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연말 매서운 강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서울이 영하 14도 이하,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2도라고 하는 30년만의 맹추위에 산행이 조금은 염려스러우나 연말산행임을 생각하고 한 해 산행을 결산하는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다른 날과는 달리 버스 승객도 없이 시원스레 잘 달려 도착한 부인터 사거리, 시각은 8시 32분을 가리키고 있다. 10분만 기다리면 오겠지 하는 버스는 오지 않고 추위에 점점 몸이 얼어들어온다. 길 건너 전주장작불곰탕집의 곰탕 끓는 김이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기에 부뚜막에 가서 몸을 녹여보려 하지만 그도 여의치 않다. 그렇게 기다림이 계속되고 9시가 되어서야 일행이 탄 버스가 도착해 꽁꽁 언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강추위에도 산을 찾는 사람들은 많아 내촌휴게소에는 버스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청평을 지나 경춘가도에 들어섰으나 평소와는 달리 한산하다.
춘천댐까지 계속 달려 춘천시 서면 오월리 이른바 매운탕골로 접어든다. 춘천댐이 생기면서 이루어진 매운탕골 끝에서 삿갓봉 산행은 시작된다. 11시 20분 영업을 하지 않는 삿갓봉횟집 주차장에 도착하고 하얀 눈이 밟히는 소리가 경쾌한 작은 포장길을 따르다보면 이내 비포장길로 바뀌고 10분쯤 지나 벌둔삿갓봉과 삿갓봉 가는 길 삼거리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삿갓봉과 왼쪽으로 벌둔삿갓봉이 조망된다. 이름 그대로 삿갓 모양이다. 정상까지 벌둔이나 삿갓봉 모두 1.8km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오른다.
(뽀드득 하얀 눈이 밟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개울 건너 누굴 만나러 가는 지, 우리 형님들 지금도 긴머리 소녀 잊지 못해 부지런히 걸으시나---)
(너무 수줍음을 많이 타셔서 항상 조심스럽다. 다음에는 활짝 웃어주세요)
철판소리가 요란한 작은 다리를 건너며 만나는 풍경은 지난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돌담과 축대, 그리고 묵정밭이다. 작은 계류를 건너기도 하고 좁다란 산길을 건다보니 삿갓봉 이정표가 보인다. 사각 스테인레스판에 시트지를 이용하여 그림과 글씨로 표시한 표지판이 이채롭다. 정상까지 0.9km란다. 오른쪽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7분가량을 더 오르니 군사시설보호구역표지판과 함께 철조망이 둘러진 삼거리이다. 이곳에 있는 이정표에도 정상까지 0.9km 남았다고 표기하고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산행 출발과 함께 따라온 누렁이가 간식을 달라며 조른다. 이놈 솜씨가 한 두번 해본 것이 아니다. 작지 않은 체구로 펄쩍펄쩍 뛰며 먹을 것을 달라는 놈의 애교가 작렬한다.
(어느 것이 정확하게 맞는 거리였는지 헷갈리게 했던 이정표 앞의 두 여인)
(정상이 저기래, 아직 많이 남았네--- 걱정스럽게 손짓하는 부인과는 달리 딴 청을 하는 브라이언 씨)
(오른쪽 나뭇가지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
(혜영 씨 맑은 미소가 너무 아름답다. 나이보다 더 많은 것을 배려할 줄 아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
(정상에서의 휴식과 점심. 이 날 최고의 메뉴는 과메기와 뜨끈한 라면이었다)
정상까지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다. 눈 하나 없이 목계단과 맨 당의 길이 이어진다. 잠시 숨을 고를 때 쯤 만나는 작은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길을 따라 정상을 향하는 길에는 다시 흰 눈이 겨울산행의 묘미를 더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쯤 되어 아무런 표지조차 없이 가느다란 나무기둥에 716m라고 코팅해 표시해 놓은 것이 전부인 삿갓봉 정상에 섰다. 뿌연 연무 덕분에 사방이 시원스레 조망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멀리 화천 용화산이 예쁜 이마를 보이고 중도유원지와 춘천시가지 일부가 조망되고, 건너편으로는 화악산부터 몽덕, 가덕, 북배, 계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바로 옆으로는 산불감시카메라가 달린 철탑이 서있고 그 위에 올라서면 화악산을 비롯한 경기도의 높은 봉우리를 볼 수 있으련만 보호철망 덕분에 올라서지 못하고 바람이 덜 채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아 전순희 씨가 준비해온 과메기와 각자 준비한 음식, 뜨거운 라면으로 추위를 달랜다. 지난 주 공작산 산행에 동참했다는 브라이언 부부, 이 부부가 사는 모습이 참 예쁘다.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부부는 몇 병의 막걸리를 준비해 왔고 깻잎에 미역, 쪽파, 마늘, 청양고추가 곁드려진 과메기를 잘 받아먹는 브라이언 씨의 소탈한 모습이 보기 좋다.
하산은 벌둔삿갓봉 쪽으로 급한 경사를 내려서며 시작된다. 낙엽이 쌓여진 길이 미끄러워 상당히 조심스럽다. 능선에 부는 칼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었으나 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은 막을 수 없다. 참나무, 그중 굴참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참나무 군락지, 하늘을 찌를 듯 빼곡하게 참나무 군락이 온 산을 뒤덮은 풍경, 이제껏 이렇게 많은 굴참나무 군락을 만나지 못했기에 겨울산이 주는 쓸쓸함과 아울러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황톳빛 낙엽의 산사면 등그 경이로운 풍경에 자꾸 눈길이 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삿갓봉이 멀어지고 작은 공터가 있는 벌둔삿갓봉에 섰다. 벌둔은 이곳 지명이다. 대개 둔(屯)이라 함은 살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벌둔 역시 살만한 곳이었겠으나 문명의 발달은 편한 것을 추구하게 되고 오랜 아날로그의 생활을 영위하던 주민 50여가구는 모두 떠나고 지금은 오직 지지한 씨의 농가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선조들의 터전을 그대로 이어받아 소박한 삶을 살고 있을 그 분의 모습이 보고 싶다.
