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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첫 번째 축복기도들
구마사들은 구마기도를 축복기도들이라고 부르는데, 악마의 실체가 확실히 드러날 때야 비로소 이것은 구마기도가 된다. 그리고 라틴어로 드리는 기도들이 훨씬 좋다. 왜냐하면 부마자 앞에서 불안을 조장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유는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악마가 들어와 살고 있다고 억지주장을 펴는 정신 나간 이들이 있지만, 거의 확실한 것은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적인 혼란은 구마기도를 받아 봄으로써 진짜 악마의 실체가 숨어있는지 분명히 알아낼 수 있다. 또 이런 상태는 그 어떤 누구도 지식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 내가 상대편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먼저 말을 걸지 않고, 먼저 축복기도를 해주지만 축복의 형식을 띤 구마기도이다. 나는 많은 경우 병자예식서의 경문에 있는 축복을 내린다.
완벽한 준성사는 완전하고 분명한 세 가지의 구마기도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들 기도는 폭넓은 기도를 일컫는다. 이 기도들은 서로 다르고 부수적인 기도들로 시작되어 해방을 위한 기도로 전개되는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도들이 선택된 연도(1614년)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고 이 기도들은 오랜 기간 동안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결실이라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이 기도서를 저술한 사람(알꾸이노 Alcuino)은 이런 기도들이 부마자들에게 주는 결과들을 저울질하며 구마에 대해 많은 실험을 한 사람이다. 이 기도서에서 약간의 빠진 부분들은 깐디도 신부와 내가 즉시 첨부하였다. 예를 들어 이 기도서는 마리아 신심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각각의 세 가지 구마기도에 교황 레오 13세가 사용하던 구마기도 안에 있는 말들을 인용한 기도를 첨부하였다. 하지만 9세기에서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구마는 간단히 끝날 수도 있고, 몇 시간씩 지속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처음 구마기도를 시행할 때, 이미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부정성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어느 것이든 시작기도와 세 가지 중의 한 가지 구마기도를 택하여 간단하게 끝내는 것이 좋다. 통상 내가 첫 번째 기도를 선택하는데 이유는 성유를 발라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구마예식서는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함구하고 있고, 그 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험이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세례예식 때 사용하는 성유의 엄청난 효과를 통해서) 예비자에게 하는 “Sit nominis tui signo famulus tuus munitus(당신 이름의 표시를 통해 종은 보호를 받나이다: 역주)” 라는 말과 함께 성유를 사용할 때의 효과는 크다. 그 순간 악마는 발견되어 쫓겨나가지 않으려고 숨을 자리를 찾느라 발버둥을 친다. 이렇게 처음 몇 번의 구마기도로 그 증세가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안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구마 기도의 힘은 악마의 본체를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게끔 압박을 가하게 된다. 악마를 초조하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유를 바르는 것이다.
구마서는 부마자를 중심으로 구마사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누구는 서있고, 누구는 앉아 있고, 누가 왼쪽, 오른쪽 혹은 앞뒤에 있어야 하는지에 관해서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단지, 구마서는 처음부터 사제가 “Ecce crucem Domini(주님의 십자가를 보라: 역주)” 라는 말로 부마자의 목에 영대 한 쪽을 갖다 대고, 오른손으로 부마자의 머리 위에 얹으라고 지시하고 있다. 우리 경험에 의하면 악마는 인간의 오감에 상당히 민감하고(한번은 악마가 나한테 “나는 인간의 그 오감을 통해 사람들 속에 들어간다고” 라고 말한 적이 있음), 특별히 눈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통상 깐디도 신부와 우리 문하생들은 구마를 할 때, 손가락 두 개를 눈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중요한 기도를 할 때는 눈꺼풀을 뒤집어 본다. 항상 일어나는 일이지만, 악령이 존재할 때는 두 눈이 모두 하얗게 뒤집어지기 때문에 즉시 그 상태를 알아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양손을 모두 사용해야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눈동자가 위로 갔는지 밑으로 갔는지에 따라 다르다.
