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신념

노무현 대통령의 신념   현진건의 소설 ꡐ빈처ꡑ나 ꡐ운수좋은날ꡑ을 읽다 보면 웃지 못할 진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가난이 몸에 베어있는 서민들의 절박함이 해학 속에서 가슴을 저미기 때문이다. 인력거꾼 김 첨지는 “몸이 아프니 제발 오늘만은 일하러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아내를 내팽개 쳐둔 채 비오는 거리로 나선다. 몇 날 몇 일째 돈구경을 못한 김 첨지는 아픈 아내에게 약을 사주고, 아내가 그리도 먹고 싶어 하는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로 나서야만 했던 것이다. 김 첨지는 그 날 따라 밀려드는 손님들 덕에 인력거꾼의 하루 수입으로는 거금이라고 할 수 있는 삼십원을 벌어 한 잔 술을 걸친 채 집에 들어서지만, 이미 아내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다. 굶어 죽더라도 일을 나가지 말고 아픈 아내를 돌보는 것이 남편의 도리인지, 아니면 배가 고파도 좋으니 일 나가지 말고 아픈 자신을 돌보아  달라는 아내의 말을 거절한 채 열심히 일을 해서 설렁탕을 사들고 들어오는 것이 올바른 남편의 도리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모두가 진실인 듯 싶기도 하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듯도 싶기 때문이다. 싸늘해진 아내의 시신을 죽은 줄 모르고 냅다 발로 걷어차며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도 못해!”라고 고함지르던 호기가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라는 절규로 변해 버린 김 첨지의 설움을 지금 어디서 누군가가 현실로 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920년대에 있었던 빈처가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운수좋은 날의 김 첨지 또한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은 그래서 진리인지 모르겠다.   미국 레이건 전대통령의 장례식이 많은 이들의 추모 속에서 치루어졌다.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그의 감세정책을 통한 소비확대경제이론을 통해 1980년대 이래 미국은 경제적 호황기를 이루게 되었고, 총 한 발 쏘지 않은 채 군비경쟁에 말려든 소련이 붕괴되어 냉전체제가 종식되는 세계적 변화를 이루어내었다. 괴한에게 저격당했을 때조차도 그의 아내 낸시에게 했다는 “나, 머리 숙이는 것을 깜박 잊었어”라는 유머는 그의 여유로움을 잘 나타내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영원한 낙천주의자, 긍정론자로 평가받고 있는 레이건 전대통령처럼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들은 모두 낙관주의자였다는 미국대통령들의 평전을 읽은 바 있다. 주어진 현실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비관적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평가도 달라지고 결과도 달라진다.   낙관주의자는 비관론자나 패배주의자에 비해 희망의 폭이 그만큼 넓고 미래지향적이며 해결사적 기질이 다분하기에 나는 낙관주의자가 되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위기를 부추기는 위기론이야말로 위기다”라는 경고에 대하여 “위기를 모르는 것 그 자체가 위기다”라고 맞받아치는 반대여론이 뜨겁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의 위기대처능력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속성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비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도 영원한 낙관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하면서 만일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면 언론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 남들이 대학을 갈 때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한 채 부산의 어느 조그마한 회사에 취직하여야만 했던 사람, 미래에 대한 싹수가 노랗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고졸 학력으로 매진했던 무모할 만큼의 도전 의식, 고시공부를 하는 중에도 책상위에 놓여있는 책받침대 하나가 눈에 거슬려 공부하는 와중에도 이를 뜯어고쳐 실용신안을 받아내는 문제해결의식,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를 일찍이 그만 두고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노동현장에 뛰어들고, 국회의원이 되고 5공 청문회 스타가 된 뒤, 떨어질 것이 뻔한데도 계속하여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산지역에서 내리 세 번을 출마한 사람, 그리고 결국에는 대통령에 당선된 그에게 있어서 고단한 현재는 언제나 극복의 대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당당히 그 시련에 맞서서 싸우는 사람에게 “위기는 언제나 기회”일 뿐 위기가 아닌 것이다. 50년대 60년대의 보릿고개를 겪어왔기에 이제는 쌀밥 먹고, 아니 쌀밥조차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내쳐지고 있는 현재의 경제상황은 그때에 비해서는 훨씬 잘먹고 잘산다는 기본인식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위기라면 함께 노력해서 극복하면 되지 않느냐,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오늘 힘들더라도 모두가 합심하여 노력하자, 잘해보자는데 협력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위기, 위기, 위기”라고 자꾸만 소란 피우느냐라는 생각이 노무현 대통령의 기본 바탕에 깔려 있는 정서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신념은 철저한 낙관주의에 근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진건의 빈처에서도 그렇고, 운수좋은날에서도 그렇듯이, 가난한 아내를 위해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 하겠다는 생각, 비단신 한 컬레 사 줄 날이 있기를 간구하는 남편의 마음은 그 내면 깊숙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사랑을 품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아픈 아내를 돌보지 않고 왜 길거리로 나서느냐 라는 비판도 일면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굶어죽게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 종일 비 오는 거리를 인력거를 끌고 뛰어다녀야 했던 김 첨지의 발바닥은 얼마나 아프고 부르텄을까? 하지만 인력거가 무거워지면 발이 가벼워지고, 인력거가 가벼워지면 반대로 발이 무거워졌던 가난한 인력거꾼의 마음을 노무현 대통령은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가난했던 적이 있는 그이기에 그 놈의 환장할 돈 때문에 물집이 잡히면서도 “아픈 아내와 그 입으로 넘어갈 꿀맛 같을 설렁탕”만을 하루 종일 생각했을 김 첨지의 마음을 그가 진정 알고 있으리라고 믿어본다. 노무현 대통령이여, 제발 서민들 먹고 살 수 있도록 정치 좀 잘 해 주시오.   시사법률신문 80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