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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자경문 - 시작하는 마음 제 23 강
다른 강의 본에는, 21강에 한 主法人(주법인)에 輕薄想(경박상)을 내지 말라는 말 가운데, 21강ㆍ22강에도 얘기를 여러 가지 했지만, 설산동자 얘기가 유명한 것입니다. 설산동자 얘기가 거기 나오는데, 諸行無常是生滅法(제행무상시생멸법) 生滅滅已寂滅爲樂(생멸멸이적멸위락)이라. 하는 게송이 있지요. 諸行이 無常하야 是生滅法이라. 모든 행은 무상해서 그것은 나고 죽는 법이더라.
生滅을 滅已하면, 생멸을 멸해 마치면 적멸락이 되느니라. 이런 말인데, 이것이 열반경 사구게 라고 하는 글입니다. 저~ 청정한 설산 가운데, 맑고 깨끗한 설산 가운데, 離欲寂靜主(이욕적정자주)라.
모든 욕심을 다 떠나버린 아주 적정한 사람. 그 마음과 몸의 행동이 고요하고, 아주 조용한 사람. 이런 수행자가 無上大法(무상대법)을 구하기 위해서 참 어려운 고행을 하고 있었더란 말입니다.
그 때에 하늘에 제석천왕을 비롯해서 많은 천신들이 모여가지고 “야~ 저 이상한 일이다. 저~ 청정설산 가운데 혼자, 저렇게 먹지 않고ㆍ하고 싶은 것 하지 않고ㆍ갖고 싶은 것 갖지 아니하고 저렇게 청정수행을 하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청정수행을 한단 말이냐?”
그렇게 먹지 않고, 갖지 않고, 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한량없는 복을 쌓아요. 먹을 것을 먹지 않고, 가질 것을 갖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자꾸 쌓인다 이 말입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자꾸 쌓인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제일 큰 것이, 먹고 싶은 것ㆍ갖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하고 싶은 것, 그것은 끝이 없는 것이거든요.
이 좋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않음으로써, 일체중생에게 그 하고 싶은 것을 다 베푸는 것이 돼버린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한량없는 복을 짓는 겁니다. ‘중이 돈도 없는데 뭐 가지고 복 짓나?’ 아끼고ㆍ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ㆍ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복이 쌓이는 겁니다. 먹는 것도 하루 일종식 하는데, 만석 씩 쌓인다잖아요. 하루에 일종식을 하면 만석이 쌓인대요. 일즉만배곡난수라. 그러니까 하루에 만 배 씩 쌓이니까 빚을 지어도 그것 갚기가 힘든다 이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이자가 눈덩이 불어나듯이 불어나니까, 배꼽이 아이보다 더 크고, 이래가지고 그냥 이자가 이자를 치고 하면 그것 갚기 힘들 듯이, 복을 짓는 것도 역시 또 마찬가지라 이 말입니다.
이래서 먹지 않고ㆍ갖지 않고ㆍ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한량없는 복이 쌓이는 겁니다. “저 놈이 복 많이 지어가지고 뭐 할 것인가? 저 사람이 복 많이 짓는 것은 將欲救帝釋座(장욕구제석좌)하야, 장차 제석의 자리를 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제석천왕 자리를 노리기 위해서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니냐?” 다른 천신들이 있다가 하는 말이, “아니다 아니야, 제석천왕 자리를 노리는 것 가지고는 청정설산, 저 추운데서 저렇게 수행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 사람은 無常心(무상심)을 발했음으로써 無上道心(무상도심)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의 無常心은 덧없다는 뜻이고, 둘째 無上心은 윗 上자입니다. 위없는, 그 이상 없는 그런 道心을 발해가지고 무상보리도를 성취할 사람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無相修行(무상수행)을 한다 이 겁니다. 無相修行이라는 것은 “일체상을 떠난 저렇게 무심삼매를 닦고 있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장욕구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야.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사람일 것이다.” 이랬어요. 이러니까 다른 천신이, 제석천왕이 있다가 하는 말이, “비여 마갈지어가, 마갈어라는 것이 고래같은 고기입니다. 비유컨대 마갈어가 알을 수억만 개를 낳지만, 그 알이 다, 큰 마갈어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 겁니다. 알을 많이 낳지만, 그 알이 중간에 다 죽어버리고, 다 부화되지 않는다 이 겁니다.
衆生發心이 數無量(중생발심수무량)이나, 중생이 발심하는 자가 비록 한량이 없지만, 필경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자는 극히 드물더라 이 겁니다. 저 사람도 그런류가 아니겠는가?
