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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과 힐링의 순간들…여주지역 봄소풍
대구고 14회 동기들이 지난 4월 14일 <여주지역 역사문화탐방 겸 봄소풍>을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를 보니 행사일인 14일은 전국에 비가 온다는 예보로 염려가 된다. 대구의 홍병각 총무는 “비가와도 강행하느냐? 고 묻는다.
사실 이번 봄나들이 소풍은 대구고 14산악회 및 재경 대구고 14동기회의 요청으로 멋진 문화탐방을 가보자고 제안하여 봄에는 여주지역, 가을에는 영주지역으로 정하고 나는 인솔담당으로 응락했다. 일단 수용한 이상 무슨 일이든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기에 나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답사일정을 잡았다.
나는 수차례 이곳을 다녀온 곳이다. 사실 나는 이번 봄에는 따뜻한 전남쪽으로 답사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그동안 우리 산천 중 못 가본 곳에 대한 호기심과 보헤미안 근성으로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등산을 가든지,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곳으로 나가는 것이 나의 취미로 정착되고 있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세대는 정말 앞만 보고왔다. 1997년 말 IMF후 사오정, 오륙도를 거쳐 2008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으며 지구촌시대에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는 격랑의 소용돌이 구조조정 속에 퇴직을 당해야만 했다. 가장으로서 치뤄야 할 책임과 의무는 산적해있는데~가장으로서의 권위와 夫權은 무너지고, 하우스푸어가 속출하고 불안한 노후를 맞아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50대 후반인 우리는 어느새 하와이대(하루 종일 와이프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 늘산대( 늘 산에 가는 사람), 방콕대( 방안에만 지내는 사람)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이게 대부분의 5~60대의 실제 사회상이다. 밥을 집에서 안먹는 영식씨에서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삼식이 새끼로, 중산층은 빈민층으로 전락해가고 차츰 용기도 잃어가는 인생허무와 제행무상을 처절하게 느끼는 세대이다.
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와 봄꽃을 마구 피워내고 있다.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어려울수록 세상과 부딪치며 도전을 하고 용기를 내야 실마리가 풀리는 법이다.
오랜 친구를 만나 허심탄회한 얘기 속에 지혜로운 해법이 있고 용기를 얻는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옛 친구들의 순수함으로 재회의 기쁨을 맛보자구나.
나는 설렘과 기대속에 참가율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카카오톡 그룹미팅으로 30여명의 친구를 불러냈다. 처음에는 경상도 특유의 무반응과 무뚝뚝함으로 실망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 안 된 탓이라고 여기고 대구지역 친구들에게 먼저 시도했다. 또한 그동안 대구고 14산악회에 등산 때 참가하는 친구들에게 전화도 걸고 참가를 종용했다. 며칠 만에 가족포함 40여명이 신청하자 나도 놀라고 산악회 집행부도 놀랐다.
여러 가지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참가신청을 했었던 조진호2, 이동한2, 정창용2, 손석수2, 전광술2, 정기율 등이 결국 참가를 못했다. 특히 대구지역은 대구와 서울 합동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으로 회비도 없는 봄소풍이라고 문자 메시지가 와서 나를 놀라게 했다.
박상원등반대장과 양근식 회장과 서너 차례 통화를 하고 시산제 장소를 물색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막걸리는 김병화교수에게 참살이탁주 공장을 방문하여 2박스는 사고, 2박스는 협찬을 받기로 했지만 김교수의 집안행사로 불참한다는 소식에 난감했다.
도시락 주문시 그 차에 사오라 했으면 완전한 해결책이었는데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말은 해놓고 담당을 정하지 않은 혼선과 시골에도 막걸리는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한 잘못이 크다. 그래서 부득이 막걸리 대신 시산제 제주는 임시방편으로 맥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혜량해주길 바란다. 어쩌면 현대판 산신님은 맥주를 좋아할꺼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나는 이 행사를 위해 대구에서 13일 대학동기 모임을 치루고 아내를 대동하고 대구에서 출발했다. 부끄럼이 많은 아내는 내가 앞에 나서서 설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하지만 천성이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많은 내 성품이니 내가 하면 잘할 것 같아 몸은 피곤하지만 자꾸만 나서게 된다.
