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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34회
늘재-밤티재-문장대
20230507
1.풍림화산(風林火山) 같은 산행
2013년 1월 29일 청화산-조항산-고모재 산행을 위해서 늘재에 왔었다. 3개월이 지나서 늘재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속리산 문장대로 남진한다. 이 구간을 네 번째로 감행하는데 가장 최근의 이 구간 산행은 2020년 7월 5일이었다. 이 구간은 비법정탐방로이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은 이 구간을 이어야 하기에 마음에 큰 부담을 가지고 이 구간을 산행한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불어댄다. 산행을 시작하여 30여 분이 지나서 비가 내린다. 바람은 거칠게 휘저으며 쏘다닌다. 음습한 날씨를 씻어 주는 것은 참나무 푸른 나뭇잎과 분홍빛 고산철쭉꽃이다. 5월의 산야는 참나무 나뭇잎 푸른 빛으로 넘실거리고, 묽은 분홍빛 고산철쭉꽃이 물결친다. 싱싱하고 아름답다. 비법정탐방로의 경계를 넘나들고 위험 지대를 통과하는 두 가지 위태로운 지경을 극복하는 산행은 몸과 마음에 이중의 고통을 준다.
疾如風(질여풍) 달릴 때는 바람처럼 달리고,
徐如林(서여림) 머물 때는 숲처럼 고요히 머물며,
侵掠如火(침략여화) 적을 칠 때는 불과 같이 치고,
不動如山(부동여산)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과 같이 한다. -손무의 <손자병법> '군쟁(軍爭)' 중에서
문장대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바람처럼 달리고 숲처럼 고요히 머물다가 불처럼 내달려 공격하고 산처럼 엄숙했다. 이번 구간 산행 모습이 이렇게 느껴졌다. 초록초록, 초록빛 물결치고 묽은 분홍빛 고산철쭉은 하늘거리다. 세찬 바람이 공중에서 휘몰렸다. 북으로는 청화산 산줄기, 남으로는 천왕봉에서 형제봉으로 내닫는 속리산 산줄기, 기기묘묘한 암봉의 이어짐, 문장대에 불어대는 바람 바람 바람, 아득한 한 바탕의 봄꿈이었다.
아래에 2000년 7월 5일 이 구간을 산행한 기록을 첨부하여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
2.경계를 넘나드는 위태로움(2000년 7월 5일)
2020년 2월 16일에 온 뒤 4개월이 지나서 7월 5일 다시 늘재에 왔다. 그때는 청화산과 조항산 산행을 위해 북진했었다. 입춘을 지난 뒤인데 가는 눈발이 날리다 함박눈이 쏟아져 조항산의 설경에 함빡 취했었다. 그로부터 넉달 보름이 지나 땡볕 무더위의 여름날 늘재에 다시 왔다. 오늘은 문장대 방향으로 남진하는데 경계를 넘어서 위태로운 암릉 지대를 통과하는 산행이다. 늘재의 경계선 안에서 경계를 넘어 밖으로 나갔다가 밤티재 경계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밤티재 경계선을 넘어 경계 밖으로 잠행하여 위태위태한 위험 지대를 통과하여 문장대 경계선 밖에서 경계 안으로 들어가 문장대에 오른 뒤 시어동 계곡으로 내려간다.
文藏路 고개 늘재는 한적하다. 10시가 못 미친 시각에 들쥐처럼 가뭇없이 문장대 방향 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7월의 숲은 푸르다. 땡볕은 짙푸른 숲의 틈새로 기어들어 가느다란 실빛들을 쏠 뿐이다. 땡볕이 침범하지 못하는 녹음을 밟으며 무수한 산객들이 밟아간 이 구간 법정비탐방로를 걷는 자유를 즐긴다. 나뭇가지 사이로 북쪽 청화산을 뒤돌아보며 오르는 숲길, 반대편에서 산객들이 내려온다. 비탈길 위에서 5살쯤 보이는 꼬맹이 녀석이, 산비탈을 오르는 우리를 위하여 자리를 비켜서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카랑카랑 외쳐댄다. 아빠와 함께 위험한 암릉 지대가 있는 법정비탐방로를 용케 잘도 걸어왔구나. 이 세상 모든 경계를 허무는 선구자 모습이도다. 귀염둥이 꼬맹아, 앞으로도 더 큰 경계를 허물고 더 큰 위험을 이겨내며 인생길을 씩씩하게 헤쳐나가기를 진심으로 빈다.
