 싶지만 문을 열지 못합니다. 조용한 밤이 무섭습니다.
마당 오른 쪽에 돼지우리와 닭장이 있고, 바로 그 옆에 오래 된 감나무가 있습니다. 새로 돋아난 이파리가 빗물에 목욕을 하고 개운하다는 듯 반들거립니다.
지난해는 감이 열리지 않아 감꽃조차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올해는 감꽃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피었습니다. 크림색 감꽃을 줍기 위해 서로 일찍 일어나려고 고모, 삼촌들과 경쟁을 합니다. 많이 주워야 하얀 실에 꿰어 팔찌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 수 있습니다.
복희네 감은 돌감이라 맛이 없습니다. 옆집 순이네 감꽃처럼 달착지근하지 않고 떫어서 먹지 못합니다. 대신 감꽃이 작고 예뻐서 소꿉놀이엔 그만입니다.
복희는 감꽃 팔찌와 목걸이를 만들어 짝꿍에게 선물하고 싶어집니다. 짝꿍은 먼 곳에서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데 이유 없이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여 항상 혼자 앉아있는 짝꿍이 가엾습니다. 짝꿍과 친하게 지내다가 잘못하면 복희도 따돌림 당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짝꿍을 멀리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복희는 제일 먼저 일어나겠다고 방문 옆에 누웠습니다. 감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정원 님은 축가로 황진이의「꿈길에서」를 불렀다.
꿈길에서
황진이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 따라 그 님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 님은 나를 찾으려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 양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기념촬영이 있은 후 직접 이곳에서 채취하여 만든 웰빙 뷔페 점심을 비가 그친 뒤라, 자유롭게 여기저기 흩어져 언덕에서 꽃을 감상하며, 혹은 잔디밭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면서 먹었다.
식사 후 잔디마당에서 2부 행사가 자연스럽게 열렸다.
바람소리악단의 색소폰 연주에 이정원 님이 검은 나비가 되어 춤을 추었다. 분위기가 고조되니 자연스럽게 노래와 시낭송과 여러 사람의 춤이 무르익어 참석자 모두가 즐거워하였다. 원로문인들과 그 제자들이 그윽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파안대소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장소가 문인들이 바라는 이상향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 행운권 추첨으로 향내 그윽한 친환경 물품 하나를 받아 들고 아름다운 신선세계를 벗어나 번잡한 서울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