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공 선 옥
온 세상은 그저 땡땡 얼어 있다. 밤의 열차는 지금 칼날 같은 냉기를 가르며 어둠 속을 달리고 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녹두색 융단 의자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내 왼편에는 스포츠머리를 한 젊은 치가 내 오른편에는 털북숭이 사내가 앉아 있고 마주 보는 앞자리에는 노부부가 앉았다. 나는 앞자리의 노부부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나를 모를 것이 당연하고. 영감님은 중절모에 구두를 신었고 부인은 양단* 한복에 코고무신*을 신었다. 아주 윤택하고 평화로운 부부 모습이 밤 완행열차에 어울리지 않긴 하지만 어쨌든 보기 좋았다. 부부는 줄곧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뭔가 스산하고 허름한 밤 기차 여행을 즐기고 있는 듯이도 보인다. 영감님은 바로 내 초등학교 시절의 교장 선생님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하지 않은 모습이 그 교장 선생님임을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러나 알은체는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부터, 이 자리에 앉고자 해서 앉은 건 아니다. 아니, 처음에 나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빈자리를 찾았다. 서울역에서 탄 밤의 완행열차, 종착역 목포까지 가는 비둘기호 안은 내가 찾는 ‘아무도 앉지 않은 자리’ 따위는 없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완행열차 비둘기호란 지정 좌석 같은 건 없지 않은가. 그저 자리가 있으면 앉는 사람이 임자이지 않은가. 그그렇다고 아무도 앉지 않은 빈자리를 찾아 첫칸에서 마지막 칸까지를 훑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몸이 피곤했다. 그래서 한자리에 세 !사람이 앉게 되어 있는데 두 사람만 앉은 자리에 나는 내 몸을 끼의 넣었다. 다행히 아래로 내려올수록 타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이 떠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어서 빈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은 남았다. 조금 있으면 내 옆에 앉은 작자도 내려줄 것이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조치원역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창가 쪽에 앉은 젊은 치가 부스스 일어나 선반의 짐을 챙겼다. 나는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이제 얼마 안 가 통로 쪽 털북숭이도 익산이나 신태인역쯤에서 일어나 줄 것이다. 젊은 치와 나누는 말소리에서 어쩐지 그쪽 말투가 배어나왔기 때문이다. 창가 쪽이 비자마자 나는 잽싸게 엉덩이를 그쪽으로 옮겨놓았다. 찬바람이 창문 틈새로 들어오긴 했지만 털북숭이와 허벅지가 닿는 불쾌감에서 벗어난 것이 후련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양다리를 의자 위로 올려 세우고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홍익회 사람의 밀차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를 사이에 두고 젊은 치와 이런저런 대화, 프로야구와 낚시와 등산과 선거 이야기를 재미없게 나누던 털북숭이는 젊은 치가 내려버리자 그만 입이 심심 했던 모양이었다. 홍익회 밀차를 세운 털북숭이가 왜 소주를 팔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다가 없는 소주 대신 맥주와 오징어를 샀다. 그가 이빨로 맥주병 뚜껑을 땄다. 오징어를 북 찢었다. 그자가 맥주를 사는 소리, 맥주병 뚜껑을 따는 소리, 오징어를 찢는 소리 따위를 나는 전부 귀로 듣고 있었다.
털북숭이는 애초에 창가 쪽에 앉아 있었다. 여자인 내가 그들 자리에 몸을 부릴 낌새가 보이자 그가 얼른 통로로 나와 내가 들어가기 쉽게, 말하자면 나를 창가 쪽으로 ‘모시고자’ 하는 태도를 역력히 보였다. 그러나 그가 내논 자리에 젊은 치가 냉큼 들어가 앉아버리자 털북숭이의 의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털북숭이에게는 더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치의 행동이 결국 내가 털북숭이 제 옆에 앉게 해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양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내게는 장기적인 생각보다는 단기적인 생각, 단기적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대한 생각만을 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미래? 웃기는 거였다. 미래에 대한 설계? 개나 물어가라, 였다.
어제 아이들이 있는 그곳 아동일시보호소에 전화를 했을 때 둘째 아이가 몹시 아프다고 했다. 아이가 아프다는데 내려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산1과정 주임에게 고향에 한번 내려갔다 와야겠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내일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투입될 것이고 그는 그 자리를 결코 비켜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애기엄마’ 이니까. 하지만 에기를 키울 능력이 없는 현실은 나를 애기엄마도 뭣도 아니게 만들었다. 그럼 무엇인가.