나는 계획수립부터 이번 행사의 총괄 사회자는 배성광으로 지명했다. 배성광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사회자이며 개그맨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동기들의 자랑이자 보배이다. 그는 동기회회장을 역임하고 산악회행사에도 단골로 오는 친구이다.
카톡그룹 미팅으로 행사내용을 공지하니 김종도, 배성광, 박상원, 양근식, 이재용, 이용도가 신청을 해왔다. 전화상으로 이동석이가 신청하여 의외라 싶었다. 이번 행사가 정원초과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또한 예상외로 이헌재부부가 참가해서 이번 모임이 더욱 빛났다. 대구의 참가인원 모집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서울친구도 그룹을 지정하여 참가신청을 받았는데 김병화, 방태조, 유인성, 조훈성, 장사용 등이 신청을 했지만 SNS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내숭을 떠는지 호응도가 낮았다. 내 생각에는 대구와 서울사람의 생활문화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경상도 사내들은 남자가 점잖치 못하게 함부로 나서는 것을 지양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영향이라 크리라 믿어본다. 또한 애써 초대를 했는데 금방 빠져나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반응은 별로 없고 나는 혼자 무슨 짓을 하는지 내 스스로 회의가 들었지만, 서울은 전종욱 총무의 열성이 있기에 별로 걱정은 안했다.
중간에 한문학과 교수로 있는 이종문과 이상필에게도 전화를 내었지만 이종문이는 13일날 여주지역에 대구지역 문인들을 인솔하고 문화해설을 담당한다는 말에 보배해설자를 놓쳤다.
드디어 출발하는 14일이 되었다. 당일 대구국제마라톤대회로 능인고에서 출발을 못하고 오전 7시 모교인 대구고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2차 경유지인 성서홈플러스 앞에 오지도 못하고 용산사거리 엉뚱한 곳에 차를 대기시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순간 내 귀한 머리카락을 더욱 빠지게 만들었다.
차에 오르니 무슨 장거리 여행을 가는지 간식이 과대포장되어 스치로폼 박스에 담겨져 배부되었다. 그 안에는 오징어채 마른안주와 아몬드와 건포도 견과류, 자유시간 쵸코렛2개, 옥수수차캔 1병, 땡초김밥1줄, 물1병, 고급떡 1개 등을 배급으로 주었다. 아마도 홍병각 동기회 총무의 노고가 컸을 것 같다.
나는 여주군청에 요청해 택배로 받은 여주 여행가이드북과 지도를 나눠주고 마이크를 잡고 나름대로 안내를 했다. 또한 관광버스 운전사라면 전국 도로는 도사일텐데 이곳은 처음이라 한다. 서여주IC도 몰라서 영릉주차장을 검색해주고는 잊어버렸는데 그 운전기사는 앗불싸 이천IC로 내리는 게 아닌가?
자고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서비스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단골로 대고 14산악회 전속인 임기사와는 딴판의 태도여서 실망스러웠다. 충분히 지나가도 될 타임인데 급브레이크를 밟아 멈춰서는 행위가 몇 번인가 있었지만 성질대로 지적을 하면 서로 기분만 나쁘기에 참고 또 참았다.
처음 검색했을 때 도착예정시간이 10시 2분이었는데 10시 25분에 영릉에 도착하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싶었다. 어느새 차는 영릉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서울친구는 막간시간을 이용하여 녕릉인 효종왕릉을 답사가고 없었다.
다행하게도 차창에 비를 뿌리던 날씨도 이제 완전 개이고 맑아져 햇볕이 났다.
영릉으로 천장하고 조선의 역사 100년 연장되다 http://www.ggdaily.kr/sub_read.html?uid=39896
사전에 예약해둔 영릉담당 박암평 문화관광해설사에게 안내를 부탁하니 해설사는 우리들의 탐방태도가 훌륭한지 또렷한 목소리로 당시 발명한 과학기구와 세종대왕의 치적과 왕릉에 대한 해박하고 넘치는 해설을 해주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아마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안하지 않았다면 우리민족이 문맹퇴치는 물론 스마트폰으로 세계를 제패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단정해본다. 우리는 세종대왕릉에 정자각에서 위대한 세종대왕에 정동현 예비역 대령의 구호에 따라 경건한 묵념을 올렸다.
