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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역동 우탁(易東 禹倬)선생 묘소.
단오절(端午節)에 안동시 예안면 역동 우탁(易東 禹倬) 선생의 묘소에 들릴 기회가 있어서 갔다.
나는 우탁 선생의 묘소가 예안면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와서 보기는 처음이다.
정동호 전 안동시장 등 우리 일행 6명은 선생의 묘소를 찾았는데 주변시설이 깨끗하고 묘소까지 계단식을 정갈하게 조성해 놓아 탐방객들의 참배길을 흐믓하게 했다.
뿐만아니라 묘소를 비롯해서 주변 일대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후손들이 소나무 가꾸기 정성과 사후관리를 너무나도 잘 해놓아 고개가 숙여진다.
700여년전 이땅에 완고한 선비로, 관리, 학자로 일세를 풍미한 선생의 발자취를 알고나서는 무심히 지나쳤던 내 자신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 한손에 막대 집고 또 한손에 가시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금길로 오더라 > 라는 탄노가(嘆老歌)를 남긴 분이다.
이 시는 고려 시가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린 우탁 선생의 탄노가 두 수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시조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시조 문학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우탁선생은 1263년(원종4)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 신원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 천규(天珪)의 아들로 태어났다. 1278년(충렬왕 4)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고 과거에 올라 영해사록(寧海司錄) 성균제주(成均祭酒)를 역임했다.
그후 벼슬에 물러난뒤에는 안동 예안에 은거하면서 후진교육에 전념하다가 1343년 예안에서 81세로 사망했으며 묘소는 지금에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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