비유컨대, 眞金(진금)을, 참으로 진금인가를 시험하려면 是燒磨打(시소마타)라. 燒 = 태워봐야 된다. 磨 = 갈아봐야 된다. 打 = 두드려봐야 된다. 燒磨打라. 태워봐야 되고ㆍ갈아봐야 되고ㆍ두드려봐야 알겠다. 그래가지고는 그냥 제석천왕이 붕~ 그 자리에서 떠나니까, 흉측한 나찰귀신이 돼가지고,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귀신이 돼가지고 그 근방에 가서 척~ 사뿐히 앉아가지고, 그 청정 수행자가 있는 근방에 가서 떡~ 앉았다가 때를 봐서 턱~ 諸行이 無相하야 是生滅法(제행무상시생멸법)이니라. 모든 행은 무상하여 이것은 생멸하는 법이니라.
그런데 이 글을 일본 사람들은, 일본 かな(가나)가 50자거든요.
50자로써 그것을 번역을 했어요. 빛깔은, 꽃이 피어서 꽃잎은 다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으로 곧 져 버린다, 화무십일홍이라 이 말입니다. 열흘도 안가서 져버린다. ←이것이 제행이 무상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행은 무상하다. 덧없다. 서양에서도 누군가가 만물은 流轉(유전)한다고 그랬지요? 역시 같은 소린데요. “만물은 流轉한다.” 하면 일종의 과학적인 언어로 들리고, “제행은 무상하다.” 그러면 무엇인가 좀 처량한 것 같이 들리지요? 말은 같은 말인데...
“한 번 흘러가는 강물은 다시 떠먹을 수가 없다.” 지나가 버리면 다시 먹을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諸行은 無相하야 是生滅法(제행무상시생멸법)이라.
나고 죽는 법이라. 꽃잎은 피더라도 곧 지고 마는 것을, 우리 이 인간 세상에 누구인들 항상 된 자가 있을까보냐? 다 그와 같이 허망하게 스러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심재열씨가 잘 번역 했어요.
현상계의 모든 것 덧없음이여, 현상계의 모든 것 덧없음이여.
이것은 나고 죽는 생멸법인가? 이것은 나고 죽는 생멸법인가?
諸行은 無相하야 是生滅法이라. 이것을 노래로 길게 불렀어요.
척~ 부르니까 이 수행자가 깜짝 놀라가지고 이런 좋은 글귀가 어디서 나오는가? 이런 좋은 법문이 어디서 나오는가? 어디서 반쪽의 여의보주가 쏟아졌는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 소리를 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오직 바윗돌이요 눈 산이요, 험악한 산 속에 아무도 없는데 오직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사람 잡아 먹는 나찰귀신이 저쪽에 웅크리고 있는 것뿐입니다. 저 흉측한 나찰귀신이 그런 좋은 법문을 했을 리는 없고, 누가 이런 소리를 했을까 하고, 사방을 보니까 오직 나찰귀신 밖에 없으니까, 생물이라는건 나찰귀신 밖에 없으니까 나찰귀신 앞에 가가지고,
“여보시오 나찰귀신, 당신이 그와 같은 설법을 했습니까?” 이러니까 “나는 지금 배가 고파서 헛소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굶은 지가 오래오래 됐습니다.” 이러거든요.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삽니까?”
“놀라지 마시오. 나는 산 사람의 따뜻한 고기와 따뜻한 고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피를 마시고 사는 나찰 귀신이요.”
“조금 전에 설한 법문은 반쪽밖에 아니니까 나머지 반쪽이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그 나머지 반쪽을 설해주면 내가 이 몸뚱이를 당신한테 보시하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겠느냐?”
“내가 이 몸뚱이를 당신한테 보시한다는 것을 제천선신, 천신지지에게 맹세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들으시오. 행자여. 生滅을 滅已하면 寂滅爲樂(생멸멸이적멸위락)이니라.” 하는 법문인데요.
하염이 있는 그 깊은 첩첩산을 오늘 날 넘어서서 얕고 얕은 얕으막한 꿈도 꾸지 아니하고, 취하지도 아니하리라. 나고 죽는 법 다시 아예 없으면 고요히 그 곳 참 낙이어라. 이렇게 번역을 했어요. 나고 죽는 법. 그 자체가 아예 없어버리면 고요한 그 곳. 그것이 참 나[我]지 아니겠는가? 生滅을 滅해 마치면 寂滅樂이 된다. 이 말입니다. 寂滅의 樂이 될 것이 아니냐? 그 법문을 듣고, 이 사람이 그냥 부지런히, 부지런히 나무에나 돌에나 땅에다가 사뭇 그 글을 썼어요. 사뭇 써 놓고는 곧 높은 층암절벽 나무 꼭대기네 올라가서는 “시방제불과 천신지지시여 이 一言半句(일언반구). 한 말씀, 반 조각 게송을 위해서 이 몸을 버리는 저를 증명하소서.” 하면서 탁~~ 떨어졌어요. 떨어지니까 그 때에 천둥 천악이 울리면서 그 나찰귀신이 턱~ 제석천왕으로 변해가지고, 떨어지는 수행자를 턱~ 받들어서 모셨더라 하는 얘기인데,
이것이 옛날 일본 일정시대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행자와 나찰” 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있었다고요. 그리고 일본교과서에는 이런 얘깃거리가 참 많이 들었다고요.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불심이 다 일어나 있고, 타일랜드 같은 데는 초등학교에 25%가 불교입니다. 계율까지 다 들어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국민들이 미리 다 알고 있으니까 포교할 것이 없어요. 스님들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 까지 다 알고 있거든요. 스님들은 “약을 먹어도 7일 이상 두고 먹지 말라.” 이런 말씀이 있거든요. 7일 이상 두고 먹을 것 같으면 거기에 마음이, 착심이 붙게 되고, 그 보다도 7일 이상 되면 약이 변하잖아요. 더군다나 열대지방이니까 변하잖아요.
