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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피눈물의 기록《한중록》 |
▣방송 : 2008. 6. 21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구성 : 윤한용 PD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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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을 온 몸으로 받아낸 |
<한국사 傳> 혜경궁 홍씨 2부작 피눈물의 기록 《한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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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烈)에도 죄를 지었다 조선왕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조의 아들로 한 나라의 왕세자이자 혜경궁의 남편, 사도세자가 한 나라의 왕세자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모두 지켜봐야 했던 혜경궁 홍씨. 그녀는 임금인 시아버지 앞에서 남편을 위한 어떠한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아들만은 살려야 했다. |
나는 자(慈)의 도리도 이루지 못했다 죄인으로 몰려 죽은 남편을 따라 아들조차 왕위를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혜경궁은 어떻게든 왕세손을 보호해야했다. 혜경궁은 세손을 보존하기 위한 행보를 한다. 영조가 머무는 경희궁으로 정조를 떠나보내고 당시 권력의 핵심이었던 시누이 화완옹주를 찾아가 아들의 안위를 부탁한다. 남편처럼 의지해 온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생이별. 그녀는 어머니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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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강인했다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영조는 세손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죽은 사도세자의 형인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키며 왕세자로서의 확실한 입지를 갖게 되고 정조는 마침내 왕위에 등극하게 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혜경궁은 왕의 어머니라는 법적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누구도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그때그때 현명한 판단으로 비극을 헤쳐나간 한 여인. 결코 나약하지 않은 이 여인의 삶은 한(恨)이 된다. |
누가 이 여인을 울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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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산 혜경궁 홍씨. 자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어찌하지 못하는 암담한 상황의 연속. 그러나 그녀는 울고 있지만은 않았다. 혜경궁은 10여 년 동안 4번에 걸쳐 <한중록>을 썼다. 그것은 어쩌면 가혹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추슬러 왔던 한 가닥 희망의 끈이었을지 모른다. 궁중 여인으로서 숙명적으로 감내해야했던 운명… 끝나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가 다음 주에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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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피눈물의 기록《한중록》 |
▣방송 : 2008. 6. 28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김종석 PD
▣글.구성 : 고은희 작가
아들이 임금이 되어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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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
<한국사 傳> 혜경궁 홍씨 2부작 피눈물의 기록 《한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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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도세자의 죽음, 아들 정조의 효장세자 아들로의 입적.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떠나보낸 지 15년, 마침내 정조가 왕으로 등극했다! 어머니 혜경궁에 대한 효심이 남다른 정조, 그녀의 인생에도 다시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정조가 혜경궁을 위해 지은 <자경전> |
그러나 정조가 즉위 후 풍산 홍씨 일가는 외척세력으로 탄핵을 당한다. 혜경궁의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죄였다. 임금이 된 아들에게 정치적 걸림돌이 된 친정. 혜경궁의 가슴은 타들어갔지만 아들 앞에서 어떠한 내색도 할 수 없었다. |
임금인 아드님을 둔 보람이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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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795년. 정조와 혜경궁, 그리고 그녀의 두 딸이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원행을 떠난다.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혜경궁의 온 식구가 함께한 이 행차는 혜경궁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침내 고통의 세월이 지나고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이것은 혜경궁이 살아온 한스러운 생애의 보상이었다. |
자결을 하려고 하였다!
환갑 잔치 후 정조는 갑자년(1804년)에 혜경궁 친정 식구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의 꿈은 아들의 죽음으로 산산조각난다.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 손자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왕후는 풍산 홍씨 일가에 정치적 보복을 가하기 시작한다. 혜경궁은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다. 절망의 끝에서 그녀가 기댈 곳은 붓 끝뿐이었다. |
한 자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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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의 또다른 이름은 읍혈록. '피눈물의 기록'이란 뜻이다. 자신의 말대로 한 자마다 눈물을 흘리며 쓴 이 기록은 그녀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80년 후 한중록을 읽은 고종은 그녀의 마지막 한을 풀어주었고 1899년 혜경궁은 마침내 황후로 추존된다. 모진 목숨과 한스러움 삶을 살다간 혜경궁,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