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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스님의 장군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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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 스크랩 육조단경 2-1 (3. 第一部 壇經解題)청봉청운선사 강설
무애심 추천 0 조회 123 14.08.01 11: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육조단경2 20031224-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3. 第一部  壇經解題

1. 宗旨中의 宗旨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은 줄여서 육조단경이라고도 하고 법보단경(法寶壇經) 또는 단경(壇經)이라고도 한다.
동방 초조 달마대사로부터 선종(禪宗)의 제6조며 불조 33조가 되시는 조계 六조혜능(曹溪惠能)대사께서 설하신 법문을 그 문인들이 기록한 경전(經典)이다.

불법인 진리를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법보(法寶) 또는 경이라 하는데 六조대사께서 설한 진리인 불심(佛心)의 법을 후학들이 높이 받드는 뜻으로 경이라 한 것이다.
이 육조단경은 오래 전부터 선종에 있어서 법보 선지의 의지하는 바의 경으로 삼게 되어 왔던 것이다.

선종이 중국으로 처음 전해진 것은   초조(初祖) 달마대사(達磨大師)에 의해서였다.
달마대사는 석가여래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선법을 전해 받은 28대 祖師로서 인도로부터 중국에 오셔서 중국 선종의 초조가 되셨다.
달마대사로부터 二조 혜가(慧可), 三조 승찬(僧燦), 四조 도신(道信), 五조 홍인(弘忍)에 이어 六조 혜능대사
(불조33조)로 이어져 왔으며, 6조 이후로 (正系 傍系가 없이)여러 갈래로 법맥이 이어져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6조 대사는 실로 달마대사와 더불어 석가모니 부처님에 비할 인물이므로 어록을 경이라 한 것이다.

이 단경에는 부처님이 말씀으로 가르침인 교가 말있음으로 말없음에 이르름과 부처님의 마음인 말없음으로 말없음에 이르는 격외선지
(말이나 글밖의 뜻)가 구경 일치임을 평등문과 차별문에서 잘 드러난 것이라 높은 근기의 불자라면 깊이 통찰, 궁구할 진수인 것 임을 알아야 한다.

6조 혜능대사의 종지가 설파되어 있는 육조단경은 다음과 같은 五종의 이본(異本)이 있다.
1.육조대사 법보단경(六祖大師 法寶壇經) 흔히 종보본(宗寶本)
2.육조대사 법보대경(六祖大師 法寶大經) 고려 연우본(高麗 延祐本)
또는 덕이본(德異本)
3.소주조계산 단조사단경상하(韶州曹溪山 壇祖師壇境上下) 도원서대승본(道元書大乘本)
4.육조단기상하(六祖壇記上下) 혜소서흥성사본(惠所序興聖寺本)
5.남종돈교최상대승 마하반야바라밀경(南宗頓敎最上大乘 磨訶般若波羅蜜經) 육조혜능대사 어소주대범사 시법단경 겸 수무상계제자 법해집기 (六祖惠能大師 於韶州大梵寺 施法壇經 兼 受無相戒弟子 法海集記 )
돈황출토본(燉煌出土本) 이다.

이상의 五종 중 元明이래 지금까지 유통되는 단경은 덕이서(德異序) 종보발(宗寶跋)의 신편(新編)이었다.
이 본의 내용은 대개 행유(行由)·반야(般若)·의문(疑門)·정혜(定慧)·좌선(坐禪)·참회(懺悔)·기연(機緣)·돈점(頓漸)·선조(宣詔)·부촉(付囑)의 10품(品)으로 나누어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때 판본으로 연우병진본(延祐丙辰本)이라고 하는 덕이본
(德異本=덕이선사 편찬)이 유통되어 왔는데 그 내용은
제1.  오법전의    (悟法傳衣 第一)
제2.  석공덕정토  (釋功德淨土 第二)
제3.  정혜일체    (定慧一體 第三)
제4.  교수좌선    (敎授坐禪 第四)
제5.  전향참회    (傳香懺悔 第五)
제6.  참청기연    ( 請機緣 弟六)
제7.  남돈북점    (南頓北漸 第七)
제8.  당조선조    (唐朝宣詔 第八)
제9.  법문대시    (法門對示 第九)
제10. 부촉유통    (付囑流通 第十) 으로 되어 있다.

