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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작은 시집/유담 시인
낯섦에서 발견하는 낯익음
최연수
최근의 시들에서 보이는 징후 중 두드러진 양상은 의미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가 언어의 미적 가치기준에 근거해 소통가치를 우선으로 하고 시인의 정신성과 연관을 갖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긴 하지만, 의미에 치중하다보면 자칫 무거움이나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적 특징을 지니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담 시인의 시편들은 의미의 부담에서 자유롭다.
시인의 시들은 다면적 풍경이다. 겹겹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경계를 구분 지을 수 없는 풍경의 집합이다. 내부의 풍경이 외부의 풍경으로, 외부의 풍경이 내부의 풍경으로 전환되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상의 풍경은 무경계의 생경한 풍경의 모음이 된다. 그 생경한 풍경 속에서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세계는 비약적이다. 돌연한 이미지다. 행간마다 잠복한 상상으로 인하여 사사로운 감정의 유입이나 유출을 사전에 차단한다.
시청 앞 분수대 터라고 해야 더 잘 알아듣는
수십 년 종종걸음들이
스케이트를 신고 축음기 위에 오른다
지치는 속도대로 바람이 갈리고
바람 따라 음표도 조 바꿈을 한다
몇십 년 얼어있던 분수가 하늘로 솟구치며
노래가 돌아간다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야 안전하다
노래도 거꾸로 들어야 부르기가 순하다
눈 내리고 낙엽지고 소나기 퍼붓다
꽃이 피고 싹이 돋는다
쌓인 두께만치 추억이 미끄러져 돈다
이미 새겨진 트랙을 따라 도는 바늘
깊게 패인 생채기에선
끊임없는 딸꾹질, 명치가 시큼하다
날 세워 딛는 걸음은 훨씬 더 조심스러워
들뜬 높이만큼 구푸려야 마음먹은 대로 달린다
소나기 얼어 꽃 피는 소리
얼음 들판 서성이던 달빛이 일구는 바람소리
새롭게 듣고 거꾸로 도는
종아리가 뻐근하다
― 「스케이트를 틀다」 전문
현실논리를 넘어선 새로움이 보이는 시다. 새롭다는 것은 시적 신비요소를 담고 있다는 뜻, 시인을 둘러싼 현실을 이탈하고자 하는 신선함이다. 흔한 사고를 뒤집어 그 이면과의 도킹을 시도하는 시인의 기발하고 돌발적인 상상은 시적 논리를 뒤집고 배반하는 시적 이미지를 꾀한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시적 미학은 고정관념을 허물고 새로운 시적 경지를 열어가고 있다.
“스케이트”타기에 “축음기”를 동원한 상상은 낯섦이지만, 돌아가는 원리는 같다. “시청 앞 분수대”쯤의 장소는 겨울한철 스케이트장으로 변모한다. 얼음과 아이가 섞여 돌아가는 장면은 흡사 축음기의 LP판이 돌아가는 장면 같다. 스케이트를 지치는 것은 음악을 트는 것, ‘지치다’대신 ‘틀다’라는 행동으로 변형됨은 그래서 낯섦 속 익숙함 내지는 친숙함이다.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도는 움직임은 “노래”를 “거꾸로” 듣는 것과 같아서, 계절도 역방향으로 흐른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겨울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서 가을, 가을에서 여름 그리고 여름에서 봄으로 순환한다. 그리하여 “눈 내리고” “낙엽지고” “소나기 퍼붓”고 “꽃이 피고 싹이 돋는”다.
스케이트 타기는 ‘추억 돌기’여서 겨울이 쌓인 두께만치 “추억이 미끄러져 돈다”. “깊게 패인 생채기” 같은 빙판이 있듯, LP판에도 그런 흔적이 있어서 “끊임없는 딸국질”처럼 “명치가 시큼”해 지는 것이다. “새롭게 듣고 거꾸로 도는/종아리가 뻐근”해지는 스케이트 타기 혹은, 음악 듣기다.
시적 사유의 과정을 거쳐 한 편의 시는 태어난다. 대상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 시인은 창조적 언어의 과정을 거쳐 한 편의 시로 탄생시킨다. 그 가장 빛나는 창조적 언어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이미지다. 시를 탄생시키는데 무조건 이미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지동원 없이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효과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만큼 이미지는 시의 성패를 가늠한다.
