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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린대로 오늘 들은 설교를 토대로 <제 의견>을 쓰겠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으로 요한복음 4장을 들었는데 원래 예수님의 공생애와 말씀엔 은유가 많았지만 요한복음 4장은 특히 온갖 크고 작은 은유와 수수께끼가 슁슁 지나가는 장입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실은 우물물을 빙자해 신과 예배로부터 배제되고 차별받는 혼혈 사마리아인이란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그러한지 증명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 5,6절
예
수께서 사마리아 지방의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셨다. 이 동네는 옛날에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인데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가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웠다.
여기에서, 이 동네는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란 <정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정보는 사실 자체만 놓고 보자면 딱히 가치가 없습니다. 요셉에게 준 땅인 것도 아니고 거기서 가깝다고 합니다? 무슨 사돈의 팔촌도 아니고.
그런데 현 장의 저자는 요한입니다. 요한은 사랑을 강조한 마음 따듯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확실히 괄괄한 베드로나 이성적이고 변증적인 바울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저자 요한이 이 말을 굳이 덧붙임은 사마리아 사람도 구원받음에 있어 동일한 같은 민족이다. 라는 본 장의 의지를 지지하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인을 전도하심은 이방인을 전도하심으로 나아가는 길목임에도, 이방인 전도와는 성질이 완연히 다릅니다.
당시 이스라엘인의 관점에서 볼 때, 혼혈인 사마리안과도 상종을 안하며야훼 하나님은 그들을 버렸다고 볼 정도니 하물며 이방인에겐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사마리아인이 가능하다면 이방인에 대해서도 그만큼 가능성이 열리게 되므로 생각의 벽을 허문다는 측면에서 사마리아에 대한 전도는 이방인에 대한 전도로 나아갑니다.
그럼에도 사마리안과 이방인에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본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자인 요한은, 요 동네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과 가깝다며 굳이 관련성을 시사합니다.
즉 이 땅 자체도 야곱이 돈 주고 산 땅일 뿐더러, 근처에 장자인 요셉의 땅까지 있다면 그들도 야곱의 자손이자 혈족이 됩니다.
(야곱에게 요셉은 장자였다는 설명은 여기에서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blog.daum.net/8348468/5592070)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선 이런 <혈연적인> 연관성이 필요했단 뜻이 됩니다.
여기서 이방인 전도와 확연히 차이가 집니다. 최소한 사마리아인까지는, 혈연의 관점에서 구원을 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마리안이든 이방인이든 이스라엘인에겐 몽땅 넘기 불가능한 벽이란 것은 동일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대화에서 확실해집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그녀는 당신과 나는 다른 사람이다, 라며 선을 긋습니다.
9절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중적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 시간에 웬 사람이? 라거나 그냥 물을 줘서 어서 보냈을 법한데, 예수님의 행색이든 말투든 이스라엘인이란 단서를 포착한 여인은 단숨에 예수님이 원하시는 본질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육적이자 영적으로 차별받고 있는데 왜 아닌 척 말을 거십니까.
즉 이 질문엔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인이 예수님 특유의 비유법 대화를 해나갈 역량이 되심을 아시고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선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겠단 어마어마한 얘기를 하신 겁니다.
그러자 여인은 야곱을 거론합니다.
12절
이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런데 신앙의 선명성이 분명한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까지 포함) 그 조상 야곱을 거론함은 단지 정체성에 관한 문제 이상의 의미란 겁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요셉까지 모두 하나님의 극적인 구원을 경험한 믿음의 선조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인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이것이 단지 물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란 것을 캐치한 것입니다.
그
러므로 대화에 갑자기 야곱이 끼어들게 됩니다. 여인 생각에 이 분이 최소한 예언자(또는 선지자)인 것 같은데, 당시 예언자는 매우
희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지 않은지 400년이 흘러 세례요한 한명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당신이 내가
짐작하는 그 분이시냐? 라고 돌려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이 안 마르다시며
여자의 계속된 은유법 대화에 리플을 달아주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그걸 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면 지금 보여주세요, 라는 증거제시형 대답입니다.
