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0.
궁금해? 지리산-2편
기록이 남아야 역사가 된다. 구전은 그냥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글로 정리하면 또 달라지겠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인데 가능하면 꼬박꼬박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기록을 남기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일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밑에 살다 보니 궁금해진다. 역사 속 어떤 인물이 지리산을 흠모했는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확인이 더 필요하지만 1463년 청파 이륙(1438~1498)의 <유지리산록>이 기록상으로 가장 오래된 것 같다. 그는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을 올랐다. 청도 군자정에서 청파를 본 적이 있으나 지리산에서 또 만날 줄은 몰랐다. 사실 안동 귀래정에서 청파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유학하는 선비들은 지리산을 무척 좋아했나 보다. 1472년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의 <유두류록>, 1489년 탁영 김일손(1464~1498)의 <두류기행록>, 1558년 남명 조식(1501~1572)의 <유두류록>, 1611년 어우당 유몽인(1559~1623)의 <유두류산록>이 지리산 유람의 토대가 된 듯하다. 18세기 중후반부터는 많은 유학자가 지리산 유람을 기록으로 남긴다. 황도익, 유문용, 김성렬, 안익제, 곽종석, 박치복, 이진상 등 무수히 많다.
류정자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점필재의 <유두류록>을 읽고 점필재가 걸었던 길을 따라 천왕봉에 오르고자 했다. 지워진 길이지만 기록의 흔적 끄트머리를 움켜잡고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지리산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사라진 절터를 추측하고 점필재의 눈으로 사방팔방을 살피면서 얻은 값진 흔적을 출판했다. 600년 전 지리산 산행기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가 그녀의 작품이다.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라 매우 부족하다는 답에 말문이 막혔다. 지리산과 긴 세월과 책 한 권의 의미를 이미 알겠는데, 겸손으로 치사(致謝)한다. 나는 안다. 글은 머리가 아닌 경험으로 쓴다는 것을.
적조암에서 출발한 일행은 운암마을 터, 500년 돌배나무, 노장마을 터, 지장사지 갈림길, 환희대를 거쳐 선열암지까지 올랐다. 관리되지 않은 길이다. 키 높이의 조릿대를 뚫고 지나는 길은 험했다. 팔순의 밑자리를 깔고 앉은 나이에도 날렵하게 산길을 오르고 내리는 그녀가 오래도록 건강하길 소망한다.
지리산 천왕봉 등산로는 무수히 많다. 노고단에서 완주하는 코스부터 뱀사골, 백무동, 피아골, 중산리 등 다수가 있다. 내년이면 600년 전 함양군수 점필재가 올랐던 코스를 따라 천왕봉에 오를 수 있을 듯하다. 현재, 폭 1~2m 넓이의 등산로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미인정 등산로 일부에서 붉은색 리본으로 표시한 흔적이 보였다.
이 모든 일들은 점필재의 기록에서 시작한 결과다. 한 편의 글이 만들어 내는 엄청난 시작이다.
첫댓글 다 읽는다고 고생햇는데 글의 내용은 모르겠고 오빠는 어찌 이런걸 다 알지 신기하네
내가 사는 사소한 일들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 글들은 나중에 후세에 역사로 남아 다시금 추억하게 된다. 지리산을 오른 사람이 수천 수만이라도 기록을 남긴자 수십명만 지리산을 사랑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뭐 그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