육조단경은 조계산 대범사의 대강당 무상계단(無上戒壇)에서 무상계와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한 내용으로 육조대사의 문인인 법해(法海)선사가 기록한 것이다.
편찬자가 선사 돈황본의 경명 자체가 겸수 무상계 제자 법해집기(法海集起)라 되어 있으며 본 단경 편찬인인 법해선사는 단경 본문에 문인에 관한 기연편에 법해선사를 앞머리에 두고 法海·法達·智通·智常·志通·行思·懷讓·玄覺·智隍·西蜀僧 方辯·臥輪등의 문인들을 열거해 놓았음은 주목할 부분이다.

6조 법보단경의 편찬 간행은 그 당시 6조대사의 초기의 호법왕(護法王)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사 위거의 발원에 따라, 법해가 편찬한 것으로 단경 본래의 기록을 충실하게 살피도록 한 것이다.
당나라 당시 자사의 지위는 군왕을 대신한 막대한 권한을 가진 실력자로서 6조 문인인 법해선사에게 대사의 어록편찬을 맡겨 법해선사가 중심이 되어 여러 문인들이 함께 참여했을 것으로 본다.

단경의 기본 요제는 무상계(無相戒)와 마하반야바라밀법(摩訶般若波羅蜜法)에 있다.
[무상계]의 내용은 육신
(5온)은 참나가 아니며 현상계는 실체가 있어 항상하는 실상이 아니며 근본 바탕인 당체가 법기의 성품이요 마음이라 부처라 하는 것이다.
마음이라고 하는 자성이 본래 청정한 법신불
(法身佛:본성불신)이고 그 청정한 본 마음의 반야지혜로 관조하는 것이 곧 보신불(報身佛=수행 공덕으로 받는 불신)이며 본래 맑아 깨끗하여 공적하여 있음이 없는 가운데서 무궁무진한 변화 작용을 일으켜 나툰 것이 천백억화신불(千百億化身佛: 응하여 상으로 보인 불신)이다.

육신은 四大인 물질적 요소로 결합
(인연연기)한 일시적으로 生住異滅하는 마음의 그림자이므로 참 나일 수 없으며, 따라서 참 나(眞我: 진여)는 이름하여 마음이며, 곧 자성(自性)이며 부처로, 알 줄 아는 항상하는 생명이며 현상계(일시적으로 나타난 것들) 일체를 창조하고 작용하는 전지전능한 근본체(바탕)로서 이 가운데 일체의 생멸하는 온 우주의 모두를 포용하여 감싸서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름지기 형상있는 물질계는 항상하지 않는 덧없는 환(幻)과 같음을 알아 그 법성인 마음이라는 것을 요달하게 하고자 법
(法: 모든 진리)을 깨우쳐 들게 하는 문(門)이 무상계(無相戒)이다.

마하반야바라밀 법문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마하](摩訶)는 크다, 많다, 뛰어 나다는 뜻을 가진 말로써 법계의 법성인 불성이 본래 무한대로 큰 자성(법성)은 본래 일체 평등한 진공묘유의 경계를 뜻한다.
[반야](般若)는 공하여 빈 가운데 묘하게 있는 근본 지혜로 범어이다.
본래 청정하고 공적한 중생의 마음이요,
법계의 근원을 깨쳐 밝혀서 청정한 법성인 진아 자성에 계합하게 되면 밝은 지혜
(반야)는 저절로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바라밀](派羅蜜)은 도피안(到彼岸)이라 하여 저 언덕(蜜)에 도달(派羅)하여 생사를 초월하고 생멸(生滅)의 상대적 경계를 여의어서 번뇌망상이 끊어진 절대의 경지로 곧 부처님의 지위(불지견)에 나아 간다는 말이다.
이것이 곧 [반야바라밀 법문]이다.

지혜로 이 마음을 관조하여 일체가 진공 묘유함을 요달하면 일체법에 걸림이 없고 간택이 없는 본래 청정·공적한 진여성(眞如性)에 합하게 되어 곧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착(無着)의 반야삼매(般若三昧)가 되는 것이다.

六조 대사께서 
"좌선은 본래 마음을 붙잡는 것도 아니고 조촐함을 붙잡는 것도 아니고 또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일체 경계에 생각
(분별,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一念不起)이 좌(坐)며,
본래의 마음
(自性)인 그 근원의 성품이 어지럽지 않음을 보는 것이 禪이라(見本性不亂爲禪)" 하셨다.

