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근무하던 학원에 사직서를 냈다. 유치원 종일 반은 5시까지 아이를 안정적으로 돌봐주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12시 40분이면 교실을 나와야 한다. 아이가 학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맘 편히 집에서 쉬길 바랐다. 나의 바람대로 아이는 놀이터와 친구 집을 옮겨 다니며 놀고 또 놀았다. 전업맘이 되자 나에게도 새로운 인간 관계가 시작되었다. 바로 아이 친구의 엄마들이다. 동네 엄마들은 내가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하면 관심을 보였다. 아이 수학 공부는 어떻게 시키는지를 비롯해 수학 공부 관련해 이런 저런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제가 불편했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서 그들이 원하는 답을 척척 해 줄 수도 없는 데다가 벌써 부터 수학 공부를 할 필요가 있는지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내가 학원에서 관찰한 바로는 에너지가 적고 공부에 자신감이 없는 학생들일수록 어려서부터 과도한 사교육을 한 경우가 많았다. 내 경험에 한정된 판단이니 아이를 위해 애써 고민을 하고 전략을 세우는 엄마들에게 부질없는 짓이라며 훈계를 할 처지도 못 되었다. 겉돌 수 밖에 없는 대화에서 나는 점점 멀어져갔다.
2017년 어느 늦은 밤 인터넷 검색으로 <잠못드는 초등 부모를 위하여>라는 강좌를 알게 되었다. 관심이 가는 내용이었지만 더 이상 강의를 들을 수는 없었다. 얼마 후 등대학교가 열렸다. 그해 9월 등대학교 현장 강의에 참석하려고 삼각지를 찾았다. 학원 입학 설명회가 아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향한 것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학원 밥을 먹고 살았는데 이래도 되나? 이런 내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 게 걱정됐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아주 편안했다. 강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수업 후 식사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에 눈을 반짝였다. 내가 듣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자 힘이 세어졌다.
그렇지만 오랜기간 자신이 이상한 엄마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아이는 학원도 안 가고 놀이터에서 놀고 엄마는 어딜 저렇게 밖으로 돌아다니는지. 남들 눈에는 이상한 엄마로 보일 거 같았다. 마포에 있는 한 인문학 공동체 수업도 듣느라 바빴다. 도서관에서도 아이 책보다는 내 책을 빌리는 게 우선이었다. 애 공부는 안 시키고 나 자신만 챙기는 걸로 비춰질까 두러워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걸 이웃에게 숨기기도 했다. 사회가 중산층 엄마에게 기대하는 모성과는 거리가 먼 듯한 내 모습에 당당하지 못했다.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p.99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유유)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년간 교정 교열 일을 하며 남이 쓴 문장을 다듬는 일을 한 저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이상한 문장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고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런데 모든 문장은 모든 사람처럼 다 이상하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완벽한 단 하나의 문장이 존재할 수 없듯이 단 하나의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스스로 문장을 수정하며 더 명료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어 가듯이 자신과 마주하고 잘못을 수정해 가면 충분히 괜찮은 엄마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틀리지 않겠다는 결심 보다는 틀린 건 고치면 된다는 여유와 잘못됐다는 걸 아는 인식이 더 유용하다. 나는 덜 이상한 엄마와 이상해서 괜찮은 엄마가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첫댓글 오, 도입부 첫 단락 한 줄 한 줄 빨려들 듯이 읽었어요!
두 번째 단락에서 강의의 어떤 지점(내용 등 포함해서)에 눈물이 났는지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단락은 정말 우리 모두 다같이 토론해볼 만한 주제예요. 생각이 많아지고요.
모든 문장은 이상하다와 모든 엄마는 이상하다.. 아, 이 연결,,, 좋기도 하고, 조금 튄다 싶기도 하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그쵸? 책에 대한 언급을 할까 말까. 좀 고민했어요. 인용한 부분을 빼고 쓰는 게 나을 거 같기도하고 책의 그 문장이 영감을 줬으니 잘 살려보고 싶기도 하고. 두 마음이 왔다갔다 하네요. ㅎㅎㅎㅎ
@송미소 생각해 보니 엄마와 문장이 서로 격이 안 맞아서 그런가 봐요. 사람은 다 다를 수 있고, 모두 다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건 충분히 동의 되거든요. 근데, 사람을 문장에 빗대는 건 파격이죠. 저자는 물론 그 파격을 시도했지만요.
보통 글의 마무리에는 글의 주제, 글쓴이의 방향성 같은 게 드러나는데, 모든 엄마들이 서로 조금씩 이상하지만 괜찮은 엄마로 나아간다는 주제를 드러내는 건 아주 좋거든요. 근데, 문장이 이상하듯 엄마도 이상하다고 비슷한 격으로 놓고 비유하는 게 납득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채송아 오~ 그럴 수 있겠어요. 끄덕끄덕 👌👍
@채송아 채송아 샘 의견 참고로해서 수정을 해볼게요. 그 사이에 다른 분들도 의견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