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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사상선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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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글 ‥─‥ 스크랩 화랑세기 필사본
정충근 추천 0 조회 21 13.11.03 09: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일본왕실도서관에 숨겨진 조선의 수많은 희귀 고서적.

 

인간은 인성과 짐승성 두가지를 갖고 있다.인간은 인성교육(인.의.예.지.신)을 받기전에는 짐승이다.인면수심으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짐승과 같아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처럼 늑대(남자)와 여우(여자)의,짐승짓을 하고,짐승의 습성을 보인다.일본인 문화와 습성에서 흔하게 발견 할수있다.일본인 조상이 미개족속으로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받고 살지 못하다보니,오랜 옛날부터 침략과 약탈 반인륜적인 짐승짓만 하고 살았고,지식인과 정치하는 놈들이 보고,배운게 짐승행위 뿐이니 자료를 감추고 공개하지 않는것이 잘못된것을 모르고 자랑으로 안다.자료를 갖고 있어도 미개족속이라 내용에 깊은 뜻을 알수도 없고 문화민족인 처럼 아무리 치장해도 문화민족인이 되기는 어렵다.

 

 

 

 

 

나정과 포석정

 

 

나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라는 나라가 되기 전 경주 일대는 진한< 辰韓 >의 땅으로 6부촌장<六部村長>이 있어 6개 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다.  기원전 69년 어느날, 6개 부락의 촌장이 알천언덕에 모여 화백회의를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번갯불 같은 빛이 나정(蘿井)에 번쩍였다.  그곳을 살펴보니 백마가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촌장들이 다가가니 백마가 울부짖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촌장들중 고허촌장<高墟村長>인 소벌도리공<蘇伐都利公>이 이곳 우물가에서 붉은 빛이 나는 큰 알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형의(形儀)가 아름다워 사람들은 그일을 놀랍고 기이하게 여겼다. 이 알 속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으며 동천(東川)에 몸을 씻겼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줄지어 따르며 춤추었고, 천지가 진동하고, 일월(日月)이 청명했으니, 촌장들은 하늘이 보낸 것으로 알고 아이를 잘 길렀다.  이 아이가 13살이 되던 해인 기원전 57년에 6부촌장이 모인 자리에서 추대되어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이 이가 곧 신라<新羅> 제1대 임금이며, 나라이름을 서라벌<徐羅伐>이라 했고, 왕이 박과 같은 곳에서 나왔다는 점과 밝다는 뜻에서 성<姓>을 박<朴>이라 하였고 아울러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세워져 있는 비석는 조선 순조<純祖> 2년(1802)에 세운 것으로 박혁거세왕을 기리기 위해 그 내력을 새긴 유허비<遺墟碑>이다.

 

 

 

 

 포석정은 신라왕실에서 경주 서쪽 이궁원(離宮苑)에서 열리는 연회를 위해 만든 것으로 시냇물을 끌어들여 포어(鮑魚) 모양을 따라 만든 수구(水溝)에 흐르게 하고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며 즐겼다고 한다.이와같이 한낮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기던곳으로 알거나,또한 이곳은 927년 경애왕이 왕비·궁녀·신하들과 놀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신궁과 포석사는 어떤 곳이었을까?

 

포석정이 아니라 사당 사자를 써서 포석사 또는 줄여서 포사라 하고 있다. 포석사에서는 길례를 행하였다고 한다. 문노와 윤궁이 결혼을 할 때 진평대왕과 세종이 친히 포석사에 갔던 적이 있다. 만호 태후는 친히 신궁에 가서 만룡의 공주례를 행하고, 포(석)사에 나아가 길례를 행하였다. 또 춘추와 문희도 포(석)사에서 길례를 하여 결혼을 알렸었다. 그러니까 신라의 지배 세력들은 포석사에서 길례를 행했던 것이다.

그러면 포석사는 길례를 행하는 장소로만 쓰였을까? 무엇인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포석사에는 문노의 화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문노는 삼한을 통합한 후 사기의 종주로 받들어진 인물이었다. 그의 화상이 포석사에 모셔진 까닭은, 포석가사 나라의 안녕을 비는 행사가 치러지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경애왕은 927년 11월, 이웃한 고울부(영천)지역에 견훤이 쳐들어온 상왕에서 포석사에 가서 연오를 한 것은, 말 그대로 잔치를 베풀어 놀았던 것이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나라를 지켜 달라고 빌기 위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는 일찍부터 시조묘가 세워졌다. <삼국사기>네는 남해왕 3년(6)에 시조묘를 세웠다고 나온다. 과연 기원후 6년에 시조묘를 세웠을지 단정하기 어려우나, 혁거세가 죽은 후인 신라 초기에 신라 건국 세력을 모신 사당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크다. 당시 시조묘는 경주의 남산 서북록에 세워?으리라 생각된다. 혁거세가 사로 6촌에 나타난 장소가 현재 나정으로 알려지고 있고, 그의 무덤이 오릉에 있는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이는 혁거세 세력이 자리잡았던 곳이 남산 서복록이었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시조묘 또한 혁거세 세력이 정착하엿던 나정이나 금성 지역에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포석사는 시조묘와 어떤 관련이 있는 장소였으리라 짐작된다.

