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 장구 집주.원문 현토 독해 『대학,중용 장구집주』 /김동구 개정/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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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祖大王 御製序
[아래 글은 『대학』에 붙인 조선시대 영조임금의 글이다. 『대학』이 어떤 책인지를 영조 임금의 글에 의거해서 살필 수 있고 아울러 영조임금이 얼마나 글을 잘 했는지 알 수 있는 기회이기에 소개한다.
夫三代盛時에 設庠序學校而敎人하니 此正禮記所云家有塾하며 黨有庠하며 州有序하며 國有學者也ㅣ라 故로 人生八歲어든 皆入小學하고 於大學則天子之元子衆子로 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子와 與凡民之俊秀者히 及其成童하야 皆入焉하니 可不重歟아 무릇 삼대(하 ․ 은 ․ 주 시대를 말하는데, 당시는 정치와 교육이 잘 이루어지는 때여서 政敎가 완비되었다고 한다)가 성할 때에 상(庠)과 서(序)와 학(學)을 베풀어서 사람을 가르치니, 이는 바로 『예기(禮記)』에 이른바 집(家)에는 서당(塾)이 있으며, 마을(黨 : 500인)에는 상(庠)이라는 학교가 있으며, 고을(州 : 2500인)에는 서(序)라는 학교가 있으며, 나라에는 학(學 : 태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서 여덟 살이 되면 모두 소학에 들어가고 태학은 천자의 맏아들과 여러 아들로부터 공경대부와 원사(元士 : 관직명. 周代의 上士 中士 下士를 통칭하여 이름)의 맏아들과 또 보통 백성 중에서 특별히 재주 있는 사람과 그 성동(成童 : 다 자란 아이)에 이르기까지 다 들어가니 가히 중대하지 않은가.大學之書에 有三綱焉하니 曰明明德 曰新民 曰止於至善也ㅣ오 有八條焉하니 曰格物 曰致知 曰誠意 曰正心 曰修身 曰齊家 曰治國 曰平天下也ㅣ라 次序井井하고 條理方方하야 其學問之道는 紫陽朱夫子序文에 詳備하니 以予蔑學으로 何敢加一辭리오마는 然이나 是書ㅣ 與中庸으로 相爲表裏하야 次序條理ㅣ 若是暸然而學者ㅣ 其猶書自書我自我면 可勝歎哉아
대학의 글에 세 가지 강령이 있으니 가로되 밝은 덕을 밝히는 것과 가로되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과 가로되 지극히 선한 데 그치는 것이요, 여덟 가지 조목이 있으니 가로되 사물에 이르는 것과 가로되 앎을 이루는 것과 가로되 뜻을 성실히 하는 것과 가로되 마음을 바로하는 것과 가로되 몸을 닦는 것과 가로되 집을 가지런히 하는 것과 가로되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가로되 천하를 평치하는 것이다. 차서가 정연(井然)하고 조리가 반듯하여 그 학문의 도는 자양 땅에 사는 주부자(주희)의 서문에 자세히 갖추었으니 내가 배움이 없으면서 어찌 감히 한 말씀을 덧붙이리요마는, 그러나 이 글이 『중용』과 더불어 서로 표리가 되어서 차서와 조리가 이같이 밝은데 만약 배우는 자가 그 오히려 글은 글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이면 가히 어기어 탄식하랴(가히 탄식을 이겨낼 수 있으랴)! 蔑 : 없을 멸 暸 : 밝을 료
噫라 明德이 在何ㅣ오 卽在我一心이며 明明德之工이 在何ㅣ오 亦在我一心이니 若能實下工夫면 正若顔子所云舜何人이며 予何人者也ㅣ라 아! 밝은 덕이 어디에 있는가? 곧 내 한마음에 있으며, 밝은 덕을 밝히는 공부가 어디 있는가? 또한 내 한마음 속에 있으니 만약 능히 실지로 공부를 해나갈 것 같으면 정히 안자가 이르신 바와 같이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같을 것이다. 而三代以後로 師道在下하고 學校不興하야 莫能行灑掃之敎故로 筋骸已强하고 利欲이 交中하야 在我之明德을 不能自明하니 旣不能格致요 又何以誠意며 旣不能正心이오 又何以修身이며 不能格致요 不能誠正이면 家齊國治를 其何望哉리오 삼대 이후로 스승의 도가 아래에 있고 학교가 일어나지 못하여 능히 쇄소(물 뿌리고 비로 쓺)의 가르침을 행하지 못한 까닭에 힘줄과 뼈가 이미 굳어지고 이로움과 욕심이 마음 속에 사귀어서 내게 있는 밝은 덕을 능히 스스로 밝히지 못하니, 이미 능히 격물치지(사물에 이르러서 그 속의 모든 이치를 알아냄)를 하지 못하고서 또 어찌 써 뜻을 성실히 할 수 있으며, 이미 능히 마음을 바루지 못하고 또 어찌 써 몸을 닦으며, 능히 격물치지도 못하고 능히 성의정심도 못하면서 집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 다스림을 그 어찌 바라리요. 灑 : 물 뿌릴 쇄 掃 : 쓸 소 筋 : 힘줄 근 骸 : 뼈 해
하 ․ 은 ․ 주 삼대 이후로는 위에 높이 있어야 할 스승의 도가 아래에 떨어져 버렸으므로 학교교육이 아주 부진했다. 예전에는 여덟 살이 되면 『소학』을 공부하여 맨 처음에 쓸고 물 뿌리는 것부터 가르쳤는데 삼대 이후엔 어린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물 뿌리고 쓰는 게 하찮은 것이지만 거기서부터 인성교육을 시작해야 어린 아이가 크면서 사람다워지고 어른을 알고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초에 물 뿌리고 쓰는 가르침을 하지 못했으니, 그 어린 아이가 커가면서 힘줄과 뼈가 이미 굳어지고 억세졌다. 그러다 보니 利欲이 마음 속에 잔뜩 사귀어서 내게 있는 밝은 덕이 본래 하늘에서 타고난 것인데도 자신의 밝은 덕이 어디 있는 줄 모르고 잊어버려 능히 스스로 밝히지를 못하게 된다. 이렇게 밝은 덕을 밝히지 못하는데 팔조목의 이른바 격물 ․ 치지 ․ 성의 ․ 정심 ․ 수신 ․ 제가 ․ 치국 ․ 평천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予於十九歲에 始讀大學하고 二十九歲에 入學也하야 又講此書而自顧其行컨대 其亦書自我自라 心常恧焉이러니 六十三에 視學明倫堂也할새 先讀序文하고 仍令侍講官及儒生으로 次第以講하니 其日은 則甲子也ㅣ라
與朱夫子作序文之日로 偶然相符하니 日雖相符나 功效愈邈이라 내가 열아홉 살에 비로소 『대학』을 읽고 스물아홉 살에 성균관에 들어가서 또 이 글을 강(講)하고 스스로 그 행실을 돌아보건대 그 또한 글은 글이고 나는 나였다. 마음에 항상 부끄럽더니 예순세 살에 명륜당에서 볼 적에 먼저 서문을 읽고, 인하여 시강관과 유생으로 하여금 차례대로 강하게 하니 그날은 곧 갑자일이었다. 주부자가 서문 지은 날로 더불어 우연히 서로 일진이 갑자(甲子)로 맞아 떨어졌으나 공과 효력은 더욱더 멀었다. 恧 : 부끄러울 뉵 仍 : 인할 잉 愈 : 나을 유, 더욱 유 邈 : 멀 막
又切靦然이러니 望七之年에 因追慕하야 行三講而欲取反約하야 以中庸으로 循環以講하고 因經筵官之請하야 繼講此書하니 自此以後로 庸學을 將輪回以講이라 少時講此에 未見其效어든 暮年重講에 其何望效리오
더욱 간절히 부끄럽더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69세)에 인하여 추모해서 세 번 강함을 행하고 도리어 간략함을 취하고자 해서 『중용』으로 순환하면서 써 강하고 경연관의 청함을 인하여 이어서 이 글을, 이로부터 써 뒤로 『중용』과 『대학』을 장차 돌려가며 강하였다. 젊을 때에 이 『대학』을 강했는데도 그 효력을 보지 못하였는데, 늙은 나이에 거듭 강함에 그 어찌 효력을 바라리요. 靦: 부끄러울 전 筵: 자리 연
尤爲慨然者는 紫陽序文에 豈不云乎아 一有能盡其性者면 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之君師라 하시니 以予晩學凉德으로 旣無誠正之工하고 亦無修齊之效하야 而白首衰耗에 三講此書하니 豈不自恧乎아
더욱 슬퍼지는 것은 자양 땅 주자 서문에 어찌 이르지 아니했는가! “하나라도 능히 그 성품을 다하는 자가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명하사 억조창생의 인군과 스승을 삼는다” 하시니 나의 늦은 배움과 박한 덕으로써 이미 성의정심의 공부도 없고 또한 수신제가의 효력도 없어서 흰머리 쇠한 터럭에 세 번 이 글을 강하니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아니하랴!