그래서 “7일 이상 두고 먹지 말라.” 그랬는데, 신도들이 그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딱 7일분만 갖다 드리고, 7일 넘으면 와서 싹~ 가져가버려요. 가져가버리고 또 다른 약 갖다놔요. 미리 다 알고 시행을 하게 돼있다고요. 그러한 얘기가 부처님의 정법을 믿는 正信(정신)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알고서도, 이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것은 邪信(사신)이 돼버려요. 삿된 믿음이라는 겁니다. 알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삿된 믿음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덮어놓고 믿는 것을 迷信(미신)이라고 그러고요.
이것인지 저것인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이 믿으니까 나도 믿어보자 하고 따라가기만 하는 것, 그것은 盲信(맹신)이라고 그래요.
맹인. 봉사라는 말입니다. 마음의 眞性緣起(진성연기)라고 하는 것을, 마음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을 딱~ 하니 믿고, 그래서 진성연기를 알고 믿는 것을 正信(정신)이라고 그런다 이 말입니다. 바른 믿음이라. 이 얘기가 21강에서 主法人(주법인)에 輕薄想(경박상)을 내지 말라는 얘기에 덧붙이고 있다는 그런 말이지요.
無始習熟(무시습숙)한 愛欲恚癡(애욕에치)가
纏綿意地(전면의지)하야 暫伏還起(잠복환기)호미
如隔日瘧(여격일학)하나니 一切時中(일체시중)에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직수용가행방편지혜지력)하야
痛自遮護(통자차호)언정
無始習熟(무시습숙)한 愛欲恚癡(애욕에치),
비롯함이 없다. 언제시작 했는지 시작함이 없다. 시작함이 없는 것이 어디 있겠나요? 시작함이 있겠지요. 그런데 하도, 하도 오래 되었으니까 시작함이 없다 이 겁니다. 달걀을 암탉이 낳는데, 암탉은 그럼 어디서 낳습니까? 달걀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그러면 달걀이 먼저입니까? 암탉이 먼저입니까? 누가 먼저입니까? 닭은 달걀에서 나왔고, 달걀은 암탉에서 나왔고, 그러면 암탉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역시 달걀에서 나왔고, 달걀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럼 암탉에서 나왔고, 이런 젠장. 끝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비롯함이 없다. 이 겁니다. 언제시작 했는지 시작함이 없다. 이 겁니다.
이것이 劫波(겁파)라고 그러는 겁니다.
비롯함이 없다. 비롯함이 없으니까 끝도 없겠지요. 無始無終(무시무종)이지요. 이것을 劫이라고 그러는데요. 이 인간 세상의 가장 긴 시간을 劫이라고 그러거든요. 상대의 세계 속에서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하는 것. 시간과 공간이 상대거든요. 그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그 공간에서 뭐가 형성이 된다 이 말이지요. 사람의 수명이 8만4천세를 살 때가 있었대요. 8만4천년을 살았는데 키는 얼마나 크냐하면 20리나 된대요. 사람 키가 20리요 수명은 8만4천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그 수명이 천년만큼 10살 씩 줄어지고, 20리나 되는 키가 천년만큼 10살 씩 시간도 줄어지면서 키도 나이가 줄어지는 것에 비례해서 작아져요. 그러니까 100년에 한 살씩 줄어지는 겁니다. 천년에 10살 씩 자꾸자꾸자꾸 줄어져 내려와요. 그 자꾸자꾸 줄어져 내려와 가지고 지금 3000년 전에는, 부처님 당시에는 인수 100세 定命(정명)이었습니다. 사람의 수명이 100년이었습니다. 그 때 키는 열자였어요. 부처님 키는 특별히 장 6급, 열여섯 자였어요. 3000년이 지난 지금은 70세 정명입니다. 키는 열자가 못 되지요. 열자가 넘는 사람도 있긴 있지만 열자가 못 된다 이 말입니다. 앞으로 6000년이 지나가면, 사람의 키가 한 자쯤 되고, 고추나무에다 그네매고 고추 딴다고 그래요. 사람의 수명은 10세 정명입니다. 열 살.