육조단경의 요의는 우주법계의 근원이요
근본바탕인 마음을 밝힌 자성정(自性定) 자성반야(自性般若)와 그 수행법으로써
망념을 여읜
무념을 종(宗)으로 삼고,
일체의 현상을 초월한
무상(無相)으로써 체(體)를 삼으며,
일체에 집착하지 않는
무주(無住)를 근본으로 삼는데 있다.
이상에서 육조단경의 요지를 대략 일렀으나 이것이 곧 禪의 핵심 종지인 것이다.

禪은 선나(禪那)라 하는 범어Dhayna의 음역(音譯)이며 정려, 사유수
(思唯修:진정의 이치를 사유함으로써 산란한 마음을 모아 안정하여 수행함), 정(定)이라 한다.

부처님이 설하신 六바라밀 가운데 계, 정, 혜 三學의 선정은 교(敎)인 말씀인 차별교문이요, 선종의 禪은 오로지 불타의 청정한 마음의 뜻이 가섭(迦葉)의 마음으로 전해진 그대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인 평등
(일체 不二)문인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법은 교법
(말의 도구로써 진리의 문안으로 깨쳐 들게 하신 가르침)이요,
온법계의 성품인 부처님의 마음
(법성)을 바로 보인 직지인심(直指人心)법이 선법인 것이니,
가섭존자에게 전해진 선법이 제28조 달마대사에 이르러 인도로부터 중국에 들어 와서 선풍(禪風)을 일으켰으므로 이것을 달마종 이라고도 하는데 달마 이전의 선법과는 스스로 구별하여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석가세존께서 온 우주의 당체인 근본 바탕인 나의 근원과 그 진리를 깨닫고자 명상하신 그것이 곧 禪이요, 석가모니께서 깨우치신 바를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이 이 교(敎)라, 선과 교가 곧 둘이 아닌것임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교입선(捨敎入禪)의 뜻이 경을 무조건 보지 말고
(버리고) 禪만 하라고 한 뜻이 아니라 경(길)을 알았으면 목적지로(선) 곧장 들어 가라하는 뜻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선종을 불심종 이라고도 하는 것은 달마대사가 처음으로 능가경(楞伽經)에 의해 禪수행법을 전하셨는데 이 경을 일체불어심품(一切佛語心品)이라고도 하고, 경문 가운데 불심제일(佛心第一)이라는 문구(文句)를 일러 줌에 연유하여 달마대사의 선문(禪門)을 교계에서 능가종(楞伽宗), 불심종(佛心宗)이라고 한데 기인한 것이다.

선종이 六조혜능(惠能)대사 이후에 선풍이 크게 일어나면서 선종이라는 단일명으로 통칭되어 능가종, 불심종, 달마종 등의 종명은 사용되지 않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후 청원행사(靑原行思)와 남악회양(南獄懷讓) 이후 임제(臨濟), 조동(曹洞), 위앙( 仰), 법안(法眼), 운문(雲門)종 등의 五가(家)와 율종, 법상종, 삼론종, 화엄종, 천태종, 진언종, 선종 등의
(우리나라 七종을 참고로 하면 고려말 조선초에 조계종, 천태종, 남종, 화엄종, 중신종, 시흥종, 자은종의 七종이 있었으며 후에 조선 세종 때 앞의 3종을 선종, 뒤의 4종을 교종으로 통합했슴) 七종(宗)이 생겼으며 당, 송대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게 되었던 것이다.

싯달타 태자의 명상이 곧 선이요,
석가세존이 이심전심으로 가섭존자에게 전한 三처전심(三處傳心)은 선(禪)의 교시를 보인 것이며 선종의 연원인 것이다.
따라서 교의 뜻
(敎義)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지(禪旨)는 부처님의 마음
(또한 온법계의 근본체인 법성)인 만큼
부처님의 언어와 마음은 둘이 아니므로 구경은 같은 것이다.
부처님은 가르치
(敎)셨고, 조사는 가리켜(直指) 보이(示)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깨달은 근본체와 일체종지를 중생에게 전하는데 있어 敎는 이치로써 말을 빌려 설명한 차별문이고 禪은 일체의 법을 마음으로 직접 전하신 것으로, 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선은 달을 직접 보는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달 가리키는 손 끝을 보지 않고 가리키는 곳에 직접 이르면 본래 둘 아니라 다름이 아님을 밝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禪은 문자와 언설을 초월하여 불타의 법을 깨닫는 초차원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므로 불입문자(不立文字)라 일컫는 것이다.

