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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산사여행과 보양 온천 여행길 |
입력시간 : 2008. 12.02. 11:28 |
구름도 쉬어가는 절집 운주사
천불천탑과 칠성바위의 수수께끼
臥佛 일어서면 용화세상 도래
운주사 가는 길은 항상 한적하다.
포장도로 산자락을 빙 둘러 내려가니 천불산을 끼고 마을동네 자락 아래에 터를 잡은 운주사의 모습이 보인다. 운주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으로 송광사의 말사다.
전남대학교의 발굴 조사에서 사찰의 창건시기가 고려 때라고 확인해준바 있다. 사찰 창건에 도선 국사가 등장하는 이유는 운주사 설화에도 나오지만 운주사만이 지닌 독특한 불교와 도교식의 절충, 그리고 풍수지리적인 영향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는 설화는 그저 전해지는 말뿐이다.
운주사 천불천탑 전설
천불천탑을 세우면 이곳이 도읍지가 된다고 해 천상에서 석공들이 내려와 999개의 석불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와불(臥佛)을 만들어 세우려고 하는 순간 절의 동자승이 닭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세우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가고 말았다는 전설.
운주사 땅이 여자 음부형국 인지라 장차 임금이 나올 군왕지여서 혈을 끊기 위해 탑을 세웠다고 하는 전설. 운주사 지형이 배 모양으로 국토의 정기가 일본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등의 이야기. 신비와 수수께끼를 지닌 운주사는 창건 설화도 다양하며 언제 세워졌는지 확인하기도 힘들어 더욱 흥미롭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운주사에는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개씩이다'라고 씌어 있어 탑과 불상의 신비한 사연을 오랜 세월 지키고 왔지만 지금은 고작 석불70개, 석탑 18개가 남아 있다.
왜 그 많았던 유산들이 사라졌을까? 인근 주민들이 탑을 뜯어다가 자기 집 상석, 주춧돌, 디딤돌 등으로 만들거나, 돌부처의 몸통으로 설거지통이나 구유, 다듬잇돌 등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돈깨나 있는 이는 사람을 시켜 이곳 석불,석탑들을 무분별하게 캐다가 자신들의 집 정원에 세웠다.
또 과부와 처녀가 임신했을 때 돌부처의 귀를 달여 먹으면 낙태가 된다는 속설을 믿고 귀가 갉아지고 뜯기는 수난을 당했는가 하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이 돌부처의 코를 달여 먹으면 임신이 된다는 속설로 석불의 코도 수난을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일제 강점기 때는 일인들이 불상과 석탑을 아예 뿌리째 뽑아내어 본국으로 가져가는 극심한 횡포를 자행됐다.
속세 인간들의 기원과 구제의 통로를 열어 그들과 늘 가까이 하고자 활짝 열어 주었건만 되레 무지한 인간에게 화를 많이 당하고 마는 꼴이 되었으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찬란했던 운주사의 천불천탑의 신화는 이렇게 서서히 저물어 가고 말았다.
지금 남아있는 돌부처들도 깨지고 갈라지고 뜯기고 멍든 상처투성이지만 그 온화한 미소는 여전히 사랑과 자비로 넘친다.
이곳 운주사에는 그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높이 10.7m의 9층 석탑(보물 제 796 호), 그리고 사찰 중앙부에 있는 석불감 쌍배불좌상의 감실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특이한 형태다.
그 뒤에 배돛 모양을 상징한 원형다층석탑(보물 제 798호), 운주사의 주산인 거북이산(영귀산)의 정수리, 천년을 지배할 황제가 태어날 천년 군황지혈이라 하는 곳에 위치한 명당 탑이 세워져있다. 공사바위 오르는 길에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불도 있다.
와불과 칠성바위의 수수께끼
와불 입구에는 머슴부처라는 이름표를 단 석불입상(시위불)이 묵묵히 서있으며 그 앞에는 커다란 와 불이 있다. 와불이 일어서는 날이면 인간들이 열망하는 용화세상(龍華世上)이 도래한다고 했다. 이 와불은 흔히 부부불 이라고 하는데 이를 바르게 고쳐져야 할 필요가 있다. 어느 대목에도 부처가 결혼하여 부인을 두었다는 말은 없다.
두 개의 와불은 부처(12m)와 협시불(9m)이다. 원래 협시불은 두 개인데 한 개의 협시불만 있음을 보아 다른 협시불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듯 하다.
칠성바위에는 기묘한 천체 배열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한다.