한 편의 시 속에는 이미지가 부분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시인은 자신의 시 속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관념도 드러낼 수 있고 체험한 것을 드러낼 수도 있으며 실제 경험이 아닌 상상적 경험을 표현해 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이미지가 위의 시처럼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
의미가 아닌 감각에 의해서 일어나는 정서의 움직임은 이미지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기에 이미지가 없는 시는 죽은 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색채와 형태의 구성을 통해 이루어진 감각적 형상이 충격적인 자극을 줄 때 잠잠했던 신체적 상태는 정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언어는 이미 우리의 기억 속, 혹은 관습 속에서 약속된 의미의 일상적 언어활동 때와는 달리 어떤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됨으로써 우리들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진술의 시 역시 감각성의 도입으로 인하여 감각적인 자극을 일으킴으로서 정동의 과정을 거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낯설어 보이는 이미지가 절묘한 차용으로 인하여 시적인 격을 높임과 동시에 새로움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이 무거운 게 아니라
눈시울이 무겁다
눈시울이 무거운 게 아니라
눈동자가 무겁다
눈동자가 무거운 게 아니라
빛과 어두움 드나드는 동공이 무거워
침묵하는 그대의
동공이 무거워
동공에 맺힌 그대의
눈동자가 적시는 눈시울이 무거워
지난여름 소나기
낙엽에 쓸려
하얗게 얼어붙은
눈시울이 무거워
모든 소리
탱탱 달려 있는
얼음 다래끼 덩치만큼 아픈
눈시울이 무거워
― 「눈시울의 무게」 전문
이미지에 대해 장황하게 부연설명을 한 이유는 시인의 시편들이 하나같이 반짝이는 이질적인 이미지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상상력이 체험과 연결해 이루어내는 여러 군의 이미지들은 시인의 시에 생기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긴장과 탄력을 성립시켜 시적 흥미를 높인다.
“눈이 무거운 게 아니라/눈시울이 무겁다”고 한다. 아니, “눈시울이 무거운 게 아니라/눈동자가 무겁다”고 한다. 아니다. “눈동자가 무거운 게 아니라/빛과 어두움 드나드는 동공이” 무겁다. 이는 “침묵”의 무게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눈이 말한다고 한다. 그 눈의 감정은 온전히 동공에 들어 있어서 그대의 침묵은 그만큼 무거운 것이 된다. 눈에서 눈시울로, 눈시울에서 눈동자로, 눈동자에서 동공으로 축소된 본질 찾기는 다시, 동공에서 눈동자로 눈시울로 확대되는데, 이는 상상의 확대와 축소를 동원한 사고의 확대와 축소의 반복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독특한 시적 정신은 기존의 것을 탈피하기보다는 기존의 탄탄한 기초 위에 상상과 창의성을 덧입혀 보다 시적인 것이 되고 보다 새로운 것이 된다. 그렇기에 어떻게 표현하고 창조해 내는가에 시적 수명과 생명성이 달린 것이다. 고도의 기법으로 창조해 낸 시만이 시정신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그 깊이로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에서는 감상을 배제시키고 간결하고 매몰차게 시를 구성해 나가는 시법이 돋보인다. 간결하고 매몰차다함은 압축하고 낯설게 쓰기를 적용했다는 의미다. 감상적 분위기로 흐르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쓴 흔적들에게서 독자는 그만큼의 전달하고자 하는 시적 메시지를 강하게 부여받을 수 있다. 절제된 묘사 속의 인내다. 간결함은 공감의 폭이 좁다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의 억제를 의미한다. 억제함으로써 배가되는 시의 묘미가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슬쩍 정서를 흘리고 그 정서를 주어들은 독자는 공감의 지대에 한 발짝 근접하는 것이다.
그림자 없는 곳
그림자 안 생기는 곳
눈 속 저 깊숙이 빛은 멀기만 하고
마음 속 그림자
눈 감아도 안 지워진다
감은 눈 다시 부릅떴다 꼭 감아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본디 그림자
그림자 없을 곳에
서성이는 그림자
그림자가 눈 감는 곳
당신의 눈
― 「그림자 없는 곳」 전문
“그림자”는 자신의 분신이다. 그러나 나의 분신인 그림자가 자꾸만 나를 이탈해 어디론가 벗어나려고 할 때 그것이 정말 나인지 고개를 갸우뚱 의심해볼 때가 있다. 그림자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심리상태의 나를 대변하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나의 분신인 “그림자”는 나를 항상 따라한다. 아니, 내 행동을 그대로 베껴낸다. 내가 기울어지면 그도 기울어지고, 내가 그리워하면 그도 그리워하고, 내가 안타까워하면 그도 안타까워하고, 내가 사랑하면 그도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아프면 그도 아프다. 나의 분신인 그림자. 그러나 그림자는 때로 그늘이 된다. 그리하여 “그림자 없는 곳” “그림자 안 생기는 곳”을 찾지만 “마음 속 그림자”는 “눈 감아도 안 지워진다”. 그러나 “끝내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는 “그림자가 없을 곳”에서 서성인다. “그림자가 눈 감은 곳”이 바로 그림자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실체가 없으며, 또한 감정의 높낮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맹목적 형상일 뿐이다. 그러나 실체도 없는 그것을 통해 표출하는 시인의 말은 시인의 성숙한 인식이다. 다시 말해서 시인의 자각적 연민이며 숱하게 고민한 사유의 흔적이다. 생의 고민내지는 내적방황에 대하여 치열하게 내면의 정화를 통과의례로 보낸 뒤 발견해내는 생의 진리, 혹은 깨달음이다. 시인의 실존적 삶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그것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확인의 과정이다.