상식적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란 말은 신 아니면 사기꾼이나 할 법한 말입니다.
여인의 과거 이력을 볼 때 그런 말에 속을 정도로 녹록한 인물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 허튼 소리가 아니라면 보여주세요, 라는 영리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선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여인은 없다고 합니다.
얼핏 수치 때문에 대답을 회피하는 듯 하지만 이것은 여인이 대답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신중한 대답입니다.
없다고 하면 예언자는 단번에 사정을 알것이다, 라는 뜻이니까요.
과연 예수님은 그런 여인의 지혜를 칭찬하십니다.
17,18절
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없는 말이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숨김이 없는 대답이라십니다. 자기 사정을 가장 간략하게, 가장 군더더기 없게 대답했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사정을 털어놓지 않는 신중함까지요.
그러자 여인도 본심을 드러냅니다.
19,20절
과연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은 저 산에서 하느님께 예배 드렸는데 선생님네들은 예배 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당신은 내가 생각한대로 예언자가 맞답니다. 이제 물에 대한 얘기는 온데 간데 없고, 우리 조상 (야곱)은 저 산에서 예배를 드렸건만 선생님네들은 예배 드릴 곳이 예루살렘이라고 주장합니다? 라고 합니다.
얼마나 똑똑한 여인입니까.
이런 전통과 저런 전통이 맞부딪칠 때 어떤 것을 따라야 합니까? 처음 야곱이 예배드린 곳이 더 강력한 근거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네들은 멋대로 신성을 정하고 또한 멋대로 우리 사마리안은 불결하다고 간주합니까?
그 근거가 뭡니까?
위선적이다는 거죠. 제멋대로고요. 무슨 신성과 아닌 것을 자기 멋대로 정하냐는 거죠.
마치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며 타박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대답하신 것과 핵심이 통하고 있습니다.
근거가 빈약한 사람의 전통으로 안식일의 주인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는 거겠지만요.
그러자 예수님은, 너네는 뜻도 모르고 예배를 드리지만 우린 다 알고 예배드리며,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온다고 하십니다.
이는 선을 긋거나 차별하는 게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 처음 아담을 지으시고 하와를 지으셨듯, 장자권을 중요시하셨듯 순서상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있으셔서 인간이 만들어지고 그 인간에게서 다른 인간이 태어나는 원리입니다.
유다인인 자신에게서 이스라엘인, 사마리아인, 이방인에게 차례대로 구원이 뻗어나갈 것이란 선포이기도 합니다.
더는 예배드리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며, 진실되게 예배드릴 사람이 참되게 예배드릴 때가 오는데 바로 이 때라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로 보아할 때 두 분은 처음부터 물을 빙자해 신앙적 문제를 거론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여인은, 그래서 물은요? 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경우, 승천 직전의 예수님께 그래서 요한은 어떻게 돼요? 란 질문을 하고 예수님께 상관 마. 란 대답을 들은 전례가 있음을 감안할 때 여인은 눈치가 빠른 게 맞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대답이 나옵니다.
25,26절
그 여자가 "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겠지요." 하자 예수께서는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여인은 비록 남자관계가 복잡할지언정 성경적 근거가 분명할 만큼 신앙적인 사람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선물이란 말이 나올 쯤 부터 메시아를 떠올린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다. 란 예수님 말씀에 별다른 반응 있다는 기록이 없는 걸로 보아 금세 수긍한 거 같습니다. 처음부터 이 분이 범상친 않다고 여긴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땐 그 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르겠다며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합니다.
자기는 확신하고 있었겠지만 사람들의 판단을 그들 자신에게 맡기겠다는 뜻일 겁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데려오라는데 없다고 대답한 것이나,
그 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한데서
여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가정법을 써서 신중한 척 해도,
그리스도일지도 몰라? 는 말 자체가 엄청난 말입니다.
그 증거로 사마리안보다 나은 식견을 가진 이스라엘 지식층들은 메시아란 말에 신성모독이라며 돌아서곤 했으니까요.