와불이 있는 곳에서 조금 내려와 오른쪽 산자락으로 가면 송림 사이에 무를 반듯이 토막 내어 썰어 놓은듯한 동글납작한 바위들이 있다.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돌이다. 칠성 바위 중 제법 큼직한 돌에 큰 상처가 나있다. 이 돌을 어떤 이가 캐내어 가려다 번개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어느 불자가 일러준다. 지금도 상처 난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마치 북두칠성이 지상에 내려와 누워 있는 배열 상태를 하고 있는데 그 배열의 원칙이 천문 지리적으로 맞아 떨어진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북두칠성 각 별의 밝기는 1,79(1등성), 2,37(2등성), 2.44(3등성) 순으로 나타난다. 더불어 칠성바위 각 돌의 지름도 각각 385, 291.5, 233.5cm로 그 비례가 일정하다. 그래서 원형 돌의 크기도 조금씩 다른 점은 별의 밝기의 차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니 그저 탄복 또 탄복뿐이다.
우주의 기운 꼭꼭 심어놓은 칠성전이 여기던가.
예로부터 북두칠성에 관한 신앙은 중국의 도교사상이 불교와 융합되어 나타난 칠성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고 있다고 믿고 있어 칠원성군 또는 칠성여래라고도 한다. 그래서 사찰에도 칠성각이 있으며 칠성의 주존 으로 치성광여래를 모시고 협시불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배치된다.
원시시대부터 북두칠성은 풍요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고, 영혼이 돌아가는 별로 믿었다고 한다. 이는 자연 숭배사상에 기인한 일종의 신앙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원시시대 고인돌 덮개돌이나, 고구려 장군총, 무용총 무덤안의 천상도 북쪽에도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음을 보아도 잘 알 수 대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생명 연장과 풍요를 위해 그리도 애절히 칠성님께 빌고 또 빌었지만 인간은 어차피 죽게 마련이다. 그러나 죽은 후 내세에 대한 강한 열망이 곧 이런 신앙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칠성신앙이 그중 하나이다.
이렇듯 신비감 넘치는 운주사를 올 때마다 불교이면서 도교적, 그러면서도 민중 신앙이 결합된 이질적인 문화를 접한다는 게 실로 가슴이 벅차며 다른 느낌으로 닥아 온다는 것이 참으로 기묘하다. 신비 베일에 싸인 모든 것 하나하나 마다 그냥 덮어주자. 바로 이런 느낌이 운주사의 가치적 매력이기 때문이다.
여행 TIP
찾아가는 길
화순읍 중앙병원-(29번국도)―능주 사거리-(822번 지방도)―남평방향-(817번 지방도)―도암-(818번 지방도)―다도방향-운주사 이정표-(0.4km)운주사 입구
주변여행지
봉하마을.
이곳은 산촌체험 팜스테이 마을이다. 멋진 펜션 6채와 옛 농기구 전시장이 있어 직접 만져보고 체험 할 수 있도록 시설되어있고 계절별로 시식 및 체험코너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산골에는 운주사 설화와 관련된 마고할미바위, 지팡이바위, 손가락바위, 목욕통바위 등이 있으며 수량이 풍부한 날에 마고할미 폭포와 무지개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다. 호젓한 산책과 사색을 겸할 수 있는 정겨운 마을이다.
도곡 온천욕
기온이 차가워지는 겨울에는 따뜻한 온천욕을 즐기며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도 챙기고 즐거움도 챙기는 겨울 여행의 백미로 온천여행을 꼽는다. 도곡온천 수질의 우수성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도곡온천 관광 지구는 화순군 도곡면 천암리, 원화리 일원에 있다. 온천수는 유황 및 중탄산천이다. 신경통, 관절염, 만성습진,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온천욕을 통해 휴식과 건강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주말과 휴일에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내기에 적당한 온천 휴양지다.
고구려 민속촌
화순군 도곡 온천 지구를 지나 천암리 아름다운 숲길 바로 건너편 왼쪽으로 규모가 큰 옛 가옥이 산허리에 3채 보인다.
주인장, '김영로'씨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황토한옥, 꽃길 원두막집 등 다양한 테마 공간이 멋스럽다. 한우 암소’로 인증 받은 업소다. 정직과 신뢰가 근본이요 바탕이다. 온갖 먹을거리마다 불신을 초래하는 요즈음 세상에 이 집에서는 그럴 염려가 전혀 없다.
부드러운 토시살, 선명한 빛으로 맛을 느끼게 하는 선홍빛 생고기와 꽃 등심. 모듬구이등. 이 맛은 순수 한우 암소 고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우러진 파슬리 양념 맛은 훌륭하다.
차원이 다른 고품격 암소 한우 맛을 제대로 느낀 흐뭇함이 오래 오래 남는다.
무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