애기들을 떼어낸 애기엄마 몸은 처녀보다 더 가벼웠다. 나는 행복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나와 아이들을 버렸는데,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어디론가 가버린 참인데 나만 애기 버린 죄를 뒤집어쓸 필요가 있겠는가, 싶었다. 죄는 남편에 게 뒤집어씌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렇게 새끼들을 아주는 아니라도 잠시 버려야만 살 수 있다는,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변명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남편은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남편의 행방을 알고 싶지는 않다. 그를 찾아 나설 시간에 나는 아이들과 내가 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결국 애기엄마지, 아무것도 아니다. 몸은 새털같이 가볍게 하고 머리는 애기엄마 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나는 고향의 아동일시보호소에 내 애기들을 맡겨놓고 서울로 올라온 지 석 달째였다. 석 달은 우리의 미래를 확보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석 달이 아니라 삼 년 삼십 년이 내 앞에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봐요, 하는 소리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뭐요? 나는 고개를 벌떡들어 눈으로 물었다. 털북숭이가 맥주병 입구를 제 옷으로 문질러서 내게 내밀었다. 내 시선은 경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기다려보슈, 해놓고 털북숭이가 홍익회 밀차를 불러 세워 종이컵 두 개를 샀다. 아따, 교양 없는 놈, 하며 그가 내게 맥주를 따라주었다. 숙녀를 창가에 앉혀야지 말이야, 싸가지없게스리. 나는 털북숭이가 따라준 술을 꿀꺽 삼켰다. 오징어 살점이 내 앞으로 쑥 내밀어졌다.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털북숭이는 난감해졌다. 홍익회 밀차는 이제 또 한참을 기다려야 올 것이다. 다리 잡술라요? 자기는 생각해서 살점을 찢어주었건만 내가 받지 않은 건 살점 말고 다리를 더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하, 이거 환장하겄네. 그가 환장하게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기다릴 것 없어요. 홍익회 밀차가 아니라 시장 좌판을 통째로 들고 온다 한들 댁하고 어울릴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그러나 한마디 말을 털북숭이에게 건네는 것조차 귀찮다. 드디어 밀차 오는 소리가 난다. 오징어 땅콩 있써어, 맥주 음료수 있써어, 무엇무엇 있써어, 하며 다가오는 딸그락거리는 소리. 털북숭이가 주섬주섬 돈을 꺼낸다. 땅콩 하나 주쇼. 뭣 잡술라요? 과자 잡술라요? 과자 한 봉지 주쇼. 이제 땅콩과 과자가 내 앞으로 올 것이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저씨, 왜 그래요?”
사내는 말없이 땅콩 봉지를 뜯는다.
“왜 나한테 그리 잘해주지요?”
“잘하는 것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무심하다. 나는 무안해진다. 사내는 과자 봉지를 뜯어 우적우적 씹는다.
“맥주 남았어요?”
사내는 반갑게, 기다렸다는 듯이 종이컵이 씌워진 맥주병을 내민다. 맥주는 김이 빠져 있다. 밤은 캄캄하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눈과 볼이 움푹 파져 있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는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이 나를 찬찬히 바라본다. 밤은 춥다. 그러나 조절 장치가 없는 완행열차 안은 지나치게 덥다.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내가 통로로 비켜서 준다. 나는 비닐이 나달나달해진, 그 안은 들여다볼 것도 없이 별 볼일 없는 물건들, 이를테면 때가 잔뜩 낀 헌 작업화 작업모 작업복 따위가
들어 있을 그의 가방을 훌쩍 건너뛰어 통로로 나선다. 사내는 내가 기차 칸과 칸 사이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통로에 그대로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별 하찮은 인간이 다 나를 귀찮게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흔들리는 나. 나는 아무것이나 손에 닿는 것을 꽉 붙잡는다.
여전히 흔들리며 내 자리로 온다. 교장 선생님 부부는 이제 잠들어 있다. 그리고 자리가 변해 있다. 또 한 사내가 아까 털북숭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있고 털북숭이는 내가 앉았던 자리로 옮겨 앉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굳이 이 자리로 돌아온 것일까. 그사이 그 자리에 익숙해진 것일까. 나는 다시, 어쩔 수 없이 두 사내 사이에 끼여 앉는다. 낡은 비닐 가방은 털북숭이와 함께 다시 창가 밑으로 옮겨 갔다:
나는 다시 묻는다.