열 살이면 늙어 죽어요. 앞으로 6000년만 지나가면 그렇게 된다고요. 앞으로 1000년만 지나가면 사람이 서너 자, 넉자 이렇게 작아지고요. 수명도 그렇게 짧아지고요. 지금도 남방 인도 저쪽으로 가면, 아프리카 저쪽으로 가면 50세 정도면 아주 할아버지입니다.
아주 할아버지로 늙어 죽어요. 열 살 정도 되면 장가가고, 지금도 거기는 그렇다고요.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열 여남은 살 되면 장가가고... 저의 아버지도 열세 살에 장가갔다던가?... 열세 살 먹은 아이 장가 보내놓고서는 아들 안 낳는다고 만날 족치고요. 꼬마신랑 그런 것 있잖아요. 그 대신에 숫자는 더 많아져요.
일본에 가면 후지라고 하는 사과가 큰 것은 사람 머리통만 한 것이 있어요. 그것 한 개가 2 ~ 3만엔인가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돈 10만원이 넘지요. 사과 한개 값이 그렇게 비싸요. 그런데 사과나무에 몇 개 안 달린다고요. 두세 개 밖에 안 달려요. 많이 열리는 것을 미리 다 따버리고 오직 그것만 키우거든요. 그래서 값을 왕창 받아요.
그러니까 지금 1000년 전에 신라 시대에는 대군이라고 할 것 같으면, 큰 군사들이라고 하면 한 150명가지고, 이를테면 요새말로하면 한 연대, 한 대대라고... 10만 명이면 큰 대군이라고 그랬는데, 사람도 그렇게 덩치가 크지요. 그 때 사람들 일해 놓은 장경각 축대 쌓은 걸 보세요. 그 때 무슨 포크레인이 있나요 지게차가 있나요? 그런 기중기 그런 것, 아무 것도 없는데 손으로 들러서 쌓은 것이, 돌 하나가 두 발 세 발씩 되잖아요.
사람 덩치가 그렇게 크니까 큰 돌도 어렵지 않게 번쩍번쩍 드는 겁니다. 1000년 전에 그랬다고요. 옛날 사람들 신발 보세요. 배만큼 하잖아요. 박물관에 가면 그런 것 있잖아요. 사람들의 덩치가 크고 숫자는 적고요. 우리나라도 50년 전만하더라도 2천만 동포 그랬잖아요. 지금은 3천만 하더니, 요새는 5천만, 까딱하면 7천만 그러더군요?
옛날에는 남 북 합쳐서 2천만이었는데... 민영환 선생이 자결해서 죽을 적에, 지금 80년 전만하더라도 “오호라 2천만 동포” 했거든요. “오호라 2천만 동포”라는 글이 지금 있잖아요. 학문에 힘쓰라고...
자꾸자꾸 작아져서 한 자밖에 안 되는데 6천년이 지나고 나서, 10세 定命(정명)이 지나고 나서, 또 천년이 지나가면 어찌되느냐하면 세상이 천지개벽이 와서, 風災(풍재)ㆍ水災(수재)ㆍ火災(화재). 이런 것이 일어나가지고, 세상이 한 번 뒤죽박죽이 돼가지고 싹~~ 청소를 해가지고는 거기서부터 숫자가, 올챙이들이 바글바글 끌어 나오듯이 나와서 그것이 천년 지나가면 또 커져요. 두 자로 커져요. 천년 지나가면 석 자로 커지고, 천년 지나가면 넉 자로 커지고 자꾸자꾸 커져서, 70세 정명이면 한 대 여섯 자가 되지요. 차츰차츰 8만4천세까지 또 올라가요. 그러니까 올라갔다 내려왔다...
내려가는 것을 減劫(감겁)이라, 감하는 겁이라고 그러고,
올라가는 것을 增劫(증겁)이라고 그래요. 감겁 + 증겁 = 1小劫(소겁)이라고 그래요. 1소겁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20번하면 1大劫(대겁)이라고 그래요. 인간 세상이 만들어질 때 成劫(성겁)이 있고, 그 다음에는 住劫(주겁)이 있고, 그 다음에는 차ㆍ차ㆍ차ㆍ차 파괴 되어가는 겁니다. 壞劫(괴겁)이 있어요. 그것이 다 각각 20겁씩 있어요. 아~~~~ 오랜 세월을 두고... 그래서 마지막 空劫(공겁)이 온다는 겁니다.
은하계에 600억 개나 되는, 지금 현재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구리니찌 천문대에서 천체망원경으로 잡을 수 있는 별들의 숫자가 600억이거든요. 대충 600억 개라는 말입니다. 600억이 계~~속 초당 몇 100개씩 지금 明滅(명멸)하고 있는 겁니다. 부서지고 새로 생기고, 부서지고 새로 생기고, 우리 눈으로도 가끔 가다가 별똥이 솩~ 보이잖아요. 그것이 지구 덩어리 하나가 사라지는 겁니다.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은하계에 무수한 별들. 은하계 뽀얗잖아요. 그것이 무수한 별들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천문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헤아릴 수도 없고 無始無終이라는 겁니다.