본래부터 자연히 있었던 법성이요 자성이라고 하는 청정한 마음인 부처를 깨치면 곧 부처님이며, 이것은 말이나 글이나 이론과 분별로써는 깨치는 길이 못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이 생각하여 지어서 하신 말씀으로 중생심의 소견으로 일러 주신 것이 아니요, 부처님의 깨친 바 그대로의 진리를 삼킨 것을 토해 보여 교시하신 것이므로 불언(佛言)과 불심(佛心)은 둘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불법은 누가 만들거나 고칠 수 없는 곧 진리인 것이다.

규봉 종밀선사(圭峯宗密禪師)는 五종의 禪을 다섯 가지로 들어서 그의 저서(禪源諸詮集都序)에
"계교로써 하늘에 나고자 닦는 것은 외도선(外道禪)이요,
인과를 믿으나 싫고 좋은 것이 있으면 범부선(凡夫禪)이며,
아공(我空)의 이치만을 깨달아 닦는 것은 소승선(小乘禪)이요,
아와 법(我法)이 모두 공한 이치를 깨닫고 닦는 것은 대승선(大乘禪)이며,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가 붙을 것이 없고 보리의 지혜가 원래 구족해서 마음이 부처라는 이치를 요달하는것이 최상승선(最上乘禪)이며 또는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 또는 일행삼매(一行三昧) 혹은 진여삼매(眞如三昧)라고 하는데 이것이 일체삼매(一切三昧)의 근본이 되는바 달마정전(達磨正傳)의 禪이다.
달마대사가 동토(東土)에 오시기 전에 제가(諸家)의 견해가 모두 이 四禪
(앞의 네가지) 八定(색계 4선정과 무색계 4공정)이었으며 고승들이 모두 능히 그렇게 닦아(功能) 증득하였었다.
또 남악(南嶽)의 천태대사는 三止
(체진지, 방편수연지, 식이변분별지), 三觀(공관, 가관, 중관)을 닦게 한 그 가르침의 뜻이 매우 원묘(圓妙)하였으나 이 모든 문호 또한 달마 이전의 선법이었다.
오직 달마대사께서 전한 것은 불체(佛體)와 같아서 모든 문호
(들어가는 긴요한 문)가 특이하다" 했다.

후인들은 여래선이란 말까지도 흔적이 있음으로 조사禪의 선지와 차별을 두어 조사선(祖師禪)이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 하게 되었다.
이에 선은 천경만론을 뛰어 넘어 일체를 여읜 것 이므로

不立文字,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
(문자를 세우지 않으며 언설의 가르침 밖에 별로 전한 것으로써 마음을 바로 가리켜 보는 성품이 본래 이루어진 부처임)이란 네귀에 의한 종지를 내세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요약하여 言語道斷 心行處滅이라 한다.

유마경(維摩經) 不二法門 가운데 문수사리 보살이 유마거사에게 "이제 우리들은 不二法門을 다 말했으니 그대가 말해보라" 했을 때 유마거사는 묵연히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문수사리보살은 "거룩하도다 無言, 無說, 無示, 無識 이것이 참된 不二法門이로다"하고 찬탄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진리
(실상)의 세계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달리 보일 수도 없으며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경계여서 알릴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라,
이론으로 알 수 없어 말이 끊어진 것이요(言語道斷) 마음의 사유활동이 구경에 이르게 되어 일체분별 망념이 끊어진 진여경계(心行處滅)이므로 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 의 네 글 귀와 言語道斷 心行處滅의 두 글 귀는 선의 요의를 가장 간명하게 드러낸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선종의 종지는 말도 아니고 글도 아니고 이론도 사량도 다 끊어진 것이라하여 식정이 없는 무정물인 돌과 같고 나무 토막 같은 무지(無知) 무자성(無自性) 무기(無記)로 시체와 같거나 단멸공에 떨어진 혼침이나 허공처럼 텅빈 아예 아무 것도 없는 단멸의 경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선종의 종지를 크게 드날린 영가(永嘉)대사의 永嘉集에 "禪을 하는데 병이 두가지가 있으니 첫째병은 緣慮고 둘째병은 無記다" 하였다.
緣慮는 일체의 의식작용을 말하고 無記는 善도 惡도 아닌 中問性으로 의식작용이 없는 혼미(昏暗)한 상태를 말한다.
영가대사는 "고요하게 마음을 쉬어서 의식을 다스리고 오롯하게 깨어서 혼침을 다스리라(以寂寂治緣慮 以惺惺治昏住)"고 하셨다.