“술 없어요?”
새로 온 사내는 나와 털북숭이가 서로 잘 아는 사이일 거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다. 어쨌든 털북숭이는 새로 온 사내 ,이전의 사람이니까. 환장허겄네. 털북숭이가 털이 부숭부숭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술이 없는데 술을 찾는 여자 땜에 난감한 심정을 환장하겠다고 표현한다. 나는 속으로 낄낄 웃는다. 이제 털북숭이의 환장허겄네, 소리가 그다지 싫지 않다. 다정한 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교장 선생님의 부인이 교장 선생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교장 선생님 손이 부인의 어깨를 감싼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홍익회 밀차가 온다. 털북숭이가 급하게 밀차를 불러 세운다. 맥주를 산다. 새 종이컵도 산다. 맥주병 뚜껑을 이빨로 딴다. 병 입구를 소매 끝으로 슬쩍 문지른다. 종이컵에 맥주를 따라 내게 준다. 나는 받아 마신다.
“술 좀 작작해.”
“뭐라구요?”
나는 내 귀를 의심한다. 분명 털북숭이가 내게 반말을 한 것이다.
“술 좀 작작하라고오.”
하면서 털북숭이가 두꺼비 같은 제 손을 슬쩍 뒤로 돌려 내 엉덩이 밑을 파고들어 온다. 나는 얼떨결에,
“아, 예에.”
한다. 그래놓고 나는 축축해진 종이컵을 버리고 맥주를 병째 들이켠다. 오싹한 한기가 심장을 관통한다. 부르르 떨린다.
“추워?”
털북승이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수그린다. 털북숭이가 제가 입고 있던 파카를 벗어 내 무릎을 덮어준다. 나는 가만히 있는다.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이 자리에 합석한 사내는 왠지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데가 있다. 검은 테 안경 속의 눈매가 어쩐지 서늘하다. 그의 허벅지와 내 허벅지가 닿을락 말락 할 때마다 내 가슴 한편이 서늘해온다. 털북숭이가 제가 덮어준 파카 밑으로 제 손을 집어넣어 내 배꼼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 나는 넙넙하다.
“술 더 마실래?”
“작작하라며?”
“마셔라.”
창가에 맥주병은 쌓여만 간다. 몽롱한 속에서 털북숭이는 내 몸 구석구석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고 나는 문득 영감님이 내 초등학교 시절의 교장 선생님 이었던 아득한 한때를 떠올린다.
교장 선생님은 내게 앙고라토끼 한 쌍을 준다. 토끼는 학교 식물원 옆, 동물 우리 앞에 있었다. 동물 우리 안에는 공작새와 사슴과 원숭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동물 우리 앞 토끼장의 토끼는 천대하고 공작새와 사슴과 원승이들을 환호했다. 과자와 라면과 빵부스러기가 환호받는 동물들한테만 갔다. 천대받는 토끼는 천대받는 만큼 집요하게 새끼들을 늘려갔다. 교장 선생님은 우등상과 개근상과 정근상*을 받는 아이들에게 불어난 토끼를 부상으로 주었다. 그러고도 남아도는 토끼는 졸업생들에게 분양하였다. 그날, 겨울 햇살이 쨍쨍 내리쬐
던 졸업식장에서 교장 선생님한테 토끼 한 쌍을 받아 들고 졸업생들은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우리 담임선생님 말마따나 산속으로 우르르 기어들어 갔다. 읍내에서 통근을 하던 담임선생님은 우리들더러 그랬었다. 산속에서 우르르 기어 나와 산속으로 우르르 기어들어 간다고.
“이 토끼를 잘 키워 꼭 부농*의 꿈을 이루거라.”
토끼를 안고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에게 교장 선생님이 흐뭇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오셔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꼭 부농의 꿈을 이루라고 기원해주었다. 그 토끼로 과연 누가누가 부농의 꿈을 이룬 것일까.
