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갈릴리교회 자정예배에 참가하고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선
아침 7시 30분부터 또 일정이 있어서, 들어와서 잠시 휴식하신 이후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스님의 공식적인 일정은 오전 11시 쑥고개성당 성탄미사에 참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전 10시, 평화재단에서 봉천동에 있는 쑥고개성당으로 향하였습니다. 쑥고개성당 신부님인 김홍진 신부님은
스님과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함께 하면서 인연이 되어
그 뒤로도 꾸준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어서, 저희들에게도 친근한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이 문정동 성당에 계실 때는 문정동성당으로 갔었는데, 작년에 봉천동 쑥고개성당으로 오셔서
저희들도 작년부터 쑥고개성당으로 가고 있습니다. 봉천8동성당인데, 성당이 있는 고개가 쑥고개라서
형제자매님들과 의논해서 쑥고개성당이라 하기로 했다는 말을 작년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이 계시는 성당에 가면 항상 대접을 잘 받습니다. 오늘도 성당에 들어서니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의 집전으로 성탄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도 5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해서 함께
미사에 참가했습니다. 의식이 장엄하고 거룩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었고, 신부님 혼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님들이 함께 동참해서 미사가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신 후, 스님께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께서 예수님 오신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속에서 고통이 극심한 그런 시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리석어 아무도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태어나셨습니다. 그것도 고귀한 분께서 가장 가난한 곳, 아이를 낳는 엄마가 보호받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가 따뜻한 봄날, 누구나 다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화려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받는 세계에, 깜깜할 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구세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사람들, 신앙심이 돈독하고
하느님에 대해서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율법학자나 수많은 유대인들 아무도 그 분이 오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유대 신앙인이 아닌 이방인 동방박사는 그 분이 오심을 알아보고
가장 먼저 그 분께 경배하고 예물을 올렸습니다.
이런 것이 무엇을 상징할까요? 우리가 찾는 진정한 진리는 어쩌면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고통에 신음할 때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우리가 정말 스스로 눈을 뜨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도 알아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이 세상에서 작은 것들,
평소에 하찮게 여기는 것들에서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런데서 어쩌면 주님은 오늘 우리가 성탄예배를 하는 이런 자리에 오시기보다는 고통이 극심한 북한 같은 곳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그 분께서 오셔서 머물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아무도 그 분이 오신 것을 몰랐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도 오히려 큰 교회, 제도가 잘 갖춰지고 권위가 있고, 아름답고, 찬송이 울려퍼지는 이런 곳에
그 분이 오시지 않을 것 아닌가? 어쩌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지 않을까?
그런 것을 우리가 오늘 예수님 탄생일에 그 분이 오셨던 모습에서 한 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오신 날 그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자기를 못 박아 죽이는 자에게까지
“주여, 저 두 놈을 지옥의 불구덩이 던져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라고 말한 것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없이는 그렇게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의 육신은 비록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어도 그 영혼만은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활이 아닐까 싶습니다. 죽일래야 죽일 수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지 않은가? 그분께서 오래 살아서 많은 말씀을 해야 성공이 아니고,
짧은 기간 활동하다가 고통스런 모습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분의 영혼은 이 세상 가운데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사셨기에 결국은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이라는 더 큰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오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가 다시 한 번 새겨졌습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부처님 또한 이 땅에 오시면 이 세상의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 하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땅에 천주교가 처음에 들어올 때 탄압이 많았습니다. 공부할 데가 없어서 절에 가서 모여 앉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천주교 신앙자도 죽였지만, 장소를 제공하는 스님들도
많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천주교 신앙으로 순교한 분들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주위 스님들까지 처벌을 받았습니다.
서로 신앙이 다른데도 오늘날 불교와 천주교가 왜 이렇게 더 심정적으로 가까울까요?
오히려 천주교와 개신교는 같은 신앙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더 친해야 하는데 정서적으로 천주교와 불교가
더 가까운 것은 우리가 조선조 봉건시대에 함께 차별을 받고 억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조선조가 건국되고 오백여년간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승려들을 속퇴시키고
그래도 산 속에 남아 있는 승려들을 천민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이렇게 극심한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천주교 신앙이 처음 들어올 때 그들의 아픔을 생각해서 장소를 제공했고 또 고통을 함께 겪은
보이지 않는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동료의식이랄까? 이런 심정적인 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어떤 이론보다는 삶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설령 이론이 달라도 같은 고통을 겪으며
생활하게 되면 결국은 훨씬 더 동질감을 갖게 되고, 같은 종교의 뿌리를 갖고도 고통을 함께 겪지 않게 되면
작은 이론을 갖고 서로 다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쑥고개성당에 가면 꼭 인근 절에 간 듯 편안한 느낌입니다. 친근하고, 괴리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오늘 스님께서 우리나라 불교와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셔서,
이것 또한 역사성에 기인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성탄미사를 마치면서, 스님과 정토회가 성탄미사에 참여해줘서 감사하다며
스님께 꽃다발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꼬마 두 명이 부끄러운 듯 웃으며 스님께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미사를 다 마친 후, 신부님께서 정토식구들을 위해 중국집에서 식사 준비까지 따로 해 주시면서
세세한 관심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수녀님들과 성당에서 주요 역할을 맡으신 분들은 신부님께서 소개하시고,
정토회 참가자들은 스님께서 소개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크리스마스날 이렇게 식사까지 대접해 주시니, 예수님께서 매일 오셨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려 저희가 다같이 신나게 웃었습니다. 마음이 훈훈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신부님과 형제자매님들에게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성당에 다녀오신 후에도 계속 일정이 있었습니다. 몇 건의 약속과 원고 수정까지 하시고
12시 30분경 회관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부터 4박 5일동안 명상수련에 들어가십니다. 명상수련 마치고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