눈동자의 위치를 통해 어떤 악마가 들어갔는지, 어떤 악의 세력이 방해하고 있는지의 판별 요소가 된다. 흔히 여러 가지 심문을 하다보면 악마는 항상 이중으로 분할되어 있어서 묵시록 9장에서 보여주는 그대로이다. 만약에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다면, 전갈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아래로 처졌을 경우 뱀들을 의미한다. 전갈들은 루치펠(외경에 나오는 이름이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악마의 이름)을 우두머리로 하고 있으며, 루치펠은 모든 악마들의 우두머리이다. 성서의 “악마”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악마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고, 항상 사탄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은 베엘제불이다. 오랜 기간 동안 루치펠은 사탄의 동의어(同義語)로 사용되어 왔다.
나는 이 문제를 깊이 다룰 생각은 없고, 내 경험에 의한 다른 두 악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악마들은 말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완전히 부마상태로 확인된 상당히 심각하다고 판단될 때만 강제적으로 말하도록 명령한다. 악마는 교활해서, 구마사가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끔 훼방을 놓아야겠다는 판단이 설 때, 심문을 받게 될 때, 중요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려는 요령으로 가끔씩 수다스러운 허풍쟁이로 돌변하는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심문할 때 중요한 점은 예식서에 있는 규범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다. 예식서가 명하는 대로 쓸데없는 질문이나 호기심이 발동한 질문을 절대 삼가고 단지, 이름이 무엇이며 다른 악마들도 함께 있는지 묻고 몇이나 되고 언제 어떻게 부마자의 육신에 들어왔는지, 또 언제 나가려는 지를 물어야 한다. 만약에 악마의 실체가 악마를 이용한 주문에 의한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 악마를 이용한 부적이 만들어졌는지 물어야 한다. 혹시 부마자가 악마를 이용한 주문에 걸린 무엇인가를 먹었거나 마셨다면 그것을 토해내도록 해야 한다. 만약에 부마자가 어딘가에 이런 주문에 걸린 부적을 숨겨두고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실토하도록 해서 만약을 위해 깨끗하게 태워 없애야 한다.
실제 부마자라면 구마가 진행되는 동안 악의 실체가 느껴지게 되면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 정체를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갑자기 한꺼번에 그 정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마사는 항상 악의 심각성과 그 힘을 인식하고 있어서 만약에 부마 증상, 악마의 괴롭힘, 편집광, 혹은 경미한 악의 증세인지, 뿌리를 깊게 내린 악인지를 가려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분야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책을 찾아내기란 백색 파리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 이런 정황이 닥칠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사용한다.
구마가 진행되는 동안(이 순간이야말로 악마가 어쩔 수 없이 기어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구마기도의 강력함에 복종해야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에서도 그렇듯 일반적으로 경미한 경우에만 그러하다) 부마자는 완전히 마비상태가 오고 이런 부마자의 입을 통해 악마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 혹은 악마가 조절능력이 없는 부마자의 몸을 마구 비틀게 하고, 구마가 거의 끝나갈 즈음 부마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등이다. 이런 증세들은 틀림없는 악마에게 사로잡힌 상태이거나, 악마가 어떤 사람 속에 들어가서 가끔씩 그의 신체기능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 등이다. 반대로 구마가 진행되는 동안 악마가 날뛰는 증세를 보였으면서도 의식을 완전히 잃은 상태여서 구마가 끝난 뒤 구마기도 동안 자신이 느끼고 일어난 사건을 혼란스럽게 기억하는 상태라면 이것은 악마에 의한 편집광 증세이다. 사람의 육신 속에 고정된 악마는 없지만, 한 놈이 숨어 있다가 간헐적으로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발작을 일으켜 방해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세 번째 형태(부마(付魔)와 악마의 괴롭힘 말고도)인 악마적인 편집광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겠다. 이것은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편집증세 때문에 미칠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특히 한 밤중에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가끔씩 이런 편집증세는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주의할 점은 모든 부마 증세의 치료방법은 항상 똑같다는 것이다. 즉, 기도와 성사들, 단식, 그리스도인의 삶, 자선, 구마이다.