인접성, 유사성의 비유보다 낯선 장면이 주는 충격이 보다 신선하고 이미지도 선명한 효과를 획득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우리의 일반적 견해나 관습을 초월한 어떤 힘의 긴장이 필요하다. 시인의 시는 상황이나 사건을 포착, 그 순간의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과 이미지를 자유롭게 덧입혀 낯섦의 시를 창조해낸다. 그중 반어(irony)와 역설(paradox)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진리를 숨기는 은폐적 표현방식이다. 시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시인의 끊임없는 노력은 일상의 평범함에 반어와 역설의 표현방법을 동원, 접목하기도 하는데 친숙한 것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팽팽한 긴장감은 이런 시적 표현장치 때문이다.
오늘이 답답할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안경을 벗는다
도수만큼 굽혀야 똑똑히 서는
본디 모양은 흐려져 있는가
하루가 흐릿하면 버릇처럼
안경알만 골고루 닦는다
막다른 골목 희미한 창에
입김 불면 후-우-
마술처럼
흐릿함과 또렷함이 하나가 되듯
오늘은 오늘끼리 또 겹쳐지는가
-「안경」 전문
“안경”은 통상 시력이 나빠 사용하는 도구다. 그러나 시인은 안경의 일반적 통념을 송두리째 뒤집는다. 사고의 위아래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을 깨는 것이지만 그것은 시인만의 기발성과 독자성에 기반을 둔 상상이다. 총기가 빠져나간 눈, 열정이 빠져나간 눈에 덧눈으로 씌운 안경. 그러나 “오늘이 답답할 때면/하루에도 몇 번씩 안경을 벗는”다고 한다. 이때의 안경은 역설에 기준을 둔 것이어서 그것을 닦아야만 안경의 본디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막다른 골목의 희미한 창”처럼 흐려진 안경은 근심일 수밖에 없다. “흐릿함과 또렷함”은 서로 다른 의미지만, 역설 혹은 아이러니의 입장에서 본다면,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오늘과 오늘끼리” 잘 겹쳐지는 투명함만이 시야를 또렷하게 한다.
내가 나를 벗어나는 탈경계 현상.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부정하거나 소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흔적, 또는 소통과 대화를 시도해 보는 내 안의 다른 나라고 하지만 그것은 언제든 내 속을 벗어나려고 하는 실체도 불분명한 어떤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기꺼이 시 속 풍경이 되고 싶어 한다. 내 안의 다른 나와 하나가 되려고 한다. 그것에 스며들어 일부가 되려고 한다. 나와 또 다른 나와의 인연의 통합을 시인은 시편에서 환기시켜 주려 한다. 비록 그것이 나를 벗어나 어느 경계 밖으로 멀어지려고 해도, 멀어진 그것이 비록 허구의 세계에 도달한 자아일 수밖에 없는 것이어도. 그것은 아래의 예시「섬」에서처럼 “가라앉지 못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띄엄띄엄 외로운” “출렁이는 경계”를 차용한다.
가라앉지 못한 것들
가라앉지 못한 말들
목까지 잠겨
목까지 잠겨
아니,
조금만 조금만 더 잠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출렁이는 경계에서
더 이상 허공을 떠돌지 않을
언어에
목이 메어
목이 메어
띄엄띄엄 외로운
가라앉지 않는 것들
가라앉지 않는 것들
― 「섬」 전문
낯익은 행동, 낯익은 풍경, 낯익은 언어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것에 적응하고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낯선 것에 이질감을 보이거나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낯선 대상이나 낯선 장소에도 친숙함은 존재한다. 시인은 낯섦에서 그 낯익음을 발견해 내는 안목을 가졌기에 그것을 시에 적용한다. 그리고 시의 본질에 대해 끝없이 추구하는 시인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낯익은 소재들을 차용해와 시인만의 독특한 시적장치를 투입, 낯설게 만든다. 그럼에도 낯섦 속 번득이는 시인의 독보적인 재능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이 독자를 탄탄한 긴장에 들게 하고 끌어당김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시적 접근방법에 있어서 시인은 때로 고통스러워하고 번민하고 사유하며 자신의 존재 찾기에 전념하며 새로운 대상물과 이미지를 동원하고 반어와 역설의 방법을 적용, 현실을 현실이상으로 재현시켜놓는다. 고루한 사고에 갇혀있지 않은, 새로움을 동원한 시들이 흥미롭다.
*최연수(최선옥)
평론집 『이 시인을 조명한다』외
2015 <영주일보> 신춘 . 계간 <시산맥>등단
[출처] 2015 미래시학 겨울호/책 속의 작은 시집/유담 시인|작성자 choiseono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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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눈시울의 무게>라는 시는 다시 보고, 또 보면서 시에서 느껴지는 무게를 짐작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