1999년 4~5월 국립 문화재 연구소에서는 포석정 동남쪽 70M지점 일대에 대한 발굴을 하였고, 그 과정에 포석이라는 명문이 있는 기와 몇 점과 지와무지를 확인했다. 이는 포석정이 단순히 유상곡주를 하는 놀이터가 아니라 포석사와 같은 사당이었을은 뜻한다. 포석사는 일정한 규모의 건물로 이루어진 사당이었음을 뜻한다. 포석사는 일정한 규모의 건물로 이우러진 사당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 안에 문노를 비롯한 나라의 중요 인물들의 화상이 있었고 길례를 행하거나 제사를 행하는 사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199년 발견된 포석이란 명문이 새겨진 기왓장

 

 

 
(포석 명문 기와)

 

 

포석정 [鮑石亭]  

 

통일신라 유적 | 브리태니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주 남산의 서쪽에 있는 석구(石溝).
 

사적 제1호.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헌강왕(875~885)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南山神)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용가>

東京明期月良, : 동경 밝은 달밤에

 

夜入伊遊行如可. :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入良沙寢矣見昆, : 들어와 내 자리를 보니?

 

脚烏伊四是良羅. : 다리가 넷이로구나?

 

二?隱吾下於叱古, : 아아, 둘은 내 아내것이나

 

二?隱誰支下焉古. : 둘은 누구의 것이가

 

本矣吾下是如馬於隱, : 본디 내 것이다만

 

奪叱良乙何如爲理古. :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는가

처용가는 신라 헌강왕때 처용이 지은 향가를 발전시킨 노래입니다. 처용이 밤늦도록 놀다 집에오니,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신이 부인과 함께 누워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처용은 화를 내거나 달아나지 않고 마당에서 춤을 추며 처용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처용가의 배경설화
 
제49대 헌강대왕 대에 서울로부터 바다 안쪽(변두리)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즐비하고 담이 이어져 있으며, 초가집은 한 채도 없이, 풍악과 노래 소리가 길에 끊이지 않고, 비와 바람이 철마다 순조로웠다.

 

?이때에 대왕이 개운포에 놀러 갔다가 왕이 장차 돌아가려 할 때 낮에 모래톱 가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어둡게 끼어 혼미해서 길을 잃었다. 괴이하게 여겨 좌우의 신하에게 물으니, 일관이 답하였다. “이것은 동해용의 변괴입니다. 좋은 일[勝事]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이에 유사에게 명해 용을 위해 근처에다 절을 짓게 했다. 명령을 내리니,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사라졌는데, 이로 인해 「개운포」라 이름 했다.

 

동해용은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임금의 수레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찬미하고 춤을 바치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 한 아들은 수레를 따라 서울로 들어가 왕정을 보좌하니, 처용이라 불렀다. 왕이 미녀를 그의 아내로 삼게 해 주어 그의 마음을 잡아두고자 했으며, 또한 급간 직을 하사했다.

 

그 아내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역신이 흠모하여 사람으로 변하고는 밤에 그 집에 들어가 몰래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처용이 밖으로부터 집에 도착해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곧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났다.?…가사 생략…?이때에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제가 공의 부인을 흠모하여 지금 범했습니다. (그런데도) 공이 노여움을 보이지 않으시니 감동하고 찬미합니다. 맹세컨대 지금 이후로 공의 형용을 그린 것을 보면 그 문에는 들어오지 않겠습니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은 문에다 처용의 모습을 그려 붙여서 벽사(?邪)진경(進慶)하였다. 왕은 이 이윽고 돌아와 영취산 동쪽 기슭 좋은 곳을 점쳐 절을 세우고 ‘망해사’라 하고, 또한 ‘신방사’라 부르니 곧 용을 위해 세운 것이다.