無始無終.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心性은 不變(심성불변)이거든요.
마음자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 참 유유한 인생이 융융한 고금 속에 여기에서 났다ㆍ죽고ㆍ나고ㆍ죽고ㆍ죽고ㆍ나고 生死輪廻(생사윤회)를 무수 백 천 만 번을 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은 다 전생의 업연입니다. 다 전생의 업연으로 말미암아 이러는 것이지, 전생의 인연이 없으면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전생의 인연이 부족한 사람은 있다가도 다시 망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것이 하나도 말하자면 공짜배기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나고ㆍ죽고ㆍ나고ㆍ죽고하면서 皆依父母而出沒(개의부모이출몰)이라. 부모를 의지해서 출몰하거든요.
혼자 났다 죽는 사람 없어요. 다 부모 때문에 났다 죽었다 그런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람만 부모를 의지해서 출몰하는 것이 아니라, 모기 각다귀까지도 다 부모를 의지해서 출몰하는 것입니다.
혼자 독불장군. 혼자 나는 것은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 따지고 보면 그것이 다 淫慾所生(음욕소생)입니다. 인간만이 아니고, 파리 한 마리라도 어쨌든지 전부 서로서로가 다 음욕소생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愛慾(애욕)이라고 그러지요. 욕애라고 하기도 하고 애욕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래요. 욕애가 탐욕심이거든요. 욕애라는 것이 바로 탐욕이라는 말입니다. 탐심ㆍ욕심. 그것을 목이 타도록 하고 싶은 것.
목이 타도록 그냥 갈증을 느끼도록 애인을 만나고 싶다든지, 무엇을 하고 싶어서 잠이 안 오고 이러는 것을 渴愛(갈애)라고 그래요.
목마를 渴자, 사랑 愛자. 갈애라고 그래요.
욕심 가운데는 보통 5욕을 말하는데, 財ㆍ色ㆍ食ㆍ命ㆍ壽(재색신명수). 재물ㆍ색ㆍ먹는 것ㆍ명예ㆍ잠자는 것. 色이라는 것은 남녀의 색도 말하는 겁니다. 이 가운데 근본 욕이 色ㆍ食ㆍ壽입니다.
色이라는 것은 음욕이라는 말이고, 애욕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 겁니다. 無始習熟(무시습숙)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無始劫來(무시겁래)로 익혀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누가 안 가르쳐 줘도 저절로 아는 겁니다. 먹는 것도 그렇지요. 누가 안 가르쳐 줘도 먹으려고 달려들어요. 자꾸 입으로 갖다 넣어요. 그러고서는 배부르고 등따스고 하면, 누워 자야지요. 안자고 견디는 사람 어디 있나요?
배부르고 실컷 자고 나면 짝을 찾는 겁니다.
“유청청 꾀꼬리 쌍쌍. 범나비 호랑나비 모두 쌍이 있는데, 나는 어이 홀로 쌍이 없는고” 하는 옛날 시조가 있잖아요. 다 짝을 찾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짝을 찾는 것은 상대의 세계이기 때문에 생사의 세계입니다. 생사윤회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짝이 없는 것은 생사를 거슬리는 세계라 그 말입니다. 생사윤회를 해탈코자하는 세계입니다. 떡~ 하니 우리 중노릇 하는 사람은 고기가 먹기 싫어서 안 먹는 것도 아니고, 무슨 고자라서 장가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간에 잠이 안 와서 잠을 안자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참 그야말로, 생사윤회를 해탈코자 해서 먹고 싶은 것 먹지 아니하고, 갖고 싶은 것 갖지 아니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아니하면서 難行을 苦行(난행고행)하는 것이고, 難忍을 能忍(난인능인)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아 나가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필경에 견성성불을 목표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인간은 3차원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데, 3차원 세계는 언제나 상대의 세계입니다. 1차원 이라는 것은 앞으로만 갈 줄 알지, 옆으로는 갈 줄 모른답니다. 1차원 세계는 線(선)입니다. 2차원 세계는 옆도 볼 줄 안 답니다. 앞으로도 가고 옆도 볼 줄 알고요. 그것은 말하자면 열십자로 가로질러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지요. 3차원 세계는 立方(립방) 아래위를 볼 줄 안다 이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와 같은 3차원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합치면 4차원 세계가 된다 이 말입니다. 4차원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일치되었기 때문에 절대의 세계입니다.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공간에서만 1차원ㆍ2차원ㆍ3차원. 이러는데, 여기에서 시간을 합치면 여기서는 말하자면 4차원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절대의 세계가 되는 것이지요. 상대의 세계 속에서 절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절대의 세계가 말하자면 성자의 세계라는 겁니다.
생사를 해탈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말이거든요.
