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언덕배기에 있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Franciscan Missionaries of Mary, FMM) 한국관구 본부는 그 위치부터 평범하지 않다. 1970~80년대를 연상케 하는 수녀원 주변은 과거 구로공단 시절 가난한 근로자들의 애환이 담긴 소외지대이자 지금은 연변 재중동포들이 '벌집'(쪽방)에서 부대끼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곳이다. 2층짜리 관구 본부 건물 역시 최근에 새로 페인트칠을 한 듯 깨끗해 보이면서도 수도원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소박하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 영성을 이어받은 수도회답다.
▲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녀들이 성 프란치스꼬 장애인 종합복지관 내 주간보호센터에서 지적장애 여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녀원 정문 앞에 있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전문 장애인복지관인 성 프란치스꼬 장애인 종합복지관(관장 정성윤 수녀)을 들여다봤다. 여성 장애인이야말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라는 생각으로 구로공단 시절 여성 근로자 기숙사 건물을 리모델링해 세운 것이다. 처음에 이웃들 반대가 심했으나 수녀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며 참뜻을 전해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정성윤(스텔라) 관장수녀는 "장애인복지 정책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성장애인들은 여전히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차별 속에서 살아간다"며 "여성 장애인만을 위한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장애인들은 이곳에서 기초재활훈련부터 일상생활훈련, 직업재활교육, 이ㆍ미용, 주간보호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는다. 복지관은 출산ㆍ산후조리지원부터 자녀 양육지원, 무연고 장애인 장례까지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봐준다. 수녀회는 또 성폭력과 가정폭력으로 피난처가 필요한 여성장애인을 위한 쉼터인 '헬렌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헬렌의 집 건물은 30여 년간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베풀던 성프란치스코 의원 자리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8년 6월 한국에 진출한 수녀회는 부산 성모의원과 성모여중고를 설립,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진료와 교육을 펼치는 것으로 사도직을 시작했다. 이후 50여 년간 수녀회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친 사도직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상 바오로의 집'(서울 가락시장)과 안동 '요셉의 집' 무료 급식소에서 행려자와 무의탁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가 하면, 서울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내에 '소냐의 집'을 열어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사회복귀를 돕고 있다. 또 맞벌이 부부와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탁아소ㆍ공부방, '성동 평화의 집' 등 도시빈민 사도직도 하고 있다. 결손가정 위기 소녀들을 위한 공동생활가정 '하늘바라기집'(강원도 태백 장성), 가출소녀 일시보호소 '희망의 샘 쉼자리'(경북 안동)를 비롯해 탄광촌ㆍ농촌ㆍ병원ㆍ새터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가장 먼저 찾아간다는 정신에 따른 것이다. 관구장 이혜자(마리아) 수녀는 "지금 이 순간에 가장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 항상 고민한다"며 "그러나 시대 상황이 변해 더 이상 긴급하지 않을 때는 더 가난한 이들을 찾아 떠난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관구비서 정명숙(헬레나) 수녀가 "그래서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땜빵 성소'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웃었다. 회원 수 200명 남짓한 수녀회는 선교지 파견을 준비 중인 3명을 포함해 세계 20여 개국에 42명이 파견돼 봉사하고 있다. 회원 5명 중 1명 꼴로 해외선교지에 나가 있다. "우리 수도회는 다소 중앙집권적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로마 총원과 세계 81개국에 퍼져 있는 공동체 사이에 긴밀한 유대와 협력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총원에서 각국 선교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고, 우리는 총원 결정에 따라 다른 나라에 수도자를 파견합니다. 총원에서는 7000여 명에 달하는 인적 자원을 각 지역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해외선교에 유독 활발하게 나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모든 회원들은 유기서원기에 1년 정도 다른 나라 관구에 파견돼 해외선교 경험을 쌓는다고 한다. 관구장 수녀는 "수도회 전체적으로 금고도 하나"라고 말했다. 매년 각 공동체에서 쓰고 남은 돈은 관구로 보내고, 관구에서 남는 예산 역시 최소한의 운영비만 남기고 모두 총원으로 보낸다.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선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총원에서 인적ㆍ물적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다. "보편적 선교를 표방하는 국제수도회인 만큼 회원들은 언제나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곳이나, 문화와 언어, 종교와 신념의 경계를 넘어 가난한 이들에게 달려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에이즈 환자 가족을 방문하고 있는 문준희(헬레나) 수녀
▨ 수도회 영성과 역사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성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와 하느님 뜻에 순종해 수난의 길에 동참한 마리아의 '예'를 되풀이 하면서 성모님 사명을 지속하도록 부름 받은 여성들이다. 1877년 1월 수녀회를 설립한 복녀 마리 드 라 파시옹(Marie de la Passion, 1839~1904) 수녀<사진>는 사랑하는 아들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고 싶었을 마리아처럼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제물'로 바치고자 했다. 그는 프랑스 낭트의 글라라 수녀회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과 단순함, 복음정신을 배웠다. 병에 걸려 수녀원을 나온 뒤 입회한 속죄회에서 선교수녀로 생활하며 전교자로서 소명을 확인했다.