禪은 사량 분별하지 않게 되어야 하되, 깨어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조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밖으로 모든 연을 쉬고 마음속에 헐떡
(번뇌, 망상)임을 없이하여 마음이 담벽같이 되면 도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墻壁 可以入道)" 하셨으며
二조께서 공부가 성취되어 달마대사께 이를 아뢰었을 때 달마대사께서
"허무
(단멸공)에 떨어지지 않았느냐?(莫成斷斷去否)" 고 물었으며
二조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그 증거를 대라" 하니
"또렷하고 오롯
(소소영령)하여 항상 깨어 있음을 아나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라 했다.
二조 혜가대사의 이같은 말을 듣고 달마대사는 二조의 도(道) 깨달음을 인가하셨으니 선은 허무단멸낙공(虛無斷滅落空)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선은 불타와 가섭존자 간의「三처전심」으로부터 아란존자 상나화수존자 등을 거쳐 보리달마에 이르기 까지의 정연한 법맥이 있으며 불입문자라 하나 초조달마대사는 능가경을 二조 혜가대사에게, 五조 홍인대사는 금강경을 六조 혜능대사에게 전했으며, 六조단경을 비롯한 역대조사의 조사어록(祖師語錄)과 논집(論集) 등은 오히려 교종 제가의 전체의 경론에 맞먹을 정도로 방대함도 알아서 말에 떨어지지
(굴림을 당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선이 不立文字라 하나 불입문자라는 말이 곧 글을 빌려 세운 것임도 알아야한다.

2. 중국 선맥의 전승
1). 印度의 28祖(東土初祖菩提達磨)


이심전심으로 석가세존의 정법이 마하가섭에게 三처전심(三處傳心)됨과 같이 선종에서는 별전적(別傳的) 법통을 이어감을 혈맥상승(血脈相承)이라고도 하고 불조명맥(佛祖命脈) 또는 불조법맥이라 한다.
이 불조법맥이 서로 이어짐은 스승과 제자간에 깨달은 마음이 추호의 간격이 없이 합일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사자일매이열파(師資一枚二裂破)라 하며, 만일 이 깨달음에 털끝만한 차이라도 있으면 10만 8천리나 벌어졌다(毫厘有差 天地懸隔)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禪法에 있어서 전법상승(傳法相承)은 가장 중차대하고 구경의 목적인 것으로 사제간의 깨달은 마음이 일치함으로써 가능한 것이고 동시에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과 합일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가받은 법통의 근거도 없이 깨달았다고 자칭하는 이들을 천연외도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해 내려온 법맥이 서천(인도)에서 석가세존의 법이 전해지기를


        제1조 마하가섭 존자          제2조 아란 존자
        제3조 상나화수 존자          제4조 우바국다 존자
        제5조 제다가 존자             제6조 미차가 존자
        제7조 바수밀다 존자          제8조 불타난제 존자
        제9조 복타밀다 존자          제10조 협 존자
        제11조 부나야사 존자        제12조 마명 대사
        제13조 가비마라 존자        제14조 용수 대사
        제15조 가나제파 존자        제16조 라후라다 존자
        제17조 승가란제 존자        제18조 가야사다 존자
        제19조 구마라다 존자        제20조 사야다 존자
        제21조 바수반두 존자        제22조 마나라 존자
        제23조 학늑라 존자           제24조 사자 존자
        제25조 바사사다 존자        제26조 불여밀다 존자
        제27조 반야다라 존자        제28조 보리달마 대사


달마대사는 석가세존의 법통으로는 제28대조가 되고 東土에 오셔서는 선종의 초조가 된다.
또한 28대 보리달마에 이르러 인도의 正系법통은 중국으로 전해오게 되었다.