미끄러운 마사토 비탈길을 오르니 629봉, 그곳에서 바로 뒤 북쪽 청화산과 동북쪽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선명하다. 탁 트인 이곳에서 어찌 막걸리 한 잔 들이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성님과 마장님이 이미 전망바위를 선점하고서 풍경에 취하여 술을 마시고서 권하니, 박중훈 대장님도 아니 따를 수 있을까? 이런 풍경이 인간과 자연의 동화, 인간과 인간의 동화, 물아일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백악산 갈림목인 696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내려서면 전망대 바위, 남쪽 속리산 문장대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단지역에 들어온 몸과 마음이 위축되어서일까? 이 장대한 풍경에 모두가 표현을 억누르고 추억을 남기는 데도 어색하다. 경계란 이렇게 우리를 구속한다. 자연의 경계 없음을 조선 영조 때의 평민 歌客 김천택은 이렇게 노래했다. "江山 좋은 경치를 힘센이와 다투려 한다면/ 내 힘과 내 분수로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진실로 금하는 이 없으니 나도 두고 노니노라." 권문세가든 평민이든 빈객이든 자신이 원하면 자연을 경계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 그 경계들이 너무도 많다.
밤티재의 용화로를 가로지르기 위하여 밤티재로 내려가기 전, 숲길에서 밤티재 동향을 살폈다. 송 회장님의 상황 전달과 들국화 대장님의 안내로 밤티재 동물이동통로 아래 용화로 경계의 울타리 안으로 넘어와 용화로를 가로질러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경계의 울타리 밖으로 잠입했다. 경계선 안 용화로를 사이에 둔 경계선 밖 북쪽 울타리를 넘어와 경계선 밖 남쪽 울타리를 넘어간 것이다. 두만강 국경선 같은 늘재의 경계선과 남북 분단의 휴전선 같은 밤티재의 경계선을 넘어 다시 경계의 밖 금단의 땅으로 잠입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3분이 좀 지났을까? 경계선 안쪽 용화로를 따라 국립공원공단 흰색 차량이 내려간다. 조금만 늦었으면? 휴, 체포되지 않았다는 안도의 숨이 몰려왔다. 이제 또 하나의 무서운 감시카메라를 피하여 백두대간 능선 아래 산등성이를 기어올랐다. 감시원과 감시카메라의 눈길을 피하여 자유를 찾아 금단의 땅을 넘어가는 망명객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두 감시의 눈길을 피하여 능선에 올라서니 큰 일이나 해낸 듯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허허~ 우스워졌다.
숲길 낙엽이 쌓인 곳에서 낙엽을 방석으로 깔고 한 점 마음을 나누었다. 아침에 햇볕 쨍쨍한 하늘에 구름이 끼어 가을 분위기에 가을비가 내릴 듯 음습하다. 커피를 마시고서 기분을 달래며 다시 출발한다. 잠행이 끝나는 문장대 경계를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10여 분 동안 기다리는 동안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경계를 넘는 고통스런 외마디소리들이 귀에 쟁쟁하다. 상흔 가득한 그들의 가슴이 눈 앞에서 팔딱거린다. 경계의 두터운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여 쩔쩔매는 그들이 숲 속 어디로 사라져간다.
마지막 위태로운 위험지대들을 시간을 지체하며 차근차근 이겨냈다. 자신의 힘과 도움의 손길을 합쳐서 하나, 둘, 셋 ~ 통과해 나갔다. 샛노란 돌양지꽃이 높은 바위 틈에서 자라는 바위 아래 사이를 어렵게 지났다. 위태로운 바위지대를 지나 돌아오르니, 앞서간 대원들이 전깃줄에 앉은 참새처럼 산죽밭에 줄지어 서있다. 마지막 위태로운 곳을 전체가 함께 극복해 가자는 기다림, 그 모습은 위태함 속의 태평 시절 모습 같았다. 드디어 가장 큰 위태로운 위험 지대에 이르렀다. 큰솔이끼가 바위를 온통 감싸고 바위떡풀이 바위 틈새에서 자라나고 땅에는 일월비비추 보랏빛 꽃망울이 터질 듯 보풀아 있는 바위지대에서 한참을 기다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올라섰다. 그렇게 어려운 916봉을 올라섰다가 내려서서, 한 군데의 밧줄지대를 통과해 내려간 뒤 숲에서 10분쯤의 시간이 흘렀다. 문장대를 이마 위에 두고 감시카메라를 우회하여 헬기장을 통과하였다. 이제 남은 경계의 울타리, 문장대로 오르는 길의 경계를 넘는다. 금단의 땅을 넘고 넘어서 3·8선처럼, 휴전선처럼, 국경선처럼, 이념의 장벽처럼 막아선 경계의 울타리를 넘어 비밀의 문서가 숨겨져 있는 문장대로 오른다.