여인은 그리스도가 맞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리스도란 말을 썼고,
그들 자신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유보적 태도까지 보이니 과연 예수님이 찾아가 만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남편이 여럿이란 말을 하며 책망하신 게 아닙니다.
사마리아인들이 혼혈이라 차별받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으시듯 여인에게 동정도 책망도 하지 않으십니다.
당면한 구원의 가치에 비해 그건 중요치 않으니까요.
이 여인의 영리함은 이어지는 장면으로 인해 더욱 부각됩니다.
떡을 사러가느라 자리를 비웠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잡수시라고 권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하십니다.
마치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란 말을 건넨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이 말을 범상치 않게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화법을 따라 은유적 대화를 이어갔지만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드렸니? 수군댑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은유적 대화를 치우시고. -_-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라며 대놓고 말씀하십니다.
언젠가 김용민님이 조크를 설명해야 한다면 실패한 거라 그러셨습니다?
같은 상황입니다. 돌려말했는데 못 알아들으니 그냥 다 말씀해버리신 거죠.
아마 당시 김용민님 심정과 예수님 심정도 비슷하셨을 겁니다.
겁나 못 알아들어... 랄까요. 좀 안쓰럽고 뻘쭘하고.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인의 과거에 중점을 두신 게 아닌게 됩니다.
그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이렇습니다.
39절
그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맞히셨다고 한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여인에게나 동네 사람들에게나 여인의 과거는 예수님이 <그분>이란 이적의 증거지 추문의 증거가 아닙니다.
아픔은 더 큰 아픔으로 잊는다고들 합니다.
당면한 이적이 너무 신기한지라 그 내용이 뭐냐는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거죠.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당면한 추문을 종북으로 덮듯이요.
이건 안 좋은 예지만 하여간 효과는 같습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 곳 우물가는 세겜에게서 야곱이 돈을 주고 산 땅입니다.
세겜은 야곱의 딸을 욕보인 이의 아버지고, 알다시피 그들은 야곱 아들들에게 속아 전멸당했습니다.
이 땅은 그런 땅입니다. 세겜의 아들이 디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음에도 형제들은 그것을 허락치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도 수치를 당한 동포를 포용하기보다 폭력적인 거절로 응수했습니다.
그런 사연이 있는 땅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신 시점에 구원이 같이 왔고 그런 과거나 추문은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도 이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나 이명박이 나보다 못하니까 거절한다거나 좀 봐주자.
라고 한다면 우리 역시 이스라엘인과 야곱의 아들들 같은 사람 아닙니까?
박근혜를 용납 못하는데 (그 역시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란 관점에서)
십자가에 매달릴 정도의 흉악범들은 용납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 예수님만큼 알게 된다면요?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해서 이런 고민에서 제외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과연 그 사람들은 내가 돌봐주어야 할 약자이자 봐주어야 할 악당일까요?
그럼 이스라엘의 선민의식과 그 생각의 차이점이 뭔지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훨씬 월등하다고 생각해서 대놓고 차별하는 것과
조금이나마 나은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은근히 차별하는 것은
다른 겁니까?
뭐가 더 훌륭하고 아닌 겁니까?
조금 위선적이면 좀 낫고 대놓고 위선적이면 혐오스럽고 그런 문제인 겁니까?
드러난 대 악당보다 숨겨진 소 악당이 더 문제일 때도 있는 거 아닐까요?
최소한 박근혜 이명박은, 나 위험. 이라고 표는 써서 붙였잖아요.
그런 표시조차 안하고 활개치는 익명인이 더 위험할 때도 있는 거 아닐까요?
단적으로 봤을 때
가벼운 거짓말과 살인죄가 같을 순 없습니다.
명백합니다.
그런데 그 가벼운 거짓말이 어떻게 자라나서 누구에게 들어가서 살인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드러난 죄도 문제지만 숨겨져서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모르는 죄도 문제입니다.
저는 나꼼수 멤버가 현재 당하고 있는 일을 범상치 않게 보고 있습니다.