(보기 드문 굴참나무 군락지 빼곡히 들어선 나와 수북한 낙엽이 겨울산의 쓸쓸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삿갓봉 정수리)
(벌둔삿갓봉 정상, 바로 밑에 있는 벌둔이 고개에서 벌둔삿갓봉 이름을 얻었다.)
벌둔삿갓봉 정상에 두 사람의 산객을 만나 매운탕골로 내려가는 길을 물어본다. 급한 경사를 내려서면 임도 비슷한 길이 나오고 진행방향으로는 마무로 막아 놓아 길이 없음을 표시하고 있다.(태봉골로 간다고 함) 여기에서 방향을 거의 180도 돌아 작은 오솔길을 따른다. 이곳부터의 하산 길은 스틱으로 밀어내 보지만 워낙 많은 낙엽은 쉽게 치워지지 않는다. 음지라 눈이 쌓여 있고 낙엽 밑에 얼음이 있어 급한 경사의 내리막이 상당히 조심스럽다. 왼쪽으로는 삿갓봉이 조망되고 이따금씩 보이는 춘천댐 일부와 용화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나타냈다 감추곤 한다. 벌둔삿갓봉 정상을 출발한지 50분 쯤 되어 다시금 삼거리에 도착했다. 삼거리에는 벌둔마을 우편함이 있고 우편물이 담겨져 있다. 길이 끝나는 이곳에서 왼쪽 계곡길을 따라 20분 거리에 있는 벌둔마을 주민 지지한 씨의 것이렸다.
(주인 지지한 씨 댁으로 가는 우편물,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벌둔 마을 주민의 우편함인데 인터넷 검색 결과 지금은 지지한 씨 한 가족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춘천시민 99.99%가 모른다는 벌둔마을, 이제 지지한 씨 마져 떠나면 이름속에 마을이 될것)
주차장으로 내려서며 올 한해 산사랑 산행을 뒤돌아보았다. 1월 강추위와 함께 간간히 내리는 눈발에 힘들었던 백운산 산행을 시작으로 예기치 못한 눈 산행의 스릴을 안겨 주었던 3월의 번암산 산행과 시산제, 뿌연 연무 속에 조망을 그리 좋지는 않았어도 고급스러운 별장과 주택들이 즐비했던 양자산 산행, 나는 이 산행에서 눈망울이 사슴처럼 선한 혜영 씨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8월과 12월 세 번의 산행을 함께 했다. 그 중 오늘 삿갓봉 정상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담을 수 있어 인물사진에 취약점을 보이던 나로서는 나름대로 멋진 샷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6월 조교리를 향해 달리던 소양호 유람선과 조교리 선착장의 아름다운 풍경, 비록 안개속에 제대로된 산행은 하지 못했어도 소양호의 기억이 뚜렷한 흰바위산 산행, 7월 작년 7월 유명을 달리한 히말리스트 여성산악인 고미영 씨를 추모하며 비바람과 운무 속에 멋진 산행을 했던 벼락바위봉, 찌는 듯 삼복은 지났으나 유래 없이 무더운 노염 속에 몇 사람 초주검이 되었으나 용추계곡의 아름다운 풍광과 시원한 계류, 그리고 산행의 대미를 장식한 한 시간 동안 시원하게 내리퍼붓던 소나기를 맞으며 싫지만은 않았던 매봉, 칼봉산 산행, 빼어난 암릉미와 함께 시원한 조망을 안겨주고 능이버섯까지 내어준 용화산 산행과 칼바람 속에 등선대에서의 멋진 조망이 일품이었던 흘림골 산행까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간다. 강추위로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이 나오지 못했고(특히 포토제닉상의 유력한 주인공인 경혜, 근미, 영주야 씨가 빠진) 비록 유명한 산은 아니지만 작고 소박한 우리네 삶을 많이 닮은 삿갓봉 산행을 끝으로 올 한해 많은 산행 중 아무런 사고 없이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함께 했음에 감사하며 그동안 애쓴 집행부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올 한해 무사안전산행을 기뻐하며 내년에도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다짐하는 건배)
(매운탕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인해 조금 당겨보니 입자가 고르지 못한 사진이 나오고 말았다.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춘천댐을 바로 옆에 두고 자리한 회양횟집에서의 늦은 점심은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참가해 주신 여러분들의 성숙된 자세도 좋았으려니와 외국인이면서도 한국인처럼 살고 있는 브라이언 씨 아내를 따라 연장자를 찾아 술잔을 권하고 받는 겸손한 자세, 아들을 동행하고 가족애를 과시하던 윤영숙 씨의 모습에서 진솔한 가족간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내년에도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바라며 서로 사랑하고 미움 없는 마음의 평화가 가득하고 멋진 정묘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한 해를 보낸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일년 마무리산행기 이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산행후기 잘 읽고갑니다. 다음 산행때도 볼 수 있는 거지요 건강 하십시요,,,,,,,,,,,,,,,,,,,,,,,,,,,,,,,
산행후기 잘 보았습니다....와한권의 책을 읽는듯 한 느낌 입니다. 글 넘 잘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