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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의무
Dānena peyyavajjena atthacariyāya samānattatāya avisaṁvādanatāya.
[해석]
보시하고, 친절하게 말하고, 이익이 되도록 행하고, 자신처럼 대해야 하고, 약속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❶ 친구는 보시하고 베풀어야 합니다. 사람 세상에 태어나 주위 여러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친구라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친구끼리 주어야 할 때에는 주고, 받아야 할 때는 받고, 이렇게 주고받는 것이 있게 됩니다. 자기는 받기만 하고 반대로 줄 차례가 되었을 때 인색하게 아낀다면 이러한 관계는 절대로 오랫동안 친구관계를 잘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스스로 경험했을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 받는 것만 생각하고 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는 오래도록 교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서로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주는 것과 받는 것, 받는 것과 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세상을 잘 유지시켜 주는 법’이라고 부릅니다.
❷ 친구들끼리 서로 말할 때 친근하고 듣기 좋은 말pīya vāca을 해야 합니다. 일부는 ‘서로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아무렇게 얘기해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별명을 부르거나 전혀 존중하지 않는 말을 건네곤 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말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경우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듣기에 좋은 말로 말해야 합니다. 미얀마에는 ‘꿀물처럼 단말을 해야 한다. 님neem 나뭇잎처럼 쓴말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미얀마의 한 강원에 아주 친한 도반 두 명이 있었습니다. 한 스님이 장난으로 다른 스님의 슬리퍼 한 쪽을 숨겼습니다. 자신의 신발이 없어진 것을 안 스님은 개가 물어갔다고 생각하고는 “내 슬리퍼를 개가 물어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슬리퍼를 숨긴 스님은 자신이 숨겼다는 사실을 알면서 일부러 도반스님이 ‘개가 물어갔다’라고 말한 것으로 오해해서 그 도반스님에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거칠거나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도록 서로 주의해야 합니다.
❸ 친구라면 이익이 있는 것에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서로 교제를 할 때 좋은 결과가 있는 것들을 행하고, 좋은 결과가 있는 것들을 말하고, 좋은 결과가 있는 것들에 대해 상의해야 합니다. 도움을 준다 해도 좋은 결과가 없는 것들만 많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적어질 것입니다. ‘이 사람과 내가 사귄 지 오래되었는데 나에게 좋은 결과가 있게 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다. 이 사람과 사귀어서 아무런 이익이 없다’라고 하면서 경시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따라서 친구들 사이에 서로 도움을 줄 때는 그 사람이 좋아하든지 좋아하지 않든지, 좋은 결과가 생기도록 도움을 주어야 오래 사귈 수 있습니다.
이 내용에 관한 일화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과거 깟사빠 부처님 당시에 보살은 고귀한 태생인 바라문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조띠빨라Jotipāla였습니다. 그에게는 저열한 태생으로 가깝게 지내던 가띠까라Ghaṭikāra라는 도공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끼리 서로 친하게 지냈지만 서로 생각이나 사상, 믿음은 같지 않았습니다.
가띠까라 도공은 늙은 부모를 봉양하면서 깟사빠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조띠빨라는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태생으로 보면 저열한 가띠까라는 좋은 친구의 의무대로 태생으로 고귀한 조띠빨라에게 깟사빠 부처님께 가서 친견하자고 세 번이나 청했습니다. “친구여, 세상에 부처님이라는 분께서 출현하셨네.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문도 매우 훌륭하다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는 이라면 누구나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네”라는 등으로 부처님께 가게 하려고 거듭 세 번이나 청했습니다. 그때마다 조띠빨라는 “그대의 까까머리 사문이 있는 곳에 가봤자 아무런 이익이 없네. 가고 싶지 않네”라고 세 번 모두 무례하게 말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여기서 조띠빨라라는 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붓다가 될 보살이었습니다. 하지만 태생이 고귀한 바라문이어서 그 태생으로 인한 자만 때문에 이렇게 무례하게 말했던 것입니다. 조띠빨라가 거절했지만 가띠까라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띠까라는 방편으로 부처님께서 머무시던 정사 근처의 강변에서 목욕하자고 청했습니다.
