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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62) 2024. 4. 17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라
사무엘하 22:42-51
다윗의 승전가를 계속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승전가를 통해서 자신이 승리하여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원인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에서 찾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신실한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편인가?>
먼저 4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42~43절 “그들이 도움을 구해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43 내가 그들을 땅의 티끌 같이 부스러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밟아 헤쳤나이다.”
다윗의 이 고백은 자신의 힘으로 대적들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기 때문임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 고백의 배경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삼상2:30b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 말씀은 엘리 제사장 가문의 타락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중 일부입니다.
엘리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하게 타락한 사람이었습니다.
첫째,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자기 것으로 가졌습니다(삼상2:13-14).
두 아들의 이러한 행동은 제주(祭主)에게 당연히 돌아갈 몫까지 침범하는 분명한 죄악이었습니다.
둘째, 기름을 태우기 전에 날 것을 갈취하였습니다(15절).
희생 제물은 여호와의 몫인 기름 부분이 먼저 번제단 위에서 태워져 여호와께 바쳐진 후에 비로소 제사장의 몫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의 두 아들의 이러한 행동은 율법의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는 행위였습니다.
셋째,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생활을 하였습니다(22-25절).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습니다. 바알 신을 섬기는 자들처럼 성전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렇듯 제사장의 권한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데 급급하였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하나님은 엘리 가문을 멸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대신 사무엘을 세우심).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즈음 블레셋과의 전쟁이 터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군사를 모으고 그들과 맞서 싸웠으나 안타깝게도 첫 번 전투에서 크게 패하였습니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무려 사천 명의 군사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에 당황한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 그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면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여호수아가 출애굽 2세대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우기철인지라 요단강의 물이 범람할 정도로 많고, 물살이 험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너갈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면 강물의 흐름이 멈추고 물이 쌓여 서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수 3:13). 하나님의 말씀대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흐르는 물에 잠기는 순간 위에서 내려오던 물은 멀리 떨어진 곳에 쌓이기 시작했고(수 3:16), 아래쪽 물은 사해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물길이 끊어진 강 한가운데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서둘러 강을 건넜습니다. 모든 사람이 건넌 후 제사장들이 강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물이 흘러 이전과 같이 회복됐습니다. 놀라운 경험을 한 것입니다.
또, 언약궤를 앞세우고 여리고 성을 돌았을 때 견고해 보였던 여리고 성이 한순간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수6:13).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울 때 기적을 체험하고, 승리를 맛보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안 됩니다. 그 당시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렇게 순종한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라 그렇게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 없이 마치 하나의 부적이나 마술 단지처럼 생각하여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뿐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실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만 들어오면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언약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조건에서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기계가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언약궤를 가지고 간다고 무조건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얼마나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는가?”,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신앙의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참된 회개와 내면의 변화입니다.
욜2:12-14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은 법궤가 없더라도 이스라엘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면 반드시 도와주셨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무슨 주술적인 신앙으로 전락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무슨 부적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드라큘라 영화에 보면 십자가만 앞세우면 귀신이 물러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적처럼 십자가를 차량 안에 걸어두기도 하고(북어 대가리나 실타래처럼), 목걸이로 걸고 다니면 안전하리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십자가를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절대로 부적이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적처럼 십자가를 내세운다고 사탄이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경건의 능력이 없고 모양만 있는”(딤후 3:5) 형식적인 신앙생활에서 속히 벗어나, 성령의 역사로 변화를 받아, 새로 지음 받은 새사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로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윗의 생애 가운데에도 42절의 고백과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42절 “그들이 도움을 구해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윗이 대적한 첫 번째 대적은 사울 왕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누구입니까? 사울 왕 역시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울은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은 그를 버리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지만, 사울은 그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다윗은 그를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종’이기에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사울 왕이 비록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때로 교만하게 굴었지만,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블레셋 군대와 전투하다 전사하였는데도, 아마도 그 위기의 순간에 사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하나님은 그와 그의 가문을 버리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고, 불순종한 사울 왕의 책임입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 해부터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는데 4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얼마나 전쟁이 치열했는지, 전사자만 해도 북군 36만, 남군 25만, 총 60만이 넘었습니다. 결국, 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당시 일화가 전해집니다. 링컨 대통령은 전쟁이 예상 밖으로 길어져서 희생자가 많아지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서 집무실에서 하나님께 두세 시간씩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대통령이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장관들이 보고서 그들도 집무실 밖에서 기도합니다. 대통령이 기도를 마치고 집무실에서 나오자 장관들이 송구한 마음으로 링컨에게 말을 합니다. “우리도 밖에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링컨 대통령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내가) 하나님 편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참모들에게 “앞으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서 기도하자”고 권면했다고 합니다.