나는 특별히 악의 영향에 의한 일반적인 방해가 지니는 몇 가지 특색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단, 늘 악에 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해 둔다. 이를 분별해 내기 위해서는 한 가지의 증세로 충분하지 않지만 그 원인을 규명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악마들은 인간의 다섯 가지 요소를 공략하려고 노리며, 그 원인의 심각성에 따라 경중이 가려진다. 예를 들어 건강, 감정, 직업, 삶에 대한 의미, 자살충동 등이다.
건강에 대하여
악마는 인간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미 두 가지 일반적인 고통인 두통과 위염에 대해 언급했던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이런 고통은 부마자에게 전형적인 것으로써 다른 일시적인 고통들은 구마를 행하는 중에 대부분 사라진다. 임파선 염증(혹은 혹들), 심한 통증, 타박상 … 등이다. 구마예식서는 이런 고통의 증상을 보이는 곳 위에 십자가 표시를 긋고, 성수를 뿌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많은 경우 나는 단지, 영대 한쪽을 그 부위에 갖다 대고 손으로 누르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보았다. 내가 여러 번 겪은 일은 고통당하고 있는 여인들이 자궁의 물혹 제거 수술을 받기 전에 이미 초음파 상에서 물혹이 발견된 뒤 나를 찾아온다. 그런데 축복기도 뒤에 고통이 사라지고 초음파를 다시 해보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의사는 더 이상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깐디도 신부님은 축복기도를 행하시면서 심각한 질병들이 사라지는 실례들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엄청나게 많이 경험을 한 분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분명히 뇌암이라고 판정을 내렸을 때도 축복기도를 통해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이런 것들은 악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지만, 이런 질병들도 정말 악령에 의한 것인지를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감정에 대하여
악마는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어 신경쇠약증에 걸리도록 한다. 특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칼날 같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사되려던 결혼이 갑자기 파괴되고, 파혼이 일어나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악다구니를 쓰는 신경전이 일어난다. 늘 행복하던 가정 안에 어느 날부터인가 모두가 날카로워져 잠잠할 날이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간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싸움들은 항상 아주 미미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정이 파괴되고, 악에 영향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주위환경이 나를 거부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아 왕따 당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고독 속에 남아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등을 받는다. 몰이해, 거부된 사랑, 완전히 공허한 감정, 불가능한 결혼 등등. 또한 이것은 아주 일반적인 경우이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시 누군가 우정으로 시작한 관계가 사랑으로 옮겨가 공개적으로 구혼을 했지만, 아무 이유 없이 퇴짜를 맞는 경우이다.
직업에 대하여
구직의 불능, 분명 취직이 다 되었다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급작스럽게 퇴짜를 맞는 경우, 혹은 하찮은 일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 아주 어렵게 직장을 구한 뒤 면접시험에 조차 가지 않고, 스스로 포기해버려 가족들은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한다. 나는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이유들로 해서 가장 비참한 가난에 떨어지는 가정들을 보았다. 어떤 경우는 대기업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해서 갑자기 붕괴되어 구마기도를 한 적도 있었다. 또 잘나가던 사업가가 별 것 아닌 것에 실수를 연발하면서 빚만 잔뜩 짊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또는 손님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 가게에 갑자기 파리 한 마리 얼씬하지 않다가, 결국은 손을 털고 문을 닫아야 하는 주인들도 생겨난다. 근본적으로 도저히 직업을 구하지 못하거나 보통의 재산을 지녔다가 갑자기 처참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엄청 많은 일을 하다가 갑자기 실업자가 되는 경우 등이다. 이런 것들은 항상 논리적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게 된다.