然이나 孔聖이 云 溫故而知新이라 하시니 若能因此而知新이면 於予에 豈不大有益也哉리오 仍作序文하야 自勉靈臺하노라
歲戊寅十月甲寅에 序하노라 그러나 공자 성인이 이르시기를 옛 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안다고 하시니, 만약 이로 인해서 새로운 걸 알게 되면 나에게 어찌 크게 유익함이 있지 아니하리요! 그러므로 인하여 이 서문을 지어서 스스로 영대를 밝히려 하노라. 歲戊寅十月甲寅에 序하노라. 해는 무인년이요 시월 갑인일에 이 글을 서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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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의 讀大學法
[다음 글은 『대학』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할 부분에 대해 주자가 말씀한 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대산 김석진 선생의 『대산대학강의』(한길사, 2000년)에서 발췌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는 二程子(정명도, 정이천)의 학설을 존숭하고 『대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이것이 유학의 핵심 경전이 되는 데 반석같은 역할을 하였다. 주자는 끊임없이 『대학』에 수정을 가하여 주석서인『대학장구』와 의심나는 구절과 선유의 제 학설을 대비하여 문답식으로 풀이한 『대학혹문』을 지었다. 작고하기 사흘 전 병든 몸으로 『대학』의 성의장을 개정 ․ 주해하고 세상을 떠날 정도로 주자는 여기에다 혼신을 기울였다고 한다. - 家苑 註]
朱子曰 語孟은 隨事問答이니 難見要領이로대 惟大學은 是曾子述孔子說古人爲學之大方이오 而門人이 又傳述以明其旨라 前後相因하고 體統都具하니 翫味次序하야 知得古人爲學所向하고 却讀語孟이면 便易入이니 後面工夫雖多나 而大體已立矣리라 주자가 말씀하시기를, 『논어』와 『맹자』는 일에 따라 문답한 것이니 그 요령을 보기 어려우나, 오직 『대학』은 증자가 공자께서 옛 사람이 학문을 한 큰 방법을 기술한 것이요. 또 증자의 문인이 전술하여 그 요지를 설명하신 것이다. 앞뒤가 서로 인하고 체통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므로 이 글을 완미(翫味 : 구경하고 맛봄)하고 옛 사람이 학문할 때의 방향을 알아 『논어』와 『맹자』를 읽으면 쉽게 들어가게 되니, 뒤의 공부가 비록 많기는 하나 큰 체는 이미 서게 될 것이다. 翫(玩) : 구경 완 却 : 문득 각 便 : 문득 변
看這一書ㅣ 又自與看語孟으로 不同하니 語孟中엔 只一項事 是一箇道理라 如孟子說仁義處엔 只就仁義上說道理요 孔子答顔淵以克己復禮엔 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어니와 若大學은 却只統說하니 論其功用之極인댄 至於平天下라 然이나 天下所以平은 却先須治國이오 國之所以治는 却先須齊家ㅣ오 家之所以齊는 却先須修身이오 身之所以修는 却先須正心이오 心之所以正은 却先須誠意요 意之所以誠은 却先須致知요 知之所以至는 却先須格物이니라
『대학』을 보는 것이 『논어』와 『맹자』를 보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 『논어』『맹자』 중에는 한 가지 일에 이 한 가지 도리일 뿐이다. 예를 들어 맹자가 인의(仁義)를 설명한 곳에는 다만 인의상에 나아가 도리를 설명했을 뿐이고 공자가 안연(顔淵)에게 극기복례로써 답을 하신 데에는 그 극기복례에 나아가 도리를 설명했을 뿐이나,『대학』은 이 모두를 통합해서 설명했으니 그 공용(功用)의 지극함을 논하자면 평천하에 이른다.그러나 천하가 평치(平治)되려면 먼저 치국(治國)을 해야 하고 나라를 다스리려면 제가(齊家)를 해야 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면 수신(修身)을 해야 하고, 몸을 닦으려면 정심(正心)을 해야 하고, 마음을 바로하려면 성의(誠意)를 해야 하고, 뜻을 성실히 하려면 먼저 치지(致知)를 해야 하고, 앎에 이르려면 격물(格物)을 해야 한다. 這 : 저기 저 箇 : 낱 개
大學은 是爲學綱目이니 先讀大學하야 立定綱領이면 他書는 皆雜說在裏許니라 通得大學了하고 去看他經이라야 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며 此是誠意正心事며 此是修身事며 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니라
『대학』은 학문을 하는 강목(綱目)이 되니, 먼저 『대학』을 읽고 강령(綱領)을 세워서 정하면 다른 글들은 다 섞인 말들로 그 속에 들어 있다. 『대학』을 통득(通得)하고 다른 글을 봐야 비로소 이 격물 치지의 일이며, 이 성의 정심의 일이며, 이 수신의 일이며, 이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일을 보게 될 것이다. 目 : 그물눈 목 裏 : 속 리
今且熟讀大學하야 作間架하고 却以他書로 塡補去하라 大學은 是通言學之初終이오 中庸은 是指本原極致處니라 問欲專看一書댄 以何爲先이니잇고 曰先讀大學이면 可見古人爲學首末次第니 不比他書라 他書는 非一時所言이며 非一人所記니라 又曰 看大學에 固是着逐句看去니 也須先通讀傳文敎熟이라야 方好從頭仔細看이니 若專不識傳文大意면 便看前頭도 亦難이니라 이제 또 『대학』을 숙독해서 공간을 만들어놓고 다른 글로 메워 보충해 나아가라. 『대학』은 이 학문의 처음과 마침을 통틀어 말한 것이고, 『중용』은 본원의 극치처를 가리킨 것이다. 묻기를, 한 가지 책을 전문적으로 보고자 하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말씀하시기를, 먼저 『대학』을 읽으면 옛 사람이 학문을 하는 수말(首末 : 시작과 끝)과 차례를 볼 수 있으니, 다른 책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다른 글은 한때에 말한 바가 아니며 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대학』을 볼 때 진실로 글귀를 따라 보아가야 하나 모름지기 먼저 전문을 통독하고 가르침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처음부터 자세히 보기가 좋으니, 만약 전문(傳文)의 큰 뜻을 알지 못하면 앞 부분을 보는 데도 어렵다. 塡 : 메울 전
又曰嘗欲作一說敎人하노니 只將大學하야 一日에 去讀一遍하고 看他如何是大人之學이며 如何是小學이며 如何是明明德이며 如何是新民이며 如何是止於至善고 하야 日日如是讀이면 月來日去에 自見所謂溫故而知新이라 須是知新이어든 日日看得新이라야 方得이니 却不是道理解新이오 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이니라
또 말씀하였다. 내 일찍이 한 말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니, 다만 『대학』을 가지고 하루에 한 번씩 읽어 나가서 어느 것이 대인의 학문이며, 어느 것이 소학이며, 어느 것이 명명덕이며, 어느 것이 신민이며, 어느 것이 지어지선인가 하는 것을 보아 날마다 이같이 읽어 나가면, 세월이 흘러감에 스스로 이른바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앎)함을 보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이 새로움을 알게 되면 계속해서 보아 다시 또 새로운 것을 얻게 될 것이니, 이도리가 저절로 풀려서 새롭게 됨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의사가 자라나서 새롭게 되는 것이다. 嘗 : 일찍이 상 溫 : 익힐 온 地(所也) : 예비할지
讀大學은 初間에 也只如此讀하며 後來에도 也只如此讀하야 只是初間讀得이 似不與自家相關이라도 後來看熟이면 見許多說話를 須看如此做로대 不如此做면 自不得이니라 讀書는 不可貪多니 當且以大學으로 爲先하야 逐段熟讀精思하고 須令了了分明이라야 方可改讀後段이니 看第二段에 却思量前段하야 令文意로 連續이면 却不妨이니라
『대학』을 읽는 처음에 이와 같이 읽고 뒤에도 이와 같이 읽어 처음 읽은 것이 자신과 서로 관계치 않더라도, 뒤에 올수록 숙독해 나아가면 많은 설명이 모름지기 와 닿아서 이와같이 공부가 됨을 볼 것이니 이같이 공부해 나아가지 않으면 스스로 얻지 못할 것이다. 독서는 많은 것을 탐해서는 안 되니, 마땅히 『대학』으로 먼저 하여 한 단락 한 단락을 따라 숙독하여 정미롭게 생각하고 모름지기 분명하게 해놓고서야, 바야흐로 뒤의 단락을 바꾸어 읽어야 하니, 제이단(第二段)을 보는 데에 앞의 단락을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해서 글의 뜻과 연결시키면 해롭지 않으리라.
