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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선 선생님께
01.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문자 메시지를 받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두통이 심해 원고를 쓰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안 좋으시다니, 저도 걱정이 됩니다. 빨리 쾌차하셔야 할 텐데요. 편집부의 뜻도 그러한 것 같고, 저도 선생님께 시간을 좀 벌어드릴 겸 순서를 어겨서 이번에도 제가 먼저 쓰기로 하고 이렇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동문학가 故 권정생 선생님을 잘 아시겠지요. 어제 5월 17일은 광주항쟁 기념주간이기도 했지만, 권정생 선생님의 1주기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권정생 선생님 생각이 자주 납니다. 방금도 백지를 앞에 놓고 원고를 써야 한다는 막막한 기분을 좀 지워보려고 책장에 있는 권선생님의 동화 한편을 아무거나 펼쳐 읽었습니다.
판소리 광대들이 ‘허두가’로 목을 풀듯이, 이런 일은 이를테면 제게는 원고 쓰기 전의 워밍업 같은 것이지요. 제 손에 잡힌 것은 <황소 아저씨>라는 짧은 동화입니다. 달빛 내리는 외양간에서 황소 아저씨가 홀로 추운 겨울밤을 지새는데, 황소 등짝을 쪼르르 타고 내리는 새앙쥐와 사귀게 됩니다. 녀석은 동생들 양식을 마련하러 다니는 길인데, 아저씨는 먹다 남은 쇠죽 찌꺼기를 조금 나누어 줍니다. 그것 때문에 새앙쥐네 형제들과 황소 아저씨가 친구가 됩니다.
알고 보니 새앙쥐네는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고, 황소 아저씨는 부모 형제와 헤어져 생사도 모르는 외톨이였던 거지요. 그들은 이제 한 식구가 되어 새앙쥐들은 추운 집에서 떨지 않고 황소 아저씨의 겨드랑이에서 따뜻하게 겨울을 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동화를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참 푸근해졌어요. 익히 알려져 있듯, 권정생 선생님은 보통 사람들은 몇 시간도 참기 힘든 고통을 돌아가실 때까지 견뎌야만 했던 극한의 삶을 사셨는데, 어쩌면 그 고통 때문에 인생사의 모든 번잡한 욕망들이 빛을 잃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이렇게 서로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세상을 그리워하셨던 거지요.
한때 유행처럼 우리 시단에서 시인들이 ‘낙타’ 이야기를 많이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고독한 인생길을 ‘낙타’의 형상에 기대어 그린 거지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그런 시들이 잘 와 닿지 않았어요. 뭐랄까, 시인들이 ‘낙타’에 짐 지운 그 욕망들이 참 무겁고 집요하게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나오는 이 ‘황소’ 이미지가 참 좋습니다. 일생토록 일만 하다 가는, 어찌할 수 없는 숙명과 외로움을 견디면서도 선하고 어진 마음을 간직한 황소가 저는 좋습니다.
“아저씨, 봄이 오면 황소 아저씨는 뭘 하세요?” “들판에 나가서 밭을 갈지!” “어떻게 갈아요?” “쟁기로 벌떡벌떡 흙을 파헤친단다.” “흙을 파헤쳐선 뭘 하나요?” “감자도 심고, 보리도 심지.” “……?” “그게 농사라는 거야. 너희들 먹을 것도 모두 밭 갈고 씨 뿌려서 거둬들인 거야. 농사짓는 일은 고달프지만 보람 있단다.” 황소 아저씨는 그러나 쓸쓸하게 말끝을 흐렸습니다. 덩치가 커다란 황소 아저씨는 이 덩그런 외양간에서 겨울 내내 혼자 있습니다. “아저씬 맨날 혼자셔요?” “응, 혼자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디 가셨어요? 그리고 형님도 동생도 없나요?” “모두 따로 헤어졌어. 먼 데로……” 아기 생쥐들은 왠지 황소 아저씨가 불쌍해졌습니다. 밤마다 저희들을 따뜻하게 재워주고 먹을 것을 나눠 주면서, 황소아저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기 생쥐들은 황소아저씨 겨드랑이에 얼굴을 파묻고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황소 아저씨의 가슴에서 도근도근 맥박 뛰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습니다.