삶의 의미에 대하여
육체적인 고통들, 감정적인 소외, 경제적인 실패 등은 당연히 삶을 아주 회의적으로 보게 하여 삶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낙천적이고 희망을 가꾸는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결국 삶은 온통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인식되어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자살 충동
악마가 최종적으로 끌고 가는 단계로써 좌절하게 하여 자살로 유도한다.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람이 교회로부터 보호받고 있거나 혹은 단 한 번의 축복기도를 통해서 이 다섯 번째 요소는 사라진다. 마치 야훼께서 악마에게 욥을 유혹하도록 허락하는 장면을 다시 보는 것만 같다. “좋다! 이제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인다. 그러나 그의 목숨만은 건드리지 말아라.”(욥 2, 6). 이와 비슷한 기적적인 주님의 개입을 통해 자살로부터 목숨을 구한 많은 사람들의 일화들을 무한대로 들 수 있다.
내가 이런 다섯 가지 요소들을 구마기도에 적용할 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완전히 다섯 가지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심각성을 띤 각기 다른 궤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고통들은 악마의 세력에 지배를 당한 결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요인이 작용하는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부마자가 되었다거나 악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함부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다섯 번째 요소인 죽고 싶다는 생각과 자살충동 등은 그 어떤 것보다도 심각한 것으로 여기에 적어도 두 가지 정도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전문적인 간호사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심한 신경 발작 증세를 일으키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해내게 된다. 수혈환자에게 수혈 준비를 하면서 갑자기 “이 환자와 다른 형의 혈액을 주사하면 그 환자는 죽을 것이고 나는 체포당하겠지. 그러면 적어도 감옥에서 숨어살 수 있을 거야, 그게 훨씬 낫지.” 이런 생각을 한 뒤 그대로 혈액형이 다른 피를 환자에게 분명히 수혈했다고 생각하면서 실행하였다. 그리고는 태연히 자기 방에 가서 체포당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수혈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어떻게 가능했는지 아무도 모름). 간호사는 자신의 우둔함을 깊이 뉘우치게 된다.
쟌까를로는 25살 된 잘생긴 청년으로 보기에 활력이 넘치고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세 들어 사는 사람”이 그를 심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구마기도가 그를 어느 정도 도와주긴 했지만, 큰 효과는 주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참다못한 청년은 모든 것을 끝장내버리기로 작정하고 지난번에도 자살을 시도했던 대로 가장 왕래가 심한 주요 기차들이 달리는 중앙 철도선 쪽으로 걸어갔다. 철길이 널찍한 모퉁이 길로 돌아서는 지점에서 두 개의 플랫홈 중에서 왕래가 빈번한 철도선 위에 침낭을 깔고 4-5시간 동안 누워 죽음으로 데려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대의 기차가 같은 방향으로 지나쳐 갔지만, 이상하게도 청년이 누워서 자살을 기다리고 있는 쪽으로 단 한 대의 기차도 지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기관사나 역무관도 그 청년이 거기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 사건은 나에게 있어서 통상적인 설명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깐디도 신부는 오랜 경험이 쌓인 분이시기 때문에 행여라도 이와 비슷한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마(축복)를 해보신 경험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단지 한 케이스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그 사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로마에 사는 여자 아이로 완전히 부마상태에 빠져 아주 좋지 않은 상태로 신부님께 찾아와 구마기도를 받기 시작하였다. 자살충동을 물리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약간의 호전증세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그녀의 어머니도 깐디도 신부님을 찾아와 자신의 딸이 강박관념에 빠졌다고 믿는다면서 신부님 앞에서 여자 아이를 계속적으로 추궁하고 있었다. 깐디도 신부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확신이 든 눈치였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어느 날인가 그 딸은 엄마에게 자신이 계속 느끼고 있는 자살충동에 대해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자 이에 지겨워진 엄마는 늘 하던 것처럼 다음과 같이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네가 정말 강박증세에 빠졌다면 넌 전혀 쓸모없는 애야, 네가 죽을 용기나 있는 애니? 해볼 테면 해봐!” 라고 말하면서 창문을 열어 제꼈다. 그 딸은 즉시 뛰어내려 즉사하고 말았다. 깐디도 신부님께 구마기도를 받던 사람 중 이런 식의 사고가 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엄마의 잘못 이전에 딸이 이런 상황에 빠지게끔 방관했던 다른 죄들이 더 크다.