問大學稍通에 方要讀論語잇가 曰 且未可하니 大學稍通이어든 正好着心精讀이니라
前日讀時엔 見得前하고 未見得後面하며 見得後하고 未見得前面이러니 今識得大綱體統하니 正好熟看하야 讀此書功深이면 則用博이니라 昔에 尹和靖은 見伊川半年에 方得大學西銘看이러니 今人은 半年에 要讀多少書로다 某此要人讀此는 是如何오 緣此書却不多而規模周備일새니라 凡讀書를 初一項에 須看十分工夫了면 第二項엔 只費得八九分工夫ㅣ오 第三項엔 便只費得六七分工夫니 少間에 讀漸多하면 自通貫이니 他書는 自著不得多工夫니라묻기를, 『대학』을 조금 통함에 바야흐로 『논어』를 읽으려고 합니다만. 이르기를, 가하지 않으니, 『대학』을 조금 통했으면 마음을 붙여 정독함이 좋다.
전일에 읽을 때에는 앞만 알고 뒤를 보지 못했거나 뒤만 보고 앞을 보지 못하더니, 이제 대강과 체통을 알았으니 정히 숙독함을 좋아해서 이 글을 읽는 공이 깊어지면 씀이 넓어질 것이다. 옛적 윤화정(尹和靖)은 이천(伊川)에게 배운 반년에야 비로소 『대학』과 『서명(西銘)』을 보더니 지금 사람은 많은 글을 읽기를 요하는구나! 내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이 글이 양이 많지 않고 규모가 두루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무릇 글을 읽는 것은 처음 한 줄에 십 푼 공부를 부치면 다음 둘째 줄에서는 팔구 푼 공부를 소비하고 그 다음 줄에는 육칠 푼 공부만 소비하면 되니, 얼마 동안을 점점 많이 읽어 나가면 스스로 관통할 것이니 다른 글은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看大學에 俟見大指하고 乃及他書로대 但看時에 須是更將大段하야 分作小段하고 字字句句를 不可容易放過니 常時暗誦黙思하고 反覆硏究하야 未上口時엔 須敎上口하고 未通透시엔 須敎通透하고 已通透後엔 便要純熟이니 直待不思索時에도 此意常在心胸之間하야 驅遣不去라야 方是此一段了하고 又換一段看이니 令如此數段之後엔 心安理熟하야 覺工夫省力時에도 便漸得力也ㅣ리라 『대학』을 봄에 대지(大指)를 보기를 기다리고 다른 글에 미치되, 볼 때에 모름지기 대단을 가지고 소단을 지어 나누고 자구와 자구를 쉽게 놓거나 지나쳐서는 안 된다. 평소에 암송하면서 묵묵히 생각하고 연구를 반복해서 입에 오르지 않을 때엔 입에 오르도록 익히고, 뚫어서 통하지 않았을 때에는 통투(通透 : 통하여 꿰뚫음)할 때까지 기다리고, 통투한 후에는 순전히 익혀야 하니,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이 뜻이 항상 마음 속에 있어서 내쫓아도 떠나가지 않아야만 일단락을 마치고 다음 일단락을 바꾸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몇 단락을 한 후에 마음이 편안하고 이치가 익어서 공부가 덜 힘들다고 생각될 때에도 점점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透 : 통할 투 省 : 덜 생
又曰 大學은 是一箇腔子니 而今에 却要塡敎他實이니 如他說格物은 自家須是去格物後에 塡敎他實이오 著誠意도 亦然하니 若只讀得空殼子면 亦無益也ㅣ니라 讀大學이 豈在看他言語리오 正欲驗之於心如何니 如好好色과 惡惡臭를 試驗之吾心하야 果能好善惡惡이 如此乎아 하며 閒居에 爲不善이 是果有此乎아 하야 一有不至어든 則勇猛奮躍不已라야 必有長進이니라 今不知如此하면 則書自書我自我리니 何益之有리오 또 말씀하시기를, 『대학』은 한낱 빈칸인데 지금 저 실제를 메워 나가야 할 것이다. 예컨대 격물은 스스로 모름지기 격물에 나아간 뒤에 저 실제를 메워 나갈 것이고, 성의를 붙이는 것도 그러하니, 만약 껍데기만 읽어 얻으면 유익함이 없다. 대학을 읽음이 어찌 저 언어에만 있겠는가, 마음에 어떠한가 함을 징험하여야 할 것이니, 좋은 색을 좋아하고 악한 냄새를 싫어함을 내 마음에 시험해서, 과연 “능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이와 같은가” 하며 “한가로이 거처함에 불선을 함이 과연 이러함이 있는가” 하여, 하나라도 이르지 못함이 있으면 용감하고 맹렬히 떨치고 뛰어서 그치지 않아야만 반드시 길게 나아감이 있게 된다. 이제 이와 같음을 모르면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이리니 어찌 유익함이 있겠는가. 腔 : 빈속 강 著 : 붙을 착 殼 : 껍질 각
又曰 某一生에 只看得這文字透하고 見得前賢所未到處로라 溫公이 作通鑑하고 言平生精力이 盡在此書라 하더니 某於大學에 亦然하노니 先須通此라야 方可讀他書니라 又曰 伊川이 舊日敎人에 先看大學하실새 那時엔 未解說이러니 而今에 有註解하야 覺大段分曉了하니 只在仔細看이니라 又曰 看大學에 且逐章理會니 先將本文念得하고 次將章句來解本文하고 又將或問來參章句하야 須逐一令記得이니 反覆尋究하야 待他浹洽이어든 旣逐段曉得하야 却統看溫尋過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생 동안 문자를 다 보고 전현들이 미치지 못한 곳을 발견했다. 사마온공(司馬溫公) 『통감(通鑑)』을 지어 놓고 평생의 정력을 그 책에 다했다 했는데, 나는 『대학』에 또한 그러하니 먼저 『대학』을 통해야만 비로소 다른 글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천 선생이 옛날 사람을 가르칠 때 먼저 『대학』을 보게 하였다. 그 당시엔 해설이 없었으나 지금은 주해가 있어 대단(大段)을 깨닫는 데 밝아지니 다만 자세히 봄에 달려 있을 뿐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대학』을 봄에 문장을 따라 이해해야 하니, 먼저 본문을 가지고 생각해 얻어야 하고 다음에 장구를 가지고 본문을 해석하고, 혹문(或問)을 가지고 장구를 참고하여 모름지기 일념을 따라서 기억해 얻어낼 것이니, 반복하고 찾아 구해서 무젖어 흐뭇함을 기다려야 한다. 이미 단락을 따라 깨우쳐 얻었으면 통합해 보아 익혀 나아가야 할 것이다. 那 : 저것 나 曉 : 밝을 효 浹 : 무젖을 협 洽 : 흡족할 흡
又曰 大學一書에 有正經하고 有章句하고 有或文하니 看來看去면 不用或問하고 只看章句便了ㅣ오 久之면 又只看正經便了ㅣ오 又久之면 自有一部大學이 在我胸中하야 而正經도 亦不用矣리라 然이나 不用某許多工夫면 亦看某底不出이오 不用聖賢許多工夫면 亦看聖賢底不出이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대학』 한 글에 정경(正經)이 있고 장구가 있고 혹문이 있으니, 계속 보아 나가면 혹문을 쓰지 않고 다만 장구만을 보아 마치고, 오래 되면 다만 정경만을 보아 마칠 것이다. 또 오래 되면 스스로 한 부의 『대학』이 내 가슴 속에 있어 정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허다한 공부를 쓰지 않으면 또한 나의 뜻이 나오지 않음을 볼 것이고, 성현의 허다한 공부를 쓰지 않으면 역시 성현이 나오지 않음을 볼 것이다.
