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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이지만 심혈을 기울여 쓴글이니 사랑하는 제자님들 읽어보세요. 특히 정치에 관심있는 제자님들은 필독!!!
Political Elder 지난 대선(大選)때 친북좌경정권(친김정권)이 재집권하는 것이 싫어서 모(某) 당(黨)에 입당(入黨)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의 한을 풀고 국민성공시대의 희망을 갖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성직(聖職)을 가진 장로(長老;Elder)로서 정당(政黨)에 가입해서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의외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정당에 가입되어 있고, 특히 각 교단 장로들이 정당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는 이 기회에 ‘장로의 정치참여 문제’를 신앙적 관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의 나의 처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계기(契機)가 되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장로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장로들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기를 바란다. ***정치(政治)란 무엇인가?*** 고대희랍의 도시국가(polis)시대부터 정치는 국가의 중심영역이 되어 왔다. 중심영역이란 말은 바로 정치는 사회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치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공기를 떠나서는 한 순가도 살 수 없듯이 우리는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기회에 정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고찰(考察)해 보자. <고대적(古代的) 의미의 정치> 희랍에서는 도시국가에서 공동생활 그 자체가 바로 정치를 의미한다. Platon(B.C. 427-347)은 정치를 ‘윤리적(倫理的) 철학적(哲學的) 예지(銳智)의 작업’이라 했으며, 정치는 위대한 군주(君主)나 철학자(哲學者)가 담당(哲人政治論)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그는 정치를 정의(正義)의 공동체(共同體)를 실현(實現)시키는 수단으로 봤다. 그는 정치를 동굴로 비유했다. 동굴 안을 캄캄한 암흑세계로, 동굴 밖을 광명의 세계 즉, 이상(Ideal)의 세계로 개조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라 했다. Aristotle(B.C. 384-322)는 Platon의 제자로서 ‘인간은 본시 정치적 동물이다’(Man is by nature a political animal)라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치적 사회적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국가적 공동생활의 영위를 통해서 사람다울 수 있고 인간의 완성은 국가 공동체에 있어서 비로소 가능함을 뜻한다. 그에 의하면 최고선(最高善)이 바로 행복이고 정치의 목적은 최고선으로서 행복추구라고 했다. 최고선은 인간이 가지는 윤리적, 지적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있으며 이것이 바로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했다. 여기에서 선악(善惡)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을 강조 했다. 그의 ‘인간은 정치적 동물’(political animal)이라 한 말은 실제 인간은 polis내에서 생활하는 동물에 비유한 것으로서 공동적 존재 또는 사회적 존재 및 동물이라는 뜻이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 위정이덕(爲政以德; 덕으로서 정치하는 것)과 정자정야(正子政也; 政=正,政治=正治)즉 정치는 바르게 다스림을 뜻했다. 정도(政道), 경세(經世),경국(經國),제세(濟世),제민(濟民),치세(治世),치민(治民),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은 바로 정치를 의미하는 말이다. <근대적(近代的) 의미의 정치> 미국 존스홉킨스대(Johns Hopkins University) 정치학 교수 윌로우비(W. W. Willoughby)는 “정치는 국가질서유지와 국민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정의 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파리 제1대학 교수 뒤베르제(Maurice. Duverger)는 정치란 무엇인가? 라는 명제에 대해서 “야누스의 얼굴(To be Janus-faced)”이라고 정의했다. 정치의 두 얼굴이란 '투쟁(鬪爭)'으로서의 모습과 '질서(秩序)'로서의 모습이라고 한다. 먼저 '투쟁'으로서의 정치를 강조하는 자들은 '힘'이 '설득'보다 효과적이며, '힘'이 무엇이 옳은가를 궁극적으로 결정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정치적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은 '적'을 패배시킬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질서'로서 정치를 강조하는 자들은 ‘인간은 본래 선(善)하며 이성적(理性的)인 존재(存在)’라고 본다. <현대적(現代的) 의미의 정치> 영국의 사회학자(社會學者)이며 경제학자(經濟學者)인 라스키(H. A. Laski)는 “정치란 국가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대중의 행복을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캐나다 태생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 (David Easton)은 정치를 사회를 위한 사회 제(諸) 가치(價値)에 대한 “권위적(權威的) 배분(配分)”이라고 정의 하였다. 