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강론말씀(23.11.5)
11월 5일(연중 제31주일) 교중 미사 엄은혁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말씀
† 찬미예수님!
아멘.
한주간 잘 지내셨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주간 흡족한 사람도 있고 불만족한 사람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수고가 많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오늘은 위령성월을 맞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위령회장님께서 특강을 해주십사 요청을 했습니다. 위령회장님이 계획을 알맞게 잘 짜 놓았기 때문에 특강을 안할 수 없었습니다.
특강 하면 거창한데 길게하면 좋아하실까? 짧게 하면 의미가 엷어질까?
평소 강론이 짧은 편이 아닙니다. 평소에 한 장인데 오늘은 줄여도 줄여도 두장 입니다.
준비하십시오.
위령성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에 앞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령성월을 통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당 입구에 미사 시간을 알리고 초대하는 글을 써 놓았습니다.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적어두었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은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사람들이 타니까 그냥 올라타는 것과 같다’라고 말이죠.
이곳에 모여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 미사를 드리는 것은 바로 우리는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하면 무섭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미 그것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에 갈 것 같다’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나는 못갈 것 같다’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처음에 손 든 사람이 정답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누가 묻거든 일단 ‘간다’고 하세요.
위령성월을 쉽게 풀이한다면 영혼을 위로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뿐이 아닌게 영혼이라는 것은 우리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 기도가 죽은 삶에도 필요하고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입니다.
장례미사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장례미사는 우리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죽은 사람에 대한 그것은 하느님 몫입니다. 우리의 몫, 혹시 모를 그것을 위해 하느님께 죽은 사람을 기도한다는 건 바로 나를 위해서 내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세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상교회, 둘째는 천상교회, 셋째는 연옥교회입니다.
연옥(煉獄)의 연자는 달굴연(煉)자를 씁니다.
이 천상교회와 지상교회, 연옥교회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통공이라고 하지요.
천상교회에 계신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바로 성인들의 통공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통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또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해주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도 기도를 통해서 연옥영혼이 천상교회로 갈 수 있도록 죽은이들이 필요한 기도를 채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천상교회에 간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한 채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내 삶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잃지 않고 이 세상을 마무리한 영혼은 천상교회로 갈 수 있습니다.
연옥교회에 간 영혼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살았으나 그걸 온전히 간직하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입니다. 알긴 알았으되 삶 속에서 잃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고 완전히 품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마감했으니 도려낼 것은 도려내고 채울 것을 채워 천상교회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에 내가 죽은 이들의 속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혹시 모를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머물고 있는 영혼을 위해서’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또 한가지는 지옥입니다.
지옥은 ‘죽을 죄를 짓고 누우치지 않은 채 하느님을 등지고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지옥에서 가장 큰 고통은 인간의 창조 목적인 생명을 살릴 수 없는 곳이라는 것 입니다.
상상해 본다면 우리가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지옥은 계속해서 희망이 없는 하느님의 은총을 얻을 수 없는 상태, 이것을 스스로 선택한 상태인 것 입니다.
위령성월에 우리가 어딘가로 하느님 나라로 가야하는 데 이렇게 부족한 상태라면 회복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혹여나 연옥에 있게 된다면 기도해야하고 천상교회에서 성인들과 함께 있다면 그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고 천상교회의 성인들과 함께 완전한 상태에서 기도해야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갈 사람들인데 혹시 못갈 수도 있을테니 기도하는 거예요. 성인들이 기도해주고 우리도 기도하는 겁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가를 것이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도 재림하셔서 양과 염소를 갈라 양을 살릴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공심판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각자 삶을 살다 죽으면 개별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삶의 흔적에 따라 천상교회로, 연옥교회로, 영원지옥으로 가는 거지요.
누가 심판합니까? 누가 심판하는가?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나 자신을 심판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은 귀중하게 태어났습니다. 그것을 배우지 않았는데 가꾸지 않았는데 잘 살아갑니다. 우리는 자기만의 ‘작음’안에서 마치 자신이 다 가꿔서, 자기가 다 알아서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아기는 처음부터 죽고 싶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기는 알려주지 않아도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인지를 압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이 신비를 담아놓은 누군가가 있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질서와 조화 속에서 흘러갑니다. 이미 우리는 생명을 받았고 하느님께서는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마음과 방향을 알려주셨습니다. 나중에 우리 삶을 소진하고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몰랐습니다’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두렵고 거리를 두고 싶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야할 찬스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죽었는데 천상과 지옥 둘 중 하나라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천상 아니면 지옥인데요. 그래서 연옥은 하느님 자비의 소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비의 소치입니다.
몇가지만 더 정리해본다면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고 산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주신 자비심을 만난다면 그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곳에 끼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성인들의 기도와 내가 하는 기도가 만나서 함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 기억하고 기도해 준다면, 천상영혼들과 함께 기도해 준다면 들리워져서 천상으로 들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명쾌한 답변을 주십니다.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입니다.
라자로는 죽어서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습니다. 부자는 타는 듯한 갈증으로 “제발 라자로를 보내주셔서 저에게 물한방울이라도 좀 건네주게 해 주세요”라고 간청합니다.
너에게는 갈 수 없는 곳에 있다 하니 부자는 “그럼 아브라함 아버지, 남은 내 가족들만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도록 얘기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그들에게는 예언자들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연옥영혼도 천상교회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 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알고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로 가져가야 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통공을 믿고 성인들의 공로로 지상의 순례자로 있는 우리는 천상영혼들과 함께 기도합시다.
모든 것이 예수그리스도 덕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모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위령성월의 의미를 잘 알아서 기도해야 겠습니다.
위령성월의 의미 특강. 끝.
아멘.
의도치 않게 신부님 강론의도와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