又曰 大學解本文未詳者를 於或問中에 詳之하니 且從頭逐句理會라가 到不通處어든 却看하라 或問은 乃註脚之註脚이니라 某解書에 不合太多ㅣ오 又先准備學者하야 爲他設疑說了하니 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了니라 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하야 使人自致思라 하니 此事大不然이로다 人之爲學은 只爭箇肯與不肯耳니 他若不肯向這裏면 略이라도 亦不解致思ㅣ오 他若肯向此一邊이면 自然有味하야 愈詳愈有味하리라 또 이르기를 『대학』본문을 해석하는데 상세하지 못한 것을 혹문 중에 상세히 해놓았으니, 또한 머릿부분을 따라 글귀마다 이해해 나가다 통하지 못하는 곳에 이르거든 보아라. 혹문은 주각(註脚)의 주각이다. 내가 『대학』을 해석함에 간략히 해놓고 먼저 배우는 자를 대비해서 달리 의문나는 바를 가설해 놓았으니 배우는 자에게 보여 얻는데 용이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이 다만 내가 『대학』을 간략히 설명하여 공부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지 못하였다고 하나, 이 일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다만 즐겨 하느냐 즐겨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다툴 뿐이니, 저들이 만약 저 속으로 향함을 즐겨하지 않는다면 간략할지라도 역시 풀어서 생각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저들이 만약 이 한쪽만 향해서 즐겨 한다면 자연 맛이 있어 더욱 상세하고 더욱 맛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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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
大學之書는 古之大(太)學에 所以敎人之法也라 蓋自天降生民으로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언마는 然이나 其氣質之稟이 或不能齊라 是以로 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라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 出於其間이면 則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之君師하여 使之治而敎之하여 以復其性케하시니 此는 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이요 而司徒之職과 典樂之官을 所由設也라 《대학(大學)》의 책은 옛날 태학(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 하늘이 생민(生民)[사람]을 내림으로부터 이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을 부여(賦與)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그 기질(氣質)을 받은 것이 혹 똑같지 못하다. 이 때문에 모두 그 본성(本性)의 소유(所有)함을 알아 온전히 함이 있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聰明)하고 예지(叡智)하여 능히 그 본성(本性)을 다한 자가 그 사이에 나옴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시어 억조 만백성의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백성] 본성(本性)을 회복하게 하시니, 이는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요(堯)·순(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극(極)[법칙]을 세운 것이요, 사도(司徒)의 직책과 전악(典樂)의 벼슬을 이 때문에 설치한 것이다. 三代之隆에 其法寖備하니 然後에 王宮國都로 以及閭巷히 莫不有學하여 人生八歲어든 則自王公以下로 至於庶人之子弟히 皆入小學하여 而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節과 禮樂射御書數之文하고 及其十有五年이어든 則自天子之元子衆子로 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嫡)子와 與凡民之俊秀히 皆入大學하여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하니 此又學校之敎에 大小之節이 所以分也라 삼대(三代)의 융성했을 때에 그 법이 점점 갖추어졌으니, 그러한 뒤에 왕궁(王宮)과 국도(國都)로부터 여항(閭巷)[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학교(學校)가 있지 않은 곳이 없어, 사람이 태어난 지 8세가 되면 왕공(王公)으로부터 이하로 서인(庶人)의 자제(子弟)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교(小學校)에 들어가서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예절과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글을 가르치고, 15세에 이르면 천자(天子)의 원자(元子)·중자(衆子)로부터·공(公)·경(卿)·대부(大夫)·원사(元士)의 적자(嫡子)와 모든 백성의 준수(俊秀)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학(太學)에 들어가서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루며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道)[방법]를 가르쳤으니, 이는 또 학교(學校)의 가르침에 크고 작은 절차가 나누어진 이유이다.
夫以學校之設이 其廣如此하고 敎之之術이 其次第節目之詳이 又如此로되 而其所以爲敎는 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요 不待求之民生日用彛倫之外라 是以로 當世之人이 無不學하고 其學焉者 無不有以知其性分之所固有와 職分之所當爲하여 而各俛焉以盡其力하니 此古昔盛時에 所以治隆於上하고 俗美於下하여 而非後世之所能及也라
학교(學校)의 설치가 그 넓음이 이와 같고, 가르치는 방법이 그 차례와 절목(節目)의 상세함이 또 이와 같되, 그 가르침을 하는 것은 또 모두 인군이 몸소 행하고 마음에 얻은 나머지에 근본하고, 민생(民生)이 일상생활하는 이륜(彛倫)의 밖에 구함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러므로 당세의 사람들이 배우지 않은 이가 없었고, 배운 자들은 그 성분(性分)에 고유(固有)한 바와 직분(職分)에 당연(當然 )한 바를 알아서 각기 힘써 그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는 옛날 융성할 때에 정치가 위에서 높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워, 후세(後世)에서 능히 따를 바가 아닌 소이(所以)이다.
及周之衰하여 賢聖之君不作하고 學校之政不修하여 敎化陵夷하고 風俗頹敗하니 時則有若孔子之聖이사도 而不得君師之位하여 以行其政敎하시니 於是에 獨取先王之法하여 誦而傳之하여 而詔後世하시니 若曲禮少儀內則弟子職諸篇은 固小學之支流餘裔요 而此篇者는 則因小學之成功하여 以著大學之明法하니 外有以極其規模之大하고 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라 三千之徒가 蓋莫不聞其說이언마는 而曾氏之傳이 獨得其宗일새 於是에 作爲傳義하여 以發其意러시니 及孟子沒而其傳泯焉하니 則其書雖存이나 而知者鮮矣라
주(周)나라의 쇠함에 미쳐 어질고 성(聖)스러운 군주(君主)가 나오지 못하고, 학교(學校)의 정사가 닦아지지 못하여 교화(敎化)가 능이(陵夷)[침체]되고 풍속(風俗)이 무너지니, 이 때에는 공자(孔子) 같은 성인(聖人)이 계셔도 인군과 스승의 지위를 얻어 정사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었다. 이에 홀로[다만] 선왕(先王)의 법(法)을 취하여, 외워 전하여 후세(後世)를 가르치시니, 〈곡례(曲禮)〉·〈소의(少儀)〉·〈내칙(內則)〉·〈제자직(弟子職)〉 같은 여러 책은 진실로 소학(小學)의 지류(支流)와 여예(餘裔)이며, 이 책은 소학(小學)의 성공(成功)을 인하여 대학(大學)의 밝은 법을 드러내었으니, 밖으로는 그 규모(規模)의 큼을 다함이 있고, 안으로는 그 절목(節目)의 상세함을 다함이 있다. 삼천명(三千名)의 문도(門徒)가 그 말씀을 듣지 않은 이가 없건마는 증씨(曾氏)의 전함이 홀로 그 종통(宗統)을 얻었다. 이에 전의(傳義)를 지어 그 뜻을 발명했었는데, 맹자(孟子)가 별세함에 미쳐 그 전함이 끊기니, 그 책이 비록 남아 있으나 아는 자가 적었다.