능상에 올라서보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듯, 모란꽃이 반쯤 피어난 듯 좌청룡 우백호와 겹겹이 둘러 쌓인 지세는 천하명당이었다. 여행사를 경영하는 박회국이는 여기의 조산이 어디냐며 내게 묻는다. 내가 볼 때는 저 앞의 산이 조산이라고 가르키니 그 친구도 그렇게 본다고 풍수대가인 냥 의기양양하다.
하루 종일 역사를 더듬고 회상하며 다녀도 모자랄 영릉 탐방을 일정상 한 시간 만에 끝내는 수박겉핥기 식의 무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행선지는 고달사지이다. 고달사지에서 산악회의 신성한 의식인 시산제를 지내야 하기에 장소 결정으로 설왕설래가 있었다.
박상원이는 진정한 산꾼으로 리더가 흔들리면 안된다며 “익희 네 결정되로 하라”며 네가 생각하는 곳으로 가자고 방침을 정한다. 그렇다. 지도자의 주관과 판단이 흔들리면 대혼란의 위기에 빠진다. 고달사지 주차장에는 여주지역 도시락집에서 맞춘 도시락이 도착되어 있었다.
http://www.ggdaily.kr/sub_read.html?uid=39861§ion=sc2§ion2=맛따라 길따라
국보제 4호 원종대사승탑비 못미쳐 적당한 곳에서 시산제를 참가한 일행이 합동으로 지냈다.
무엇보다도 혜목산 산신님에게 엄숙하고 경건하게 축문을 낭송하며 고달사지에서 산신제를 지내며 일년 동안의 무사고의 안전산행과 대구고 동문과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대자연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막걸리대신 캔맥주로 제를 올렸다. 국문학과출신인 곽문현교감이 지은 산신제의 축문은 아마도 후대에 명문장으로 기록될 것 같다.
대송한의원 원장인 이헌재는 모교 야구발전기금으로 100만원을 기부하고, 산신제물로 10만원을 내놓았다. 전체 115만원의 시산제로 기금을 모아 제물준비금을 제하고 잔금은 산악회 기금으로 저축을 했다.
이런 대자연앞에 머리 숙이는 겸허함은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 인류발전사의 과정이라 유추해본다. 태초에 인간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수렵생활을 하고, 차츰 수렵생활이 익숙해지자 한곳에 정착하여 농경생활로 발전되었다. 농경생활은 큰 부락을 만들고 사회를 이루어 질서를 유지하는 계약사회로 발전하고, 산업혁명 후 도시로 몰리는 이농현상을 거쳐 다시 법치사회로 발전하고 다시 문명의 급속한 발전으로 국경없는 지구촌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인류의 근원과 뿌리는 동질성을 요구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며 도전과 응전으로 역사는 발전했다. 사회,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은 강자보다는 덕성을 겸비한 리더를 갈망하여 지도자를 선출하고 민주적으로 발전했다.
전체가 평등하다는 분배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와 능력과 기회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태동으로 세계는 양분되었지만 결국 사회주의는 경쟁을 유발하지 않아 몰락하고 말았다. 오직 유일하게 주체사상이고 주입시키는 북한만이 인민의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하며 강성대국이라고 부르짖는 피골이 상접한 인민을 겁박하고 충성을 강요하는 희한한 나라로 지배층만의 호위호식의 울타리를 치고 있다.
지배자의 눈에 거슬리면 가차 없이 수용소로 내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순간까지도 미사일을 쏘겠다는 희대의 공포를 조장하는 정권의 무리들은 무엇을 위해 민족을 겁박하는가? 인민은 굶고 있는데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에만 매달리며 공갈과 협박으로 양식을 구걸하고 경제원조를 요구하는 3대 세습 파렴치한 지도자가 아닌가?