‘산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길목. 산모퉁이에 옛날 문둥이들이 살았던 토굴이 있었다. 그 토굴 안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 나오고 있었다. 설한필이와 이경섭 이 등의 사내애들이 그 토굴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무엇인가 허연 동물을 막대기에 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필시 저것들은 거렁뱅이가 되고 말 것이다, 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몇몇 계집애아이들이 너희들 선생님한테 가서 일러부러, 라고 고함쳤다. 설한필이가 굴 밖으로 침을 탁 뱉으며 나와서 싸가지 없는 년들, OO를 콱 조져부러, 했다. 계집아이들이 아이구 징해라, 하고 내뺐다. 저희 마을과 우리 마을이 갈라지는 배쟁이다리께까지 와서 점이가 내게 물었다.
“야, 너 퇴깽이괴기 묵어봤냐?”
“아니, 닭괴기는 묵어봤다.”
“닭괴기 안 묵어본 사람이 어딨냐? 나는 퇴깽이괴기 묵어봤는디.”
점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면서,
“퇴깽이는 어디가 젤 맛있냐면 간이 젤 맛있다. 폭폭 과서 국 낋애 묵으면 둘이 묵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국 낋애 묵을래?”
점이가 몸을 옴찔했다.
“어치케.”
토끼고기가 아무리 맛있다 한들 교장 선생님이 주신 건데 어떻게 함부로 끓여 먹어버릴 수가 있느냐는 것이리라. 나는 점이와 다짐했다.
“우리 이걸로 꼭 성공하자. 그래서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자, 꼭.”
그렇게 배쟁이다리 위에서 점이와 나는 손가락 걸어 약속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홍익회 밀차가 온다. 털북승이는 이제 내가 청하지 않아도 맥주를 산다. 검은 테 안경은 털북숭이 사내가 술을 사든, 그 옆의 여자가 술을 마시든 저는 고요히 책만 보고 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묻는다.
“어디까지 가세요?”
털북숭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나는 의식한다. 왜 딴 사내에게 수작이냐는 거겠지. 저하고 나하고 도대체 언제부터 안 사이라고. 무슨 대단한 사이라고.
“글쎄요, 가는 데까지 가지요. 목포가 종착역 입니까?”
나는 안경이 ‘입니까?’ 하고 물어주는 것에 속으로 환호한다. 무슨 말인가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아닌가. 어떻게든 털북숭이를 나한테서 격리시켜야만 한다. 뻔뻔한 작자.
“그럴 거예요, 아마. 목포까지 가시게요?”
“그러지요, 뭐. 못 갈 게 있겠습니까?”
가만 보니 이 남자가 계속 끝말을 물음체로 하는 것이 저도 나하고 무슨 말인가를 계속 나누고 싶을 만큼 내가 저한테 나쁜 인상은 아니라는 것 같은데, 하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희열이 가슴에 차오른다.
“목포는 왜 가시게요?”
“왜라고 물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냥 여행 중입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광주까지 가요.”
해놓고 말이 끊어질 것이 두려워 나는 얼른 묻는다.
“지금 보시는 책이 뭐예요?”
“별거 아녜요. 『노동해방문학』 이라는 예전 잡진데, 아세요?”
물음체로 끝내주는 것은 좋은데 아세요? 하고 물으면서 흘낏 나를 보는 검은 테 안경 속의 눈빛이 어찌 냉랭하다. 저놈의 눈구멍은 어째 저리 서늘한가. 모른다, 어쩔래?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나는 입술을 깨문다. 내내 굳어 있던 털북숭이 얼굴이 쭉 펴지고 있음을 나는 안 보고도 안다. 또다시 그놈의 두꺼비 같은 손아귀가 맹렬하게 내 몸 안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것이. 나는 그래도 그 손을 떼어내지 못한다. 손바닥은 뜨겁다. 그 손이 좋은 게 아니고 그 손바닥의 뜨거움이 그다지 싫지 않다.
토끼는 따뜻했다: 그 따스함이 내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 집 가까이 오자 얼마 전 레공닭(레그혼닭*)으로 한 번 실패를 보고 난 아버지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논이 없는 우리 집이 살길은 오직 축산밖에 없다고 이를 악물고 사일로*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거이 무엇이냐?”
“토끼여.”
“퇴긴 중은 안디, 그것을 어디서 가꼬냐?”
“학교에서 졸업 선물로 준 것이여.”
“졸업했냐?”
“응.”