보리달마(Bodhi-Dharma)는 남인도 향상국(香象國)의 제3王子로서 속명은 "보리다라"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재질이 매우 뛰어나 뭇 사람들의 탄복하는바 였었다.
당시 중인도의 고승 반야다라가 이 나라에 들어와 법을 펴게 되어 대중의 추앙을 받았었다.
국왕이 소문을 듣고 반야다라존자를 궁중으로 모시어 대승설법을 들었으며 마침내 신도가 되었다.
이 반야다라존자는 가섭존자로부터 전해내려온 부처님의 법을 이어온 제27대 조사이시다.
반야다라존자는 궁중에 있는 동안 왕자들에게 설법을 해왔는데 그중 제3왕자인 보리다라가 특히 지혜가 뛰어남을 보고 크게 기뻐했고 왕자 또한 존자를 지극히 존경하고 따랐다.
국왕이 "나라의 보배를 반야다라존자에게 보시하겠다" 했을 때 존자는 제3왕자인 보리다라를 달라고 하였다.
왕은 보리다라왕자를 존자에게 맡겨 일반학문과 불교를 배우게 했다.
보리다라왕자의 수학의 진보는 실로 놀라웠으며 왕자는 출가수행 할 뜻을 굳게 세워 마침내 왕에게 간청해서 허락을 얻게되었다.
제27조 반야다라존자의 제자가 된 보리다라는 사문(沙門)이 되어 승명을 보리달마(菩提達磨)라 하였다.

그 스승 반야다라존자를 따라 신심으로 불도를 수행한지 20年에 교학과 수행과 덕이 극치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도를 깨치고 27조 반야다라의 심인(心印)을 전해받게 되었다.  
하늘과 사람의 스승
(天人師)의 위에 올라 28조가 된 보리달마대사는 드디어 전도교화에 나섰고 그의 이르는 곳마다 민심은 가뭄에 비를 만난 초목처럼 크게 감화되었으며, 문하에는 대승법을 갈망하여 구름같이 모여드는 제자들로 성황하였다.

달마대사가 스승 반야다라존자를 따라 모신지 40여년에 반야다라존자가 입적
(入寂=몸을 버림)할 때 이르러 스승은 제자 달마에게 유언하시기를 "내가 죽은지 67년이 지나면 그대는 동쪽 중국으로 가라. 그곳에 반드시 그대를 기다리는 자가 있으리라" 하였다.
이에 60여년이 지난때에 이르러 달마대사는 스승의 유언을 따라 중국에의 불법동정(佛法東征)을 결심했다.
먼저 제자중 불타야사를 중국에 보내서 교화에 임하도록 했다.

불타야사는 적지 않은 중국의 선승들을 만나 보았으나 뜻을 펴지 못하다가 유명한 여산(盧山)의 혜원(慧遠)대사를 만나 뜻을 펴려다 입적하게  되었다.
그 직후 달마대사는 수로를 따라 三년의 긴 여행끝에 중국에 도달하였다.
첫 도착지는 양나라 무제(梁武帝)가 통치하는 남쪽의 광동(廣東) 지방이었다.
이렇게 하여 양나라 땅을 밟은 달마대사는 관리의 안내로 불심이 대단히 깊었던 당시의 무제와 유명한 법담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달마대사가 광동에 첫발을 들여 놓은 연대는 양 무제 보광(普光) 元년
(五二七年)쯤 이었다.
양 무제는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여 사신을 보내 궁중으로 초청하였다.
당시 무제는 많은 절과 탑을 세웠고 二萬에 달하는 승려의 뒷바라지를 했으며 고승을 초대하여 불전을 연구 간행케 했고 신하들을 모아 설법회(說法會)를 베풀며 많은 불교문화 사업을 했으므로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칭송을 받고 있었다.

양 무제는 문무백관과 당시의 명승을 모아 인도의 고승 달마를 영접하는 자리에 나아가 물었다.
"짐이 즉위한 이래로 절을 짓고 경을 간행하고 스님네 양성에 전력을 다하여 수없이 많은 불사를 했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하니 달마대사가 "공덕이 하나도 없습니다" 했다.
양 무제가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하니
달마대사가 "그것은 모두 人天의 상대적인 인과일 뿐이고 물체를 따라 다니는 그림자와 같아서 실체가 없습니다" 하니
양 무제가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이 됩니까?" 하고 물으니
달마대사가 "세상의 법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양 무제가 "어떤 것이 성스러운 제일의 뜻
(법)입니까?" 하니
달마대사께서는 "크고 비어 넓어서
(확연: 廓然하여)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양 무제가 "그러면 짐을 상대하여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니
달마대사가 "모릅니다" 하였다.
양 무제가 비록 불심이 깊어 불사를 많이했고 많은 스님들을 공양 했으나 달마대사의 이와같은 대승 선법문을 알수있는 경계가 못 되었으니, 오히려 별 것 아닌 승려라 생각하고 분노하기까지 했다.