自是以來로 俗儒記誦詞章之習이 其功倍於小學而無用하고 異端虛無寂滅之敎 其高過於大學而無實하고 其他權謀術數一切以就功名之說과 與夫百家衆技之流 所以惑世誣民하여 充塞仁義者가 又紛然雜出乎其間하여 使其君子로 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하고 其小人으로 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하여 晦盲否塞하고 反覆沈痼하여 以及五季之衰而壞亂極矣라 이로부터 이래로 속유(俗儒)들의 기송(記誦)과 사장(詞章)의 익힘이 그 공부가 소학(小學)보다 배가 되었으나 쓸 데가 없었고, 이단(異端)의 허무(虛無)[노장(老莊)], 적멸(寂滅)[불법(佛法)]의 가르침은 그 높음이 대학(大學)보다 더하였으나 실제가 없으며, 기타 권모술수(權謀術數)로서 일체 공명(功名)을 이루는 학설(學說)과 백가(百家) 중기(衆技)의 부류들이 세상을 혹하게 하고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막는 자들이 또 분분(紛紛)하게 그 사이에 섞여 나와서 군자(君子)[위정자]로 하여금 불행하게 대도(大道)의 요체(要諦)를 얻어 듣지 못하게 하고, 소인(小人)[백성]으로 하여금 불행하게 지치(至治)의 혜택을 얻어 입지 못하게 하여, 회맹(晦盲)하고 비색(否塞)하며 반복(反復)하고 침고(沈痼)하여, 오계(五季)의 쇠함에 미쳐 무너지고 혼란함이 지극하였다. 天運循環하여 無往不復일새 宋德隆盛하여 治敎休明하시니 於是에 河南程氏兩夫子出하사 而有以接乎孟氏之傳이라 實始尊信此篇而表章之하시고 旣又爲之次其簡編하여 發其歸趣하시니 然後에 古者大學敎人之法과 聖經賢傳之指가 粲然復明於世하니 雖以熹之不敏으로도 亦幸私淑而與有聞焉호라 顧其爲書 猶頗放失일새 是以로 忘其固陋하고 采而輯之하며 間亦竊附己意하여 補其闕略하고 以俟後之君子하노니 極知僭踰無所逃罪어니와 然이나 於國家化民成俗之意와 學者修己治人之方엔 則未必無小補云이니라. 淳熙己酉二月甲子에 新安朱熹는 序하노라.
천운(天運)이 순환(循環)하여, 가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그리하여 송(宋)나라의 덕(德)이 융성하여 정치와 교육이 아름답고 밝았다. 이에 하남정씨(河南程氏) 두 부자(夫子)[명도(明道)·이천(伊川)]가 나오시어 맹씨(孟氏)의 전통을 접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처음 이 책을 높이고 믿어 표장(表章)하시고, 또 이를 위하여 그 간편(簡編)을 차례하여 귀취(歸趣)를 밝히시니, 그러한 뒤에야 옛날 태학(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과 성경현전(聖經賢傳)의 뜻이 찬란하게 다시 세상에 밝아지니, 비록 나[희(熹)]의 불민(不敏)함으로도 또한 다행히 사숙(私淑)하여 들음에 참여하였노라. 다만 그 책이 아직도 일실(佚失)됨이 많았다. 그러므로 그 고루(固陋)함을 잊고, 뽑아 모으며 사이에 또한 나의 의견을 붙여 궐략(闕略)[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후세(後世)의 군자(君子)를 기다리노니, 참람하고 주제넘어, 그 죄(罪)를 도피할 수 없음을 지극히 알고 있으나, 국가(國家)의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려는 뜻과 배우는 자들의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소의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순희(淳熙) 기유(己酉) 2월(月) 갑자일(甲子日)에 신안(新安) 주희(朱熹)는 서(序)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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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중용법(讀中庸法)
朱子曰 中庸一篇을 某妄以己意로 分其章句하니 是書豈可以章句求哉리오 然이나 學者之於經에 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니라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중용(中庸)》 한 책을 내가 망령되어 내 뜻으로 장구(章句)를 나누었으니, 이 책이 어찌 장구(章句)로써 찾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러나 배우는 자가 경서(經書)에 대하여, 말을 알지 못하면서 그 뜻을 통달하는 자는 있지 않다. 又曰 中庸은 初學者未當理會니라
○ 中庸之書難看하니 中間에 說鬼說神하고 都無理會하니 學者須是見得箇道理了라야 方可看此書將來印證이니라
○ 讀書之序는 須是且著(착) 力去看大學하고 又著力去看論語하고 又著力去看孟子하여 看得三書了하면 這中庸은 半截都了라 不用問人하고 只略略恁看過요 不可掉了易底하여 却先去攻那難底니라 中庸은 多說無形影하여 說下學處少하고 說上達處多하니 若且理會文義면 則可矣니라
○ 讀書에 先須看大綱하고 又看幾多間架니 如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는 此是大綱이요 夫婦所知所能과 與聖人不知不能處는 此類是間架라 譬人看屋에 先看他大綱하고 次看幾多間하고 間內又有小間然後에 方得貫通이니라
또 말씀하였다. 《중용(中庸)》은 처음 배우는 자가 이회(理會)할 수 없다.
○《중용(中庸)》의 책은 보기 어려우니, 중간(中間)에 귀(鬼)를 말하고 신(神)을 말하여 도무지 이회(理會)할 수 없다. 배우는 자가 모름지기 이러한 도리(道理)[진리(眞理)]를 견득(見得)하여야 바야흐로 이 책을 보아, 가져다가 인증(印證)[증명(證明)] 할 수 있을 것이다.
○ 독서(讀書)의 순서는 모름지기 우선 힘을 붙여 《대학(大學)》을 보고, 또 힘을 붙여 《논어(論語)》을 보고, 또 힘을 붙여 《맹자(孟子)》을 보아, 이 세 책을 보고나면 이 《중용(中庸)》은 반절을 모두 마치게 된다. 남에게 물을 것이 없고, 다만 대강 보고 지나야 할 것이요, 쉬운 것은 버리고 도리어 먼저 어려운 것을 다스려서는 안된다. 《중용(中庸)》은 형영(形影)이 없는 것을 많이 말하여, 하학(下學)[인사(人事)]을 설명한 부분이 적고, 상달(上達)[천리(天理)] 을 말한 부분이 많으니, 만일 우선 글 뜻을 이회(理會)하면 가(可)할 것이다.
○ 책을 읽을 때에는 먼저 모름지기 대강(大綱)을 보고, 또 많은 간가(間架)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하늘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하고, 도(道)를 닦음을 교(敎)라 한다.’ 한 것은 이것이 대강(大綱)이요, ‘부부(夫婦)의 아는 바와 능한 바와 성인(聖人)의 알지 못함과 능하지 못함’은 이러한 종류는 이 간가(間架)이다. 비유하면 사람이 집을 볼 때에 먼저 대강을 보고, 그 다음에 몇 칸인가와 칸 안에 또 작은 칸이 있음을 보아야 하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한 뒤에야 바야흐로 관통(貫通)하게 된다.
又曰 中庸은 自首章以下로 多對說將來하여 直是整齊라 某舊讀中庸에 以爲子思做러니 又時復有箇子曰字라 讀得熟後에 方見得是子思參夫子之說하여 著爲此書로라 自是로 沈潛反覆하여 遂漸得其旨趣하니 定得今章句擺布得來에 直恁麽細密이로라
○ 近看中庸하여 於章句文義間에 窺見聖賢述作傳授之意 極有條理하여 如繩貫棋局之不可亂이로라
○ 中庸은 當作六大節看이니 首章이 是一節이니 說中和하고 自君子中庸以下十章이 是一節이니 說中庸하고 君子之道費而隱以下八章이 是一節이니 說費隱하고 哀公問政以下七章이 是一節이니 說誠하고 大哉聖人之道以下六章이 是一節이니 說大德小德하고 末章이 是一節이니 復申首章之義하니라
또 말씀하였다. 《중용(中庸)》은 수장(首章)으로부터 이하는 상대(相對)하여 말한 것이 많아 매우 정제(整齊)하다. 내가 옛날 《중용(中庸)》을 읽을 적에 자사(子思)가 지으신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또 때로 자왈(子曰)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읽기를 익숙히 한 뒤에야 바야흐로 자사(子思)께서 부자(夫子)의 말씀을 참고하여 이 책을 저술하셨음을 발견하였노라. 이로부터 침잠(沈潛)하고 반복(反復)하여 마침내 점점 그 지취(旨趣)를 알았으니, 이제 장구(章句)를 정하여 펴놓음에 이처럼 세밀히 하게 되었노라.