이를 좀 더 상세화(詳細化) 하면 정치란 “한 사회의 가치들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정의 하였고, 정치활동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중요한가치가 사회 전체에 배분되는 것과 관계되는 것”이라 정의하였으며, 정치가(政治家)란 “우리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가 사회 전체에 배분되도록 하는데 관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현대의 많은 정치학자들이 정치의 개념을 공통적으로 정의하기를 “정치란 인간들의 가치관(價値觀)이 다양(多樣)하고 이해관계(利害關係)가 다양하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임인 사회 안에서 갈등(葛藤)이 생겨서 혼란(混亂)이 생기기 때문에 혼란을 조정(調停)해줘서 모든 사람들에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좁은 의미로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 중에서 개인의 혹은 소수의 힘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대하여 국가가 국가권력을 사용하여 대립을 완화시키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국가의 활동뿐만 아니라 회사, 학교, 가정 등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의견 차이를 조정해 나가는 활동을 포함하는 것을 정치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정치를 지나치게 과장(誇張)하거나 과소평가(過小評價)한다는 것이다. ‘정치’란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의 싸움이나, 정치가들의 비리를 떠올리며 정치에 대해 회의적(懷疑的)인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반응은 정치를 지나치게 나쁜 것으로 과장하여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줄이게 된다. 두 번째는 정치에 대한 포괄적(包括的)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개인은 정치를 자기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기업가의 경우 정부의 규제나 시민단체의 규제를 귀찮고 사업에 방해되는 것으로 인식하여 정치자체를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 반대로 정부가 기업에 지원을 해주거나 특혜를 주게 될 경우, 정치는 기업가에게 매우 유리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과거의 권력자들이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정치적 인간> 정치란,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행동의 조직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의 수단이 다름 아닌 권력이다. 그러므로 정치란 권력의 조작에 의한, 그리고 적극적 내지 소극적인 동의를 매개로 하는 개인행동의 조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정치가 개인행동의 조직화인 한에 있어서, 정치는 모두 개인의식을 전제로 하여 성립된다. 그런데 민주화에 의한 사회형태의 변화와 그리고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정치화의 진행으로 말미암아 정치와 개인은 직접적으로 서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 인간이란 과연 어떠한 인간을 말하는 걸까? 정치적 인간이란, 우선 모든 인간을 뜻한다. 포괄적으로 본다면 우리가 서로 부딪히고 상대하고 겪어나가는 모든 일들은 크건 작건 간에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하는 행동, 부모님과의 대화 등 많은 일상의 부분들이 정치적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타협, 문제해결과 대화들이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행동이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정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정치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 없이는 사회 없고, 사회 없이는 정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루고 있는 사회내의 여러 집단들은 곧 정치적 집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행동을 단순한 ‘개인’의 측면에서 눈을 돌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그 개인의 행동은 더더욱 정치적인 행동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의 상사와 부하와의 관계, 학교에서의 선생님과 제자와의 관계, 동아리에서의 선배와 후배와의 관계 등 이러한 모든 관계들 사이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적 행동들이 숨어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사가 부하에게 전달하는 명령, 지시는 상급자의 권력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정치적 인간의 두 번째 유형은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인간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중 대다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자기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세상 돌아가는 데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하면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때에도 20대로 대변되는 젊은 층의 투표율은 민망할 정도의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로(長老)란 무엇인가?*** 장로란 말이 구약에서 1백회 이상 나온다. 그 중 모세 5경에서는 46회가 나온다. 이들의 어의(語義)들을 크게 종합하면 가돌(손위, 형) 자켄(나이든 장로, 장자 , 수염 있는) 지방의회 일원, 사절 등으로도 사용되었다. 신약에서는 장로(Elder; πρεσβυτερος)라는 말이 60회 이상 나오는데 그 어의를 종합하면 손위, 조상, 공직에 있는 자들, 영광 받을 자들로 표현하고 있다. <장로(長老)의 자격>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의 자격은 바울(Paul)과 베드로(Peter)가 언급하였다. *바울은 장로의 자격을 디도서 1장 5절에서 14절까지 언급하였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성경엔 감독과 장로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했다.(사도행전 20장 28절 참조)
