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편집) 크메르의 세계 2010-7-7
[특집르뽀] 태국 비상사태 연장 결정의 전후정황 들여다보기
태국의 국가화합 이벤트 : 6300만이 함께 만드는 태국
훈남의 웃음과 함께 하는 부드러운 공안정국
태국 정부가 지난 4월 "레드셔츠"(UDD) 시위대의 점거농성 이래 전국 23개 시도에서 실시해온 국가비상사태 선포령이 7월 7일로 그 만료시한에 도달했지만, 국무회의는 다시금 이 조치를 3개월간 연장시키기로 결정했다. 다만 5개 도에서 해제를 하여 총 18개 시도로 실시 범위만 약간 축소되었다.
총 90명이 사망하고(이 중 많은 이들은 총기에 살해됨) 2,000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발생시킨 대규모 시위 이후, 국가비상사태 선포령 하에서 특별한 재판절차 없이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만 400명이 넘고,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전구속영장도 발부되어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테러" 행위란 죄목이다.

군대와 경찰에 대해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비상사태 선포령에 대해, 국내외 여론의 비판적 태도는 최근 들어 더욱 가중되었고, 이에 대해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태국 총리는 영국의 BBC 등 저명 언론에 출연해, 일부 지역부터 순차적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식의 유화성 발언을 흘리기도 했다. 이러한 태국 정치 특유의 "미소형" 고단수 공안정치는 일부 외신들까지 혼란케 만들면서, 7월 5일자 한국어권 보도 중에도 태국의 비상사태가 해제될 것이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태국 정부는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국왕의 복심으로 통하는 추밀원 의장 쁘렘 띠나술라논(Prem Tinsulanonda) 전 총리(예비역 대장)가 오랫만에 군복차림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이벤트까지 펼치는 가운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는 정부에 대해 3개월 간의 비상사태 선포 연장을 건의했다.
결국 "크메르의 세계"가 예측했던 바와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태국 정부는 7월 6일 국가비상사태 선포령을 3개월간 추가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태국식 공안정치와 권위주의는 3개월 단위를 무척이나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언제나 잠시 동안만 과도적으로 무엇을 할 것처럼 하여 반대파의 저항의지를 약화시키면서, 실제로는 그 3개월을 계속 반복하여 결국엔 자신들이 원하는 상당한 기간을 확보하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태국 정부가 반대세력을 확실히 억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보하기 전에는, 다음 3개월 이후에도 이 조치가 해제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보는 편이 더 안전할 것이다.

(사진: Thairath) 주요 지휘관 회의에 참석한 아누퐁 파오찐다 왕립 태국육군사령관
그리고 만일 해제를 안 하게 된다면, 분명 그보다 2주 정도 전에는 방콕 시내 어디선가 또다시 수류탄 몇 발이 폭발하고, 수도권 주변 군부대 담벼락에는 유탄발사기에서 발사된 유탄이 공허한 명중을 하게 될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비상사태를 지속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국의 정치 9단들이 제공하는 립서비스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바로 지난 50-60여년을 이런 방식으로 정치적 위기를 헤쳐나온 저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일부 한국인 전문가들을 포함한 이들이 "태국식 타협문화"란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의 이면에는 언제든 "실탄"을 사용해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의 이마에 정확하게 총격을 가해줄 의지도 함께 숨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함께 하는 국민화합
그러나 태국의 기득권 극우파가 만든 정치문화는 억압적 수단의 제도적 유지에만 집중하진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조였던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사용한 방법과 동일하게, 자신들의 목표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대국민 홍보와 언론통제 및 여론선동 등의 문화적 활동을 광범위하게 병행해나간다. 또한 그 방법 역시 지난 20세기 초중반의 독일 나찌나 이태리의 파시스트 정권보다 훨씬 세련된 포장을 갖고 있고, 그 노하우 역시 뛰어나다.
태국 정부는 이번 비상사태 선포 연장에 발맞춰 치밀한 여론선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외신들은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최근 일주일 간 태국의 모든 TV 방송(대부분은 국영 혹은 공영)과 언론, 그리고 여론에서 가장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 내용은, 태국 정부가 주도했던 "6300만명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태국"이란 캠페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유치했다고 생각했던지, <방콕포스트>나 <네이션> 지 같은 태국의 보수 영자지들조차 국내 언론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이 행사에 대한 소개는 거의 하지 않았다.

