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위주로 차려진 '산호' 한정식)
맛객은 한정식을 2가지로 구분한다. 남도식과 서울식. 온갖 해산물과 감칠맛 나는 젓갈, 웅숭깊은 김치를 비롯해 수십 가지 반찬과 음식들이 한 상에 차려지는 게 남도식이다. 서울식 한정식은 맛보다 모양새, 시각적인 만족도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달리 말하면 형식미를 추구한다.
따라서 보기에는 화려해도 먹어보면 별 실속 없어 실망하기 일쑤이다. 먹고 나면 허무해지기까지 하는 게 서울 한정식의 특징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자국민에게까지 외면 받고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게 우리네 한정식의 현주소이고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한 이유로 한정식보다 백반을 더 즐긴다. 물론 가격이 싸다는 이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맛깔나기 때문이다. 한정식집이 몰려있는 인사동에서 유독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집이 있다. 이집 음식 맛의 비결은 주인장의 고향집에서 공수해오는 된장이나 고추장,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장아찌류에 있다. 특히 밥상의 메인자리를 차지하는 된장찌개는 된장 자체가 맛이 좋다.
그러니 된장찌개에 별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특유의 구수함과 깊은 맛을 담고 있다. 감 장아찌를 비롯해 서너 가지 장아찌와 젓갈 등 반찬들도 하나 같이 젓가락질 하게 만든다. 그러니 먹고 나도 한정식처럼 허무함이 들지 않고 만족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맛객도 10여 년 전 부터 이 집을 드나들면서 다른 집과 확연히 구분되는 맛에 빠져 살았었다. 그러니 정갈하기까지만 해서 마치 박제화 된 느낌을 주는 한정식이 입맛에 들 리가 없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인천에도 해산물이 제법 나오는 괜찮은 한정식집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해서 지난 6월 13일 인터넷 맛 동호회 회원들과 찾아간 그곳은 인천 건설회관 뒤편에 있는 한정식 ‘산호’이다. 점심상은 15,000원에 제공되고 저녁은 20,000원에 제공되는 집이다. 우리가 찾아간 때가 저녁이라 1인 2만원(4인 합계 8만원, 주류비 제외) 상을 차렸다.
(꼬득하게 말린 장대찜)
(밥 위에 올려진 장대 살점)
그런데 이집의 한정식은 서울식도 아니요 전라도식도 아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산호’만의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일품요리 댓 개정도 차려진 중국집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차려진 면면을 살펴보자. 전복과 문어숙회가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한쪽에는 꼬득하게 말려 찐 장대가 자리잡고 있다. 장대 살점을 손으로 쭈욱 찢어 하얀 쌀밥에 얹어 먹어 보시라. 딱 맞게 간이 된데다 꼬득한 살점을 씹는 맛은 생물생선을 먹는 맛과는 묘미가 다르다. 자고로 생선은 말리거나 숙성하면 맛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병어찜, 단품메뉴로는 15,000원 한다)
(간장게장)
(등 껍데기에 밥을 비비지 않으면 게장 먹었다는 기분이 안 산다)
또 커다란 병어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감자와 무를 도툼하게 썰어 함께 쪄낸 것도 있다. 병어의 보드랍고 하얀 속살을 먹는 맛은 장대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담백하기만 하다. 병어도 병어지만 육수를 가득 밴 감자나 무는 생선조림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이기도 하다.
맛객은 어려서부터 피라미조림을 즐겼는데 사실 피라미보다 무를 더 맛있게 먹었다. 고등어조림을 먹을 때도 고등어보다 맛있는 게 부드럽게 씹히는 무였다. 무 특유의 풍미와 달콤한 듯 씁쓰름한 듯 그 맛이 기막히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 음식의 무는 뜨거울 때도 맛있지만 식었을 때 먹어도 참맛이다.
(게꾹지스러운 찌개)
(모둠전)
김치가 들어가 언뜻 보면 김치찌개가 아닌가 싶지만 충청도 서산 향토음식인 게꾹지와 같은 식의 찌개도 보인다. 개운하고 삼삼한 국물 맛이 좋다. 등갈비찜과 모듬전도 있어 밥상이 참 걸게 보인다. 요즘처럼 꽃게가 금값이 된 시기에 꽃게장도 두 마리나 나와 식욕을 자극한다. 게장 앞에서 체면 차릴 필요는 없다. 머뭇거리다가는 게 등껍데기를 차지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등껍데기에 밥 한 숟가락을 넣고 비벼먹어야 게장을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이처럼 메인 급 요리가 8개나 되니 단순하게 1만원씩만 잡아도 8만원, 손님 입장에선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이 집 음식의 특징이라면 넉넉함이 아닌가 싶다. 한정식이랍시고 딱 한 젓가락씩만 먹게끔 나오는 기교스러움이 아닌 음식다움 말이다. 계속 방문을 열고 들어와 맛에 대한 집중을 방해할 뿐 아니라 불편한 마음까지 심어주는 집들을 닮지 않은것도 마음에 든다.
이처럼 형식미가 없으니 대접에 밥을 비벼먹어도 당당할 수 있는 데가 이 집이 아닌가 싶다. 자고로 음식은 주인을 닮는다. 이 집의 음식을 보면 주인장의 호인다운 기질이 그대로 묻어 있는 듯 하다. ‘산호’는 관공서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상 공무원이나 기자들의 출입이 잦다고 한다.
월급쟁이가 무슨 돈이 있냐며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겐 언제나 부담 없이와서 먹으라고 말한다고 한다. 돈을 안 받으면 자존심 상할 수도 있으니 온전하게 다 받지는 않고 대신 일부만 받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니 이집 음식이 간질나지 않게 차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막판에 서비스로 나온 멍게물회, 속에는 우묵가사리 묵이 들어가 있다)
<찾아가기> 2007.6.14 맛객(블로그= 맛있는 인생)
*보태기/ 해산물 특성상 메뉴 구성이 사진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출처: 맛있는 인생 원문보기 글쓴이: 맛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