이 貪ㆍ嗔ㆍ痴(탐진치)이것 때문에... 이것은 그야말로 3차원 세계 속에 있는 것인데, 이것을 초월한 세계. 이것이 말하자면 절대의 세계인데, 이 탐 진 치 세계 때문에 貪慾(탐욕)으로 말미암아서 지옥이 있고, 嗔心(진심)으로 말미암아서 아귀가 있고, 癡心(치심)으로 말미암아서 축생이 있다 그랬거든요. 貪 嗔 痴가 바로 지옥ㆍ아귀ㆍ축생입니다. 탐심이 지마음대로 안 되니까 신경질을 팍팍 내는 겁니다. 자꾸 짜증을 부리는 겁니다. 서른 살 넘게 먹은 처녀는 변덕이 오뉴월 보리단술보다도 더 잘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시집을 빨리 못 갔기 때문에 그냥 신경질을 벅 벅 내고 그러는 겁니다.
탐욕심이 제대로 안 되니까 짜증을 자꾸 부리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嗔恚(진에)입니다. 성날 진자가 눈 目(목)변에도 쓰고,→ 瞋(진). 입 口(구)변에도 쓰거든요.→ 嗔(진). 눈 目변에 참 眞(진)하면 눈이 꼬로랑, 꼬로랑한 그것이 성날 진자이고, 그것이 좀 지나치면 입 口자를 했으니까 입으로 막 씨불씨불 욕을 해대는 것이지요. 입 口자를 쓰는 것도 성날 진자입니다. 그 탐욕의 세계로 말미암아서 지옥세계가 벌어지거든요. 부처님 경전에 그랬어요.
얼음지옥이 있다는데 얼음지옥은 왜 생깁니까? 더운 여름에 얼음지옥이 있다는데 왜 생깁니까?
얼음지옥은 중생들의 탐욕심으로 말미암아서 얼음지옥이 생기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탐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먹고 싶고ㆍ갖고 싶고ㆍ하고 싶고ㆍ전부다 내가 잡아당기는 마음이다 이 겁니다. 당기는 것이지 먹을 것 너 먹어라. 입을 것 너 입어라. 가질 것 너 가져라. 할 것 너 다 해라. 좋은 것 다 해라. 내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잡아당겨서 전부 내 것을 만드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자꾸 잡아당기기만 했지, 그것을 풀어놓지를 않고, 자꾸 잡아당기기만 하면 어떻게 되느냐 이 겁니다.
여름철에 입을 모아가지고 입 안으로 공기를 잡아당기면 찬 기운이 생긴다 이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러니까 냉장고의 원리지요.
공기를 압축 시켜서 잡아당기면, 물을 잡아당겨 모으면 얼음이 되는 것이다 이 겁니다. 얼음지옥이 생기는 것이, 寒氷(한빙)지옥이 생기는 것이 그래서 생겼다는 겁니다. 한 평생을 잡아당기고, 잡아당기고 잡아당기기만 했지, 풀어놓지를 아니했기 때문에 자연히 얼음지옥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貪習(탐습)으로 말미암아서, 탐욕의 습기로 말미암아서 얼음지옥이 생기는 것이지, 염라대왕이 얼음지옥을 만드는 것도 아니요, 어느 누가 있어서 얼음지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 겁니다. 중생의 탐욕심으로 말미암아서 서로 얼음지옥이 만들어지는 것이니라.
그럼 도산지옥이 있다는데 刀山(도산)지옥, 칼산지옥은 왜 생깁니까?
칼산지옥은 탐욕심이 지마음대로 안 돼가지고, 성을 낸다 이 말입니다. 짜증을 팍팍 성을 낼 때 성비유출이라. 만화 같은데 그린 것 보면 성을 낼 때 머리에서 번쩍번쩍. 별빛 같은 것, 창 끝 같은 것이 나가잖아요. 성을 팍 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칼끝이 팍~ 튀어 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嗔心을 팍 내면, 성을 팍 내면서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쾅 쏘아 죽여 버릴까보다.” 이래가지고 성을 팍 내면 그 사람 진짜 총 맞은 것처럼 아픈 겁니다.
안 아프다 하더라도 그렇게 큰 성을 내면 큰 칼이, 작은 성을 내면 작은 창끝이 사뭇 솟구칩니다. 성을 낼 때 마다 창끝이 튀어 나가기 때문에, 결국은 신경통도 생기고, 그것이 결국은 내 마음을 찌르고 내 몸을 찌르고, 그것이 업이 되어 도산지옥이 그래서 생긴다는 겁니다. 칼산지옥이 그렇게 생겨가지고, 죽고 나면 칼산지옥에 온 전신이 찔려가지고 그냥 허우적거리고 만신창이가 돼버리고, 도산지옥이 그래서 생기는 것이지 염라대왕이 도산지옥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 어느 누가 도산지옥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모든 중생의 嗔業(진업)으로 말미암아, 성 내내는 업으로 말미암아 도산지옥이 생기느니라. 18대 지옥을 전부 그런 식으로 풀이를 했어요. 지극히 과학적이지요. 안 그래요? 지극히 과학적인 말씀입니다.