▲ 복녀 마리 드 라 파시옹
인도에서 선교활동 중 수도회 내부 문제 때문에 1876년 20여 명의 수도자와 함께 속죄회를 탈회한 그는 교황 비오 9세에게 청원해 '마리아의 전교자'라는 이름으로 교황 직속 수도회를 설립했다. 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영성에 심취해 1884년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제3회원으로 입회했고, 교황 레오 13세 허락을 얻어 공식 명칭을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로 변경했다. 수녀회가 국제 수도회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이끈 영성의 원천이 바로 조건 없이 '예'하는 성모 마리아의 순종적 자세와 성 프란치스코에게 받은 '작은 자'의 신원이다. 회원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전교자'로, 현시된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조배자'로, 또 복음적 생활의 증거와 세상 구원을 위해 일생을 온전히 봉헌하는 '제물자(祭物者)'라는 세 가지 성소를 갖고 생활한다. 특히 기도생활과 사도직을 통해 세계선교에 헌신하는 수도자들인 만큼 매일 성체 앞에서 1시간 이상 조배하고 묵상함으로써 선교활동에 필요한 활력을 얻는다.
※성소모임 문의(www.fmmkor.org) 서울 : 02-852-0939, 매월 셋째 주일 오후 2시 가리봉동 관구본부 대구 : 053-587-2898, 매월 첫째 주일 오후 1시 용산동 이곡성당 부산 : 051-852-1057, 매월 둘째 주일 오후 2시 양정동 청원소 시흥 : 031-497-0534, 매월 넷째 주일 오후 2시 정왕동 시화바오로성당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언덕배기에 있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Franciscan Missionaries of Mary, FMM) 한국관구 본부는 그 위치부터 평범하지 않다. 1970~80년대를 연상케 하는 수녀원 주변은 과거 구로공단 시절 가난한 근로자들의 애환이 담긴 소외지대이자 지금은 연변 재중동포들이 '벌집'(쪽방)에서 부대끼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곳이다. 2층짜리 관구 본부 건물 역시 최근에 새로 페인트칠을 한 듯 깨끗해 보이면서도 수도원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소박하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 영성을 이어받은 수도회답다.
▲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녀들이 성 프란치스꼬 장애인 종합복지관 내 주간보호센터에서 지적장애 여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녀원 정문 앞에 있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전문 장애인복지관인 성 프란치스꼬 장애인 종합복지관(관장 정성윤 수녀)을 들여다봤다. 여성 장애인이야말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라는 생각으로 구로공단 시절 여성 근로자 기숙사 건물을 리모델링해 세운 것이다. 처음에 이웃들 반대가 심했으나 수녀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며 참뜻을 전해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정성윤(스텔라) 관장수녀는 "장애인복지 정책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성장애인들은 여전히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차별 속에서 살아간다"며 "여성 장애인만을 위한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장애인들은 이곳에서 기초재활훈련부터 일상생활훈련, 직업재활교육, 이ㆍ미용, 주간보호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는다. 복지관은 출산ㆍ산후조리지원부터 자녀 양육지원, 무연고 장애인 장례까지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봐준다. 수녀회는 또 성폭력과 가정폭력으로 피난처가 필요한 여성장애인을 위한 쉼터인 '헬렌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헬렌의 집 건물은 30여 년간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베풀던 성프란치스코 의원 자리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8년 6월 한국에 진출한 수녀회는 부산 성모의원과 성모여중고를 설립,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진료와 교육을 펼치는 것으로 사도직을 시작했다. 이후 50여 년간 수녀회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친 사도직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상 바오로의 집'(서울 가락시장)과 안동 '요셉의 집' 무료 급식소에서 행려자와 무의탁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가 하면, 서울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내에 '소냐의 집'을 열어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사회복귀를 돕고 있다. 또 맞벌이 부부와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탁아소ㆍ공부방, '성동 평화의 집' 등 도시빈민 사도직도 하고 있다. 