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립형 사립고’인가 ‘자율형 사립고’인가? | ||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를 보는 시각 ① | ||
| ||
최근 ‘자사고 100개교’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뜨거웠다. 그런데 이 논란에서 막상 공교육의 뼈대를 근본적으로 무너트릴 수도 있는 기본 개념은 짚어지지도 않은 것 같다. 그 기본개념이란 다름 아닌 ‘자립형 사립고’와 ‘자율형 사립고’의 차이이다.
현재의 ‘자립형 사립고’는 학생의 등록금 수입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학교가 아니다. 전체 등록금수입 대비 재단 전입금 비율을 25% 이상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엄격하게 지켜지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해 나가면 ‘자립형 사립고’는 열어 놓아도 그 숫자가 크게 늘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현재의 자립형사립고 중에는 재단 전입금 비율을 맞추는 게 부담스러워 포기를 고민하는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자립형 사립고’는 공교육의 뼈대를 흔들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다.
만약 재단 전입금 비율을 서구의 사립학교 수준으로 높이고 그 비율을 유지하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면 ‘자립형 사립고’의 숫자는 현재보다도 줄어들 것이다. 그 숫자가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사립학교 숫자일 것이다. ‘자신의 특수한 교육 목적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지속적으로 투입한다’는 게 본래적 의미의 사립학교 아닌가?
자율형 사립고와 자립형 사립고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율형 사립학교’는 재단 전입금 비율을 의무화하지 않거나 의무화하더라도 그 비율을 유명무실할 정도로 낮게 책정한다는 점에서 ‘자립형 사립고’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00개교란 숫자는 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 우선 용어부터 명확히 하자. 100개교는 ‘자립형 사립고’가 아니라 ‘자율형 사립고’다.
‘자율형 사립고’는 재단 전입금 비율을 높여야 하는 부담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어느 사립학교든 그런 형태로 전환할 수 있고 전환하려고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학교이다. 현재의 사립고는 거의 전적으로 학생의 등록금과 교육청의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재정 운용 면에서 공립학교와 별 다름이 없다. 여기에 사실상 개별 입시를 통한 학생선발 권한과 학생 등록금을 대폭 상향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사립고로선 거의 로또 당첨이나 다름이 없다. 어느 사립고가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고 싶지 않겠는가?
고등학교 100개교만 해도 우리나라 전체 고등학교의 5%이고, 전체 사립학교의 10%여서 결코 적지 않은 비율이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재단 전입금 비율을 높이 책정하는 것을 제외하고 그 많은 사립고들 중에 100개교를 선정할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상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 기준이란 게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 선정은 끊임없는 공정성 논란과 확대 압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는 점진적으로 사립고 전반에 입시와 등록금 자율화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사립고 입시·등록금 자율화 하면 공교육 제도 무너져
우리나라 전체 고등학교에서 사립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44%로 극히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다. 이 사립고들이 입시와 등록금을 자율화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우리 공교육 제도는 근본적으로 왜곡되고 끝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니 100개 자율형 사립학교의 비율만 가지고도 이미 그러하다.
우선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상 이른바 일류 사립대와 자율형 사립고의 강력한 카르텔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다. 정부 정책은 유명무실화되고 일류 사립대와 자율형 사립고 입시가 어떻게 가느냐가 초 중등 학교의 교육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공교육의 붕괴를 의미한다.
둘째,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인 고1부터 점진적으로 그렇게 나가야 한다. 이 고교 의무교육화가 사립고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다.
셋째, 6-3-3-4의 현재 학제가 사회변화와 지나치게 괴리되어 학제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시기 선택의 문제이지 학계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 학제개편 역시 사립고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출발조차 어려울 것이다.
일류 사립대와 자율형 사립고의 카르텔이 교육 좌지우지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와 국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자율형 사립고’라는 유사상표로 쟁점을 흐트러뜨리지 말자. 그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자율형 사립고’는 ‘자립형 사립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결과적으로 사립 고등학교에 입시와 등록금 책정의 자율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실상 일류 사립대와 자율형 사립고의 강력한 카르텔이 우리나라 교육을 좌지우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학생 등록금과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들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온갖 비리로 얼룩진 모습을 우리들은 누누이 보아왔다. 그리고 오늘 아침 신문에도 우리나라의 유수한 사립대학이 편입학에서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둥 기득권층 학생에게 터무니없는 특혜를 주었다는 둥 하는 기사를 보고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되던 사립학교법 개정이 목숨을 걸다시피 한 사립학교들의 반발에 의해 원천무효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사립학교들의 카르텔이 정말 우리 학교교육을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해도 되는 걸까? 그것은 상위 10%의 기득권을 교육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해 우리를 최소한으로나마 결속시키고 있는 원칙들을, 대부분 국민들의 교육복지를, 우리의 미래를 희생시키자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