화탕지옥ㆍ노탕지옥ㆍ마해지옥ㆍ전부 그렇게 풀이가 되어 있어요.
능엄경 6ㆍ7권에 가면 그런 것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되거든요. 부아난다고 괜히 바가지 깨놓고서는 쌀 일르라하니 물 줄줄 새고요 젠장 맞으리, ‘아까 바가지 깨지 말걸’ 이왕 깬 것 어떻해요? 바가지는 깨졌고 소용없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치거든요. 어리석을 痴ㆍ癡(치)자입니다. 아는 것이 병들었다고 그래서 병질 엄 에다가 알 知(지)자를 쓰기도 하고, 의심하는 그것이 병이다 해가지고 병질 엄에 의심할 疑(의)자를 쓰기도 합니다.
痴ㆍ癡 ←어리석을 치자입니다.
痴ㆍ癡 ←이것이 바로 無明(무명)입니다.
밝음이 없다 이 말입니다. 無明이라는 것은 어둡다는 말이 아니라, 캄캄하다는 소리가 아니고, 밝음이 없다. 그러니까 밝음이 없다니까 이것은 말하자면 두는 둔데 石頭(석두)다 그런 말이지요. 두는 둔데 돌대가리다. 침침 해가지고, 멍청하니 해가지고 생각도 정확하게 판단을 하지 못하고, 꼭 술 취한 사람처럼ㆍ마약을 먹은 사람처럼ㆍ마약 먹고 술 취해가지고서는 ‘내가 지금 어디가지? 여기가 어디지?’ 하는 멍청한 그런 사람들. 그것이 無明입니다. 무명이 바로 어리석을 痴ㆍ癡거든요. 여기에서 탐 진 치가 벌어지고 그러는 겁니다.
無始習熟(무시습숙)한 愛欲恚癡(애욕에치)가 纏綿意地(전면의지)하야 暫伏還起(잠복환기)호미, 이것이 우리가 수행하려고 해도 暫伏還起거든요.‘아이고 잘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단단히 먹었을 때, 정월 초하룻날은 그것이 없어지지요. 초이튿날은 또 생겨요. 정월 초하룻날은 ‘금년부터는 내가 정신 차려서 잘 해봐야지.’ 이 생각 아니 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어른들한테 세배하면 “금년에는 네가 공부 부지런히 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그래야지?” “예” 대답은 하는데 그날 저녁 때부터 머리 멍청해가지고 도루묵이가 돼버리거든요. 그러니까 학질과 같다 이 말입니다. 말라리아, 학질. 하루 걸이. 오늘은 괜찮다가 내일 또 일어나고... 이런 법문 들을 때는 여러분도 ‘아 잘 해야 되겠다.’ 이 생각 했다가도, 내일은 또 그 뿐이고, 또 들으면 조금 낫고 이래서 학질과 같이 자꾸 나았다가 덧났다가, 나았다가 덧났다가 이런다 말입니다.
如隔日瘧(여격일학)하나니, 날을 격하는, 날을 하루하루 틈을 두고 일어나는 학질과 같으니, 一切時中(일체시중)에, 24시간 가운데 이 말입니다.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직수용가행방편지혜지력)하야, 모름지기 꼭 加行方便智慧之力하야, 加行方便과 智慧之力. 두 가지거든요. 加行이라고 하는 것은, 加味(가미) 한다는 뜻과 비슷해요. 약 짓는데 정기적인 약이 있거든요. “사물탕” 그럴 것 같으면, 당귀ㆍ천공ㆍ작약ㆍ감초. 이러는데, “가미 사물탕” 그러면 거기다가 이를테면 오미자ㆍ삼마ㆍ대추ㆍ생강. 이런 것 여러 가지를 넣거든요. 넣으면 더 조화가 돼서 좋다 이 말입니다. 加味한다는 말이나 加行한다는 소리나 같은 겁니다.
加行方便이라고 그러는데, 加行方便을 善巧方便(선교방편)이라고도 해요. 方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방법이라는 뜻이고, 便이라고 하는 것은 편리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方便이라면 편리한 방법이다 이런 말이지요. 좀 수월하게... 또 方이라는 것은 방정하다. 딱~ 하니 딱 모가 나서 딱 바르다. 이런 뜻도 되고, 便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편당하다. 교묘하다. 묘하다. 이런 뜻도 된대요. 그래서 교묘한 隱語(은어). 교묘한 말솜씨를 가지고, 그것을 편당하게 만든다ㆍ아주 좋게 만든다ㆍ편리하게 만든다ㆍ방정하게 만든다ㆍ이래서 이것을 權加方便(권가방편)이라고도 하고 선교방편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을 또 加設方便(가설방편)이라고도 합니다. 방편을 잘 가설한다.