文藏臺문장대, 무엇이 숨겨져 있었을까? 비밀의 문서는 어떤 내용일까? 삼강오륜의 도덕책이 숨겨져 있었다는 전설이 문장대 설명안내판에 적혀 있으니, 그 내용은 경계 안에서 경계를 지키라는 윤리적 내용일 것이다. 그러니 늘재에서 문장대까지 경계를 넘나든 사람들에게 문장대의 비밀 문서는 모진 채찍질 내용이다. 문장대의 장서를, 경계를 허무는 내용, 윤리적 교훈을 넘어서 삶을 더 확장하는 내용으로 바꾸면 어떨까?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막기 위한 수도사의 비극을 담고 있다. 중세의 가톨릭 교회는 엄숙함과 신성함을 중시한다. 그래서 웃음을 몹시 경계했나 보다. 수도사들이 이 엄숙함과 신성함의 경계를 넘어서 웃음을 주는 책을 읽으며 웃어댄다. 한 수도사가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경계를 지키기 위하여 웃음의 책을 몰래 읽은 수도사들을 차례로 죽인다. 그리고 경계를 넘어서는 웃음의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불태웠다는 허구의 내용이다.
경계를 지키고 경계를 넘어서는 경계의 안과 밖,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경계를 넘어서 밖으로 나갔다가 숨죽이고, 경계 밖에서 경계 안으로 들어와 환호하는 경계의 자유에 우리는 안도한다. 경계 안에서도 무수한 경계의 장벽에 차별 받는 이웃들의 몸부림이 처절하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이것도 경계와 차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외침이다. 그러나 경계는 끊임없이 열린다. 허허~ 어떻게 감히 오늘의 산행을 흑인의 차별적 경계를 허무는 일에 빗대어 말하는가?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계를 넘어서는 산행을 하였다고 자기합리화하여도 되는가? 이렇게 질책하며 문장대에 오른다.
문장대 정상에 오르니, 올해 2월 2일 시어동 계곡의 눈 쌓인 얼음길을 올라와 문장대에 이르고 청법대와 신선대를 거쳐 천왕봉 삼거리 헬기장에서 장각동으로 하산하던 풍경이 아스라한 옛날처럼 가물거린다. 문장대 정상에서의 조망이 장쾌하다. 사방으로 활짝 열린 풍경은 모든 경계의 장벽과 과거에 얽매여 맺힌 것들을 한 줌의 티끌로 날려보낸다. 경계 없이 펼쳐진 산줄기와 줄기들, 그리고 함께 걸어오고 함께 걸어갔던 백두대간의 굽이치는 산줄기가 어깻죽지에 날개를 달아준다. 훨훨 풍경 속으로 날아가는 환상에 젖는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장미의 이름'에서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들은 그 이름을 뒤로 남긴다. 이름은, 언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하다가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까지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에서
3.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1.89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44분
국가지원지방도 제32호선 '문장로'를 따라 늘재로 오른다.
2023년 1월 29일 늘재에서 북진하여 청화산-조항산-고모재 구간을 산행하였다. 이번에는 문장대 방향으로 남진한다.
묘지 터를 돌아 이어간다.
이곳에서 능선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늘재-문장대 구간은 출입 통제 구역이지만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곤혹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통과한다.
629봉을 넘어서 나뭇가지 사이로 동쪽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방향을 조망한다.
능선에서 북쪽의 청화산과 중앙 뒤의 시루봉을 조망한다. 늘재에서 능선으로 올라와 거쳐온 오른쪽 629봉이 가늠된다.
위와 같은 곳에서 오른쪽 청화산 뒤 왼쪽에 대야산 중대봉과 상대봉, 마귀할미통시바위를 가늠한다.
은방울꽃이 거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696m 산봉 아래 전망바위에서 조망이 일품이다.
동쪽 방향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일대를 조망한다.