○ 근간(近間)에 《중용(中庸)》을 보아, 장구(章句)의 글 뜻 사이에서 성현(聖賢)들이 술작(述作)하고 전수(傳授)한 뜻이 지극히 조리(條理)가 있어 먹줄이 바둑판을 꿰뚫음과 같아 어지럽힐 수 없음을 엿보았노라.
○《중용(中庸)》은 마땅히 여섯 개의 큰 절(節)로 나누어 보아야 하니, 수장(首章)이 이 1절(節)이니 중화(中和)를 말하였고, ‘군자중용(君子中庸)’로부터 이하 열 장(章)이 이 1절(節)이니 중용(中庸)을 말하였고, ‘군자지도비이은(君子之道費而隱)’ 이하 여덟 장(章)이 이 1절(節)이니 비은(費隱)을 말하였고, ‘애공문정(哀公問政)’ 이하 일곱 장(章)이 이 1절(節)이니 성(誠)을 말하였고, ‘대재성인지도(大哉聖人之道)’ 이하 여섯 장(章)이 이 1절(節)이니 대덕(大德)·소덕(小德)을 말하였고, 끝 장(章)이 이 1절(節)이니 다시 수장(首章)의 뜻을 거듭 말하였다. 問中庸大學之別한대 曰 如讀中庸求義理는 只是致知功夫요 如謹獨修省은 亦只是省意니라 問只是中庸은 直說到聖而不可知處로소이다 曰 如大學裡에 也有如前王不忘은 便是篤恭而天下平底事니라
<혹자가>《중용(中庸)》·《대학(大學)》의 분별을 묻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예를 들면 《중용(中庸)》을 읽어 의리(義理)를 찾는 것은 바로 <《대학(大學)》의> 치지공부(致知工夫)요, 홀로를 삼가며 닦고 살핌은 또한 바로 <《대학(大學)》의> 성의(誠意)이다.” “이 《중용(中庸)》은 곧바로 성인(聖人)으로서 알 수 없는 부분을 말씀하였습니다.” 하고 다시 묻기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학(大學)》에 또한 ‘전왕(前王)을 잊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중용(中庸)》의 ‘공손함을 지극히 하면 천하(天下)가 평해진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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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
中庸은 何爲而作也오 중용은 어찌해서 지음인고
중용장구서는 자사가 중용을 지은 뜻에 대하여 주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답해 나가는 글이다. 자사(기원전 483년~기원전 402년)는 춘추시대 때의 학자로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제자이자 공자의 손자이다. 자사는 字이며 이름은 급(伋)이다. 주자(1130~1200)는 남송시대의 학자로 이름은 희(憙), 호는 회암(晦庵)으로 정자 형제의 학문을 계승하고, 공자의 학문을 더욱 발전시켜 ‘주자학’이라는 一家를 이루었으며 조선시대의 정치와 학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전에 대해 꼼꼼한 해설을 달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해설을 통하지 않고는 경전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정통 유학의 큰 스승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이라고 시작되는 그의 권학문(勸學文)이 잘 알려져 있다.
子思子ㅣ 憂道學之失其傳而作也시니라 자사선생이 도학의 그 전함을 잃을까 근심이 되어서 지으셨느니라
자사라는 이름 뒤에 붙인 子는 孔子, 孟子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선생이란 뜻으로 붙인 것이다. 즉 일정 단계의 공부를 마치고(了 : 마치고) 다시 一家를 이룰 정도의 학문이 있는 큰 스승을 뜻한다.
蓋自上古로 聖神이 繼天立極하야 而道統之傳이 有自來矣ㅣ라
대개 상고로부터 성신(성인으로서 신비로운 분이라는 뜻)이 하늘을 잇고 극을 세우니 도통의 전함이 이로부터 옴이 있느니라 蓋 : 대개 개, 盖는 俗字 繼 : 이을 계
오랜 옛날부터 성인이라 일컫는 복희, 신농, 황제,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은 하늘의 명을 받아(繼天) 나라를 세우고 임금으로 등극(登極)하셨으니(立極) 그분들로 도의 계통이 이어져 왔음을 설명하였다. 비록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무왕을 도와 선정을 베푼 주공과 주역의 도를 완성한 공자까지를 성인이라 일컫는다.
其見於經則允執厥中者는 堯之所以授舜也ㅣ오
그 경(서경)에 나타난 즉 미덥게 그 중을 잡는다는 것은 요임금이 써 순임금에게 전수한 바요
見 : 나타날 현 允 : 진실로 윤, 미더울 윤 執 : 잡을 집 厥 : 그 궐
요임금이 나이 70이 되어 정신이 혼미해 정치를 하기 어려우니 신하들에게 뒤를 이를 사람을 찾으라 하였다. 이에 신하들이 요임금의 아들인 단주(丹朱)를 추천하였다. 그러자 요임금은 ‘내 아들은 모질고 사나워서 아니된다’라고 하며 다른 이를 찾도록 하였다. 이때 추천된 이가 순(舜)이었다.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순을 추천하자 요임금은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시집보내면서까지 순을 두루 관찰하고 시험해 본 뒤에야 비로소 제위를 선양하였다. 그때 전한 말이 윤집궐중(允執厥中)이다. 즉 요임금이 순에게 윤집궐중의 자세 즉 중용지도로 정치할 것을 전한 것이다.
人心은 惟危하고 道心은 惟微하니 惟精惟一이라사 允執厥中者는 舜之所以授禹也ㅣ니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하고 도의 마음은 오직 미미하니 오직 정미롭고 오직 한결같이 하여 미덥게 그 중을 잡는다는 것은 순임금이 써 우임금에게 전수하신 바니
순임금 또한 요임금처럼 왕위를 우임금에게 선양하였는데 이때 순임금은 요임금으로부터 전해받은 윤집궐중에다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 유정유일(惟精惟一)을 덧붙여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에게 전해 중부(中孚)의 뜻을 더욱 정미롭게 하였다.
堯之一言이 至矣(而)盡矣어시어늘 요임금의 한 말씀(윤집궐중)이 지극하고 다하셨거늘
而舜이 復益之以三言者는
순임금이 다시 세 가지 말(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로 더한 것은 復 : 다시 부
則所以明夫堯之一言이 必如是而後에 可庶幾也ㅣ라
즉 무릇 요임금의 한 말씀이 반드시 이와같이 한 뒤에 가히 거의 밝힘이니라
요임금의 윤집궐중이라는 한 마디에 순임금의 세 마디 말(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이 덧붙여져 더욱 그 뜻이 밝아졌다. 여기서 ‘무릇 부(夫)’ 이하의 글은 모두 明의 보어로 해석해야 한다.
蓋嘗論之컨대 心之虛靈知覺이 一而已矣로대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는 則以其或生於形氣之私하며 或原於性命之正하야 而所以爲知覺者ㅣ 不同일새 是以로 或危殆而不安하고 或微妙而難見耳라
대개 일찍이 논하건대 마음의 허령(虛靈 ; 마음이 잡념없이 영묘함)하고 지각(知覺 ; 알아서 깨달음)함이 하나일 따름이로되 써 사람 마음과 도의 마음이 다름이 있는 것은 곧 써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나오며 혹 성명의 바른 데서 근원해서 써 한 바 알아서 깨닫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이로써 혹 위태롭고 불안하고 혹 미묘해서 (道心을) 보기가 어려우니라
대개가 허령이니 지각이라는 것은 모두 태극에서 나와서 하나이겠지만 각각의 몸뚱들이 있으므로 다르다. 형기지사(形氣之私)는 형체와 기질의 사사로움으로 인심(人心)을 가리키는 말이고, 원래 바르게 타고난 성명지정(性命之正)은 근원적인 것으로 도심(道心)을 말한다. 그러나 근원적인 도심은 사사로운 인심에 가려 보기가 쉽지 않다.
