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 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내바강 하류 삼각주의 늪지를 매립하여 건설한 페테르부르크는 이후 2세기에 걸쳐 제정 러시아의 서울이자 유럽과의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했다고 한다. 해서리 이 도시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러시아의 거의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황량하고 우울한 분위기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무엇보다 이 도시의 건설 배경부터가 우울하다. 아무 쓸모 없는 늪지대에 수많은 농노(農奴), 죄수, 농민들이 매립작업에 징집되다 보니 수십만 명의 희생자들이 발생하였으며,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페테르부르크란 도시를 '뼈 위에 세운 도시'라고도 불렀다고 하더만...도스토예프스키가 이 도시를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인위적이고 가장 환상적'이라 평한 것은 페테르부르크란 도시를 압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인 듯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 들어 이 도시를 가 보면 계획도시답게 도로와 수로가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여름궁전, 에르미타쥬미술관 등 수많은 건물들은 아름다움이나 규모면에서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고골의 단편소설집『페테르부르크 이야기』(니콜라이 고골, 조주관 역, 민음사, 2002)에는「외투」외 4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그의 대표적인 희극인『검찰관』(1836), 장편 소설『죽은 혼』(1842), 그리고 여기 실린 단편소설들은 한결같이 러시아의 관료제도를 풍자하고 힘 없는 하층민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들은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단계를 넘어 읽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헛헛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고 한다. 해서리 푸시킨이 '고골은 사람들을 슬픔과 연민의 눈물 속에서 웃게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만년 9등관 관리가 입던 옷이 너무 낡아 도저히 덧대 입을 수조차 없게 되자 없는 돈을 아끼고 모아 큰 맘 먹고 외투를 맞춰 입었다. 평소 거지같은 복장의 그를 무시해 왔던 동료들은 그가 새 외투를 맞춰 입은 걸 축하하여 착복식 파티까지 열어주는데...아뿔싸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귀갓길 광장에서 그는 그만 입고 있던 외투를 강탈당하고 말았으니...뒷 이야기가 슬프고도 허망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환상적이다.
외투를 빼앗기고 그는 도움을 받고자 고위 관리를 찾아갔으나 오히려 모욕을 당하고 쫓겨나자 그만 심한 열병에 헛소릴 하다 죽어버리고 만다. 여기서 고골은 독자들을 전혀 엉뚱한 환상적인 세계로 이끈다. 불쌍한 관리가 죽자 도시 곳곳에 밤이 이슥하면 유령이 나타나 계급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관리들의 외투를 낚아채 유유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비록 그는 죽었으나 고관대작부터 말단 관리까지 시도 때도 없이 외투를 유령에게 강탈당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면 독자들은 절로 폭소를 터뜨릴 터이니 이야말로 통쾌한 웃음이자 서글픈 웃음이란 게 아닌가? 진한 슬픔 속에서 은근히 배어나오는 그 허허로움이 고골이 그리는 거대 도시 페테부르크에 사는 소시민의 당시 모습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