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사랑영화제로 이름을 바꾼 서울기독교영화제가 기독영화 전용관을 목적으로 지난해 5월 필름포럼을 개관했다. 2012년 필름포럼에서 상영한 영화를 포함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를 찾아온 한국영화 중에서 필름포럼이 추천하는 작품과 논쟁작을 다섯 편씩 골랐다.
먼저, 시각장애인 인천혜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 <안녕, 하세요!>. 이 학교 막내아이 지혜는 ‘안녕’을 먼저 말하고 인기척을 느낀 후에 ‘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이 짤막한 인사말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후 타인을 배려한다. <달팽이의 별>은 다큐멘터리영화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2011년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장편부분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찬씨는 보거나 들을 수 없어 오직 만지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신학생이다. 척추가 불편한 작은 몸집의 아내 순옥씨는 이처럼 느리게 소통하는 달팽이와 같은 영찬씨를 세상 밖으로 이끈다. 사람들이 보거나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진실을 느끼려는 듯 그의 손가락을 잡아 세상에 갖다 댄다. <달팽이의 별>과 <안녕, 하세요!>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독교 테마인 사랑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현순에게 엄마가 물려준 밍크코트 한 벌, 현순은 그 코트를 손녀의 분유 값을 위해 딸 수진에게 물려준다. 올해의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 신아가/이상철 감독이 연출한 <밍크코트>는 엄마의 임종을 맞이한 현순과 가족이 감당해야할 서로의 불신과 상처를 직시한다. 결국 죽음(엄마)은 새로운 생명(손녀)을 낳는다. 대속과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가치가 돋보인 수작이다. <터치> 또한 불안한 삶의 끝에서 건져 올린 희망을 말한다. 음주운전으로 뺑소니 사고를 낸 남편 동식의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원은 부도덕한 행위에 휘말린다. 수원이 잠시 집을 비운 어느 날, 사라져버린 어린 딸 주미의 몸에 그려진 이상한 그림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욥의 고난이 그녀에게도 드리워진다.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얼기설기 엮이는 고난을 극복하는 수원의 선택은 놀랍게도 이타적 희생이다. ‘영화는 현실의 지문’이라는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말처럼 <터치>는 현실을 그대로 직시한다. 회피하지 않는 현실(영화)에서 관객은 치유를 얻는다. 수원역의 배우 김지영의 연기는 <터치>를 필름포럼의 올해의 한국 영화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게 만든다.
영화 <26년>은 추천작과 논쟁작에 모두 포함된 유일한 작품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보듬는 점에서 추천작에, 스토리텔링 방식이 ‘복수’라는 점에서 논쟁작에 꼽혔다. 만약 이 영화의 끝이 복수의 성공이었다면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현실에서도 여전히 ‘그 사람’은 건재하다. 피해자를 향한 진정한 사과 없는 회개는 용서받지 못한다.
백성만 바라보는 왕, 혹은 나만 바라보는 엄마와 늑대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최고 흥행작이다. 조선조 광해군이 정적들을 피하기 위해 잠시 대역을 사용했다는 설정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한국인들이 바라는 리더의 이미지를 영화에 명민하게 녹여냈다. 한국 영화산업을 움직이는 거대 자본이 영화의 기획부터 제작(연출, 배우), 배급까지 담당했고 흥행은 성공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많이 찾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원하는 정치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거대 자본조차 정확하게 포착한 인물을 실제 정치권이 구현하지 못했던 지난날에 아쉬움과 답답함이 겹친다.
최고의 논쟁작은 단연 <피에타>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로 2012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지만 평소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비주류적 감성과 하드고어적 표현방식 때문에 여전히 한국 관객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피에타>는 돈 때문에 물고 뜯기는 인간 군상들의 상처와 응어리를 형상화했다. 절대 악 ‘강도’는 빚진 자의 신체부위를 절단하여 타낸 보험금에서 자신의 몫을 취하는 사채업자의 시다바리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엄마라는 여인을 만난다. 고아로 자라온 ‘강도’는 처음 본 여자를 엄마로 인정할 수 없어 그만의 방식으로 모진 시험을 한다. 평생 처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여인을 엄마로 받아들인 후에 엄마의 사랑을 느낀 ‘강도’는 그가 저지른 온갖 악행을 역시 그만의 방식으로 ‘속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가 느낀 사랑은 사실 엄마가 자신의 목숨까지 던진 처절한 복수였다. 이처럼 선과 악이 역전되어 뒤바뀐 부조리한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지 김기덕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야성의 <늑대소년>은 자기를 늑대가 아닌 ‘존재’로 인식해준 소녀에게만 향하고 오로지 소녀만을 보호한다.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인 것처럼 관계의 상호작용은 서로를 충족시킨다. 이러한 소녀적 판타지 감성에 충만한 스토리텔링은 남녀 모두에게도 통했다. 길들임이라는 교감으로 맺어진 관계는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영혼을 구원한다.
마지막 논쟁작은 이대희 감독의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이다. 마음껏 바다를 누비던 고등어는 그물에 잡혀 횟집으로 팔려온다. 좁은 수족관의 권력자 넙치와 자유를 향해 수족관을 탈출하려는 고등어는 서로 대립한다. 언제 횟감으로 끝날지 모르는 수족관 안은 인간세상과 닮아있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횟감으로 뜨는 사실적인 묘사는 마치 내가 그 물고기가 된 듯하다. 몸 하나 숨길 곳 없는 작은 세상에 안주하던 넙치는 고등어의 죽음 앞에서 자유를 향한 의지를 발견한다.
필름포럼이 올해의 영화로 선정한 추천작뿐 아니라 논쟁작은 모두 그리스도인 관객들에게 적극 권하는 작품들이다. 다만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의 차이로 나눴다는 점을 밝힌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관계에 의한 상호작용이다. 색깔은 달라도 어쩌면 그 관계에서 ‘어떤 구원’을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은 그 감각에 익숙한 편이다. 나라는 개인과 예수와의 관계에서 맺어진 구원을 영화 속 관계들에 비춰보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한 편의 영화가 예배만큼이나 말씀을 묵상하게 한다. 여러 사람이 한 목적으로 서로 교감을 주고받는 공명현상을 느낄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아마도 영화는 이를 가장 극대화한 수단이 아닐까.
열 편이라는 정해진 숫자 때문에 올해의 영화에 넣지 못한 아쉬운 작품도 있다. 한경직 목사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한경직>과 아이들을 위해 성경을 재미있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낸 <리틀 제이콥-울렁울렁 박물관>, 철가방 기부천사 우수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철가방 우수씨> 등이다. 소위 기독교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의 약진과 분발을 2013년에도 여전히 기다린다.
조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