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시장 의외 호황에 대기업들 너도나도 진출
"깨끗한 물 찾던 소비자들 이젠 성분·효능에 초점"
"이 물은 산소가 일반 물의 35배가 함유돼 있어서 삼림욕 3시간의 피로 회복 효과가 있고요. 이 물은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풍부해 미용에 좋습니다."14일 낮 서울 신세계백화점강남점 지하 1층 '워터바'(water bar). '워터 어드바이저'로 불리는 물 전문가가 40대 여성 손님들에게 물의 효능과 맛을 설명하고 있었다. 설명을 듣던 한 여성은 "수능을 앞둔 아들에게 줘야겠다"며 500ml짜리 산소수(水) 한 병을 집어들었다.
올 들어 신세계백화점의 전년 대비 생수 매출 신장률(전 점포 기준)은 67%로 전체 식품 품목 가운데 가장 높다. 특히 서울 강남점의 경우 워터바를 시작한 8월 이후 신장률은 189%이다. 롯데백화점도 최근 서울 소공동 본점에 워터바를 열고 일반 가정에서 탄산수를 만드는 기계까지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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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낮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있는 워터바(water bar)에서 ‘워터 어드바이저’가 각 생수들의 특성을 소개하고 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먹는 물'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국내 생수 시장 규모는 2002년 2330억원에서 지난해 4400억원으로 6년 만에 2배 가까이 커졌다. 올해는 5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생수의 경쟁자인 '정수기' 쪽 매출도 크게 늘고 있다. 2003년 렌털(rental·임대)을 포함해 9200억원대이던 정수기 시장은 지난해 1조65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대기업들의 생수산업 진출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SK가스가 자회사인 '파나블루'를 앞세워 해양심층수 '슈어'를 시장에 선보였고, 한진그룹과 LG생활건강도 각각 생수 시장에 진출했다. 올 7월에는 공기업 성격의 군인공제회까지 생수 공장을 짓고 생수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기존 업체들도 수성(守城)에 나섰다. '석수와퓨리스' 단일 제품으로 생수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해왔던 하이트진로그룹은 지난해 해양심층수 '아쿠아블루'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 탄산수 '디아망'을 내놨다. 페트병 판매 기준으로 1위인 농심도 기존 '제주삼다수'가 미국과 일본의 수질검사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다.
◆웰빙 바람 속 급신장
물에 이야기를 담은 '스토리 마케팅'도 활발하다. 국산 생수인 퓨리스의 경우 '세종대왕의 눈병을 고쳤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충남 연기군 전의면 물을 정수처리해 만들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마셨다는 미네랄 탄산수와 마돈나가 즐겨 마신다는 생수도 수입·판매 중이다.
신세계백화점 김은구 바이어는 "'깨끗한 물'을 찾던 1990년대가 생수 1기(期)라면, 미국 드라마가 유행하면서 패션 소품으로 생수를 찾던 2000년대 초·중반이 2기, 성분과 효능에 초점을 두는 현재는 3기"라고 말했다.
◆"생수 성분 등 꼼꼼히 따져보고 골라야"
하지만 업계가 생수의 효능을 과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국대 의학과 남경수 교수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세포나 동물에서 효과가 있다는 연구만 나왔을 뿐 인간에게 직접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연구 결과는 없다"며 "지금까지 자료를 봐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 증명된 것은 없는 단계"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반 해양심층수가 '만병통치약'처럼 소개되면서 한때 붐이 일어났다가 과학적 검증이 부족하다는 학계 등의 지적이 이어지면서 매출이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었다.
연세대 원주의대의 김현원 교수는 "미네랄이 풍부한 생수가 몸에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에선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미네랄 함량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상품을 고르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