만약 명품 가방에 흠집이 생겼다면 버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잘 닦고 수선해서 쓰시겠습니까?
아예 가치가 없다면 버리겠지만 가치가 있을수록 고쳐놓으려 하겠죠.
나꼼수가 좋은 영향력을 가진 점이 있을수록
하나님은 작아보이는 흠집을 반드시 고쳐놓으려 하실 겁니다.
가치가 없는 이들은 아예 상종도 안하시니까 악인이 번성하는 듯 보여도,
CS루이스가 말했듯이
가문의 전통을 이을 적자는 징계를 받는 겁니다.
(물론 죄인도 징계를 받습니다만은.)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징계를 받지 않는 이명박 박근혜는 서자거나 아무도 아니란 뜻이 됩니다.
(기다리시는지도 모르지만은요. 우리 모두에게 기회를 주시듯요.)
그러니 징계는 무서울지언정 심판이나 유기보다 무섭진 않습니다.
저는 지난 이년을 통해 징계를 그렇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힘겹지만 가치가 있다.
주님이 나의 흠집을 제거하기까지 내게 무한한 관심이 있으시다.
내버려두시기 바라지만 진짜로 내버려두시면 완전 무섭다.
라고요.
경박한 마초즘과 지적 우월감, 욕을 퍼트린 것,
어떤 남성들에게 신중함 대신 과욕이 앞선 용기를 더 고려케 한 점은
분명 나꼼수의 가장 큰 실패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제 판단에, 이것이 다는 아닙니다.
욥의 교훈이 그렇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죄인은 벌받고 의인은 복을 누린다는 확고한 권선징악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지만은,
성경은- 그렇다면 고난이 없으면 의인이란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의인 중의 의인은 예수님은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셨고요.
때로 이것은 징계라기보다 더 넓은 세계관을 가지기 위한 고난일 수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하시고요..
저는 누구보다 나꼼수의 열렬한 시청자였지만, 유머와 경박함의 경계가 오갈때, 저 자신도 그렇게 분별력이 있지 않지만 듣는 귀는 있는지라 이건 좀.. 싶었습니다.
특히 비키니 건으로 대변되는 여성들에 대한 비하요. 그걸 유머로 치장하니까 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거 같으면, 농담인데 왠 진지? 라는 이상한 분위기가 되니까 더, 이건 좀.. 싶었습니다.
마땅히 나올 말을 쓸데없이 진지하다, 라고 몰아버린 것은 분명 그분들로선 화날 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꼼수 멤버 여러분이 거의 목숨을 걸고 터트리신 내용이 그 모든걸 상쇄하고도 남은 거죠.
이런 혼동이 있습니다.
이 정도 희생한 분들의 작은 흠집을 잡으면, 앞으로 어느 흠있는 의인이 또 다시 나서겠다고 할 것인가?
아마 이 고민은 쉽게 결론내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계속 해내갈 거 같습니다.
만약 넬슨 만델라 옹이 성추행을 했다면 덮었어야 하는 걸까요?
누구는 대뜸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이게 내 주변이나 나에게 닥친 문제가 되면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만은 이제 저도 압니다.
전병욱의 성추행은 덮어져야 하는 걸까요?
라는 질문과 함께요.
하나의 신화를 깨지 않기 위해
나꼼수를 위시한 주변은 작지만 치열한 다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일은 빈번하더라고요.
전병욱 건과 나꼼수 건은 같지 않습니다만은
주변 반응만은 비슷했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실은 전병욱이나 나꼼수나 박근혜 아닙니다.
영적 분별이 그만큼 치열한 촉을 필요로 하며 지금은 천국시민으로서 완성 직전이지만
그럼에도 완성은 아니란 거요.
벙커원교회에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쉽게 적응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실은 제가.. -_-)
뭔가 사회와 약자를 위해 싸웠다는 증거를 제시한 파이터들의 세계인듯해서요.
다른 정치관을 가졌거나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에겐 아예 엄두도 안 나는 그들만의 세상이고요.
제가 기존 보수라 불리는 정체 모를 교회에서 우리 이명박 대통령 각하라는 기도만 들어도 병 생길 거 같았듯
그런 느낌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아서요.