“말을 허제.”
말을 해봤자 내 졸업식 따위에 부모님이 오지 않을 것임을 나는 뻔히 알고 있었다. 내 졸업식장에 오실 시간에 아버지는 한시라도 빨리 사일로를 지어야 한다. 사일로를 지어야 군 농협에서 세계은행 차관인가 뭣인가를 타올 수가 있는 거였다. 우리 집은 그것을 타와야만 살 수 있다고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누누이 말씀하셨다.
내 배에서 토끼를, 토끼의 따스함을 떼어내어 아직 토끼장을 못 만들었으므로 임시 거처로 병아리 집인 어리*를 가져다 그 속에 토끼를 밀어 넣어놓고 나서 나는 한참 사일로 짓는 데 정신이 없는 아버지 옆으로 진중하게 다가갔다.
“아부지.”
“어이.”
“토끼를 가지고 연구를 해보면 안 되까?”
토끼를 가지고 우리 집 식구가 살 연구를 해보면 안 되겠느냐는 내 말에 아버지는 픽 웃었다.
“돈이 되까?”
“저것은 품종이 다르당만요.”
“그래야?”
“보통 토끼가 아니고 앙고라라는 것인디, 털을 짤라다 판대여.”
“핫따아, 그래야?”
아버지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저것이 좀 있으먼 새끼를 겁나게 까분당께. 싸이로 짓고 빚내는 것보담 낫단 말이요.”
“판로가 있간디?”
“공장에서 털옷을 만들어 수출헌답디다야. 키워놓기만 험사 어디서 안 가지가겄소. 그렇게만 되먼 우리 집도 인자 웃음 웃고 살 수가 있단 말이요.”
사실 돈이 없는 우리 집은 웃음 없이 산 지가 오래되었다. 아버지는 사뭇 미심쩍어하면서 솔깃해한다.
“그래이.”
“점심 자섯소.”
“그러자.”
점심을 먹으면서 식구들한테 토끼 건을 상의하고자 나는 일찌감치 점심을 차렸다.
산에서 나무를 해 와서 머리에 나무검불이 붙어 있는 수건을 그대로 쓴 채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는,
“느그 아부지 딸 아니라깨비 너까지 지랄이여?”
팩 퉁*을 준다.
“닭알 점이 실패를 헌 것이 아니고 닭이 병들어 그런 것 아니요? 토끼는 병도 잘 안 든당만. 암거나 잘 묵고. 물만 안 들어가먼.”
“오살 염불허네.”
어머니는 연구하지도 않고 계속 욕만 한다. 어머니의 연구하지 않는 태도가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어무니는 살자고 허는 일에 왜 자꾸 꼬칫가리를 뿌리실라고 허요?”
“야가 어른을 갈칠라고 허는 것 보소. 자고로 살라면 가만히 있는 것이 수다. 벨것이 없어. 다 죽을라고 나대는 것이제, 으응. 살라면 어서 밥이나 처묵어.”
나는 밥을 먹는다. 눈물이 쿡 쏟아진다. ‘나무하러 가먼, 그러먼 나 중학교 보내줄라간요?’ 소리가 밀려 올라오는 통에 밥이 목구멍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다. 내가 왜 우는지 어머니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긴말할 것도 없이, 거두절미하고,
“밥 후딱 처묵고 갈퀴 들고 에미 따라나서라.”
한다.
꿀럭꿀럭 잘도 넘어가던 맥주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괜찮어?”
“그런데 말이지요. 노동에서 해방이 되려 해도 노동을 해야 하는 것 아네요?”
“움서도 말은 잘허네이. 괜찮냐고 묻잖어.”
“그런디 왜 문학을 헌다요?”
“니기미, 괜찮다 그거지? 어이 홍익회, 여그 맥주 두 병이요이.”
“문학을 허먼 노동에서 해방될 수가 있다요?”
사람이 깍듯한 서울말을 쓰면 듣는 사람을 ‘겁나게’ 존중해서 하는 말 같고 사투리를 쓰면 막가는 것 같은 것이 왜 그럴까.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닌데도. 검은 테 안경은 도통 말이 없다.
“아저씨 말 좀 해봇시요.”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한참 동안 생각을 굴리고 있었던 듯, 안경 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노동의 역사』라는 책을 읽어보신 적 있습니까? 바레 프랑수아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잔소리 말어, 쌍. 뭐? 뭔 슈아? 슈아 좋아하고 있네!”