악마로부터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구마기도는 도저히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몇 시간씩 지속되는 경우가 있음을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다. 기도를 받는 상대편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경우에 따라서 이런 협조에도 불구하고 치유가 아니라 호전증상만 보일 때도 있다.
어느 날인가 깐디도 신부님은 크고 덩치가 좋은 젊은이에게 구마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부마자는 구마사로 하여금 엄청나게 땀을 흘리게 만드는 장본인으로 구마사의 육체적인 힘도 필요하다. 어떤 때는 정말 완전히 구마사와 부마자가 심하게 싸우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구마기도가 시작되기 전에 그 젊은이는 깐디도 신부님께 “오늘 신부님께서 저에게 구마기도를 하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오늘 이상하게도 신부님께 해를 입힐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오거든요.” 실제로 구마 중에 이 두 사람 사이에 싸움도 그런 심한 싸움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했는데, 도대체 누가 이기고 지는지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의 대단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젊은이가 무너졌고, 조금 있다가 부마자 위에 깐디도 신부도 쓰러졌다. 깐디도 신부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아마 그 순간에 누군가가 그 방에 들어 왔더라면 누가 구마사이고 누가 부마자인지 분간을 못했을 정도였다니까.” 그런 뒤 깐디도 신부님은 정신을 차리고 구마의 마지막 부분까지 행하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 성 비오 신부님(산 죠반니 로똔도. 역주)께서 깐디도 신부님께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게 하셨다. “신부님, 그 젊은이 때문에 시간과 힘을 낭비할 필요 없습니다. 힘만 낭비할 뿐입니다.”라는 말이었다. 비오 신부님은 하늘로부터 오는 느낌을 깐디도 신부님께 전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깐디도 신부님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절대로 아무 효과도 얻지 못할 것임을 알아채었다. 실제로 오상의 성 비오 신부의 말이 맞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한 내용을 첨부하고 싶다. 부마증상은 전염성이 없으며 가족이나 부마자를 도와주는 사람들, 구마가 진행되는 장소 등으로 절대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두고 싶다. 이에 대해 분명히 언질을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모두가 알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구마사들은 이런 준성사를 거행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런 장소를 빌려주지 않는 큰 이유는 그 장소에 악마가 전염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제들만이라도 부마자들의 존재와 그들에게 행하는 구마기도를 위한 장소, 혹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흔적이나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죄다. 죄인은 냉혹하고 모욕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가정과 직장, 자신이 찾는 장소 등에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 충격적인 몇 가지 케이스 중에서도 나한테 일어난 일로써 상당히 일반적인 형태를 소개하고 싶다.
안나 마리아라고 부르는 16된 소녀는 얼마 전부터 집안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들로 도저히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고(과거에는 전혀 학업에 문제가 없었음), 급기야는 부모와 자매들이 그 아이를 내게 데려왔다. 그 아이에게 축복기도를 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작은 어둠이었다. 어떤 방해를 느낀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엄마에게도 기도를 해주었다. 그 엄마의 머리 위에 손을 얹자 그녀는 엄청나게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의자에 앉아 있다가 땅바닥에 자지러지듯 미끄러졌다. 두 명의 자매들을 밖으로 내 보낸 뒤, 그녀의 남편이 동석한 자리에서 계속 구마를 진행하였다. 오히려 딸보다도 엄청나게 심한 어둠이 느껴졌다. 안나 마리아의 경우는 상당히 미약했기 때문에 단지 세 번의 축복기도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에 충분했지만, 그녀의 엄마를 위해서는 무려 석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매 주 한 번씩 찾아와 축복기도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완전히 치유되었는데,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서른 살이 된 요안나라고 하는 부인은 세 명의 자녀를 둔 주부로서 고해성사를 보고 싶어 했다. 두통과 위통, 의식불명 등을 호소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진단에 의하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이다. 조금씩 그 악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세 놈의 악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가 있었다. 각각 서로 다른 악마를 이용한 주문에 의해 꼬리를 물고 한 놈씩 서로 다른 시기에 그 여자 안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악마적 주문은 결혼하기 전 요안나의 약혼자와 결혼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던 여자가 파혼을 목적으로 악마를 이용한 주문을 주술사에게 부탁함으로써 들어간 악마였다. 그러나 요안나의 가정은 굉장히 열심히 기도하는 가정이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구마기도를 진행할 수 있었고, 두 악마들을 비교적 빨리 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세 번째 악마로서 어찌나 찐득대고 끈질겼는지 모른다. 심지어 이놈을 쫓아내기 위해 3 년이라는 세월 동안 일 주일에 한 번씩 꾸준한 구마기도를 필요로 했으니 말이다.