남쪽 속리산 문장대(맨 오른쪽) 왼쪽 칠형제봉과 그 뒤 천왕봉(왼쪽)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주능선 암릉을 조망한다.
칠형제봉과 중앙의 문장대, 그 오른쪽에 우뚝한 관음봉을 조망한다.
밤티재로 내려가는 능선에 무덤이 있다.
지방도 제997호선 용화로 서쪽의 밤티재롤 올려보고서 동쪽으로 내려간다.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서 지방도 제997호선 용화로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간다.
밤티재 동쪽 아래 지방도 제997호선 용화로에서 백두대간 밤티재 능선으로 진입하기 위해 가드레일을 넘는다.
밤티재에서 올라오는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서서 문장대 방향으로 이어간다.
무덤을 지나며 앞쪽을 바라보니, 속리산 문장대 왼쪽의 칠형제봉이 보인다.
큰 바윗덩이를 오른쪽으로 돌아나간다.
서울 대모산 숲길에 조성한 둥글레꽃은 이미 지고 열매가 맺혔는데 속리산의 둥글레는 이제사 꽃을 피운다.
왼쪽 뒤에 칠형제봉이 솟아 있고, 맨 오른쪽 나뭇가지 뒤에 문장대가 보인다.
서울 지역에 비해 속리산에서는 야생화들이 늦게 피는 것 같다. 붉은 병꽃도 이제사 피어난다.
맨 왼쪽 뒤에 대야산 능선, 중앙 뒤에 청화산, 오른쪽 뒤에 시루봉이 확인된다. 백두대간 늘재 능선이 왼쪽에, 밤티재 능선이 중앙에 이어지고 있다.
왼쪽 뒤에 청화산, 그 오른쪽에 시루봉 능선이 멋지다. 백두대간 늘재 능선은 왼쪽, 중앙에 백두대간 밤티재 능선이 확인된다.
이 전망바위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12시쯤 출발한다.
첫 밧줄 구간을 통과한다.
암릉 밧줄 구간을 통과하여 대원들이 산비탈을 오른다.
큰 바위 왼쪽을 통과하여 나간다.
다시 밧줄 구간이 나온다.
아주 위태롭지는 않지만 사고는 가볍게 생각할 때 발생한다.
묽은 분홍빛 고산철쭉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속리산 문장대가 정면에 우뚝 솟아 있다. 백두대간 능선은 왼쪽으로 돌아 문장대로 이어간다.
아찔한 기암괴석이 나타난다.
기암괴석 꼭대기에 오르지 않고 아래에서 풍경을 조망했다.
아래에 성불사가 있고, 아래쪽에 상주시 화북탐방지원센터와 주차장을 가늠한다.
맨 왼쪽 뒤 대야산 능선, 그 앞 오른쪽에 청화산, 그 앞 왼쪽에 늘재 능선, 중앙에 밤티재 능선, 이곳으로 이어진 능선이 확인된다.
기암괴석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밧줄 구간을 통과한다.
밧줄 구간을 통과하면 암릉 지대가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의 문장대와 오른쪽의 관음봉이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위태로운 암릉 지대를 조심스럽게 통과하여 내려가면 산죽밭이 나온다.
꽃을 피운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죽꽃이 피어났다. 오랜만에 산죽꽃을 본다.
일곱 형제 바위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저 산봉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꽃을 피운 산죽들이 말라가고 있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위태로운 구간이다.
생명체의 끈질긴 생명력이 경외롭다.
위태로운 바위에 큰솔이끼가 가득히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가장 위태로운 위험 지대를 무사히 통과해 오른다.
최고의 위태로운 위험 지대를 통과하여 대원들이 올라오고 있다.
뱀이 머리를 꼿꼿이 들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 같다.
암릉 지대 밧줄 구간이 다시 나왔다.
위험 지대 밧줄 구간을 올라와서 내려보았다.
위험 지대 마지막 밧줄 구간을 통과한다.
연초록빛 나뭇잎 뒤에 문장대가 보인다.
헬기장을 통과하여 문장대로 올라간다.
헬기장을 지나며 문장대를 올려보았다.
위태로운 암릉 지대를 모두 무사히 통과하여 헬기장을 지난다.
이 능선을 타고서 헬기장으로 올라와서 문장대로 오른다.
헬기장을 거쳐 올라왔다. 앞쪽에 문수봉에서 오른쪽 뒤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주능선 암릉이 이어진다.