다윗은 이 영적인 원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42절과 같은 고백을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승리하는 신앙인의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라>
반면에 다윗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편에 섬으로, 하나님도 친히 자신의 편이 되어주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44~50절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5 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그들이 내 소문을 귀로 듣고 곧 내게 순복하리로다/ 46 이방인들이 쇠약하여 그들의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47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8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하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하시며/ 49 나를 원수들에게서 이끌어 내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높이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다윗에 평생에 힘썼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타락하기 전의 다윗).
그랬더니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 되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시니 그 결과가 놀랍습니다.
첫째, ‘내 백성의 다툼’, 곧 내전에서 승리케 해 주셨습니다(사울 왕, 압살롬).
둘째, 여러 이방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케 해 주셨습니다(“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함한 고백).
이 고백의 바탕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신앙 고백이 드러난 곳이 시편에 있습니다.
시56: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시편 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오늘 다윗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중요한 신앙적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6.25 당시 북한군의 기습으로 한순간에 밀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사흘 만에 서울을 함락당하고, 불과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렸습니다. 그때 우리 한국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 만일 그때 UN군이 제때에 와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아마 우리는 다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이라고, 김정일을 장군님이라고 칭송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UN군이 그리 그렇게 빨리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오후 2시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 소식을 듣고 이 문제를 UN 안보리에 회부했습니다. 뉴욕의 UN 본부에서 안보리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당시 상임이사국은 미국과 자유중국과 소련, 프랑스, 영국 총 5개국으로 이 중에 한 나라만 반대해도 UN군은 파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반대할 것 뻔합니다. 왜냐하면,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침을 미리 허락받았기 때문입니다(소련이 탱크와 비행기를 주고 탄약을 줌). 소련이 반대할 것은 너무나 명명백백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련이 반대를 안 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바로 6.25사변이 난 그 주간에 소련 스탈린이 휴가를 떠난 기간이었습니다. 휴가를 떠나도 독재자 스탈린이 보고를 받을 것인데 그때는 스탈린이 너무나 피곤했던지 엄명을 내렸습니다. “내가 휴가 가는 동안에 아무도 전화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김일성이 하필 그 주간에 남침을 감행한 것입니다. UN에서 급히 한국파병문제를 토의하기 위해서 안보리가 열렸는데, 제이콥 말리크 소련대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스탈린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데, 아무도 스탈린에게 전화를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이콥 말리크는 안보리에 불참했습니다. 그래서 UN 안보리에서 한국파병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미국과 16개국이 군대를 파견했기 때문에 한국이 살아난 것입니다. 나중에 UN군이 파견되고 난 다음에 스탈린이 노발대발하고 가슴을 쳤지만 자승자박입니다. 자기가 전화 걸지 말라고 해놓고 난 다음에 전화 안 걸었다고 호통칠 수 없고, UN군은 파견이 되고 한국은 적화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우리 대한민국 편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때 우리 한국에 기독교 신자들이 백만도 안 되었는데, 뜨겁게 나라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지금은 1,000만에 5만 교회에 10만 주의 종이 있습니다. 물량이 많아졌다는 것이 이유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한편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51절입니다.
51절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주신 구원과 은혜는 단지 다윗 왕 한 사람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후손'(제라-'씨'란 뜻)은 (1)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후계자 '솔로몬'을 가리키나, (2)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것임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길 원합니다. 그래야 모든 환난과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당신의 편에 서길 원하십니다.
그릇이 준비되어야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깨끗한 그릇이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네 편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내편이 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시127:1(솔로몬의 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사도 바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오늘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라고 담대히 고백하며, 날마다의 삶에서 승리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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