그래서 어쨌든지 간에, 무슨 짓을 어떻게 되든지 간에, 공부 잘 되도록만 하라. 신심이 나도록만 해라. 거꾸로 기어가든지 바르게 기어가든지 공부 잘 되도록만 해라.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서서 공부 잘 되는 사람은 서서하라 이 겁니다. 들어눠서 잠 안 오고, 들어눠서도 편안하게 공부 잘 되는 사람은 들어눠서 하세요. 하라 이 겁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加行方便(가행방편)입니다. 꼭 앉아서만 하는 것이 공부가 아닙니다. 앉아서 잘 되는 사람은 앉아서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앉아서 하는 것이 제일 잘 되는 것이지요.
앉아서 하는 것이 제일 잘 되는 것이지만 사람 따라서 각각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니까 어떤 식으로 하든지 잘 되도록만 하라 이 겁니다.
그러니까 초저녁잠 많은 사람은 초저녁에 자고, 새벽잠 많은 사람은 초저녁에 공부 몽땅하고 새벽에 자고, 초저녁잠 많은 사람은 초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새벽에 공부 열심히 하라 이 겁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加行方便입니다. 그것이 善巧方便이고 그런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 억지로, 억지로 그것을 바꾸면 생활의 리듬이 깨진대요. 그래서 건강에도 해롭고 그렇대요. 그러니까 그렇다고 해서 지 마음대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대중과 사는 사람은 그것을 거중 조절을 해야 돼요. 거중 조절 = 중간. 그래서 초저녁에도 너무 일찍 자지 않고, 새벽에도 늦게 일어나지도 않고, 중간, 중간을 끊었잖아요. 21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면 꼭 맞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오래 습관 들이면 그대로 습관이 맞아 들어가져요.
교묘한 善巧方便(선교방편)ㆍ權加方便(권가방편)ㆍ加設方便(가설방편).이런 말하자면 加行方便(가행방편)을 가지고 智慧之力(지혜지력). 그것이 지혜거든요. 지혜라는 것은 智是揀擇(지시간택)이요 慧是決定(혜시결정)이라고 그랬지요? 智는 잘 간택을 하고, 慧는 잘 결정을 하는 것이니까, 잘 간택해서 잘 결정을 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지혜의 힘. 그 지혜의 힘이 있어야만 그 善巧方便을 옳게 간택해서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거든요. 지혜의 힘이 없을 것 같으면 그것도 못 쓰는 것이니까 加行方便을 智慧之力을 써서 痛自遮護(통자차호), 탐 진 치 이것을 痛自遮護하라 말입니다. 아플 痛자를 매우라고도 그래요. 매우 스스로 막아 보호할지언정, 어쨌든지 탐 진 치 안 일어나도록 만든다 이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있어가지고는 암만해도 탐 진 치가 일어나서 안 되겠다 이 겁니다. 쉽게 말해서 남자ㆍ여자. 저 여자가 있어가지고서는 자꾸 탐심이 일어나서 안 되겠다 이 겁니다. 저 여자하고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나서 안 되겠다 이 겁니다. 그리고 저 여자 때문에 마음이 자꾸 헷갈려서 안 되겠다 이 겁니다. 그럴 때는 떠나라 이 겁니다. 그래서 夫初心之人은 須遠離(부초심지인수원리)입니다. ←3강 멀리 떠나라 이 겁니다. 멀리 떠나라. 出家是遠離行(출가시원리행)이라. 출가는 멀리 떠나는 행이 출가입니다.
出家是遠離行(출가시원리행)이요, 忍辱是安樂道(인욕시안락도)라.
인욕 하는 것이 안락의 길이고요. 慈悲是出世心(자비시출세심)이요.
자비심을 갖는 것은 출세심이고요. 출세하는 마음이고요.
寂靜是涅槃道(적정시열반도)니라. 마음이, 한 생각이 고요한 그것이 열반의 길이더라. 적정시열반도니라.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遠離. 멀리 떠나는 것이 제일인 것입니다. 그것도 선교방편이지요. 가설방편이고요.
痛自遮護(통자차호)언정 豈可閑謾(기가한만)으로 遊談無根(유담무근)하야, 그렇게 선교방편을 써서, 지혜의 힘을 써가지고 그것을 막을 일이지, 어찌 가히 한가롭게 부질없이, 아무 한가롭고 부질없이, 閑謾이라. 문턱에 앉아 가지고 달구경이나 하고... 달구경은 한가한 것 아닙니까? 閑 = 대문 사이로 나무 한 개가 누워 있는 것.
그것이 한가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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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諸行(제행)이 無常(무상)하야 是生滅法(시생멸법)이라.ㅡ모든 행은 무상해서 그것은 나고 죽는 법이더라. _()()()_
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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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始習熟(무시습숙)한 愛欲恚癡(애욕에치),
얼음지옥은 중생들의 탐욕심으로, 칼산지옥은 嗔心을 내는 것으로 말미암아..
加行方便과 智慧之力으로 貪 嗔 痴 를 물리치도록 노력하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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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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