然이나 人莫不有是形이라 故로 雖上智라도 不能無人心하고 亦莫不有是性이라 故로 雖下愚라도 不能無道心하니 二者ㅣ 雜於方寸之間하야 而不知所以治之면 則危者ㅣ 愈危하고 微者ㅣ 愈微하고 而天理之公이 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ㅣ라
그러나 사람이 이 형체를 두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비록 상지(성현)라도 능히 인심이 없지 아니하고 또한 이 성품(성명지정 ; 도심)을 두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런고로 비록 아래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능히 도심이 없지 아니하니 두 가지가 한 치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 써 다스리는 바를 알지 못하면 곧 위태로운 자는 더욱 위태로워지고 미미한 자는 더욱 미미해져 천리의 공변됨이 마침내 써 무릇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하느리라 愈 : 더욱 유 卒 : 마침내 졸
성현도 형체를 타고 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있고 우매한 사람이라도 성품을 타고 났기에 도심이 있다. 그러면 성인이냐 우매한 사람이냐 하는 것은 한 치의 차밖에 되지 않는다. 인심을 잘 다스리면 성인이 될 수 있고, 도심을 타고 났더라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우매해진다. 천리의 공변된 가운데서 사람이 나왔음에도 사람들 스스로가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하면 도심이 미미해져 위태로워진다.
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ㅣ오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ㅣ니 從事於斯하야 無小間斷하야 必使道心으로 常爲一身之主하고 而人心이 每聽命焉則危者ㅣ 安하고 微者ㅣ 著하야 而動靜云爲ㅣ 自無過不及之差矣리라
정은 즉 무릇 두 가지 사이에서 잘 관찰하여 섞이지 않는 것이고 한결같이 하면그 본심을 바르게 지켜 떠나지 아니하니 일을 이에 따라 해서 조금도 간단이 없어서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한 몸의 주장을 삼고 인심이 매양 명(천명)을 들으면 위태로운 자는 편안해지고 미미한 자는 밖으로 (크게) 나타나서 움직이고(動) 고요하고(靜) 말하고(云) 행동하는(爲) 것이 스스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차이가 없느니라
정일(精一) 곧 유정유일(惟靜惟一)을 가지고 설명한 글로, 인심과 도심을 잘 닦아야 도심 속에 인심이 함부로 파고 들지 못함을 설명하고 있다. 천명에 항상 귀 기울이면 인심이 도심을 넘지 못해 편안해지고, 도심은 더욱 확연해져 일동일정 하나하나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도심으로써 움직여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夫堯舜禹는 天下之大聖也ㅣ시고 以天下相傳은 天下之大事也ㅣ시니 以天下之大聖으로 行天下之大事하샤대 而其授受之際에 丁寧告戒ㅣ 不過如此하시니 則天下之理ㅣ 豈有以加於此哉리오
무릇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은 천하의 큰 성인이시고 천하로써 서로 전하는 것은 천하의 큰 일이시니 천하의 대성으로서 천하의 큰 일을 행하시되 그 전수하고 전수받는 즈음에 분명히 가르치고 경계하심이 이와 같은 데서 넘지 않으시니 즉 천하의 이치가 어찌 써 이(윤집궐중 유정유일)에 더함이 있으리오 際 : 즈음 제
自是以來로 聖聖이 相承하시니 若成湯文武之爲君과 皐陶伊傅周召之爲臣이 旣皆以此而接夫道統之傳하시고 若吾夫子는 則雖不得其位시나 而所以繼往聖開來學하시니 其功이 反有賢於堯舜者시니라
이로부터 써 옴으로 성인과 성인이 서로 계승하시니 성탕문무같은 인군과 고요 이부 주소같은 신하가 이미 다 이로써 무릇 도통의 전함을 접하시고 그러나 우리 부자(공자)같으신 이는 비록 그 위(천자)는 얻지 못하셨으나 지나간 성인을 이으시고 후학들을 열어주셔서 그 공이 도리어 요임금 순임금보다 나으셨느니라 陶 : 사람 이름 요 傅 : 스승 부
요임금과 순임금과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으로 이어지는 윤집궐중과 유정유일의 도로써 정치를 이어간 인군으로는 은나라를 세운 탕 임금(흔히 成湯이라고도 부른다.)과 주나라를 세운 문왕과 무왕이 있으며, 신하로는 순임금을 도와 공평무사한 법치를 실현한 고요와 은나라 탕임금 때의 신하인 이윤(伊尹)과 고종의 신하인 부열(傅說), 그리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우인 주공과 소공이라는 성인들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해 정치를 하지 않았지만 앞서간 성인들을 이으시고 뒤에 올 후학들을 위해 크게 학문을 연(繼往聖開來學) 이는 공자이시다. 계왕성개래학을 한 공자야말로 오히려 요순보다 나음을 주자는 강조하고 있다.
然이나 當是時하야 見而知之者는 惟顔氏曾氏之傳이 得其宗하시고 及曾氏之再傳하야 而復得夫子之孫子思하니 則去聖이 遠而異端이 起矣ㅣ라
그러나 이 때를 당해서 보고 아는 자는 오직 안씨와 증씨의 전함이 그 종(높음)을 얻으시고 증씨의 두 번 전함에 미처 다시 공자의 손자 자사를 얻으시니 곧 앞서 가신 성인이 멀어지고 이단이 일어났느니라
자사가 중용을 왜 지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견이지지(見而知之)란 선생의 하는 일동일정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배우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한 공자의 3천 제자 중 72인을 신통귀재(神通鬼才)라 하고 그중 수제자는 안자와 증자가 그 종을 얻었다. 하지만 안자(顔回)는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어 스승인 공자를 매우 애통하게 했다. 그리하여 증자가 공자가 돌아가신 뒤 그 도를 전한 증자를 일컬어 재전제자(再傳弟子)라 한다. 공자가 증자를 얻듯이 증자 역시 자사를 얻었다. 하지만 공자가 돌아가시고 오랜 세월이 흐르자 여기저기서 이단이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말하고 있다.
