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라 물레야 (18)
이 사
신학기가 시작이 되고 1개월이 지난 4월 초 토요일 오전에 짐을 싸서 결국 명철이네는 부산에서 경남 언양으로 이사를 가고야 말았다.
트럭 운전석에는 운전 기사와 아버지 어머니가 타시고 명철이는 이삿짐과 함께 트럭 뒤에 타고 언양으로 이사를 가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언양 면내까지는 아스팔트 포장이었으나 명철이네 집이 있는 곳으로 차가 회전을 하니까 그 길은 비포장이었다.
언양 면에서 약 4키로미터 정도를 가니까 한참 오래 된 것 같은 초가집 한 채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그 집을 사셨던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동안에 산과 들을 둘러보는 명철이의 마음은 착찹하기는 했으나 산과 들에는 벌써 봄기운이 완연했으며 길가에 가로수에는 벌써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차는 그 집 앞에 차가 정차를 하고 이삿짐을 내려놓은 운전 기사는 가버렸으며 나머지 짐 정리는 명철이와 부모님의 차지였다.
명철이는 집이나 모든 것이 못 마땅한 것뿐이었다. 집 자체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특히 화장실에 가본 명철이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밑에 변이 다 보였으며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소위 말해서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집은 흙벽돌로 지어져 있었으며 안방 부엌이 붙어 있었고 안방과 작은방 사이에 마루가 있는 한국의 고유적인 초가집이었다.
짐 정리를 다 해 놓고 아버지께서 "명철아 니 나캉 공장 지을 장소에 가보자." 이사를 하고 짐 정리를 해서 피곤한데다가 공장 부지를 구경하자고 하시니 명철이는 짜증이 났다.
(힘들어 죽겠는데 공장 부지는 봐서 뭣하겠는교 안갈랍니더. 가실라면 혼자 가이소.)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예 알았니더 가 보입시더." 그렇게 말을 하고 신을 챙겨 신은 명철이는 앞서서 가시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나섰다.
신작로 양편에 서있는 포플러 나무가 막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으며 집 뒤쪽으로 낮으막한 산에는 진달래꽃이 한창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으며 차바퀴에 채인 자갈들이 이리 저리 뒹굴었다. 논에는 농부들이 모를 심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공기는 매연이 끼어 있던 부산의 공기와는 판이하게 다를 정도로 맑았다.
집에서 약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신작로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넓은 밭이 있었으며 밭 뒤쪽으로 낮은 언덕이 있고 그 뒤는 조그마한 산이 있었다.
"저 밭에 공장을 짓고 저 언덕에는 옹기 굴을 지을끼다. 니가 고생스럽지만 나를 좀 도와다고 학교도 마음에 안 들끼고 내한테 불만이 많겠지만 조금만 참거라 니도 나중에는 좋다고 할끼다. 참말이다 내가 약속 할끄마."
"괜찮니더 어련히 아버지께서 알아서 안하셨겠닌교, 지나다 볼라믄 또 여기도 정이 들꺼구만요. 안 그렇겠닌교?"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속은 그것이 아니었다.
부산을 떠나온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선 했다. 학교 친구들 그리고 수림이, 소령님네 아기......
"저 신작로를 건너서 조금만 가면 그래도 큰 거랑이 있더라. 여름에는 그 곳에서 모욕도 할 수 있고 고기도 많더라 아직 마음에 정리가 안 되어서 짜증도 나겠지만 그래도 시골에서도 살 맛이 나는기라. 그라고 내가 니한테 자전거를 하나 사 줄끄마 학교에 타고 다니거라. 공장을 지을때는 힘이 들더라도 나를 조금 도와다고." 명철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 저렇게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많아 졌나 싶었고 눈 밑으로 주름살도 많이 늘은 것 같아서 명철이의 마음이 좋질 안았다. 저렇게 나에게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 아버지였는데...
"언양 면내에 교회도 몇 군데 있더라 교회도 정해서 다녀야 하고 학교는 농고 뿐이 없다카더라 이런 시골에는 공고는 없다캐서 그쪽으로 전학을 할끼다. 이곳에 마음을 부쳐보거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앞서서 집으로 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왜 그렇게 쓸쓸하게 보이는지....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명철이는 코가 시큰함을 느꼈다.
날이 어두워지고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니 시골 동네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었고 거리에는 가로등도 없었으며 너무 조용한 것이 명철이는 무서울 정도였다. 아직 T.V 안테나가 없어서 T.V도 볼 수 없었다.
마루에 앉아서 밤하늘을 쳐다보니 부산에서 보던 하늘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달도 별도 다 같은 별과 달이었으나 왜 그리 밝게 보이는지......
게다가 뒤 산에서 울어대는 뻐꾸기 울음소리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소리가 부산에서의 자동차 경적 소리와는 너무 비교가 돼는 소리였다.
자동차의 매연 대신에 풀 냄새와 산에서 풍기는 나무 냄새, 꽃향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명철이는 너무 외로웠다. 이 정적이 너무 싫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었다.
자기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와 이부자리에 누웠으나 명철이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림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 학교도 조퇴를 하고 이삿짐을 차에 실을 때 도와주며 차가 출발 할 때는 손을 흔들며 눈물을 흘리던 수림이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려오고 있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수림이가 자꾸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으며 "명철아 너, 나를 잊으면 안돼. 난 정말 외로워 명철아 보고 싶어....."
그렇게 말을 하면서 흐느끼고 있는 모습이 눈에 생생하게 보였다.
다음날 아침 명철이는 ""아부지요, 오늘은 영주동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가입시더 고등부 아들한테도 인사도 해야하고 또 고등부에 정리해야 할 일도 있고요. 그카니까 오늘은 영주동으로 가입시더."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은 수림이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알았구마. 아침이나 먹고 준비를 해서 부산으로 가면 예배 시간에는 늦지는 않을끼다.니가 그렇게 말을 하니 나도 교회에서 할 일이 있는기라."
아침을 먹고 세 식구는 길을 나섰다. 버스가 언제 오는지도 몰랐으며 정류장이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무조건 언양면 쪽으로 걸어가야만 했다.
5분쯤 걸어가니까 구멍가게가 하나 있고 조그마한 동네가 있었으며 버스 정류장도 있고 그 정류장에 두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쯤에 차가 옵니꺼?" "쪼매만 있으면 올낍니더. 그런데 못 보던 사람들인데 어데사닌교?" "아 예 어제 조위에 이사를 안 왔닌교 잘 부탁 드립니더."
"아 그렇는교. 이장님이 부산에서 누가 이사를 온다 카더니 그 분들이구만요."
"예 맞습니더. 잘 부탁 드림니더."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에서 내려서 다시 부산행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영주동으로 가는 시내 버스를 타고 교회에 도착을 하니 고등부 예배는 거의 끝이 날 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출입문에 서 있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며 명철이를 보더니 전부 반가워하며 손을 잡고 난리가 났다. 예배시간에 전도사님께서 명철이가 이사를 가서 오늘부터 교회에 못 온다고 광고를 하셨다고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