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나는 소리라면 나직한 독경소리, 차분한 목탁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상상한다. 하지만 절에서 어린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난다면 낯선 느낌이 든다. 송악면 가학리에 있는 대성사는 나직하고도 위엄있는 독경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부산함과 떠들썩함이 함께 들려온다.
이제 한창 자랄 나이인 아이들이 셋이나 있어 절을 떠들썩하게, 그리고 활기차게 만든다. 이 활기참을 대한 것이 지난 18일.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 대성사를 찾았다.
아이들 키우는 스님
대성사의 주지인 보각스님은 ‘아이들 키우는 스님’이다.
보각스님은 4살때 부모를 여의고 절에 맡겨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제대 후에는 다시 절로 돌아와 스님이 되었다. 대성사에 온 지도 벌써 12년째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절에 맡겨져 자란 보각스님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 아이들을 못본척 할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듯 싶다.
보각스님이 지금 데리고 있는 아이들은 셋이다. 아홉 살인 한주와 일곱 살, 여섯 살인 수빈이와 승호. 스님이 이 아이들을 거둔 지 벌써 1년하고도 몇달이 넘는다. 첫째인 한주는 절에서 지낸 것이 제일 오래됐다. 둘째인 수빈이는 아직 꼬마. 이제 일년이 다 되어간다. 막내인 승호는 이제 6개월째다.
절이지만 스님으로 키우지 않는다
보각스님은 절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절대 불교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같이 불공을 드리지만 그것이 강요는 아니다. 아이들도 스스로 맘에 들지 않으면 법당을 빠져나오고 보각 스님도 그것을 막지 않는다. 아이들의 머리를 삭발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동자승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보각스님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아이들을 결코 스님으로 키울 생각이 없다고... 비록 자신이 스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지는 몰라도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불교 입문 의식인 수계조차 받지 않았다.
법당 주변을 돌아다니고 장난감을 들고 친구집에 놀러가고... 아이들은 머리만 짧은 뿐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부모로서 가슴 아픈 때 많아
한주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키우다 도저히 키울 수 없어 절에 맡겨졌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온 한주. 그때는 이미 일곱살이었다.
어렴풋이 자신이 어떤 처지에 처해졌는지 깨달은 한주는 묵묵히 절과 스님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키우길 일년여... 한주를 절에 맡겼지만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한주의 어머니가 절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주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한주는 어머니가 떠난 후 심하게 앓았다. 마음의 병이었다. 그 후 보각스님은 한주의 어머니를 만나 아이가 보고 싶으면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하라고 말했다. 한주가 너무 마음아파한다고... 아들을 사랑한다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지켜봐달라고...
막내인 승호는 합덕에서 왔다. 부모 없이 합덕시장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먹을 것이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보다못한 주민들이 승호를 대성사로 데리고 왔다. 보각스님은 처음 승호를 봤을 때 마치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도벽이 있어 남의 물건을 빼앗아 자기 것이라고 우기곤 했다고 한다. 보각스님은 승호를 매일 씻기고 교육시켰다. 때론 엄하게 야단치고 자상하게 다독였다. 지금 승호는 보통 아이들과 다를바 없이 밝고 구김살 없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스님은 아이를 키우면 왜 안되는 겁니까?”
지금은 여러 사람의 도움 덕분에 법당도 새로 짓고 풍족하지는 못해도 부족하지 않게 아이들과 지내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각 스님은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혼자 지내왔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한 보각스님. 이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역시 돈이 필요했다. 얼마 전까지는 지역의 한 독지가가 후원을 해줘 형편이 조금 좋아졌지만 이제 그 후원도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법적인 문제도 있었다. 절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법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보각 스님은 아이들의 의료보험을 지적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단지 절의 동거인으로만 등록이 되어 있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임시방편으로 보각 스님의 호적에 아이를 올려놓고는 있지만 큰 병에 걸리거나 한다면 속수무책이라고. 보각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송악면과 많은 대화를 했지만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보각스님은 “절이 왜 아이들에게 유해한 환경인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송악면의 방침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다른 지역은 오히려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유독 송악면만 반대로 가고 있다고.
“네 잘못이 아니야. 부끄러워할 필요 없단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아이들이 기사를 보고 상처받지는 않을까라는 우려였다. 자기가 어떻게 해서 절에서 지내게 됐는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그로 인해 마음아파하지는 않을지...
하지만 보각스님은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었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고.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그러나 보각 스님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보각스님의 바람대로 처음에는 유치원 친구들의 놀림에 울어서 눈이 빨개져 돌아왔던 아이들도 이제는 친구들의 놀림을 오히려 웃음으로 받아줄 정도로 성숙해졌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자식들이 훌륭하게 커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를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보각 스님도 마찬가지다.
자기와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 자라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뒤를 돌볼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마음을 가진 보각 스님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오늘도 구김살없이 밝게 법당 밖을 뛰어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