 

포석정 [鮑石亭]의 메세지

 

헌강왕대에 신라 하대사회의 위기의식을 나타낸 기록이 보이고 있다. 879년에 왕이 나라 동쪽의 주군(州郡)을 순행하였을 때 어디서 온지를 모르는 네 사람이 어가를 따르며 춤을 추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산과 바다의 정령(精靈)이라 하였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다. 헌강왕이 포석정(鮑石亭)에 갔을 때 남산신(南山神)이 나타나서 춤을 추니,헌강왕이 남산신(南山神)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춤을추었고, 이 춤을 전하여 〈어무상심 御舞祥審〉(혹은 御舞山神)이라 한다.)

 

포석정[鮑石亭]물로 용(龍)을 형상화 한것으로,용왕(龍王) 또는 수신(水神)에게,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포석사(鮑石祠) 사당의 상징물이었던 것이며,선지식인이 물에서 깨닫고 살으라는 메세지를 주고있는 타임캡슐 이었던 것입니다.

 

 

 

삼일신고 三一神誥 중에서

 

망령(妄靈)의 작용

          
 
眞妄對作三途 曰感息觸 轉成十八境  感僖懼哀怒貪厭
    
진망대작삼도         왈감식촉         전성십팔경            감희구애노탐염        

    

息芬爛寒熱震濕  觸聲色臭味淫抵
   
식분란한열진습              촉성색취미음저

 

망령(妄靈)의 참은 세가지 길에서 만든다고 답할수 있고,느끼는 것,숨쉬는 것,닿는 것을 말하며,18가지 경계로 이루어져 구른다(참고:6x6x6=216가지 감,식,촉(感息觸)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느끼는것은 기쁨,두려움,슬픔,성냄,탐욕,미움이고.숨쉬는것은 향기,문드러짐,차가움,뜨거움,벼락,축축함이다.닿는것은 소리,빛,냄새,맛,음란,치는(손뼉)것이다.

 

참고:사람이 잠자고 일어난(깨어난) 순간부터 망령(妄靈)의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작용이 일어나는 하루를 시작해서, 잠들때까지 망령(妄靈)의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작용이 이어지는데, 6x6x6=216가지의 망령(妄靈)의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작용에 빠진다는 것입니다.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작용으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빠져 하루를 보내고 하루가 끝나는 것이 우리 삶인데 이것이 망령(妄靈)된것이 라는 것입니다.우리가 제정신으로 알고 살아가는 삶이 모두 망령된것으로, 너도 미쳤고 나도 미쳤고 모두가 미쳤는데, 미쳐 있는것을 모르고 나는 않 미친것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망령(妄靈)의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인데,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말하며는 불(火)이라 말할수 있읍니다.누구나 망령(妄靈)된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사람이 불(火)입니다,불은 물로 끄지요.이와같아,당신의 망령(妄靈)된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불을 끌려면  물에 앉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그리고,망령(妄靈)된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불이 꺼지면 정신을 차리게 되고,정신을 차리면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망령(妄靈)속에서 살았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감정의 작용으로 희노애락의 빠져 하루를 보내고 하루가 끝나는것이 삶인데,우리가 제정신으로 알고 살아가는 삶이 모두 망령된것으로,너도 미쳤고 나도 미쳤고 모두가 미쳤는데,미쳐 있는것을 모르고 나는 않 미친것으로 착각하고 살다가 죽어간다.

 

우리말에 냉수 먹고 정신 차리라는 말이있읍니다.조상님께서 포석정[鮑石亭]의 물로,용(龍)을 형상화 한것으로,물과 가까이 하면 정신을 차릴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늙으면 누구도 孤老病死에서 벗어날수 없고 벗어나려면 건강할때 건강챙기며 사십시요.

 

20세이상 나이 들어가면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여 여기저기 아픈곳이 나타나고 세월가면 갈수록 당신몸은 병들어 고통뿐이없다.

 

세수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앉아만 계십시요(좌욕).

물에 앉는것을 실행하시면,정신 차리고 살수 있습니다.

하루에 오전,오후30분이상 실행하며,매일습관을 들이는것이 중요합니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좋으며,1분1초라도 더 물에 앉으면 자신에게 좋은 것이나, 힘이들때는 쉬어가면서 하세요)<==이것도 못해 먹겠다고요?

 

픈것도 못 아프겠다고 해서 않 아플수 있으면 좋으련만,죽는것도 않 죽겠다고 하면 않죽으면 좋으련만,노력과 극복없이 기쁨은 없는 일이지요.

 

모든 병든자(者),장애인분들은 현대의학의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과 병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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