이에 달마대사는 "이곳은 아직 기연(機緣)이 닿지 않는다"하고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魏)의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로 가서 9년동안 면벽좌선
(面壁坐禪=벽을 대하고 앉아서 선에 듬)만 하고 계셨다.
이 소림사에서 9년 면벽하고 좌선만 하시다가 드디어 二조혜가대사(慧可)를 만나 법을 전하게 되셨던 것이다.

 

 

2. 二 祖   慧 可 大 師


달마대사의 법을 물려 받아 東土의 二조
(불조29조)가 된 이는 혜가(慧可)이시다.
달마대사를 만나기 이전 법명은 神光이었고 속명은  씨 虎牢이다.
출가하여 불전을 널리 보아 해오(解悟)가 깊었다고 한다.
40세에 달마대사를 찾아 6년 동안 모신 뒤 스승 달마로부터 대오(大悟)를 인가(印可) 받게 되었다.
이때 달마대사는 제자 혜가에게 "이것은 나의 심요(心要)이니 잘 받아 지니라"고 하였다.

법을 이어 받게 된 기연은 달마대사가 소림사에 은거하며 면벽좌선하고 있는 어느 겨울날 낙양으로부터 신광(神光)이 찾아왔다.
신광은 문밖에서 참방(參訪)을 고했으나 벽을 향해 앉아 삼매경에 든 달마대사는 묵묵부동 이었다.
신광은 그대로 석실문 밖에서 합장한 채 기다렸다.
때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밤새도록 그칠 줄 몰랐다.
구법열(求法熱)에 불타고 있던 신광은 무릎을지나 올라오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조금도 움직임 없이 달마대사가 선정으로부터 일어나기만 기다리는 가운데 새벽이 되었다.
달마대사는 새벽이 되어서야 좌선(坐禪)을 풀고 나와 가지않고 서있는 신광에게 호통치셨다.
"부처의 높은 도는 무한한 다생을 신명(身命)을 버리고 정진 수행하여,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견디고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여서야 비로소 성취하는 것인데 너같이 적은 덕과 작은 지혜를 가지고 게다가 가볍고 용렬하며 거만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어찌 진실한 불법을 감히 구하려 하느냐?" 하시자
신광은 품속에서 계도(戒刀)를 꺼내어 자신의 왼쪽팔을 잘라서 구법의 신표로써 달마대사에게 바쳤으며 달마대사는 이에 제자가 될 것을 허락하시는 한편 혜가(慧可)라는 법명을 주셨다.

혜가는 6년동안 달마를 모셨는데 달마대사의 그 첫 법문은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임을 없게 하라.
(外息諸緣 內心無喘)  
마음을 장벽처럼 하면 가히 도에 들 수 있느니라.
(心如墻壁 可以入道)" 했다.
이 말은 마음이 담벽처럼 일체의 분별의식이 끊어짐에 이르러 움직임이 없는 定에 이르러 비로소 진여에 합일하여야 견성의 정각을 증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깨달음은 객관의 경계를 끊고 망상이 사라져 내라는 것이 사라 없어져 체달함으로써만 얻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니 내라는 것이 없어 공하고 밝아 확트인 것일 뿐이다.
스스로 믿어서 의식이 끊어져 밝은 것을 보았다 해도 실은 7식인 말라식
(무의식 가운데 내라는 것이 있는 식)에 머묾을 견성이라 오인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자칫 공에 떨어지
(落空)거나 혼암이나 무기(無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므로 단멸(斷滅) 낙공(落空)의 병이 될 수 있음을 스스로는 모르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명안종사의 점검과 인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해가던 二조가 어느날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달마대사에게
"모든 인연을 끊었습니다" 하였을때
달마대사는 "단멸낙공에 떨어지지 않았느냐?"고 다짐하셨던 것이며
이에 二조는
"또렷하고 오롯하여 항상 깨어 있음을 아오나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了了常知故 言之不可及)"라고 답함으로써 드디어 인가를 받게 된 것이다.

초조 달마대사로부터 혜가대사가 깨달은 법문의 기연에 또 다른 대목이 있다. 어느날 혜가는 스승에게
"제자의 마음이 불안하오니 원컨대 편안케 해주옵소서" 하니
달마대사께서
"너의 불안한 마음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 너를 위해 편안하게 해주리라" 하셨다.
혜가가 "마음은 볼수도 없고 만질수도 없어 스님께 가져다 드릴 수
(不可得) 없습니다" 하니
달마대사께서는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히 하여 주었노라" 하셨다.
이때 2조 혜가의 마음이 열였다 한다.