마르첼라라고 하는 거만한 분위기를 풍기는 19살 된 처녀가 약속대로 나를 찾아왔다. 창으로 쑤시는 듯한 위통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며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도저히 컨트롤 할 수 없는 어떤 행동 때문이었다. 툭하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비수 같은 말들을 쏘아붙이는 이상한 행동 때문이었다. 의사들에 의하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처녀의 눈꺼풀 위에 손을 얹고 구마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두 눈이 완전히 흰색으로 뒤집어지면서 눈동자가 겨우 보일 듯 말듯하게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갑자기 조롱하듯 낄낄대기 시작했다. 내가 즉시 사탄임을 눈치 채자 다음과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그래, 나는 사탄이라구!” 하면서 다시 낄낄대고 웃었다. 마르첼라도 조금씩 기도생활을 접어들기 시작했고, 매일 영성체를 영하고 매일의 묵주기도와 매 주의 고해성사(구마보다 강한 것이 고해성사)를 보는데 노력하였다. 점차적으로 좋아졌는데, 잠깐이라도 기도생활을 소홀히 했을 때, 호전증세는 느려지기도 했으나 단 2 년 만에 완전히 부마에서 해방되었다.
28살 된 요셉은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요셉이 따라온 이유는 가족들의 지겨운 부탁이나 한 번 들어주자는 셈으로 나를 찾아온 것을 즉시 느낄 수 있었다. 아주 강한 연기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마약을 복용하면서 마약 판매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습관적으로 상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기도와 성사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어서 내 축복기도(구마기도)를 의지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도록 살살 달래야 했다. 기도는 얼마 가지 못했는데 즉시 악마가 난폭한 방법으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요셉 안에 무엇이 있는지 조용히 설명해주었지만, 이 청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거요? 이미 알고 있다고요, 악마가 제안에 살고, 저도 악마랑 사는 것이 편하고 좋다니까요.” 그런 뒤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젊은 안젤라라고 하는 수녀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는 이미 절망적인 상태였다. 거의 말을 못하는 상태에다가 기도조차도 할 수 없는 포기상태였다. 몸 전체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보여질 정도였고, 그녀의 그 어떤 부분도 고통이 점령하지 않은 부분이 없는 듯 보였다. 계속적으로 머리 속에서는 욕설들이 귀청을 찢을 정도로 울려나오고, 요상한 소리들을 듣고 있었는데 다른 수녀들도 그런 소리를 듣곤 하였다. 이런 어려움이 있기 전에 비난받아 마땅할 어떤 사제의 저주 (악마를 이용한 주문일 수도 있음)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안젤라 수녀는 이런 모든 고통을 자신의 수도회의 선을 위해 봉헌하였다. 많은 축복기도(구마기도) 뒤에 호전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나 다른 도시로 옮겨갔다. 정말 다른 어떤 구마사를 만나서 해방을 위한 노력이 계속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 가정 전체에 악을 행할 요량으로 악마를 이용한 주문에 의한 충격적인 케이스들도 있는데, 여기에서 한 가지만 소개하겠다. 큰 배달 도매상을 운영하는 아주 유연하게 풀려나가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단 한 건의 배달요청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장 창고마다 물건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소매상들로부터 단 한 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 번은 겨우 어떻게 해서 컨테이너 한 대 분의 물건을 실어 소매상에 도착해 물건을 하역하다 보니 온통 물건이 썩어있는 것이었다. 물건 요청을 받는 장소에 가기도 전에 모두 썩어버리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하자, 모든 계약들이 파기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또 한 번은 어렵게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고 물건을 실어 나를 컨테이너가 도착했지만, 창고의 셔터 문을 아무도 열 수가 없었다. 이 또한 실패로 끝났다. 