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전용 극장이 생겼네요. 전용극장은 모든 극단의 꿈이자 연출가와 배우의 평생 희망! 모든 기획들의 선망이자 극단 관계자들이 로또를
구입하는 이유 그 자체!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고 앞서 나가게 된 <모시는 사람들>의 앞날에 멋진 일들만 가득하기를 빌어봅니다.
대학로 한 곳에 믿을만한
극단의 극장이 생겼다는 사실에 저 역시 부자가 된 느낌이 들어 으쓱거립니다. 축하 드립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모시는 사람들>의
숨어있는 팬으로서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냅니다. 정말 감개무량한 일이예요.
제가 극단 <모시는 사람들>을 기억하게 된
계기는 역시 뮤지컬 '블루 사이공'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이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몇 안되는
뮤지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제가 접한 작품의 수가 많지 않아서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지만 김정숙 극작가님 희곡에서 일관되게 묻어나는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서민적인
삶의 건강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그러한 특징이 가장 잘 묻어나는 작품이고요. 저는
그 느낌이 무척 좋습니다. 서민적인 척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가난하지만 순박한 이웃을 보고 있는 정겨움이 있거든요. 상업화 되어가고,
대형화 되어가는 공연계에서...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한결같은 색깔을 담아 올리는 극단이 있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전용극장 덕에
티켓 가격이 만원이랍니다. 우연찮게 대학로를 거닐게 되었고,
예정은 없지만 간단하게 연극 한편을 보고 싶을 때 오아시스 세탁소의 문을 두드리기를 추천합니다. 예약없이 찾아갔다가는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관객의 줄이 긴 것도 아니고, 한산하면서도 배우들의 연기는 참 좋고, 무대나 플롯 자체도 완성도가 있는 편이니까요. 게다가 세제도 주시네요.
만원에 풍성한 느낌이 들게 하는 공연입니다.
2.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얼핏 들었을 때는 하루키의 「빵가게 습격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습격사건이라는 말이주는 제목의 유사함
때문인 것이죠. 제목의 네 글자가 똑같다고 표절이라는 허황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나서도 여전히 「빵가게
습격사건」이 생각나더군요. 내용은 조금도 비슷하지 않고, 감수성 자체도 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요. 두 작품이 모두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상당 부분 배우분들의 연기에 힘입어 진행됩니다. 동네 세탁소의 사람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캐리터에
작품이 갖고 있는 동화적 교훈성이 주는 전형적인 구조마저 눈 감게 됩니다. 굉장히 풋풋하면서도 진실한 감정이 담겨있는 희곡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설교조로 흐르기도 쉬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거든요. 배우분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제 생각은 완벽한 기우로 끝난 것 같긴 하지만
말입니다. 특히 염소팔 역을 맡으신 배우분은 연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캐릭터이신 것 같았습니다. 배우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세탁소 주인 내외를 맡은 배우분들의 대사도 참 좋았고요. 특히 세탁소 주인의 조준형님의 경우는 선량하고, 부드러운
마스크를 갖고 계신 분이셔서 캐릭터와 잘 어울리더군요. 단지 마지막의 긴 독백 부분에서 장기 공연의 탓인지 목에 무리가 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독백은 문어체의 느낌도 강하더군요. 정말로 한끗만 빗나갔으면 설교조로 넘어갈 부분이었습니다. 배우분들이 워낙에 진중한
바위처럼 눌러주고 계셔서 버텨지고 있지만요. 초반에 어머니의 두루마기를 찾으러 온 노인의 장면도 지나치게 긴 감이 있습니다. 세탁소의 이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알지만 전체 공연에 비해 그 씬에 집중된 길이가 너무 길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적인 연기를 하시느라고 느릿느릿한 말투와
반복되는 대화들이 나오면서 장면의 길이가 길어진 것이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긴 이야기의 도입부로
보이거든요.
인상 깊었던 부분은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정겨운 서민들의 일상을 스케치해 낸 감각입니다. 대사들도 어찌나 절절한지.
요즘 여고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정말로 사실적이더군요.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는 탓인지) 딸 대영이와 착하지만 무능한 남편에 대해
바가지를 긁지만 본성은 선량한 장민숙, 돈을 많이 벌어 장가 들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싶다는 꿈을 가진 염소팔, 걸죽한 입담으로 끝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간호사 서옥화. 그 외의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이 잘 살아있는 연극이었습니다. 순간순간 날카롭게 잡아낸 일상의 감각이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이 매우 눈이 부십니다. 인공적으로 설정한 서민의 삶에 교훈적인 메세지를 끼워넣어 조미료를 가득 부어넣은 찌개 같아지는 연극이 아니라는 게
반가웠습니다. 세탁소를 그대로 뜯어온 것 같은 사실적 무대에 동화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비누방울과 깨끗한 세재 향이 함께 어울러져서 관객들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