*베드로의 언급-베드로전서 5장 [개역개정] 1절-4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장로(長老)의 임무> 신약성경에 나타난 장로의 임무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장로는 구제에 대한 일을 관리하여야 한다. 사도행전 11장 [개역개정] 29-30절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장로는 도리(道理)의 오해(誤解)를 교정(敎正)하여야 한다. 사도행전 15장 [개역개정] 6-10절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장로는 다스림의 직무를 가진다. 디모데전서 5장 [개역개정] 17절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장로는 바른 가르침에 의한 권면(勸勉)과 책망의 직무를 가진다. 디도서 1장 [개역개정] 9.절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장로는 병자를 돌보아야 한다. 야고보서 5장 [개역개정] 14-15절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장로의 정치활동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건국 후 9명의 역대 대통령 중 3명이 장로 대통령이고 장차관 국회의원 중에도 상당수가 장로이다. 지방지치단체의원이나 단체장도 꽤 많은 사람이 장로라고 한다. 전 국민의 30%가 기독교인이니 장로들도 상당수가 정계에 투신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로의 성직으로 정계에 투신했을 때 선교에 도움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불신자들에게 긍정적이며 본인의 신앙적인 관점에서 어려움이 없겠는가? 의 문제이다. 장로의 정치활동은 개개인의 사적(私的)인 문제이지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인가? 크리스천의 직업선택 자유가 있듯이 장로의 정치활동자유가 있으니 논할 거리 안 되는가? 이번 17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장로의 사례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장로 대통령의 정치활동문제> 이명박 장로는 신실한 개신교 신자다는 말은 평범한 문장으로 누구나 그렇구나 하고 인정한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하나님께 영광이고, 하나님 뜻이라고 기독교계에서는 모두들 환영한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침체된 개신교의 전도(傳道)가 활기를 띄고, 우리나라 복음화는 가속화 될 것이고, 정치권의 복음화는 급속도로 확산 될 것인가? 그러나 장로 대통령이 취임하면 기독교의 복음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을 것이라는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도 개신교 장로이다. 그는 기독교 국가를 세우려고 했다. 자신의 뜻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장기집권(長期執權)을 획책하면서 부정선거를 하다가 망명길에 오른 것이다. 결국엔 장로 대통령으로 선교에 부정적(否定的) 영향을 미쳤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장로 대통령이다. 자신을 사도(使徒)로 생각했다. 정권말기에 사형수를 집행했다. 그 역시 IMF를 막지 못해 장로 대통령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 종교간 갈등을 더 부추긴다는 지난해 7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논문이 나왔다. 동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불교, 개신교, 가톨릭 등 3대 종교 지도자 300명을 대상으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종교 편향적(偏向的)이었던 대통령으로 1위가 김영삼 대통령(42.7%), 2위가 이승만 대통령(30.0%)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안티크리스천(anti-christian)들의 비난거리가 된다. 제 17대 대통령 당선인 이명박 장로도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대규모 개신교 행사에 50여 차례 이상 참석했다. 2004년 행사에선 수도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은 하나님 백성,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봉헌(奉獻) 사(辭)를 낭독했다고 해서 비 기독교인들과 언론의 비난을 샀다. 지난해 이명박 후보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기독인회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한나라당 경선 기간 중) ‘무슨 이야기를 듣더라도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교회)장로로서 정치하기가 쉽지 않다. 참으로 어려울 때가 많다”며 “장로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할 텐데……라고 문득문득 생각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경선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마음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매일 아침 기도하면서 `꼭 승리하게 해 달라'고 했던 것보다 `남을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 고 더 기도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소회(所懷)를 털어 놨다. 또한 이 후보는 “남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입으로 떠들어도 행동으로 보이지 않으면 가짜라는 것을 하나님은 다 안다. 남을 아무리 돕는다고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이라고 했고, 믿음이 안에 행함이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행동으로 믿음을 보여야 한다.”고 밝히며, 경선 후 상대측에 대한 감정들은 다 잊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장로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많은 것에 의존해야 한다. 우리가 애쓰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 “사람이 모든 노력을 하지만 결과를 만들어 주는 것은 하나님이다. 