이 동화에 깃든 권정생 선생님의 외로움과 따뜻한 소망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 농촌 마을에 살았는데, 송아지의 눈망울을 참 좋아했습니다. ‘소전거리’라 불리는 우시장에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도축장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죽을 기세로 몸부림치는 황소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녹색평론>같은 잡지나 미국의 환경운동가 존 로빈스의 책을 통해 미국의 공장식 축산에 대해 읽으면서 깊이 상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이런 추악한 사실들이 세상에 낱낱이 까발려질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 때가 이제 도래한 것 같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간혹 나오는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라는 미국의 동물 보호단체가 공개한 동영상을 선생님도 보셨겠지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밀양에서 열린 두 번째 촛불집회에서 저도 마이크를 잡고 그런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윤회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만약 윤회가 존재한다면,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다음 세상에서 어떤 육신을 입고 태어나게 될까요. 초식 동물인 소에게 육골분을 먹이고(소의 부산물을 다른 동물을 한 번 거쳐서 소에게 되먹이는 것도 허용되는), 풀썩풀썩 주저앉는 소를 전기 충격기로 찌르고, 넘어진 소에게는 체인을 감아 지게차로 끌어당기고 밀어 넘어뜨리는 이 말할 수 없는 인간의 죄악은 누가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성서에 나오는 표현처럼, “인간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02.
선생님. 이제 두어 시간 뒤에 저는 이곳에서 네 번째 열리는 촛불집회에 나가 보려 합니다. 지난 번 선생님께서도 따로 메일을 주셨을 때 말씀하셨지만, 저도 이번에 선생님과 나눌 편지에서 이 이야기를 좀 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군요.
지난 대선과 총선을 지내면서 참 갑갑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오랜 반동의 시간대가 이제 시작된 것으로 보였고, 캄캄한 터널은 길고 깊어보였습니다. 그 속에서도 물론 저항의 몸부림은 일어나겠지만, 저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던 시간동안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물신의 지배는 더욱 강고해졌고, 진실에 대한 감각은 퇴화했으며, 경제동물들의 광기는 유례없이 기승을 부린 것으로 저는 느꼈습니다.
그런 느낌은 제 비관적인 의식 탓만은 아니었던 듯해요. 무엇보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 그런 좌절을 겪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체제가 강요하는 논리 앞에서 너무나 순종적이어서 저는 화가 날 때가 많았습니다. 칼럼니스트 김규항 씨가 표현했던 것처럼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매니저’ 노릇하는 부모들 밑에서 십수년간 ‘관리’당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이 저도 들었지요. 나름대로는 세상이 감추고 있는 속살에 대해 애써 가르쳐 왔지만, 그래서 거기에 고개 끄덕이고, 나름대로 문제의식을 가꾸어가는 아이들도 적지 않게 만났지만, 이상스레 대학생이 되고 나면 모두가 얌전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봤던 겁니다.
대학 사회는 이미 압도적인 힘으로 보수화되어 있었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 앞에서 모두들 정신을 잃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래저래 막막할 때가 많았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만에, 전국적인 규모로 저항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고, 다른 누구도 아닌 중․고등학생들이 이 정국을 주도하는 현상은 저로선 너무나 반갑고 또한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겁니다. 물론 인수위 시절 ‘어린지’ 파동에서 시작해서 고소영, 강부자를 거쳐 4.15 학교 자율화조치까지 정신없는 짓들이 계속 이어졌고, 드디어 이번에 광우병 쇠고기 파동과 같은 대형 자살골을 터뜨린 것이 크게 작용한 거겠지요.
아마 4월말경이었을 거예요.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고발하고 난 무렵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해 좀 이야기해달라고 하도 성화를 해서 진도를 제대로 나가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어요. 저로선 어안이 벙벙했지요. 확실히 이번 사태는 광우병이라는 끔직한 괴질에 대한 공포감과 이를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처리한 정부에 대한 즉자적인 분노로 출발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있는 듯합니다. 그건, 민주화와 경제성장 이후 우리 사회가 걸어온 궤적이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접어들었다는 징표로 이해됩니다. 아이들은 그래도 순수하고, 그래서 예민한 촉수를 가졌기 때문에 여기서 만약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되는 사태마저 방관한다면 더 이상 우리는 견딜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들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 자신도 지금껏 숱한 부조리와 몰상식한 일들을 겪어왔고, 나름대로 그것들을 용인해왔지만, 이제 우리 먹을거리까지 이렇게 돼서 잘못하면 ‘피어 보지도 못하고 죽거나, 두려움 속에 살게 생겼으니’ 우리라도 나서서 이를 막아보자는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5월 초순부터 아이들 사이에 문자 메시지가 돌기 시작하고, 시내 여기저기에 촛불 집회로 모일 것을 호소하는 벽보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논술․면접고사의 영향이겠지만, 요즘은 학교에서 신문을 구독하는 아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다행히도, 저희 학교에는 조․중․동을 보는 아이보다 한겨레나 경향을 보는 아이들이 더 많은데,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이번 사태를 다룬 그 신문들을 돌려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5월 9일 토요일에 저는 오래 전부터 친구들과 약속이 되어서 가족동반으로 안동의 권정생 선생님 유택과 청송 일대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계속 오는 거였습니다. “선생님은 안 오세요?”로부터 시작해서 “만류하시는 교장 선생님을 울면서 설득했어요”, “선생님, 우리가 하는 일들이 철없는 고등학생들의 장난으로 이해되지 않게 해 주세요”까지, 주로 그런 내용들이었어요. 60명 가까운 지역 중․고등학생(주로 여학생)들이 자기들끼리 기획하고, 준비하고, 발언하면서 두 시간이 넘는 집회를 치러낸 거지요.
