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은 책을 읽는 내내 허를 찌르며 덤벼든다,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여질만한 이야기들의 천국의 재판정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승에서도 연일 허우적거리는 판에 천국의 재판이라니. 발상부터 유쾌해진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지독한 흡연으로 결국은 폐암으로 사망한 아나톨 피숑에 천국에서 재판을 받고 그 결과로 다시 지상세계로 환속을 하는 과정에 환속을 번복함으로써 오히려 재판장이 주인공을 대신해 환속한다는 이야기다.
천국의 재판이라는 설정이 재미있다. 우리가 아는 죽음 후의 재판이라면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환속을 하느냐 마느냐를 위해 재판을 한다. 천국 재판부의 검사와 변호사는 전생에서 부부여서 천국에서도 서로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폐암 수술을 받으러 병원을 찾은 아나톨 피숑은 수술 중에 사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천국에 와 있었다.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피숑이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고 몸이 다 나은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즐거웠다.
그러나 피숑은 자신의 죽음을 재판장의 자료 화면을 스크린을 통해 확인시켜주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아나톨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니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벌어놓은 재산을 증여하지 못해서 국가에 절반을 빼앗길 수 있다는 물욕을 보인다.
그러나 마침내 돌아가는 길이 자칫 잘못될 수도 있다는 말에 그냥 천국에 남기로 한다. 그는 자신의 육신이 화장으로 처리되는 것을 스크린으로 내려다보았다. 화장을 하기 전에 영안실 직원이 그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려 애쓰는 것을 보고 격분하기도 한다.
재판이 시작된다. 아나톨의 영혼번호는 103-683번이다. 재판장은 아나톨의 전생을 훑어본다. 아나톨은 고대 이집트부터 여러 육체를 거쳤다가 바로 직전에는 몽마르트르 물랭루주에서 춤을 추던 프렌치 캉캉 댄서였다고 했다. <잠자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엘리자베트 루냐크.
피숑은 <잠자리> 씨가 자기의 이번 생을 결정한 것이냐 묻자, 베르트랑 검사가 지금 당신이 당신의 다음 생을 결정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답한다. 그리고 가브리엘 재판장이 삶을 요리로 치면 유전 25%, 카르마 25%, 자유 의지 50%가 재료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유전이라 하면 부모, 그리고 성장 환경을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무의식이 당신의 선택을 좌우한다면 그건 카르마가 지배적인 탓이라고 알려준다. 물론 자유 의지를 최대한 활용하면 유전과 카르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설명도 해준다.
재판장이 아나톨에게 가장 최근에 지상에 다녀온 소회를 묻는다. 아나톨은 자기 삶을 이야기한다. 꽤 좋은 사람,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아내에게 충실했고 좋은 가장이었다고. 사람들에게 베풀고 가톨릭 신자였고, 주변에 인정받는 좋은 직장인이었다고.
검사가 아나톨이 말한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등에 대해 하나하나 자료를 확인하며 지상에서 범한 죄상을 지적한다. 그 과정에서 검사인 베르트랑과 변호사인 카롤린이 티격태격 다툼을 벌이며 웃음을 유발한다. 둘은 전생에 부부였으나 이혼을 했다.
이들의 논쟁 과정에서 천생배필에 대한 견해, 혼외정사, 전통적 가치와 관습, 기본적인 쾌락, 부부관계, 도덕적 문제, 결혼제도, 교육문제 등이 다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숑에 재능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
변호사의 변론을 거쳐 가브리엘 재판장은 판결을 내린다. 제기된 사안에 대해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피고인 아나톨 피숑은 삶의 형에 처해진다. 그러자 얼이 나가 있던 아나톨이 갑자기 폭발해 안 된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재판관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지상의 태아로 환생해야 한다며, 이후 이 법정과 전생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고 재판을 마친다. 이후로는 아나톨의 지상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주장과 가브리엘의 설득이 팽팽히 맞선다.
가브리엘은 아나톨에게 형은 선고 받았음을 상기시킨다. 이곳에 자기와 같이 남고 싶다면 다음번은 모범적인 삶을 살았어야 한다고 말하다. 적어도 한번은. 그러면서 다음 생에 영웅이 되도록 하라고 일러준다. 그러면 모든 게 가능해질 것이라고 한다.
가브리엘은 서류를 꺼내고는, 남자가 되고 싶은지 여자가 되고 싶은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은지, 어떤 스타일이 좋을지, 어떤 부모를 만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어떤 장단점을 가질 것인지, 어떤 사랑을 할 것인지 등을 꼬치꼬치 묻고 이를 기록한다.
그리고는 출생이 임박했음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결정을 했다. 화염에 휩싸인 집에 뛰어 들어가 어린아이를 구하다 죽는 것이다. 그때의 나이는 50살쯤으로. 여기서 가브리엘은 카르마에 해당하는 25%만 여기서 정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것이 무의식의 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일 때 펼쳐지게 될 인생 경로인 셈이다.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징표들이 끊임없이 이 삶의 여정을 일깨워 줄 것이며,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내려가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혼자가 될 것이라고 일러준다.
이제 아나톨이 세상으로 내려갈 시간이 다가오자, 다이빙대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세상으로 가지 않겠다며 다이빙대를 내려온다. 출산은 임박해 있는 상황이라 가브리엘이 서둘러달라고 채근을 한다.
그러나 아나톨은 가브리엘에게 자기 대신 가라고 한다. 자기도 판사이므로 이곳에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결국 가브리엘도 이곳 생활에 지쳐있던 참이라 자기가 세상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린다.
희곡은 곳곳에서 프랑스 사회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의료계의 인력부족, 교육문제, 법조계의 부패 등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검사와 변호사의 대립 속에 결혼 제도의 모순과 부조리가 재치 있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희곡이 사회성 고발 같은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인간의 운명과 자유 의지의 대립 문제가 핵심적인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이 둘이 대립을 하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짧은 희곡이기는 하지만 여운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