느닷없이 끼어드는 털북숭이. 나는 털북숭이에게 눈치를 줄까 말까 하다가 관둔다. 대신 안경을 찬찬히 쳐다본다. 언제까지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것 같은 서늘한 저 눈. 그 눈이 말한다.
“그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지요. 인간이 동물로부터 구별되는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인간이 노동한다는 사실에 있다. 노동이 인간, 그것을 만들었던 것이다, 라고요.”
“× 까지 말라 그거야, 크윽.”
“그 말을 그대로 따르자면 그러니까 저는 노동하지 않는 인간이므로 동물과 구별이 되지 않는 인간이지요. 지금 무위도식하는* 돼집니다, 전. 돼지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어이, 안경 쓴 친구, 개같이 일해서 정승같이 쓰래는 말 몰러? 사람은 일헐 때 짐승이 되는 것이여어, 돈 쓸 때만 사람 되는 거구우. 좆도 몰르면 가만있으라고오.”
앞좌석이 왜 이리 소란한고, 하고 교장 선생님 부부가 동시에, 신기하게도 거의 동시에 눈을 뜬다. 눈을 뜨고 상대방의 어깨에, 무릎에 놓여 있던 손들을 다시 얼른 붙잡는다. 그 동작도 동시다. 털북숭이와 나와 안경이 조용해진다. 어디선가 그 구령 소리가 들려온다. 전체 차려엇, 교장 선생님께 경례.
“안녕 하세요?”
웬 낯선 여자가, 그것도 술 먹은 여자가 느닷없이 인사를 한 것이 떨떠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사를 했으니 받기는 받는다는 표정으로,
“누구시더라?”
하면서 얼른 잡았던 부인의 손을 놓는다. 나는 인사를 괜히 했나 싶다.
“호호호, 잡으세요 손.”
내 웃음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방자하다.
“아니에요, 괜찮지?”
“괜찮지요 그럼.”
부인이 자신의 무릎에 손을 모은다.
“저는요, 동명국민학교 사십구 회 졸업생이어요.”
“동명국민학교? 그게 어디 있는 학굔가?”
교장 선생님이 부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부인도 고개를 갸웃한다.
“곡성 삼기에 있는 학교요.”
“곡성이라면 전라도 북부잖아. 당신은 그쪽엔 가지 않았잖아.”
“그렇지요. 뭔가 잘못 안 것 같네요, 휘유우.”
부인이 엷은 한숨을 내쉰다. 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여자가 야밤에 처음 만난 남자들 사이에 앉아 술을 퍼마시고 어디서 제자라고 덤비나. 부인의 한숨을 나는 나대로 해석한다. 부부가 나누는 대화로 봐서는 교장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 아닌 것이 확실한데 또 부부 중 한사람이 교장 선생님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부인이 가늘고 고운 목소리로 설명 한다.
“이 양반은 아니고 내가 교편을 잡긴 했어요. 하지만 곡성 쪽은 아닌걸.”
부부는 다시 손을 잡는다. 아, 한밤중의 완행열차, 이 오붓한 겨울여행을 하마터면 망칠 뻔하지 않았나. 제자도 제자 나름이지. 그건그렇다. 나는 얼른,
“죄송합니다.”
한다. 아무리 개나 물어 갈 내 인생에도 지켜야 할 예의는 있다. 고마워해야 할 것은 고맙다 하고 미안해해야 할 것은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그쯤은 한다, 나도.
그건 그렇고, 그럼 지금껏 한 내 상념은 뭐가 되나. 앞에 앉은 노인이 ‘우리 교장 선생님’인 줄만 알고 그 교장 선생님하고 얽힌 추억을 생각했는데, 이제 그것도 접어야 하나. 딴생각을 할까.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비척비척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안경은 털북숭이처럼 통로로 비켜서 주지는 않는다. 개보다 못한 놈, 너는 인간도 아니야. 나는 비틀비틀 통로를 걸어가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누구에게 욕을 해준다.
