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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崔忠獻) 최이(崔怡) 최항(崔沆) 최의(崔�e)로 이어진 최씨 4대 무신정권의 계승관계는 한마디로 패륜(悖倫)의 시대였다. 우선 최충헌은 집권과정에서 1197년 친동생 최충수(崔忠粹)를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이런 골육상쟁은 자식 대(代)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최충헌은 상장군 송청의 딸과 결혼해 최이, 최향(崔珦) 두 아들을 두었고 그 밖에 다른 여인들과의 사이에 최성, 최구를 낳았다. 1219년(고종6) 최충헌이 병들자 대세는 둘째 아들 최향 쪽으로 쏠렸다. 대장군 최준문, 상장군 지윤심, 장군 류송절, 낭장 김덕명 등 핵심 무장 4인은 비밀모임을 갖고 최이를 제거하고 최향을 추대키로 결의했다.
그런데 이미 이런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던 최충헌은 병석에 누운 초기에 최이에게 비밀리에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내 병이 낫지 못할 터인데 형제간의 집안 싸움이 염려되니 너는 다시는 나에게 오지 말라." 여러 차례 문안을 재촉할수록 의심이 커졌던 최이에게 김덕명이 찾아와 음모를 알렸다.
결국 일거에 반격을 가해 최준문 류송절 등을 제거한 최이는 아버지의 권좌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친동생 최향을 홍주로 귀양보냈다. 그러나 성격이 광포했던 최향은 여러 차례 군사들을 모아 반란을 시도하다가 결국 1230년 친형 최이에게 죽임을 당한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의 대물림이었다.
최이는 장장 30년 동안 최고권력의 자리를 지켰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특유의 문신(文臣) 포섭 전략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이는 확고한 용인(用人)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인재를 4단계로 나눴다.
첫째는 능문능리(能文能吏), 학문이나 문장에도 능하고 관리로서의 재능도 뛰어난 자다. 둘째는 문이불능리(文而不能吏), 학문이나 문장에는 능하지만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자다. 셋째는 이이불능문(吏而不能文), 실무에는 능하나 학문 혹은 문장이 뒤떨어지는 자다. 넷째는 문이구불능(文吏俱不能), 문장이나 실무 모두 능하지 못한 자다. 이를 보아도 그가 문(文)을 이(吏)보다 앞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정치에서 공과(功過)를 남긴 최이는 1249년 세상을 떠난다. 최이에게는 적자(嫡子)가 없고 기생첩 서련(瑞蓮)과의 사이에 만종, 만전 두 아들이 있었다. 한때 매부 김약선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했다가 생각을 바꿔 출가시켰던 만전을 환속시켜 이름을 항(沆)으로 바꿔 후계자로 키웠다.
최이가 세상을 떠나자 권좌에 오른 최항이 처음으로 한 일은 문을 닫고 들어 앉아서 아버지의 첩들을 간음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모 대씨(大氏)가 김약선과 그의 아들을 도와줬기 때문에 원한을 품고 있다가 대씨집안 및 그 일파들을 마구 도륙해버렸다.
1257년 최항이 세상을 떠났다. 최항도 아버지처럼 본부인 사이에 아들을 두지 못했다. 대신 출가하여 스님으로 있을 때 한 여종과 간통해서 아들을 두고 있었다. 최항은 그 아들 최의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하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동원해 학문과 예법을 가르쳤다. '용모가 아름다웠던' 최의는 아버지가 죽자 바로 그날로 일찍부터 사통(私通)하고 있던 아버지의 애첩 심경(心鏡)을 집에 데려다가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최의의 가장 큰 문제는 출신 콤플렉스와 의심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모함하려고 할 때 "누가 당신의 외가가 천하다고 했다"고 참소를 하면 최의는 불문곡직하고 그 사람을 죽여버렸다. 참소에 가장 앞장섰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아버지의 애첩 심경이었다. 게다가 최의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어진 선비들을 예로써 대할 줄 몰랐다. 임금은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폭군의 형태를 드러냈다. 측근들조차 언제 참소나 모함을 당해 비명횡사하게 될지 몰랐다.
결국 집권 1년 만에 문무대신들이 최의를 내몰기로 뜻을 모았다. 사실 이때의 거사는 관련자의 밀고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러나 무능한 최의는 적절한 대비책을 세우지 못했고 결국 거사군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4대에 걸친 최씨 무신정권은 끝나고 거사를 이끈 문신 류경과 최씨집안 가노 출신 장수 김인준 등은 정권(政權)을 다시 임금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후 김인준이 다시 정권을 빼앗아 고려의 무신정권은 한동안 이어지게 된다.
조선일보 200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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