(사진: 델리뉴[Daily News]) 태국 정부가 설치한 의견수렴장의 모습.
7월 1일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특히 <"6일간 6300만 생각들" 프로젝트>(โครงการ "6 วัน 63 ล้านความคิด")란 이벤트를 그 중심에 두고 있었다. 이 행사는 태국 국민 6300만명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원하는 국민들이 정부가 설치한 의견수렴장으로 전화(02-304-9999번 등)를 걸어 건의나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매일 12시간 씩 6일간 진행된 이 행사는 국가 비상사태 선포 3개월 연장을 발표한 7월 6일까지 꼬박 6일간 진행됐다. 태국 정부는 이후로도 정부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계속해서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6일간 6300만의 생각들"이 시작된 7월 1일 이래로 일주일 간, 태국 방송들의 톱뉴스는 이 행사에 집중되었고, 그 방송시간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보도 프로그램에서만 다뤄진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내보내는 공익광고 방송도 수시로 전파를 탔다. 그 공익광고에 무료(?) 모델로 출연한 사람은 다름아닌 아피싯 웻차치와 총리였다.
"크메르의 세계"는 바로 이 행사의 요모조모를 살펴보았다. 이 행사는 비상사태 선포 하에서 반정부 성향의 방송 및 신문들을 무더기로 폐쇄시키고, 심지어는 수많은 인터넷 웹사이트까지 차단함으로써, 세계 65위권의 언론자유도를 지녔던 태국이 세계 135위권 이하로 급격히 추락한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다. 매우 자연스런 일이겠지만, 이 행사는 아피싯 총리의 참여와 함께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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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대표적인 보수 방송 "TV3"의 현장 중계. 아피싯 총리가 활달한 4명의 여성 앵커들과 함께 했다. 그녀들의 언행을 보고 있노라면 화합과 행복을 추구하는 태국 사회 특유의 즐거움과 쾌활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날도 동북부 어느 농촌마을에서는, 한 소녀가 할머니와 함께 지난 5월부터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수시로 동구밖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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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TV3 방송. 이 행사기간 중 연예인들과 유명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전화수신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첫날 아피싯 총리가 직접 전화수신원 역할을 할 때는, 태국의 유명 탈렌트 등 스타들이 총리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
행사기간 중 전화수신원으로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유명인에서부터 공무원,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무슬림과 같이 종교적 소수파, 시민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또한 그러한 자원봉사자들과의 인터뷰도 매일 같이 방송을 탔다. 하지만 북부 및 북동부의 검게 탄 농민들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모두들 아름답고 깔끔하며 상냥한 방콕의 중산층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저마다 보람있는 행사에 참여했다는 자긍심으로 만족스런 표정들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우리나라"야말로 잘 할 수 있는 "참" 좋은 나라, "위대한 태국"이란 것을 다시금 확인했으리라.
태국의 국가화합 로드맵은 이와같이 화기애애하고 흐믓한 미소 속에서 활기찬 행보를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방콕의 밤거리에서 본드를 흡입한 채 쓰러져 잠든 청소년 앞을 지날 때,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니, 더없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던 어느 화교의 거대한 금은방 간판만큼이나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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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태국식 권위주의를
전문가들은 "과두제"(oligarchy: 특정 집단에 의한 권력분점),
혹은 통치방식이 훨씬 세련되었다 하여 "신-과두제"(neo-oligarchy)
혹은 "후기-과두제"(post-oligarchy)라고도 부르는데...
역시 우리 카페가 만든 용어인
"노란 나찌"(Yellow- Nazi)가 이해도 쉽고
더 명료하지 않나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