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현지 가이드가 안내해준 성니콜라스 대성당부터 관람하고 나서 이야기를 풀어본다.
웅장한 대성당임을 짐작하게 하는 육중한 청동문.
문에 새겨진 조각에 압도된다.
지금은 미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이 성당의 이름은 성 니콜라스 성당이다.
성 니콜라스는 뱃사공과 어부의 수호신이란다.
13세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목조건물인데,
1701~1708년 예수회의 안드레아 푸조의 손길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조각상이 오른쪽에....
성보나벤뚜라의 상이 왼쪽에...
정문 맨 위쪽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이 보인다.
1996년 교황의 방문을 기념해서 새로 만든 청동문이라고 한다.
문 한쪽에는 공화국 시절의 가톨릭을 묘사했고,
다른 한쪽 문에는 성당 발전에 기여한 6명의 주교가 누워있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입체감을 살려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손잡이 앞 부분은 황금으로 만들었나 했더니, 사람들이 하도 만져 닳아서 황금색이 되었다고. ㅎㅎ
아래쪽 그림을 자세히 보면, 깨진 그릇 무더기 속에도 황금빛 얼굴이 보인다.
이는 정문을 만든 작가의 얼굴이라고. ㅎㅎㅎ
어디에라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작가의 욕심이 드러난다.
사람들이 그 얼굴을 빛나게 만들어주었으니~ 소원을 이루지 않았을까?
나도 여기서 나의 소원을 빌고 길을 떠났다.
자, 이제 노천시장을 들를 시간이다.
노천 시장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으나, 버스에서부터 들었던 '납작 복숭아'를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막 갠 상태라서인지 별로 사람이 없었다.
상인들도 그제야 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진열이 끝난 한 가게에 몰려들었다.
나는 망설일 필요도 없이 납작 복숭아를 샀다. 6개에 5유로, 값을 치르고 시장을 돌아나왔다.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면서 버스에 올라 맨 뒤 내 자리로 갔다.
남편이 옆자리에 앉아 내 배낭을 내려놓는데, 지퍼가 열려있었다.
"이 배낭 왜 열려있어? " 하고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잉? 그럼 누가 알아?)
우산에, 카메라를 대신하는 핸드폰에, 수신기에, 이어폰에, 내 몸에 부착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사진을 찍지 않고 수신기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남편에게
내 배낭을 맡겼더니 지퍼가 열려서 돌아온 것이다.
순식간에 뇌 회로가 끊겼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사태를 파악하려고 허둥댔다.
혹시 시장에서 지갑을 떨어뜨린 것은 아닐까 하여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내 작은 배낭 안에 장지갑을 푹 질러 넣고 그 위에 파우치를 올려놓고 지퍼를 잠궜기 때문에
파우치가 떨어졌다면 모를까, 장지갑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미 출발한 버스 안에서 맨앞자리에 앉아있는 가이드에게 뛰어나가며 말했다.
"지갑이 없어요. 소매치기 당한 거 같아요."
일행들은 다시 찾아보라지만, 혹시나 하여 찾아봐도 버스에는 없었다.
가이드는 방금 헤어진 현지가이드에게 전화해서 시장까지 가는 길을 훑어보라고 했다.
혹시 어디 떨어뜨렸는지 보고, 수상한 사람들이 있는지도 보라고.
현지가이드에게 연락이 오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두 개의 문장이 서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이건 사실이 아닐 거야." "맞으면 어쩌지?"
다른 때처럼 어딘가에서 지갑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는 진짜 없어진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카드 없느냐고, 분실신고부터 하라고 일깨워줬다.
아참, 카드!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로밍한 폰을 빌려주며 쓰라고 했다.
하필 카드를 다 가지고 와서 어떤 것부터 해야할 지 허둥대며, 카드회사를 검색하고 있을 때,
또다른 누군가 자녀에게 전화해서 주민번호랑 카드회사를 알려주고 분실신고를 해달라고 하는게 빠를 것이라고 가르쳐줬다.
집나간 정신이 돌아왔다. 딸에게 전화해서 사태를 알리고 분실신고를 부탁했다.