세종대왕이 지킨 국경마져 중국에 넘겨줄 셈인가?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시산제를 마치고 우리는 국보제 4호로 지정된 승탑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8각 승탑을 보는 순간 규모의 돌조각에 새겨진 용들의 용트림과 험상굳은 용상은 사나운 사자상으로 범인의 접근을 막는 것 같고, 스님의 사리가 모셔졌을 승탑에는 8각형에는 사천왕상과 문비, 살창상이 새겨져있으며 앙련과 복련이 새겨진 뛰어난 예술품으로 고려초에 새견진 찬유스님으로 알려진 원종대사 승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울러 아래쪽에 있는 동승탑은 사각 지대석 위에 탑신에 새겨진 용머리 조각은 하나같이 머리를 들고 서쪽 승탑을 바라보고 있어 마치 제자가 스승을 그리워하는 형상이다. 전체적으로 균형미와 형태미, 조각술이 빼어난 작품으로 잘 보존해야 할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친구의 아내들은 지천에 널린 봄나물을 발견하고는 나물캐는 재미에 빠져 정신이 없다. 과연 쑥과 냉이가 수두룩하게 깔려있다.
http://www.ggdaily.kr/sub_read.html?uid=40358§ion=sc3§ion2=맛따라 길따라
다음 행선지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곳으로 알려진 신륵사이다.
예전과 다른점은 강의 금모래사장이 없어지고 푸른 강물이 가득 채워진 점이고, 대장각비각 옆으로 산등성이 길이 예쁘게 나있는데 소나무 밑에 자연장을 했던지 아직도 한곳에는 위령폐가 모셔져 있었다.
신륵사의 조사당, 무학대사가 심었다는 향나무와 임진왜란중에도 화마를 입지 않은 조사당의 단촐한 건물에는 이 절과 관련된 나옹선사와 그의 스승 인도출신 지공스님, 제자인 무학대사의 영정이 모셔져있었다.
조사당 뒤편 57개 돌계단은 스님이 입적한 세속의 나이를 말한다고 했으며 석종모양의 승탑과 중간 몸체부분에 화려한 용조각을 한 대리석 석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말의 문장가인 이색이 짓고 한유가 새겼다는 비문은 아직도 또렷한 글씨로 잘 남아있다. 이색의 아버지 이직과 어머니는 나옹선사는 친구사이로 교분이 두터웠다고 전해진다. 아들인 이색은 이를 기리며 글을 지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산등성이로 내려오며 남한강의 푸른 물에는 사나운 용마는 간 곳 없고 푸른 물이 넘실대는 모양이 아름답고 넉넉하다. 7층 전탑이 마치 등대처럼 우뚝 서있고 그 아래 강가에는 강월헌이라는 정자가 서있다. 정자에 올라서면 길손들이 푸른 여강을 바라보며 시원한 강바람을 안도록 선사한다. 그러면 강바람에 여행의 홀가분함과 즐거움이 스며든다. 거대한 암반위에 작은 3층 석탑이 온전하지는 안았지만 눈에 밟힌다.
거기서 내려오면 강가에는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서있는데 늦가을에는 노란 은행잎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부서지고 훼손된 국가의 소중한 유물은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군들이 무자비한 파괴를 해버렸다. 전국에 많은 유산이 외침을 격으며 무수히 파손되고 우리의 몰지각으로 소중이 보존을 못하여 안타깝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파사성이 남았다. 버스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내달려 파사성으로 향했다. 차는 금새 천서리 타운을 지나 우리 일행은 수호사 입구에 우리를 토해놓고 차는 파사성 주차장에 오라고 지시했다.
여주와 양평의 8경중 둘째로 유명한 파사성을 40명 가량이 오르니 마치 성을 점령하러 올라오는 군병의 모습이 이럴까 싶다. 경치가 좋다기에 방태조가 선두에서서 성큼 오르는데 아무래도 길이 아니다. 나는 본래길을 찾아 일행은 따라 오르고 태조는 또다시 선두에 오른다.
그런데 태조부인이 힘이 드는지 손을 잡아달란다. 약 15분만에 파사성 정상에 오르니 모두가 과연 뛰어난 군사요충지임을 실감한다. 전망이 사방으로 탁트이고 멀리 용문산과 백운산이 보이고 종을 엎어 놓은 듯 7개 고을을 품은 칠읍산이 아름답다.