중앙에 속리산 천왕봉이 우뚝하고 뒤쪽에는 백두대간 형제봉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문장대 정상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모자가 벗겨져 낭떠러지 아래로 날려가는 것을 간신히 건졌다.
백두대간 능선은 오른쪽 산봉 뒤쪽에서 올라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맨 뒤쪽에 대야산 능선이 가늠된다.
왼쪽 뒤에 청화산, 그 왼쪽 맨 뒤 대야산 능선, 왼쪽 중앙에 늘재 능선,그 오른쪽 중앙에 밤티재 능선, 바로 앞에 백두대간 문장대 능선의 기암괴석이 멋지다.
칠형제봉 능선 기암괴석이 멋지다. 오른쪽 문수봉에서 천왕봉으로 속리산 주능선이 이어진다. 아래에 헬기장이 보인다.
문장대에서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을 거쳐 중앙의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주능선 암릉이 멋지다.
속리산 법주사가 중앙 오른쪽 아래에 가늠된다.
왼쪽 뒤에 속리산 법주사가 가늠된다. 맨 오른쪽 산봉은 묘봉일 것이다.
오른쪽에 관음봉이 우뚝하고 왼쪽에 묘봉이 가늠된다.
관음봉 능선의 기암괴석이 장대하다.
문장대 정상에는 타포니 현상에 의힌 구멍들이 파여 있다.
문장대 정상에서 내려가면서 다시 한 번 속리산 주능선 암릉을 조망한다.
문장대 정상 아래 문장대 표석이 두 개 세워져 있다.
道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道를 멀리하였고 산은 世俗을 떠나지 않았는데 世俗이 산을 떠났네. 하여 이름 붙여진 문장대 1054m. 구름 속에 갈무리져 雲藏臺라 하다가 世祖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 하여 文藏臺라 했으니 우러러 宇宙의 장대함을 보고 구부려 品類의繁盛함을 살핀다는 奇妙의 極致. 頂上에는 알이 부화한 둥글게 파인 곳이 있으니 태초 生命 탄생의 神秘를 일러 주도다. 동쪽으로 칠형제봉,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황봉이 이어졌고, 서쪽으로 관음봉, 묘봉이 솟았으며, 비껴서 낙영산과 도명산이 다가선다. 남쪽 아늑한 곳에 법주사를 앉혀 法脈을 잇게 했으니 빼어난 기품, 浩然의 氣概여, 造物主의 조화여, 오! 仙界의 아름다움이여! 박찬선 글짓고 김정홍 글쓰다.
왼쪽 표석은 충북 보은군, 오른쪽 표석은 경북 상주시에서 세운 것이다.
문장대는 속리산을 대표하는 자연경관 중 하나로 산 정상에 바위로 석대를 쌓아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봉우리(1,054m)입니다. 문장대는 본래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불리었으나,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신하들과 강론을 하고 시를 읊었다고 하여 문장대(文藏臺)라고 바뀌었다고 합니다.
문장대-밤티재-늘재 구간은 비법정탐방로이다.
문장대,신선대, 법주사 갈림목인 문장대 삼거리 광장이다. 직진길은 법주사 방향, 길손은 왼쪽으로 이어간다.
왼쪽은 화북주차장, 직진은 신선대,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주능선길이다. 20213년 1월 15일 화북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문장대,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 구간을 산행하였다. 이번에는 화북주차장으로 내려간다.
화북주차장 3.1km 거리, 이곳에서 백두대간 산행을 마치고 화북주차장으로 하산한다.
비가 온 덕에 시어동계곡의물이 콜콸 흘러내리고 있다.
쉴바위의 뜻이 무엇일까? 쉬고 있는 바위라는 뜻인가?
문장대 1.6km, 화북주차장 1.7km 지점이다.
반야교를 건너 화북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내려간다.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뒤돌아서서 속리산 칠형제봉을 올려보았다.
문장대2길에서 오솔길로 내려오다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앞 문장대 3.8km, 주차장 0.3km 지점의 문장대 2길로 나왔다.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앞 장암3교를 건너 매표소를 통과하여 뒤돌아보았다.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앞 장암3교를 건너 장암2교로 내려왔다.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왜 장암리라는 지명이 붙었을까? 이런 층층바위들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일까?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주차장에서 속리산 칠형제봉을 올려보았다. 왼쪽에 입석천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