뒤늦게 소식을 들은 우리 전교조 선생님들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빵과 음료수도 사 주고, 곁에서 함께 했다고 합니다. 거기 참석했던 우리 지회장님이 나중에 아이들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셨습니다. “어찌 야무지고, 말들을 잘 하는지 내가 놀랬다”면서. 그 뒤로 두 번의 집회를 더 했고, 오늘 네 번째 집회가 준비됩니다. 저녁 시간 시내에 가면 몇몇 여학생들이 손수 만든 종이 피켓을 들고서 오늘 집회를 홍보하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03.
선생님. 제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이런 모습들이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영화 <밀양>에서 송강호의 입을 빌려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지만, 그야말로 ‘한나라당 텃밭’입니다. 비판적인 네티즌들에게는 ‘허경영’과 비슷한 ‘급’으로 취급당하는 이곳 출신의 김용갑 의원은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는 ‘용개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그래도 “밀양이 낳은 인물”로 통합니다.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 그때는 교복자율화 시절이었는데, 술 마시고 다니는 고등학생이 있으면 어른들이 불러 훈계하는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 학교를 다니는지 물어보고 공부 잘하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그냥 보내주는데, 그렇지 않은 학교 학생들에게는 뭐라고 야단을 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요즘 와서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희 전교조와 민주노동당, 농민회 분들이 지역에서 애써서 여러 일들을 하고 있지만, 이른바 ‘지역 언론’은 한 줄도 보도하지 않습니다.
지역 토호들의 동정이나 동창회 소식이나 열심히 주워섬기는, 맞춤법도 엉망인데다가 비문(非文)․오문(誤文) 투성이인 이 ‘지역 언론’들이 말입니다. 이런 곳에서 언제나 ‘얼라’ 취급을 받던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준비해서 집회를 치러낸 겁니다.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습니까. 그 뒤로도 두 번의 집회가 더 있었습니다. 평일인데다, 야간자율학습이 있어서 참가자들은 일반 시민, 전교조 교사, 축산 농민들이 많았지만, 학생들도 줄잡아 열댓명 이상이 참여했습니다. 한 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 아버지는 농민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 3급이신데, 나와 동생을 위해 아픈데도 힘들게 일하신다. 겨울철에는 사고당한 자리가 퉁퉁 부어올라 힘들어하신다. 나는 고3이고,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데, 세상이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공부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조금 알아봤는데, 그건 정말 끔직한 일이 될 것 같다. 우리 아버지 같은 분들이 결국 희생당하는 게 아닌가. 거기다가 나도 대학을 가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학자금 대출 예산을 올해 1천억이나 깎았다고 한다. 우리 같은 아이들은 이제 공부도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정부는 하루 빨리 물러나야 한다.”