그게 벙커원의 장점이자 개성임에도
교회는 그보단 보편적이고 덜 개성적이야 불필요하게 문턱을 높이지 않을 거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와서 예수님이 누구심? 하는 문제로 더 고민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벽을 치지 않을 정도의
주의는 필요할 거 같아요.
교회는 그야말로 죄인이라면 아무나 오는 곳인데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가 올 법한 교회가 아니라면 이건 좀 문제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첫댓글 오호~~~~어디계셨습니까?...담에 꼭 만나 뵙기를 소원합니다^^♥♥
송정실님! 정말 공감 120%가 되는 글을 읽었습니다. 벙커원은 사정상 못가지만 이렇게 온라인으로나마 좋은 글을 읽고 가게 되서 기쁘네요. 이런 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네, 사실 들어와 어울리시면 소박하게 일상을 사는 사람들인데 파이터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박근혜 씨를 지지해도 올 수 있고 발언할 수 있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는 말씀 동의합니다 ~
좋은 말씀입니다 전 나름 진보이지만 우리주님은 명박 근혜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겁니다
뭔가 사회와 약자를 위해 싸웠다는 증거를 제시한 파이터들의 세계인듯해서요. 라고송정실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 그런분은없습니다
무인도에서 다시건져넵니다...참비열하시군요..반박을하시던가 항의를하셨어야지...뭔가 사회와 약자를 위해 싸웠다는 증거를 제시한 파이터들의 세계인듯해서요. 라고송정실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 그런분은없습니다
댓글을 읽어보고 있노라니 아주 교묘하시고 영리하시고 굉장히 점잖으신척 하시면서 이념적으로 살짝 포장을 하시는군요.
너무 격하게 써 놓으면 나의 마음이 들킬것 같고 또 너무 약하게 써 놓으면 스스로가 인정을 못할 것 같고 댓글 쓰시느라 굉장히 힘드셧을것 같습니다.
우선 저는 가입한 지 몇 주 안된 신입입니다.
지난 글을 읽다보니 조금은 희한한 논리를 전개하시는것 같아 한 말씀만 드립니다.
쾌락이라는 단어 자체는 나쁜 뜻이 맞습니다. 좋은 뜻은 희락이겠지요. 이 단어의 뜻이 중요한게 아니고요.
여기는 최소한 기존 교회에 대한 대안으로 나오시는 분들이 많은 교회인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전투적인것인지 말
씀이 정말 웃는군요.
댓글로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써 본적이 없지만 교묘하게 벙커원교회를 호도하고 이간질하는것 드리는 말씀이지만 서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사회 정의를 조그마게나마 구현하고 싶어하고 여망을 담아 드리는 제가 보기에는 아주 신실한 교회인것 같은데요.
자기의 성경 지식이 얼마나 탁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설교가 불만이거나 본인에게 맞지 않으신다면 여기다고 이런 글로 찧고 까불지 마시고 걍 말씀 좋고 성경에 대비하여 본인에게 맞는 교회로 가시면 될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어쩌구 저쩌구 하시는데 그분들이 벙커우너교회를 왜 오겠습니까? 총 맞지 않는한 오지 않지요.
더 많은
말을 하고는 싶지만 그냥 이 정도로 끝맺을까 합니다.
부디 조금 잘난 맛에 이상한 논리 드리대시면서 남의 말을 까지마십시오.
여기는 최소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우리들의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웬만하면 설교에 대해서는 찧고 까불지 않습니다.
그냥 혼자서만 생각합니다.
설교 말씀이 마음에 안 들면 안 듣고 그것도 싫으시면 출석 안하시면 되는것 같은데요.
누가 출석하라고 강요하는것도 아닌것 같은데요.
조금은 열받아서 횡설수설 한것 같지만 너무 포장을 열심히해서 남의 설교나 생각을 비판하지 말아주세요.
이상은 남에 대해 비판만 할 줄 아는 님에 대한 생각없이 갈겨 쓴 댓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