오대산 우퉁수와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그 위에 이포교가 세워지고 햇빛에 물결은 반짝이고 백조알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백조의 날개짓 건축물이 비상을 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파사성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서둘러 내려오니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암각화로 새겨진 마애불도 보지 못한 채 강가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제일막국수 윤사장에게 편육 15개를 주문하고 차를 안내하여 막국수 집에는 우리뿐이었다. 메밀전과 지평막걸리와 소주로 다양한 건배사에 건배를 하고 잔을 부딪쳤다. 우리의 명사회자인 배성광이는 다양한 박수로 우리를 집중을 시키고 흥을 돋우어 모두를 즐겁게 했다.
갈길이 먼 대구 친구를 위해 교가를 재창하고 6시경에 자리를 파하고 모두 일어났다. 대구 친구를 배웅한다고 서울의 친구들은 일열로 나란히 서서 대구 친구들과 윤회악수를 나누니 정말 석별의 정이 느껴진다.
오늘 행사에 정병조에게 음악CD 4장과 내가 가지고 있던 다른 CD 2장을 배성광에게 주면서 알아서 협조를 잘하는 친구에게 주라고 건냈고, 나의 임무는 이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아무쪼록 이번 여주지역 역사문화 탐방에 참가한 동기와 부인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며 금강경 해설책 30권을 가지고 온 조훈성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나는 서울차 옮겨타고 서정보는 대구차에 옮겨 타고 귀가를 서두르는데 애주가인 정병조와 최영우, 오주한 이준기 등과 차에서 술과 노래와 얘기는 끝날 줄 몰랐다. 양재역에서 하차를 하여 애주가 일행은 2차로 맥주집에 갔지만 나는 전날의 팔공산 가이드 피로와 술여독이 쌓여 수원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대구 가는 친구는 조용모드로 무사히 도착했다며 카톡에 고맙다는 감사인사가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 문자 내용>
여주로 봄소풍 가세!
여주지역 소풍날(4월14일)이 모레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지금 대구가는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밖에는 꽃들이 마구 피어나고 새싹이 파릇파릇합니다.
모처럼 대구고 친구와 아내들과 함께 여행을 갈 생각에 설렘과 기쁨으로 차오릅니다.
여주는 이름그대로 아름다운 고을입니다
세계문화유산 영릉과 녕릉이 있고 왕의 명복을 기원하는 사찰 신륵사가 강가에 있으며,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달사지에 국보급 유물이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할것입니다.
아울러 파서성에 오르면 민족의 젖줄인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푸른강 살리기 사업으로 푸른물이 넘실대는 속이 탁트이는 조망권을 선사합니다.
변덕스런 날씨가 약간 걱정입니다만
소풍날에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는데 어디인들 못가겠습니까.
삶은 소유가 아니라 매순간 '있음'에 있다고 합니다.
여기보다 더 좋은 스케줄이 없다면 다같이 소풍을 갑시다 그리고 멋진 하루를 만듭시다.
대구차는 완전 공짜라고 합니다 아침점심 저녁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이런 땡잡는 기회가 어디있겠습니까? ㅎㅎㅎ
대구 서울 또 다른곳에서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
하루 멋진 추억과 멋진 곳에서 재충전의 기회를 잡기를 희망합니다
대구에 아직 버스에는 여유석이 많습니다
대구친구는 체면중시 사회라 그런지 스스로 자청하고 참가하는 분위기가 약합니다.
그게 타지역과 조금 다른것 같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 마음의 문을 안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심만복래!! 일체유심조 입니다!!
행복하고 멋진 소풍이 되도록 기획했습니다
박익희 두손모음(011-817-9852)
월, 화요일 업무가 바빠 참가후기를 못쓰다가 이제사 후다닥 대충 써서 올리니 내용이 부끄럽다.
첫댓글 역시 대기자는 다르네!
행사기획과 홍보 덕분에 사상 최대의 동기,가족 행사였네.
가을에는 카톡의 위력을 다시 한번 내 봅시다.
박익희 -- 풍류와 낭만의 걸어다니는 박삿갓 !! 그대 있음에 14산악회가 더욱 풍요로울것 같네 .......
글이 장문이 되어버렸네
파노라마 잘 읽었네.역쉬 문장력이 엿보이네.많은 사람을 위해 좋은 행사, 고생많았슈다.
ㅎ 호산인 추진력 대단합니다. 너무 수고많았고 즐겁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 이동석입니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수고했습니다.....너무나 멋져요...담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