이번 대선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는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장로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 후보의 태도에 대해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또 종교를 일종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 후보의 태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공의롭고 정의롭게 국가를 운영하는 장로 대통령”을 바라고 있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비난을 사는 것도 사실이다. “이 후보가 개신교인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비롯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그가 믿는 하나님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힌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어 종교와 관련된 정책을 결정할 때 과연 공정한 국가 통치자로서 국민의 복지를 최고의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신앙에 치우칠 것인지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타 종교인들은 비판한다. 그러나 이명박 장로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선되자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들어갔는데, 경주 불국사, 합천 해인사, 서울 조계사를 방문해 예불(禮佛)하고 합장(合掌)하며 불교계의 표심을 자극했다. 개신교계는 구원(救援)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4:6, 행 4:12)를 부인하고 영혼(靈魂)을 지옥의 멸망으로 이끄는 세속종교들을 포괄(包括)하여(고후 6:14) 국가의 화합을 추구하는 일에 기독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하는 사람과, 표를 얻기 위해서 우상의 전에 들락거리며 중들과 환담을 나누는 것도 허용하는 것이 정치현실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지난달 18일 한국불교지도자 신년하례(新年賀禮) 법회(法會)에 참석해 연기(緣起;연기적인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기독교의 영생복락과 대치)· 동체대비(同體大悲;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그대로 자기의 괴로움인줄 여기고 어여삐 여기는 것-기독교의 구속사상과 대치)· 자리이타(自利利他;자신과 다른 이를 위해 닦는 공덕-기독교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와 대치)· 육화(六和;신(身)·구(口)·의(意)·계(戒)·견(見)·이(利)사상-기독교의 8복사상과 대치)․ 하심(下心)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이 신봉(信奉)하지 않는 타(他)종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지난 9월 19일 한나라당 기독교인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대통령직은 잠시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어쩌면 대통령직보다 (장로라는 직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것이 정치인 장로의 디렘마(dilemma)이다. 개개인으로는 신실하고 나름대로 신앙이 있다고 자부하며 장로로 부름 받았지만, 정치집단에 들어가면 정치성을 띤 비 신앙적 장로로 변하는 것이다. 물론 종교를 '표밭'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의 태도가 이 후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종교기관을 선거 때 찾아가 립 서비스(lip service)를 하거나 선심성 정책을 내놓는 것이 다반사(茶飯事)다. 충현선교교회 민종기 목사는 칼럼을 통해 “신자가 대통령이 되면 기독교정치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정치철학, 요셉(Joseph)과 다니엘(Daniel)같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 그리고 기도와 격려에 기반을 둔 은근하고 끈기 있는 지원이 한 기독교 정치인을 훌륭하게 키우게 된다.” 며 한명의 기독교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기독교 정신으로 정치가 펼쳐질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했다. 지금 이 문제를 기독교인들은 곱씹어볼 문제이다. <신앙적 장로와 비 신앙적 정치판> 신실한 장로도 정치판에 들어가면 집단이기주의자가 되기 쉽다 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그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道德的人間-非道德的社會/Moral Man and Immoral Society)』에서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구별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개인은 양심적이고 도덕적인데 반해, 집단은 정치적으로 이기성(利己性)을 띄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무리 도덕적으로 선(善)하게 살려고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집단의 객체(客體)가 되면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 이는 사회가 비도덕적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소속된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나는 것이다. 개개인으로는 신실하고 나름대로 신앙이 있다고 자부하며 장로로 부름 받았지만, 정치판 집단에 뛰어들면 정치성을 띤 비 신앙적 장로로 변하기 쉽다. 신앙적인 장로가 정치권의 복음화를 위해 정치를 한다하지만, 세상정치를 하다보면 죄인의 구원을 막는 타 종교인들을 포용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손잡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이 정치적 현실이다. 어쩌면 정치활동이 비성경적인 배교(背敎) 행위(行爲)를 할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장로로서 정치하기가 쉽지 않다. 