子思ㅣ 懼夫兪久而愈失其眞也하샤 於是에 推本堯舜以來相傳之意하시고 質以平日所聞父師之言하사 更互演繹하야 作爲此書하야 以詔後之學者하시니 蓋其憂之也ㅣ 深이라 故로 其言之也ㅣ 切하고 其慮之也ㅣ 遠이라 故로 其說之也ㅣ 詳하니 其曰天命率性은 則道心之謂也ㅣ오 其曰擇善固執은 則精一之謂也ㅣ오 其曰君子時中은 則執中之謂也ㅣ라
자사가 무릇 더욱 오래됨에 더욱 그 참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셔서 이에 요순으로써 옴으로 서로 전한 뜻을 미루어 근본으로 하시고 평일에 들은 바 아버지와 스승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셔서 다시 서로 넓히고 이어서 이 글(중용)을 지어 만들어서 뒤의 학자에게 가르쳐 주시니 대개 그 근심하심이 깊었느니라. 그러므로 그 말이 간절하고 그 염려하심이 머니라(멀리까지 미침이라). 그러므로 그 설명이 상세하니 그 말한 천명 솔성은 곧 도심을 이름이오 그 말한 택선고집(착한 것을 가려 굳게 잡으라 한 것)은 한결같이 함을 이름이오 그 말한 군자시중(군자는 늘 때로 중을 한다)은 그 중을 잡음을 이름이라 演 넓힐 연 繹 이을 역 擇 : 가릴 택
자사가 세월이 오래가면 오래갈수록 이단은 더욱 많아지고 도의 참됨을 잃을까봐 중용을 지었는데 요임금과 순임금을 근본으로 하여 평상시 아버지(공리, 孔鯉)와 스승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넓게 펼치고 서로 이어(演繹) 후학들에게 일깨워주었다. 그 중요한 내용이 천명솔성(天命率性)과 택선고집(擇善固執), 군자시중(君子時中)임을 주자는 들고 있다. 世之相後ㅣ 千有餘年이로대 而其言之不異ㅣ 如合符節이라 歷選前聖之書하야 所以提?綱維하며 開示蘊奧ㅣ 未有若是之明且盡者也ㅣ라
세대의 서로 뒤함이 천년을 넘었으되 그 말이 서로 다르지 않고 여합부절이라. 일일이 앞선 성인의 글을 가려 보건대 써한 바 벼리를 끌고 당겨서 온오함(깊이 쌓인 것)을 보여주니 이와같이 밝고 또 다함이 이보다 더함이 있겠는가
提 : 끌 제 ? : 이끌 설 綱 : 벼리 강 維 : 벼리 유 蘊 : 쌓일 온 奧 : 깊을 오
세대란 늘 뒤로 이어지므로 세지상후(世之相後)로 표현했다. 공자(기원전 552년~기원전 479) 이후 주자(1130~1200)까지는 천여 년이 넘었음에도 그 말씀은 그때나 지금이나(주자가 살던 시대) 병가(兵家)의 부절처럼 이치에 잘 맞음(如合符節)을 주자는 확인하고 있다. 그리하여 주자가 앞선 성인들을 글을 가려 뽑아서 보건데 모두가 사람들이 사는 벼리를 끌어당겨서 그 속에 깊이 쌓인 도덕적 진리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 중용보다 더한 글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감탄하고 있다. 自是而又再傳以得孟氏하야 爲能推明是書하야 以承先聖之統이러시니 及其沒而遂失其傳焉하니 則吾道之所寄ㅣ 不越乎言語文字之間하고 而異端之說이 日新月盛하야 以至於老佛之道ㅣ 出하야 則彌近理而大亂眞矣ㅣ라
이로부터 또 두 번 전해 맹자를 얻어 능히 이 글(중용)을 미루어 밝혀서 먼저 성인의 법통을 이으시더니 맹자가 돌아가심에 이르러 드디어 그 전함을 잃으니 즉 우리 도(공자의 도)의 부친 바가 언어 문자 사이를 넘지 못하고 이단의 말이 날로 새롭고 달로 성해서 노자 부처의 도가 모두 나오는데 이르러서는 더욱이 이치에 가까우면서 참을 어지럽히니라
寄 : 부칠 기 彌 : 더욱 미
비록 견이지지와 재전제자는 아니지만 자사가 맹자를 얻어 앞선 성인들의 도를 이었지만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그 도가 전해지지 못했다. 자사의 문하생에게 배웠다는 맹자의 출생년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전국시대 때의 인물로 공자의 도를 충실히 계승하여 『맹자』를 썼다. 하지만 맹자 사후 글을 배워 유식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글 잘 짓고 말은 잘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않고 이단만이 날로 성해짐을 설명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이단으로 노장사상과 불교를 들고 있는데 현실의 인륜도덕은 없어지고 사이비만이 판을 치고 있음을 주자는 한탄하고 있다.
然而尙幸此書之不泯이라 故로 程夫子兄弟者ㅣ 出하샤 得有所考하야 以續夫千載不傳之緖하시고 得有所據하야 以斥夫二家似是之非하시니 蓋子思之功이 於是爲大요 而微程夫子면 則亦莫能因其語而得其心也ㅣ리라
그런데 오히려 다행히도 이 글(중용)이 없어지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정명도 정이천 두 형제분이 나오셔서 상고하는 바를 얻어서 무릇 천년 동안을 전하지 못했던 단서를 이음으로써 근거하는 바를 얻어서 써 무릇 두 집(노불)의 옳은 것 같으면서도 그른 것을 배척하시니 대개 자사의 공이 이에 크고 정선생 형제 분이 아니면 즉 또한 능히 그 말로 인하여 그 마음을 얻지 못하리라 泯 : 망할 민 載 : 해 재 微 : 아닐 미
정부자(程夫子)라 함은 북송시대를 살았던 정이(程?, 1033~1107, 伊川先生이라 불림)와 그의 형인 정호(程顥, 1032~1085, 明道先生이라고도 불림)를 높여 일컫는 말로 흔히 이정(二程)이라 부른다. 주돈이(周敦? : 호는 濂溪)의 제자로 정부자의 학설은 주자에게 이어져 주자학을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한다. 자사에게로 이어진 성인의 도가 천여년이 지난 뒤에야 정부자 형제분에게로 다시 이어짐을 밝혔다.
惜乎ㅣ라 其所以爲說者ㅣ 不傳而凡石氏之所輯錄이 僅出於其門人之所記하니 是以로 大義ㅣ 雖明而微言이 未析하고 至其門人之所自爲說하야는 則雖頗詳盡而多所發明이나 然이나 倍其師說而淫於老佛者ㅣ 亦有之矣ㅣ라
아 아깝도다 그 설명한 바가 전하지 못하고 무릇 석씨가 모아서 기록한 바가 겨우 그 문인의 기록한 바에서 나왔으니 이로써 큰 뜻은 비록 밝으나 은미한 말이 따개지지 못하고 그 문인이 스스로 말을 한 곳에 이르러서는 즉 비록 자못 자세하고 다해서 발명한 바가 많으나 그러나 그 스승의 말씀을 거스르고 노불에 빠진 자가 또한 있느니라.
輯 : 모을 집 倍 : 거스를 패 淫 : 빠질 음
주자는 정부자 두 형제분보다 백여년 뒤의 사람으로 그 사이 정씨 형제의 도가 석씨(이름은 돈으로, 정확한 이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에게 전해졌지만 그 문인들이 스승의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도가와 불가의 가르침과 서로 뒤섞여 전해짐을 한탄하고 있다.
熹自蚤歲로 卽嘗受讀而竊疑之하야 沈潛反復이 蓋亦有年이러니 一旦에 恍然하야 似有得其要領者나
내(熹 : 주자의 이름)가 일찍부터 이 글(중용)을 읽다보니 그윽히 의심하여 푹 잠겨 반복함이 대개 몇 해가 되던 하루 아침에 황홀해져 그 요령을 얻었느니라 蚤 : 일찍 조 竊 : 그윽할 절 沈 : 잠길 침 潛 : 잠길 잠
然後에 乃敢會衆說而折其衷하야 旣爲定著章句一篇하야 以俟後之君子하고 而一二同志로 復取石氏書하야 刪其繁亂하야 名以輯略하고 且記所嘗論辨取舍之意하야 別爲或問하야 以附其後하니 然後에 此書之旨ㅣ 支分節解하야 ?絡貫通하며 詳略相因하고 巨細畢擧하야 而凡諸說之同異得失이 亦得以曲暢旁通하야 而各極其趣하니 雖於道統之傳에 不敢妄議나 然이나 初學之士ㅣ 或有取焉이면 則亦庶乎行遠升高之一助云爾라
그런 뒤에 이에 감히 중설을 모으고 그 가운데를 끊어서(절충) 이 ‘장구’라는 한 편을 지어서 뒤에 군자를 기다리고 뜻이 같은 한 두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석씨의 글을 취해서 번거롭고 어지러운 것을 깍아내어 간결하게 하여 ‘집략’이라 하고 또한 일찍부터 논란하고 변론한 것을 취사하여 뜻을 다 기록하여 분별하여 ‘혹문’을 만들고 그 말미에 붙여놓으니 그런 후에 이 책의 큰 뜻이 나뉘어지고 마디가 풀리었으며(支分節解) 맥이 이어지고(?絡貫通) 자세하고 간략함이 서로 인해서 크고 작은 것이 다 들어져 무릇 저 설명의 같고 다름, 얻음과 잃음이 또한 얻어 써 곡진히 펴고 두루 통하야(曲暢旁通) 각각의 취지를 극하게 하니 비록 도통의 전함에 있어 감히 망령되이 의논을 못하지만 그러나 처음 공부하는 이가 또한 취할 바가 있다면 곧 또한 행원승고(먼길을 가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하는 공부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리라.
주자가 장구본을 짓고 집략과 혹문을 쓴 뜻을 상세히 서술해 놓은 글이다.
淳熙 己酉 春三月 戊申에 新安 朱熹는 序하노라 순희 기유년 춘삼월 무신일에 신안 주희는 서하노라.
순희는 남송 효종(孝宗)의 연호이며 신안은 주자가 살던 지명이다. 기유년은 주자가 60세 되던 해이니까 1189년 3월 무신일 즉 3월 18일에 서문을 쓴 것으로 대학장구서와 불과 1개월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