털북숭이는 끈질겼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새에 또 자리 모양이 변해 있었던 것이다. 노인들은 없다. 안경도 없다. 아무도 없다. 변하지 않은 건 털북숭이뿐이었다. 그만 창가에 그린 듯이 앉아 있다. 끈질기게시리. 이제 좀 있으면 기차는 정읍역에 도착할 것이다. 기차 안은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사람들이 줄어들자 불빛도 희미해졌다. 희미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또 어쩌자고 죽고살기로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온 걸까. 빈자리도 쌔고 쌨는데.
“다 어디 갔나 봐?”
“갔지.”
“안경은?”
“왜 그자가 좋아?”
“좋긴.”
털북숭이가 입맛을 다신다.
“일루 와.”
나는 통로 쪽 자리에 걸터앉다시피 하고 가만히 있다. 털북숭이가 또 입맛을 다신다.
“안 와?”
“맘대로.”
무슨 말인지 아무 맥락도 없이 나는 맘대로, 하란다. 털북숭이가 나를 세게 잡아당긴다. 나는 그에게로 무너진다. 그가 속삭인다.
“좋잖아, 따습고.”
나는 실제로 따습다. 그건 가짜가 아니다. 털북숭이의 불같은 손길에 내 마음속의 얼음이 봄눈처럼 녹아내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허망한 짓거린 줄을 나는 안다. 나는 애기엄마인 것이다. 아이는 지금 감옥 같은 사각진 침상 안에서 침상 안에서…… 컥 가슴이 막혀온다. 나는 발작적으로 일어난다.
“좋은데 왜 그래?”
“이 짐승 같은 놈, 니가 날 언제 봤다고 지랄.”
하다가 문득 말문이 막힌다. 눈에 눈물이 앞을 가려 털북숭이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탈탈 턴다.
“미안해요오.”
홍익회 밀차는 이제 오지도 않는다. 더 이상 술이 남아나지 않자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내 몸을 조그맣게, 조그맣게 만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 가까워올수록 추워진다.
“어디가 아프요?”
“죽겠어요.”
“술 먹을 때는 기운도 좋드만.”:
술 먹은 때가 좀 전인데도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이봐요.”
나는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말간 얼굴로 털북숭이를 같은 자리에 앉은 이래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고 쳐다본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앙고라토끼 길러본 적 있어요?”
“그냥 토끼 말고 앙고라토끼는 안 길러봤어요.”
“그것이 말이요, 얼마나 새끼를 잘 까는지 알아요? 돈도 뭣도 암것도 안 되는 것이 우글우글하는데,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고 환장하겠드만.”
“나도 환장해본 적은 있소. 앙고라 말고 소는 길러봤소?”
“아니요.”
“노래에 나오는 얼룩빼기 말고 서양에서 들어온 젖소를 길러봤소 팔십 년도에.”
“나 때문이 아니고 소 때문에 먼저 환장하셨그만.”
나는 우스워서 웃는다. 그도 배실배실 웃는다.
“인자 와서 웃지만 그때는 진짜 죽겄드만. 아침에 자고 일어나먼 죽어 자빠져 있고 또 아침에 자고 일어나먼 죽어 자빠져 있고. 그래도 앙고라는 살기는 살아 있응께 그렇게 뵈기 싫지는 않았겄그만. 모든 생물이라는 것이 말이요, 살아 있을 때는 어쨌든 이쁘지마는 한번 죽어불먼 그것같이 뵈기 싫은 것이 없습디다. 소나 사람이나, 휘유우.”
그가 뒤적뒤적 호주머니를 뒤진다. 담배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내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준다.
“여자가 담배를.”
하면서도 얼른 집어간다. 나는 더 이상 물을 필요도, 묻고 싶지도 않다. 빤하지 않은가.
“왜 묻지 않는 거요? 하기사 말해 뭣 허겄소.”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그가 내 손을 가만히 그러모은다.
“여자가 무슨 일로 야간열차를 타고 가냐?”
“재미로.”
“가당찮은 소리 하지도 마라.”
“왜? 나라고 재미로 야간열차 타지 말란 법 있냐? 아까 그 노인 부부 봤지? 안경 봤지?”
“니가 그들하고 같다고 생각하냐? 내 눈은 못 속인다. 너 무슨 죄졌지?”
“미친놈.”
그가 내 어깨를 꽉 끌어안는다. 그의 가슴이 떨린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생생하다.
“넌 죄 많은 년이야.”
