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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사랑 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인흥군 묘 및 신도비(포천시 향토유적 28호) written by 나홀로 테마 여행 |
인흥군 묘는 포천 43번 국도상에서 우측에 있습니다만, 네비게이션은 마을 안쪽의 길이 없는 묘역 뒷편으로 안내를 해서 다시 돌아 나왔습니다. 도로 우측에 서울(?) 카센터 옆의 작은 시골길을 통해서 낚시터 안쪽으로 들어 가야 합니다. 낚시터 이름은 기억이 안나네요... |
낚시터 우측편으로 돌아가면 인흥군 신도비가 한 기 있으며, 그 위의 묘역에는 3~4기의 묘가 있습니다. 이 묘역은 인흥군의 후손 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이 묘역은 특이한 것이 참 많습니다. 맨 위의 묘는 봉분도 길쭉합니다. 그리고 곡담은 전돌로 쌓았으며, 망주석은 검은 색 돌로 망주석 각 면에는 글씨들이 많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묘비는 비몸이 납작한데 비해서 이곳의 묘비는 몸통이 정사각형으로 옥개석까지 얹혀져 있습니다. 왠만한 왕가 묘에도 석양이 없는데, 이 곳에는 석양도 있으며, 조각술은 왕릉에 버금갈 정도로 좋습니다. |
낚시터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터에 문인석이 한 쌍이 서 있으며, 그 뒤편에 바로 인흥군의 신도비가 또 한 기 있습니다. 귀부의 꼬리는 살아 움직이는 듯 합니다. |
인흥군 묘역을 오르는 좌측 편 하단에는 또 한 기의 신도비가 있는데, 귀부가 아니라 일반 받침돌에 비가 얹혀져 있습니다. 이 신도비가 인흥군의 최초 신도비 인 것 같습니다. 비문은 군데 군데 풍파에 깎이고 훼손되어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
▲ 인흥군 묘역 전경 |
묘역에 오르면 역시 전돌로 곡담이 둘려져 있으며, 이 곳의 망주석에도 각 면마다 글이 새겨져 있으며, 망주석에 조차 사방으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
봉분 앞의 묘비에는 왕자 인흥군이란 묘비명과 인흥군에 대한 글이 새겨져 있으며, 역시 비몸의 몸통은 정사각형입니다. 상석 좌측에는 묘표석도 있습니다. 인흥군 묘역에서 내려다 보면 낚시터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인흥군 묘역은 다른 묘역에 비해서 특이한 석물들이 여러 점 있어서 관심 깊게 보았습니다. 비록 국가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웬만한 지정 문화재 보다도 더 보존해야 할 석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곳입니다. |
인흥군(1604 ~ 1651)은 조선 선조의 제12 왕자로 자는 가온, 호는 취은 어머니는 정빈 민씨이다. 1610년(광해군 2) 7세때 인흥군에 봉해졌으며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왕이 공주로 피난할 때 수행하였다. 1627년(인조 5) 어머니 상을 당하고도 병자호란으로 집상을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 왕을 수행했다. 시호는 효숙, 뒤에 정효로 고쳤다. 묘는 여산군부인 송씨와 합장묘로서 주위에는 전축 기와 지붕의 곡담을 둘렀고, 호석이 돌려진 봉분은 높이 2m, 둘레 18.8m이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낭선군이 글씨를 썼다. 소재지 : 경기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산18-1 |
제14대 선조대왕(宣祖大王) [1552 ~ 1608] 가계도 정비 의인왕후 박씨(懿仁王后 朴氏) [1555 ~ 1600] :소생 없음 제1계비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1584 ~ 1632] 서1남 임해군(臨海君) [1572 ~ 1609] (공빈 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