조금 후에 신고를 마쳤다는 딸의 문자를 받았다.
그 문자를 보고야 비로소 머리 속에 불빛이 환하게 켜지며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카드 말고 중요한 건 없었어?"
"돈 500유로와 달러 조금, 그리고 파우치도 없어졌어. 아빠가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털렸어. 일행 중 한 사람 말로는 횡단보도에서 짚시 여자 셋이 바짝 붙길래 수상해서 가방을 앞으로 둘러매니까 그냥 가더래. 그 사람들인거 같아."
"우와 대박 다행이다. 여권같은 거면 골치아픈데. 근데 돈없어서 어케? 가이드한테 빌리고 계좌 달라고 해. 바로 환전해서 입금해줄게."
"돈은 아빠랑 둘이 미리 반씩 나눠놨어.^^"
" ㅋㅋ 그래도 돈 좀 빌려봐. 쫄딱거리지말고 여행비도 싸게 갔는데 가서 펑펑 써야지."
"고맙다ㅠㅠ 선택관광 값은 다행히 치를 거 같아. 아빠 카드는 그대로 있어."
"그럼 카페가고 술먹고 그런거 다해. 아빤 핀잔주지말고 남은 여행 즐겁게 하고 와 ㅋㅋ
기분상하면 시간하고 돈 다 잃는겨. 아름다운 나라에 기부한셈치라고."
딸과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기분이 풀어져 그제야 남편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토록 허둥대는 동안, 저 남편은 어디에 있었는지, 한 마디 말도 없었다.
분실 신고는 했냐? 딸이 뭐라고 하드냐? ...등 당연히 할 말도 한 마디 묻지 않는다.
가지고 온 재산의 반을 잃었는데도 남의 일처럼 강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진짜 전재산을 잃었을 때도 그랬으니까 무슨 말을 하리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다가, 문득 딸의 문자가 생각나서 참았다.
(안 참으면 뭐 어쩔건데.... ㅎㅎ. 나도 늘 이런 식으로 끝내고 말았지. 에휴~ 부창부수로구나.)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그곳에 도착하던 날부터 외교부에서 문자가 날아들고,
가이드가 몇 번을 강조해서 말했건만, 내가 그 꼴을 당할 줄 어찌 알았으랴.
루블랴나는 이 일로 나에게는 잊지못할 곳이 되었지만, 이 사건 때문에 잊지못할 사람들도 생겼다.
가이드는 전날밤 자기가 우리 방에 들렀을 때, 내가 선택관광비를 미리 지불하겠다는 것을 거절했다면서,
그게 미안해서 추가 비용 60유로를 깎아주겠다고 한다. 그럴 필요없다고 해도 끝내 안 받았다.
파우치가 없어져서 화장을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지, 한 번도 안 썼다는 샤넬 립스틱을 주었다.
실제 썬글라스를 쓰면 입술만 칠하면 전체 화장한 것으로 보인다. ㅎㅎ
버스 기사는 자기가 대신 미안하다며, 우리 부부에게는 매일 물을 공짜로 주겠다고 한다.
매번 물을 집어오기 미안해서 몇 번을 돈을 내밀었지만 한사코 손사래를 쳐서, 나도 가져온 주전부리를 나누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긴 해도, 도둑맞은 돈은 생각할수록 아까웠다.
또 그보다 더 아까운 것은 딸이 신혼여행 갔다가 사다 준 장지갑이다.
파우치엔 또 인천 공항 면세품점에서 사서 딱 한번 쓰고 뺏기게 된 쿳션과 립스틱도 아깝기만 했다.
그것들은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믿기지 않을지 몰라도 내 생전 처음 산 쿳션과 립스틱이기 때문이다. ㅎㅎ
언제나 누군가 사다 준 것으로 쓰곤 했는데, 모처럼 내 손으로 고른 것을.... ㅜㅜ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이런 일이 벌어졌나 싶었다.
아무튼 소매치기 당한 것도 속상한데, 모두의 동정을 받으며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도 많이 자존심 상했다.
첫댓글 속상하시죠,
좋은 소재 만드셨으니 특강 으로 사용하고 또 구입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