뿐만 아니라 딸 한 명이 결혼을 하자마자 사위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다른 딸은 막 결혼을 하려고 모든 결혼식 준비가 다 끝내고, 새 살림집 가구까지 마련이 되었는데 갑자기 신랑 될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결혼을 못하겠다는 거였다. 건강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집안에서 이상한 소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악마의 영향에 있을 때, 꼭 동반되는 증상들이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난감한 상태처럼 보인다. 이 상황도 똑같이 늘 하던 대로 기도하라는 충고와 함께 자주 성사생활에 참여하고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인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축복기도(구마기도)를 한 뒤 집 구석구석과 아버지가 일하는 장소들에 대해서 구마를 행하고 거기에서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느리긴 했지만 일 년 뒤에 계속적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정말 인내와 신앙에 대한 멀고도 힘든 시험이다!
20대의 안또니아라고 하는 여자는 제과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나를 방문하였다. 그 딸은 환시를 보는 사람처럼 되어서 이상한 목소리들을 듣고 불면증 등으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고 했다. 그런데 동시다발적으로 그 아버지는 엄청난 위통을 겪기 시작해, 의사를 찾아가 의사들을 처방하는 대로 약을 썼지만 전혀 효험을 보지 못했다. 내가 그 여자에게 손을 대고 구마기도를 시작했을 때 약한 어둠을 보게 되었고, 큰 문제가 없다면 몇 번의 구마기도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반대로 그 아버지에게 손을 대고 구마기도를 시작했을 때, 완전히 마비상태가 되어서 벙어리가 되었는데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전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딸에게 아버지가 놀랄 수 있으니까 절대로 이 일을 비밀로 해두라고 이른 뒤, 두 명 모두 다시 나를 찾아오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간 딸은 도저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구마기도 중에 아버지에게서 일어났던 일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실토하였다. 자신의 마비상태가 되었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그 즉시로 점쟁이를 찾아갔다. 분명한 것은 나를 찾아왔던 이 두 사람은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에 있었는데도 그들은 더 이상 기도를 위해 찾아오지 않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부마에서 해방되는 기간이 너무나도 긴 것에 실망하여 무당이나 주술사들을 찾아가는데 그 결과는 엄청나게 비극적이다. 하느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소유한 피조물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를 스스로 파괴되는 것도 우리 자유일 뿐이다.
이 장을 마치면서 결론은 분명하다. 각자 구마사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경험들이 있으며 어떤 경우는 도저히 재현 불가능한 희귀한 경험들도 하게 된다. 혹은 다른 구마사들의 경험과도 비교해볼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구마사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특히 두 눈 위에 손을 얹는 것, 두통, 위통 등에 대해서다. 물론 이 외에도 내가 부마자들을 만나면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다른 예들을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증세들은 깐디도 신부님께서 구마를 행할 때 거의 매번 똑같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제는 그 문하생들에게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들이다. 다른 구마사들과 비교할만한 똑같은 증상을 경험해보지 못했을지라도 모든 증상들은 진짜다.
구마를 하면서 사용하는 각자 다른 방법들과 경험들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건, 혹은 어떤 형태의 증상이나 다른 구마사들의 경험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떤 특정한 구마사의 특별한 방법이 구마에 효과를 준다고 해서 그것을 함부로 비하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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