달마문하에 법을 얻은 제자가 四인이 있는데 傍系로 도부는 껍질
(피부)을 얻었고, 총지 비구니(總持尼)인 양무제의 딸은 살을 얻었고, 도육(道育)은 뼈를 얻었고 正系로 혜가는 그 골수를 얻었다고 했다.

 

 

淸峯 參禪曲

 

삶이란 모두가 꿈이건만

무엇을 그토록 가질려고 애를 쓰나

저승갈 때 가져갈건 아무것도 없거늘

五蘊이 요구하는 허망한 욕심만 채우려 애만쓰니

오늘 하루 이 삶도 꿈가운데 꿈이거늘

그 꿈 한번 탐욕대로 꿔보려고

본래갖춘 靈明함은 모두 다 잊고서

눈앞의 아지랑이만 쫓아 이리저리 헤매는 인생이

참으로 애?고 참으로 안타깝소.


사람몸 받기 지극히 어려우니 이때 닦아 성불하게

명안종사 어서찾아 가리킴에 의지하여

닦고 닦아 성취하여 일대사를 해결하오

佛祖를 의심치 말고 믿고 믿어 닦노라면 반드시 이루리다.


24시 모르는것 알려고 의심하고 의심함이

간절하고 간절하면 반드시 이생에 이루리니

일체처 일체시에 실타래 이어가듯 항상 간절하게 의심하며

선지식 참문하길 게을리하지 말고 어서닦아 성취하오.


몸뚱이는 허깨비니 아는놈이 무엇인가?

내본성 참나는 어떻게 생겼으며 어느곳에 상주할가?

눈뜨면 함께하고 움직일때 함께해도 어째서 모르는가?

신통묘용 항상해도 내일이 아닌양 칠통같이 모르니

이 어찌 안타깝지가 않으리오

무릇 중생들이 도를 성취해야 겠다 생각은 간절하나

닦아 증득할 참 수행은 소홀하여

세상잡된 욕구 우선하니 어느 세월 이루리오.

시장잡담 헛소리로 시간 죽이고들 있으며

남들이 한말이나 외워서 살림을 삼아

허구한 날날을 헛되이 보내면서 아는체는 곧잘하며

늙고 죽음 가까운걸 잊고서들 살아가며

참공부는 뒷전이요 탐욕에 몰두하니

죽을 제 황망중에 고통중에 후회한들

이때를 당하여서 난들 어찌 하오리까?


行住坐臥 이일을 모든일에 우선하여

안고서고 잠들고 깨면서도 話頭를 챙긴다면 하루해도 길어서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 나의 天眞面貌

본래갖춘 一切神通 모르는것 없으련만

사람들이 제 아니 닦고 생각만하고  말로 도를 구한다네


본래 이몸 온천지에 가득하여 비할 수 없이 크건마는

육신에 갇혀 이것이 자기라고 스스로 작게하네

깨쳐 보면 이곳이 천당극락 벗어나지 않았으며 영원한 참 삶이건만

어찌 이렇게도  작은것에 탐착하여

스스로 무명에 덮혀 칠통짓을 하며 살가?

묶은이도 없건만은 풀것이 있으리오

생사윤회 깨쳐보면 항상하는 이몸이라

본래없는 생사에 스스로 묶여사니

해탈을 구하려 하지말고 모름을 애?어하오.

 

佛道를 이루지 못하고서

법랍이 오래이면 시주은혜 무거울 뿐

선지식의 점검받아 인가 받지 않고서

스스로 깨쳤다는 이들 모두가 천연외도이니

상을 쫓아 구하지 말며 남의 말에 속지말고

명안종사 찾아 바른지도 받으며 바르게 닦아 바른도를 성취하여

유유자적 순리대로 인연따라 살아가며

불쌍한 중생들을 내몸같이 생각하며

일체중생 제도하여 四恩을 갚고 갚으며  상락아정 하옵소서 


다시 사람몸 받아 정법 만나기가 백천만겁동안 어려우니

만사를 제쳐두고 이일부터 證하여서

좌탈입망 임의자재 모르는 것 없이 하며

항사 신통묘용 마음대로 쓰도록

아무쪼록 닦고 닦음에 소홀함이 없게하오.


이 말을 잘 살펴서 경책삼아 부지런히 공부하오.

이말도 길거늘 무슨 할말 더 있으리오.

다시 한말 이르라면

“나무닭 우는 그때 알아보라” 하리다.   청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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