목욕을 마쳤을 때 가띠까라는 ‘이제 친구 조띠빨라를 부처님이 계시는 정사에 데리고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서 “친구 조띠빨라여, 지금 우리가 목욕한 이 강변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곳에 깟사빠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정사가 있다네. 부처님을 친견하러 가세”라고 청했습니다. 세 번이나 이렇게 가띠까라가 청했지만 조띠빨라는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가띠까라는 조띠빨라의 하의를 잡고서 “친구여,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정사가 멀지 않네.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 좋겠네”라고 다시 청했습니다. 그래도 조띠빨라는 하의자락을 뿌리치며 다시 거절했습니다. 가띠까라는 또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태생이 저열한 가띠까라가 태생이 고귀한 조띠빨라의 상투를 잡고서 억지로 끌고 갔습니다.
태생이 저열한 가띠까라가 태생이 고귀한 조띠빨라의 상투를 잡고 끌고 가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닙니다. 조띠빨라도 이렇게 자신의 상투를 잡을 정도까지 친구가 권유하는 것에 매우 놀랐습니다. 일찍이 없었던 특별한 행동을 보고서 조띠빨라는 ‘태생이 저열한 친구 가띠까라가 나같이 태생이 고귀한 이의 상투를 잡아당길 정도로 권유하는 것은 사소한 이익이 있는 정도는 아닐 것이다. 친구가 말한 깟사빠 부처님께서 있는 곳으로 간다면 매우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서 “친구 가띠까라여, 깟사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는 일이 나의 상투를 잡아당길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가띠까라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도록 다시 청했습니다.
결국 조띠빨라는 가띠까라와 함께 깟사빠 부처님께서 계신 정사에 가서 부처님 앞에 도착하여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의 끝에 법의 맛을 알게 된 조띠빨라는 가띠까라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친구 가띠까라여, 그대는 깟사빠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들었지 않은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은 법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당연히 좋은 법이라고 안다네.”
“좋은 법이라고 알면서 왜 부처님 앞에서 출가하지 않는가?”
“친구 조띠빨라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훌륭하다는 것은 안네. 하지만 나에게는 눈이 보이지 않는 노부모가 있지 않은가. 부모를 아직 봉양해야 하기 때문에 출가하지 못한 것일세.”
법문을 듣는 여러분들, 가띠까라는 왜 출가할 수 없었습니까? (대중: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 그러면 여러분들은 누구를 봉양해야 하기에 출가하지 못합니까? (대중: 웃음)
가띠까라 도공에 대해서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띠까라 도공은 깟사빠 부처님 당시에 노부모도 봉양하고 있었지만 부처님께서 자주 오갈 정도로 부처님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깟사빠 부처님께서 가띠까라 도공의 집에 탁발하러 오셨습니다. 그때 가띠까라 도공은 일하러 가고 집에 없었고 노부모만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노부부에게 물었습니다.
“가띠까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그릇을 구우러 가서 집에 없습니다, 부처님. 가띠까라가 없어도 부엌에 밥그릇에는 밥이 있고, 반찬그릇에는 반찬이 있습니다. 저희는 눈이 멀어서 대접을 못 해 드리니 직접 퍼 가십시오.”
부처님께서도 가띠까라의 부모가 눈이 멀어서 손수 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직접 부엌에 들어가셨습니다. 밥뚜껑을 열어 발우에 밥을 손수 퍼서 담고 반찬통을 열어 반찬을 직접 담아서 공양을 다 하신 다음에 발우를 씻고 부처님께서는 다시 정사로 돌아가셨습니다.
가띠까라가 시간이 지나 부엌에 와서 보니 밥도 많이 없어지고 반찬도 없어진 것을 알고서 부모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왔었습니까?”
“오전에 깟사빠 부처님께서 오셔서 직접 밥과 반찬을 꺼내어 공양하신 뒤에 가셨다.”