다른 한 학생은 “나도 고3인데, 정말로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걱정이 돼서 공부가 안 된다.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축산 농민들, 시민들이 저마다의 분노와 유머러스한 재담을 곁들여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지만,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마이크를 잡고 토해내는 저 이야기들은 제게 깊은 충격과 감동으로 아로새겨졌습니다. 달리 표현할 말이 적당치 않지만, 저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낯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토록 순종적으로 보이던 아이들이, 비록 여론의 흐름에 힘을 입고 전국적인 분출의 열기에 고무되었겠지만, 저렇게 일어서고 있고, 다수의 학생들이 거기에 동조하는 데에는, 이 정권의 형편없는 수준 말고도, 기성세대가 그간 보여준 무력함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실 말이지만, 우리 전교조만 해도 4.15 학교 자율화조치가 발표되었지만, 거의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정진화 위원장은 19일이나 단식을 하고 결국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이상하게도 현장에서는 참 무심했습니다. 어디나 다를 바 없이 말입니다. 제가 <교육희망>에 연재하는 칼럼에도 썼지만, 지회 사무실에서 경남지부 집행위 자료집을 보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4.15학교자율화조치와 연금법 개악에 반대하는 서명을 묶어서 진행했는데, 경남 전체에서 불과 1천여명밖에 안 되는 겁니다. 경남 지역 3만 교원중에 3%도 안 되는 거지요. 학교일은 눈이 팽팽 돌아가도록 바쁘고, 무슨 일 생기면 일단 서명부터 조직하고 보는 관성적인 사업 작풍에 대한 피로감이 만연해 있지만, 이번 서명은 그 사안이 또한 남다르지 않습니까. 이 정도로 우리 전교조가 무기력해졌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학생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 문제도 일부에서 애태우는 몸부림으로 반짝 하다가 그냥 묻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분출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어두움이 깊다는 뜻이지만, 특별히 희망적인 것은 아이들이 이제 ‘발언’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후반 전교조가 결성될 무렵, 일부 학생들이 발언하고 행동하는 경험을 했을 뿐 지난 20년 가까이 학교는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지요.
지난 안양 진성고등학교 사태를 보셨는지요. 아이들이 그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종이비행기로 저항하고, 누군가는 동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어쨌건, 이제는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부조리에 대해 표현을 하고 있고, 그 흐름은 분명 그 앞 세대와 비교했을 때 뚜렷해 보입니다. 이제, 우리 교사들, 어른 세대, 부모 세대들은 아이들을 전혀 새롭게 볼 일이 더 생길 것 같고,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04.
저는 더 관심을 갖고 이번 사태를 지켜볼 생각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서투르고, 이번 사태가 여론의 힘에 고무된 탓이 컸듯이, 열기가 식으면 언제든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들 교사가 더 소심하게 처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보수적인 시선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명박 정권은 태생적으로 민심을 헤아릴 능력도 의사도 없었고, 그래서 초장부터 이 고생을 하고 있지만, 실은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이렇게 자본과 강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민중의 의사에 반하는 몽매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지금 세상이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이번 광우병 쇠고기 사태를 불러온 미국 축산업의 사료 체제(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게끔 하는)를 연방 정부조차도 좀처럼 뒤엎을 수 없는 것은 미국 축산 업자들의 강력한 요구에 그간 미국 정부가 조종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자본과 그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로 전방위적으로 확장되어 새롭게 착취할 영토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율 저하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장기적인 대세이고, 결국 미국 축산업자들처럼 용납할 수 없는 짓들을 이렇게 저지르면서도 이를 수정할 의사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구조화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우병 쇠고기 사태와 촛불시위는 어두움과 희망이라는 각각의 영역에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앞으로도 마구 내달리겠지만, 그러나 그리 쉽게 어두움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은 자각한 이들의 저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통해 교사들이 아이들을 변화와 저항의 주체로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육 현장에서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아, 써 놓고 보니 이건 정말 ‘교육청스러운’ 용어이군요.^^), ‘새로운 페다고지’를 모색케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글에서 촛불 시위에서 얻었던 긍정적인 영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엉성하고 여러 대목에서 균형을 잃습니다. 제게도 한두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우리 지역도 그렇고, 전국적인 현상인 듯한데, 왜 대부분 여학생들이 나서고 있고, 남학생들은 멋쩍어하거나 뒷짐을 지고 있는지, 그게 의아합니다. 한 사안을 두고 이렇게 성차가 나는 일도 잘 없었거든요. 이런 현상이 사회학자 김종엽 씨의 진단처럼 남학생들이 그간 ‘컴퓨터 게임’과 같은 파괴적인 오락에 몰두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점차 사회의식이 해체되어서 생긴 결과인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학교 현장에서 체감컨대, 일리있는 지적이라 생각되거든요. 촛불시위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4.15 학교 자율화 조치에 대한 섬세한 분석은 선생님의 혜안에 기대어보겠습니다.
선생님, 무엇보다 어서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밀양에서 이계삼 올림.(월간 우리교육 2008년 6월호)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얼마전 박복선 선생님 뵈었는데~ ^^
잘 읽고 갑니다..스크랩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