참으로 어려울 때가 많다”고 고백했다. 대한민국 헌법 20조(政敎分離)에도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시한 것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장로는 장로이고, 정치는 정치인지 모르겠다. 장로가 정치를 하는 것은 세속적 가치(Worldly value)를 중시하는 Political Elder이지 영적 가치(Spiritual value)를 중시하는 Spiritual Elder는 아닌지도 모른다. 지난 2008년 1월 28일자 신문에 First Lady가 될 김윤옥 여사는 경호 상 문제로 5년 간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못 드린다는 기사를 읽었다. 5년간 예배를 못 드리면 그 신앙은 어떻게 될까…… ***Political Elder 어떻게 할 것인가*** 원래 정치란 ‘인간들의 가치관이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다양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겨서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혼란을 조정해줘서 모든 사람들에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최고선(最高善)’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치 없이는 사회 없고, 사회 없이는 정치 없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인간은 정치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Aristotle는 ‘인간은 본시 정치적 동물이다(Political animal). 최고선이 바로 행복이고 정치의 목적은 최고선으로서 행복추구’ 라고 했다. 도안사 조실 법공스님은 정치란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바른 길이 곧 정치입니다. 백성이 잘 살려면 바르게 다스려야 합니다. 바르게 다스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른 길로 안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누구보다도 바른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불경에도 “진실의 가르침을 덮개로 삼고 부끄러움을 고삐로 삼으며 바른 생각을 재갈로 하여 지혜를 훌륭한 말몰이로 삼고 바른 소견을 안내자로 삼으라.”는 말씀이 있다. 이명박 당선인은 지난달 18일 한국불교지도자 신년 하례 법회에 참석해 "저는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길 것이다. 그것이 불교의 '하심(下心)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명박 당선인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기독교 정신의 진수(眞髓)가 섬김이라면 장로인 이 당선인은 그 순간 그 말을 5년 동안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알고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을 것이다. 한 현직 국회의원 장로는 정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칼럼을 썼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정치에도 가득 임하시고 이 나라의 정치도 하루 속히 하나님과 백성이 기뻐하시는 경지로 옮겨져야 한다. 정치도 분명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영역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임하게 되려면 어찌 정치가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사로잡히지 않고 가능할 것인가? 부디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정치에 참여하시라. 직접 정치인이 되어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정치에서도 이루시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훌륭한 기독 정치인들이 이 산하를 덮으리라. 나는 정치를 하겠다는 젊은 기독 청년을 찾고 있다. 이 시대의 다윗이요, 솔로몬이여… 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랴!”라고 Political Elder로서의 소견을 제시하였다.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정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안다”며 “정치에 뜻있고 소명 있는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로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것이냐? 는 정치장로로서 정치가 목적이냐? 수단이냐? 에 달려 있다고 본다. 정치권력이 목적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을 가릴 것이요, 정치권력이 하나님 선교를 위한 수단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러려면 ‘섬기는 장로’ ‘빛과 소금의 장로’ ‘섬김의 정치’ ‘하심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 장로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치권의 복음화라는 미명(美名) 아래 자기 사리사욕(私利私慾)과 권력에 심취(心醉)된 위선자(僞善者)의 Political Elder가 된다면 천국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바라기는 이번 4월 총선에 이런 정치장로가 당선되지 않기를 바란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태복음 20장 26절-27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장 13절)” 2008년 2월 5일 Elder Song |
첫댓글 까페활동에 신경을많이써 주셔서 은사님 감사합니다.항상건강하세요.
은사님 말씀대로 정도(政道),경세(經世),경국(經國),제세(濟世),제민(濟民),치세(治世),치민(治民)을 생각하는 정치의 리더자가 지금은 없는것 같아 씁쓸합니다. 이명박 장로 지도자도 지금으로서는 많이 힘들겠지만 올바른 리더쉽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좋은 말씀 주시는 은사님은 저희들의 소금이세요~ 늦으막하게나마 은사님의 소금을 느끼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