“죄 없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욕은 나오지 않는다. 생각보다 내가 많이 양순해졌다. 양순해지는 내가 나는 좋다. 그 부드러움, 그 녹아내리는 듯한 평화.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양순하게, 평화롭게. 하지만 그놈의 앙고라토끼에서부터 나는 망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하면 그 노인은 많은 제자들로부터 내 인생 물어내라고, 당신이 준 앙고라토끼 때문에 내가 망했다는 원망의 소리를 꽤나 들었던 것일까. 그래서 자기가 교장 선생 노릇을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던 것일까. 하나 ‘우리 교장 선생님’은 참 선한 분이었다. 선한 동기로 토끼를 졸업생들에게 나눠 주었던' 것 이다. 그것을 아는 졸업생이라면 절대로 교장 선생님한테 원망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인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양순하고 평화로워질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 같이 살까?”
“그 럴까요?”
나는 순하게 털북숭이의 털에 내 손을 갖다 댄다. 그가 내 입술에 그의 입술을 갖다 댄다. 다음 정차할 역은 정읍역입니다. 정읍역에 내리실 분은 미리 준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정차할 역은
“어디서 내려요?”
“정읍에서.”
“잘 가요.”
“같이 안 내릴 거야?”
“난 광주까지 가요.”
“광주까지 가자.”
“맘대로.”
그는 기분이 좋아진다. 말할 수 없는 맑은 기운이 털이 가득한 얼굴에 퍼지고 있다. 사랑의 기운은 바야흐로 아침놀처럼 부드럽게, 부드럽게 사내의 얼굴에, 온몸에 스민다.
우리는 광주역에 내렸다. 온 세상은 때글때글 얼어 있다. 무등산은 검다. 속은 쓰라리다. 어디로 갈까. 사내가 내 손을 잡아끈다. 나는 휘적휘적 그를 따라간다.
“뭣 좀 먹을래?”
“속이 쓰려.”
우리는 광주역 앞의 국밥집으로 간다.
“많이 먹어.”
나는 많이 먹는다.
“광주는 무슨 일로 온 거요?”
“새끼들 보러.”
“웃기지 말어 .”
그는 내 말을 묵살한다.
“내가 웃겼어요?”
“너 같은 여자가 무슨 새끼는 새끼.”
“내가 왜?',
“무슨 애기엄마가 술 먹고 담배를 피워?”
나는 말하지 않는다. 애기엄마는 절대로 술 먹고 담배 피우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는 남자에게 시집가서 절대로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우고 건강한 새끼들 많이 낳고 평화롭게 살아봤으면. 그렇지만 나는 ‘우리 새끼’들의 엄마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다.
“시답잖은 소리 말고 다 먹고 다시 기차 타고 정읍에 우리 부모님한테 인사하러 가자.”
나는 내 앞으로 검은 휘장이 내려뜨려지는 것을 본다. 한판의 연극은 끝났다. 나는 이제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나는 총총히 일어난다.
“가버리면 안 돼.”
가슴이 싸하니 아파오는 듯도 하다. 나는 냅다 뛴다. 택시를 탄다.
“무등산 밑에 시립 아동일시보호소로 갑시다.”
“어이구 추워. 뭔 놈의 날씨가 요렇게 추운지 모르겄네. 화끈허게 눈이나 와불던지. 서울서 오시요?”
“아니요, 정읍에서요.”
“그래라우이. 정읍은 어쩝디여?”
“정읍이요? 정읍은 따뜻하던데요, 봄 날씨같이.”
“그래부러라우이. 겁나게 희한허시 정읍이 여그서 얼매나 된다고? 여그나 거그나 별반 차이 없을 것인디.”
“그건 그래요.”
그건 그럴 것이다. 어디 간들 덜 추울 것인가, 이 엄동설한에. 그래도 내 자식 있는 곳이 그중 따술 것인데.
“아저씨. 빨리 좀 갑시다.”
나는 이제 추운 것도 잊어버렸다. 아침놀이 무등산 위로 퍼지고 있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호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어 문다. 나는 불어오는 바람에 내 온 얼굴을 내맡긴다.
“아침부터 겁나게 재수 없그만이.”
기사의 욕도 온 얼굴에 맞는다. 나는 담배를 깊숙이, 양껏, 힘차게 빨아 당긴다.
『현대문학』 525호(1998. 9); 『내 생의 알리바이』(창비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