결손가정 위기 소녀들을 위한 공동생활가정 '하늘바라기집'(강원도 태백 장성), 가출소녀 일시보호소 '희망의 샘 쉼자리'(경북 안동)를 비롯해 탄광촌ㆍ농촌ㆍ병원ㆍ새터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가장 먼저 찾아간다는 정신에 따른 것이다. 관구장 이혜자(마리아) 수녀는 "지금 이 순간에 가장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 항상 고민한다"며 "그러나 시대 상황이 변해 더 이상 긴급하지 않을 때는 더 가난한 이들을 찾아 떠난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관구비서 정명숙(헬레나) 수녀가 "그래서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땜빵 성소'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웃었다. 회원 수 200명 남짓한 수녀회는 선교지 파견을 준비 중인 3명을 포함해 세계 20여 개국에 42명이 파견돼 봉사하고 있다. 회원 5명 중 1명 꼴로 해외선교지에 나가 있다. "우리 수도회는 다소 중앙집권적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로마 총원과 세계 81개국에 퍼져 있는 공동체 사이에 긴밀한 유대와 협력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총원에서 각국 선교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고, 우리는 총원 결정에 따라 다른 나라에 수도자를 파견합니다. 총원에서는 7000여 명에 달하는 인적 자원을 각 지역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해외선교에 유독 활발하게 나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모든 회원들은 유기서원기에 1년 정도 다른 나라 관구에 파견돼 해외선교 경험을 쌓는다고 한다. 관구장 수녀는 "수도회 전체적으로 금고도 하나"라고 말했다. 매년 각 공동체에서 쓰고 남은 돈은 관구로 보내고, 관구에서 남는 예산 역시 최소한의 운영비만 남기고 모두 총원으로 보낸다.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선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총원에서 인적ㆍ물적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다. "보편적 선교를 표방하는 국제수도회인 만큼 회원들은 언제나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곳이나, 문화와 언어, 종교와 신념의 경계를 넘어 가난한 이들에게 달려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에이즈 환자 가족을 방문하고 있는 문준희(헬레나) 수녀
▨ 수도회 영성과 역사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성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와 하느님 뜻에 순종해 수난의 길에 동참한 마리아의 '예'를 되풀이 하면서 성모님 사명을 지속하도록 부름 받은 여성들이다. 1877년 1월 수녀회를 설립한 복녀 마리 드 라 파시옹(Marie de la Passion, 1839~1904) 수녀<사진>는 사랑하는 아들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고 싶었을 마리아처럼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제물'로 바치고자 했다. 그는 프랑스 낭트의 글라라 수녀회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과 단순함, 복음정신을 배웠다. 병에 걸려 수녀원을 나온 뒤 입회한 속죄회에서 선교수녀로 생활하며 전교자로서 소명을 확인했다.
▲ 복녀 마리 드 라 파시옹
인도에서 선교활동 중 수도회 내부 문제 때문에 1876년 20여 명의 수도자와 함께 속죄회를 탈회한 그는 교황 비오 9세에게 청원해 '마리아의 전교자'라는 이름으로 교황 직속 수도회를 설립했다. 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영성에 심취해 1884년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제3회원으로 입회했고, 교황 레오 13세 허락을 얻어 공식 명칭을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로 변경했다. 수녀회가 국제 수도회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이끈 영성의 원천이 바로 조건 없이 '예'하는 성모 마리아의 순종적 자세와 성 프란치스코에게 받은 '작은 자'의 신원이다. 회원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전교자'로, 현시된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조배자'로, 또 복음적 생활의 증거와 세상 구원을 위해 일생을 온전히 봉헌하는 '제물자(祭物者)'라는 세 가지 성소를 갖고 생활한다. 특히 기도생활과 사도직을 통해 세계선교에 헌신하는 수도자들인 만큼 매일 성체 앞에서 1시간 이상 조배하고 묵상함으로써 선교활동에 필요한 활력을 얻는다.
※성소모임 문의(www.fmmkor.org) 서울 : 02-852-0939, 매월 셋째 주일 오후 2시 가리봉동 관구본부 대구 : 053-587-2898, 매월 첫째 주일 오후 1시 용산동 이곡성당 부산 : 051-852-1057, 매월 둘째 주일 오후 2시 양정동 청원소 시흥 : 031-497-0534, 매월 넷째 주일 오후 2시 정왕동 시화바오로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