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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가회의
 
 
 
카페 게시글
사진으로 읽는 소식 스크랩 행사 시가 있는 가을로의 초대
김창집 추천 0 조회 101 07.09.30 17: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한라수목원의 시화전 모습

 

어젯밤엔 제주시 한라수목원에서 제주도민과 함께하는 ‘시낭송의 밤’이 있었다.

보슬보슬 내리는 가을비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며

초대된 도종환 시인을 비롯하여 도내외 문인 10여 명이 시를 낭송했고

노래패 ‘원’의 아름다운 노래의 선율도 울려 퍼졌다.


제주작가회의가 주최하고 제주문화재단, (사)민예총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해마다 열려 도민들의 가슴에 잔잔한 시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이일석의 사진을 배경으로 25인의 시가 어우러진 ‘제주 꽃과 함께 읽는 가을의 시’

시화전도 한라수목원 야외무대에서 10월 1일까지 전시된다. 


     * 시를 낭송하고 있는 도종환 시인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 이대흠 시인의 시를 낭송하고 있는 제대국문과 3년 강민경 양

 

♧ 외또르 * - 이대흠

 

묵은 그 나무에 들어 소리에 취했으면

소리에 갇혀 소리에 묻혀 외또르 외또르

그대와 나 꽃이나 새겼으면


가지 위에 가지가 포개어지듯

그대 곁에 몸 누이고

돌돌돌 돌돌돌 천년을 꼼짝도 없이

시간이 시간을 베어먹듯 그대

입술이나 훔치며


맨 처음 핀 매화, 꽃잎에 스민 봄 강물

그 물에 멱 감고 맨 처음 소녀와 소년이 되어

시큼한 봄날 보냈으면


외또르 외또르

스미는 새소리에 귀 쇠고

바람 홀친 물소리에 홀리어

풍경소리

저문 강 물들이는 늙은 소의 울음소리

번지는 그 강가

묵은 그 나무속에


-----

* 외또르 : '외따로'를 뜻하는 전남 장성 지방의 방언

 

    * 시를 낭송하고 있는 정군칠 시인


♧ 모슬포 - 정군칠


모슬포에 부는 바람은 날마다 날을 세우더라. 밤새 산자락을 에돌던 바람이 마을 어귀에서 한숨 돌릴 때, 슬레이트 낡은 집들은 골마다 파도를 가두어 놓더라. 사람들의 눈가에 번진 물기들이 시계탑 아래 좌판으로 모여들어 고무 대야 안은 항시 푸르게 일렁이더라. 시퍼렇게 눈 부릅뜬 생선들이 바람을 맞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백조일손지묘 지나 입도 2대조 내 할아비, 무지렁이 생이 지나간 뼈 묻힌 솔밭 길도 굽어 있더라. 휘어진 솔가지들이 산의 상처로 파인 암굴을 저 혼자 지키고 있더라. 구르고 구른 몽돌들이 입을 막더라. 섬이 하나 생겨나더라. 굽은 길에 얹힌 막막한 세월이 무심히 흘렀다더라.


날마다 날을 세우는 모슬포 바람이 한 겨울에도 피 마른 자리 찾아 산자고를 피우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그래야 시절마다 다르게 불어오는 바람을 껴안을 수 있다더라. 그 길 위에서 그 바람을 맞으며 내 등도 서서히 굽어가더라. 

 

     * 시인과 독자의 만남 : 도종환 시인 옆에서 시를 낭송하고 있는 제주시사랑회 손희정 씨

 

♧ 깊은 가을 - 도종환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억새의 머릿결에 볼을 비비다 강물로 내려와 몸을 담그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댈 때마다 튀어오르는 햇살의 비늘을 만져보았어요

알곡을 다 내주고 편안히 서로 몸을 베고 누운 볏짚과 그루터기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었어요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앗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좇아 휘어져 내려가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어느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

 

    * 정윤천 시인의 시와 이일석 씨 사진

 

♬ 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 - 윤보영 / 낭송 고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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