가띠까라는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하면서 ‘실로 나는 사람으로 잘 태어났구나. 부처님의 가르침과 만나게 되어 매우 잘 되었구나. 부처님과 이렇게 가까이 지내다니. 부처님께서 나를 얼마나 가깝게 생각하시면 우리집에 있는 것을 내가 마음 상하지 않을 것을 아시고 직접 꺼내어 드시겠는가. 부처님과 나는 매우 가깝게 지내는구나’라는 생각에 희열이 보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노부모는 일주일 정도 ‘부처님과 우리가 이렇게 가깝다니’라고 하면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얼마나 가깝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한때 깟사빠 부처님께서 지내시는 응향각에 비가 샜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스님들에게 “응향각에 비가 새는구나. 가띠까라 도공집에 가서 그 집에 짚이 있으면 가지고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공집에는 마침 짚이나 풀이 없었습니다. 비구들은 부처님께 “도공의 집에 짚이나 풀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붕을 덮은 풀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러면 그 집의 지붕을 덮은 풀을 벗겨 오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님들은 가띠까라의 노부모에게 먼저 알리지 않고, 지붕에 있는 짚이나 풀을 다 뜯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노부모가 이상해서 “비도 오는데 누가 지붕의 이엉을 다 뜯어갑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스님들입니다. 부처님께서 부처님 응향각에 비가 샌다고 여기 와서 짚을 다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가져가세요.”
스님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지붕의 풀을 다 가져갔습니다.
가띠까라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지붕에 풀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아버지, 지붕에 풀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누가 가졌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당신 응향각에 비가 샌다고 여기 와서 다 가져 오라고 스님들에게 말씀하셔서 스님들이 다 가져갔단다.”
이 말을 들은 가띠까라는 ‘나에게 말도 안 하고 가져가다니’라고 화를 내지 않고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가져 갈 정도로 내가 이렇게 부처님과 가깝다니’라고 하면서 기쁨과 희열로 보름간을 지냈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부모는 일주일 정도 기쁨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 가띠까라 도공은 성인의 세 번째 단계인 아나함이었고 노부모는 범부였습니다. 그래서 신심의 정도가 좀 달랐던 것입니다.
깟사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이후로 조띠빨라는 부처님의 교단에 입문하여 출가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법은 얻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어서 특별한 법을 바로 얻는다면 나중에 정등각자 붓다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M81).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은 좋은 친구라고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는 것들을 친구가 좋아하든지 좋아하지 않든지 격려하고 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❹ 친구들끼리 서로 사귈 때는 자신처럼 대하는 것, ‘처지 바꾸기’가 중요합니다. 자신처럼 대한다는 것은 ‘자신을 다른 사람이 비난하거나 해치면 좋아하지 않듯이 다른 사람도 내가 비난하거나 해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해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나를 죽이면 내가 좋아하지 않듯이 나도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리라’,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훔치면 내가 좋아하지 않듯이 나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않으리라’, ‘다른 사람이 나의 아내를 삿된 음행으로 범하면 내가 좋아하지 않듯이 나도 다른 사람의 아내를 삿된 음행으로 범하지 않으리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면 내가 좋아하지 않듯이 나도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자신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하면 기분 나쁘듯이 자신도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술을 삼가야 합니다. 이렇게 처지 바꿔 생각하면 오계를 더욱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친구를 서로 사귈 때 특히 자신처럼 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친구 사이만이 아닙니다. 가정 간에, 지역 간에, 마을간에, 도시 간에, 국가 간에, 지내는 곳마다 ‘처지 바꾸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만 좋으면 되지’라고 이기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처지 바꾸기’가 없는 개인이나 단체, 국가는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진실로 친구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가는 곳마다 처지 바꾸기’라는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실천해야 합니다.
❺ 친구들 사이에 서로 말하거나 사귈 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실대로 정직하게 교제해야 합니다. 친구에게 약속한 것을 항상 지켜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의무를 잘 실천하는 이라야 좋은 친구, 진실한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친구의 의무 다섯 가지에 따라 자신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잘 실천한다면, 친구들도 다시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친구의 의무를 잘 실천할 것입니다.
*출처: 우 소다나 사야도 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옮김, 불방일, 『어려운 것 네 가지』 pp.10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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